조나단 앤더슨 인터뷰 - 로에베의 가치는 문화에서 발현된다

그와 로에베에 관한 A to Z.

패션 
8,016 Hypes

조나단 앤더슨로에베의 신작으로 서울을 찾았다. 성수동에 위치한 레이어 57에서 비대칭, 서로 다른 소재와 패턴의 충돌 등으로 미학을 드러낸 2018 S/S 컬렉션을 선보였다. 그리고 한국 고유의 여백의 미를 담은 달항아리와 스티븐 마이젤의 캠페인 이미지로 제작한 대형 태피스트리 작품이 그 곁을 지켰다. 그가 단 한 번도 방문한 적 없는 한국을 아시아 투어의 시작점으로 삼았다는 것도 흥미를 자극했다. 국내 패션계의 시선이 그와 로에베에 집중된 건 당연지사다.

런던을 기반으로 활동하는 디자이너 조나단 앤더슨은 스페인 가죽 명가 ‘로에베’와 개인 브랜드 ‘J.W. 앤더슨’의 크리에이티브 디렉터로 종횡무진 활약 중이다. 패션계는 물론, 대중도 그의 디자인을 ‘독창적’이라 평하고, 매 시즌 뜨거운 박수를 보낸다. 쉽게 말하면 그는 ‘믿고 보는 디자이너’다. 도대체 왜 사람들은 세대와 취향을 막론하고 그의 디자인에 열광하는 걸까? 그리고 그가 구현한 로에베의 가치는 대체 무엇일까? 섬세하고도 확고한 앤더슨의 세계관을 탐구하기 위해 <하입비스트>가 그를 만났다. 앤더슨의 연대기, 그와 로에베의 인연, 그리고 그와 함께 나눈 인터뷰.

Part 1. 두 브랜드의 수장.

2008년, 앤더슨은 런던에서 처음 남성복 컬렉션을 선보였다. 결과는 성공적이었다. 그의 데뷔작은 ‘혁신적이고 진취적인 디자이너의 등장’이라는 극찬을 이끌어냈다. 이후 브리티시 패션 카운실의 뉴젠(NEWGEN) 캣워크 스폰서십을 통해 든든한 경제적 지원을 등에 업은 그는 무섭도록 빠른 속도로 성장했다. 2010년 9월에는 남성복 브랜드 선스펠의 크리에이티브 디렉터로 임명되었고, 인터내셔널 울마크 프라이즈 후보 선정, 탑샵과의 협업, 베르수스 캡슐 컬렉션 론칭 등 쉴 틈 없이 앞을 향해 나아갔다. 그가 일군 노력의 결과물은 하나하나 열거하기 벅찰 만큼 끝이 없다.

이렇듯 탄탄대로를 달리던 그에게 자신의 진가를 발휘할 결정적 기회가 찾아왔다. 2013년, 스페인 럭셔리 가죽 브랜드 로에베의 부름을 받은 것. 170년의 역사를 지닌 로에베는 장인 정신, 가죽 공예, 그리고 혁신을 핵심 가치로 삼는 브랜드다. 앤더슨과 로에베의 공통된 강점은 바로 수준 높은 크래프트맨십이다. 그가 촉망받는 디자이너로 화제를 모으고, 본격적으로 여성 컬렉션을 전개한 데는 그의 정교한 액세서리 라인의 공이 컸다. 덕분에 앤더슨에게 디자이너로서 한 단계 발전하기 위해 필요한 기회가 찾아온 것이다.

앤더슨이 로에베의 수장이 된 지 4년. 그는 로에베의 전통과 특유의 스페인 감성에 참신한 개성을 더해 브랜드 역사의 새로운 챕터를 쓰고 있다. 2014년 로에베는 <월페이퍼>가 선정한 베스트 리브랜딩 브랜드에 이름을 올렸고, 2015년 브리티시 패션 어워드에서 올해의 남성복과 여성복 디자이너 부문을 동시에 수상하는 겹경사를 맞았다. 또 <보그>의 2016 F/W 베스트 컬렉션에 선정되며 제 역할을 완벽하게 수행하고 있음을 증명했다.

조나단 앤더슨 인터뷰 로에베 2018 봄 여름 컬렉션 서울 프레젠테이션 J.W. 앤더슨 스티븐 마이젤 윌리엄 모리스 2017 jonathan anderson loewe jw anderson seoul spring summer collection interview william morris steven meisel

Part 2. 로에베, 그리고 스티븐 마이젤.

서울에서 소개한 로에베의 2018 S/S 컬렉션 전면에는 스티븐 마이젤의 캠페인을 내세웠다. 성수동에서 진행한 서울 프레젠테이션도 마찬가지. 사실 앤더슨이 이끄는 로에베에 대해 이야기할 때 마이젤을 빼놓을 수 없다. 둘의 인연을 언급하려면 무려 1997년으로 거슬러 올라가야 한다. 앤더슨이 13세 때의 일이다. 그는 <보그>와 나눈 인터뷰에서 마이젤의 패션 화보를 접한 순간을 이렇게 회상했다. “<보그 이탈리아> 화보는 평생 잊지 못할 거예요. 화보 속 아름다운 빛에서 받은 감동은 말로 표현할 수 없죠. 스티븐 마이젤은 패션보다 인물에 집중하게 만드는, 뛰어난 감각과 힘을 지니고 있습니다.”

아니나 다를까, 앤더슨은 로에베의 미래를 설계하는 데 꼭 필요한 첫 번째 인물로 마이젤을 꼽았다. 그만큼 패션을 오롯하게 이해하는 사진가가 없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마이젤은 앤더슨의 첫 로에베 컬렉션 캠페인에 기꺼이 참여했고, 이 만남은 현재까지 이어졌다. 둘은 서로에게 단순한 비즈니스 상대가 아니라, 역동적 차원의 관계다. “나는 로에베를 문화적 브랜드로 만들고 싶습니다. 우리가 믿는 문화의 가치가 삶에 반영되기를 바랍니다.” 가치는 문화에서 발현된다는 앤더슨의 말이다. 패션의 표면이 아닌, 본질을 바라보는 마이젤은 그에게 더없이 완벽한 파트너이고, 로에베의 핵심 중 하나라 할 수 있다.

앤더슨과 마이젤이 공동으로 작업한 최신작, 로에베 2018 S/S 컬렉션 캠페인은 총 다섯 가지 버전으로 전개되었다. 모두 글로시한 메이크업을 한 채 탐스러운 과일을 베어 문 모습. 이들의 작업은 컬렉션의 테마와 키 룩을 강조한 것이 아닌, 예술적 미학을 드러냈다는 점에서 눈여겨볼 필요가 있다. 캠페인 이미지는 쇼 초대장으로 배포되는 동시에 약 500개의 파리 뉴스 키오스크(무인 정보 전달 단말기)에 장식됐다.

조나단 앤더슨 인터뷰 로에베 2018 봄 여름 컬렉션 서울 프레젠테이션 J.W. 앤더슨 스티븐 마이젤 윌리엄 모리스 2017 jonathan anderson loewe jw anderson seoul spring summer collection interview william morris steven meisel

Part 3. 그와 나눈 서울 대담.

“나는 로에베를 ‘문화적’ 브랜드로 만들고 싶다. 우리가 믿는 문화의 가치가 삶에 반영되기를 바란다.”

 

로에베의 수장으로 활약한 지 4년이다. 그동안 브랜드에 어떤 변화가 생겼나?

내가 로에베의 크리에이티브 디렉터로 취임한 후, 로에베는 꾸준히 발전해왔다. 이러한 발전은 충분한 시간을 통해 이루어졌고, 과정 또한 자연스러웠다.

로에베를 정의하는 키워드 혹은 미적 감성은 무엇인가?

로에베는 뚜렷한 가치를 추구하는 브랜드다. 이는 특히 핸드백에서 가장 잘 드러난다. 가죽을 다루는 기술에서 타 럭셔리 브랜드와 확실한 차이가 있다. 이 차별점은 로에베 장인들의 손끝에서 탄생한다. 또 지난 4년 동안 나와 나의 팀은 로에베를 단순한 럭셔리 패션 브랜드가 아닌, ‘문화적’ 브랜드로 변모시키기 위해 많은 노력을 기울였다.

서울에서 아시아 첫 프레젠테이션을 선보인 이유는?

간단하다. 단 한 번도 한국을 방문해본 적이 없기 때문이다!

조나단 앤더슨 인터뷰 로에베 2018 봄 여름 컬렉션 서울 프레젠테이션 J.W. 앤더슨 스티븐 마이젤 윌리엄 모리스 2017 jonathan anderson loewe jw anderson seoul spring summer collection interview william morris steven meisel

런웨이 쇼, 전 세계 플래그십 매장 윈도 디스플레이, 그리고 오늘 서울 프레젠테이션에서도 달항아리를 활용했다. 한국의 백자, 달항아리에 관심을 갖는 이유는 무엇인가?

달항아리를 처음 만나게 해준 것은 유명 사진가 로드 스노든(Lord Snowdon)의 1980년대 중반 작품이다. 루시 리에(Lucy Rie)가 커다란 달항아리 옆에서 포즈를 취한 사진이다. 또 BBC의 공예 관련 다큐멘터리를 본 적이 있는데, 달항아리를 제작하는 여러 명의 한국 장인을 다룬 것이었다. 달항아리가 보여주는 균형미는 말로 표현할 수 없을 정도로 황홀하다. 게다가 ‘달’이라는 단어를 품은 이름조차 매력적이다. 굉장히 사랑한다.

달항아리에 매력을 느꼈다면, 특유의 ‘여백의 미’가 있는 한국 미술도 좋아할 듯한데. 예를 들어 단색화로 유명한 이우환, 김환기 작가라든가.

이우환 화백은 잘 알고 있다. 남프랑스에서 그의 전시를 본 적이 있다. 작품 모두 훌륭했고, 전시는 더없이 완벽했다. 한국에서 보낸 이틀 동안 단색화 작가 윤형근을 새롭게 알게 되었고, 그의 작품을 직접 구매하기도 했다. 작가의 그림에서 ‘자연스러움’을 느꼈고, 그 안에 녹아든 움직임에서 작가의 의도를 알 수 있었다.

2017 로에베 크래프트 프라이즈에서 한국의 배세진 도예가와 김상우 작가가 이름을 올렸다. 특별히 주목하는 한국 출신 작가, 디자이너, 혹은 셀러브리티가 있는지?

작가의 이름보다 작품을 주로 기억한다. 한국을 포함해 여러 나라를 방문할 때마다 그 나라의 문화를 직접 경험하려고 노력한다. 세계적인 관심을 받고 있는 K-팝에도 관심이 있다. 한국에 머무는 기간 동안 K-팝 관련 콘서트에 가보려 했지만, 아쉽게도 기회가 없었다. 내가 피부로 느낀 한국은 굉장한 유스 컬처를 보유하고 있다. 매우 흥미롭고, 재미있다.

아시아에서 남성복을 선보일 예정이 있나?

그렇다. 때가 되면 선보일 거다. 지금은 천천히 성장하는 것이 중요하다.

운동화, 스트리트 패션, 그리고 힙합은 <하입비스트>의 뿌리라 할 수 있다. 당신과 어떤 연결 고리가 있을까?

물론 있다. 최근 나의 개인 레이블인 J.W. 앤더슨을 통해 컨버스협업했다. 또 에이셉 라키는 내가 의지할 수 있는 동료이자 친구다. 클롯의 설립자 에디슨 첸과도 좋은 관계를 유지하고 있다.

‘왕관을 쓰려는 자, 그 무게를 견뎌야 한다’는 말이 있다. 크리에이티브 디렉터로서 두 브랜드를 이끄는 일이 쉽지 않을 것 같다. 발전을 위해 특별히 노력한 점이 있나? 배운 점은?

솔직히 말하면, 로에베의 크리에이티브 디렉터로 일하면서 가장 힘들다고 느낀 것은 인력 관리다. 역시 인간관계가 가장 어려운 것 아니겠나. 로에베와 J.W. 앤더슨은 서로 다른 브랜드고, 두 레이블을 운영할 수 있도록 해주는 각각의 그룹을 잘 이끄는 것이 가장 큰 도전이다.

당신은 스트리트 문화와 패션에 어떤 견해를 갖고 있나?

사실 ‘스트리트 문화’라는 단어를 이해하기 어렵다. 우리가 만드는 모든 것은 결국 ‘스트리트’의 요소 중 하나라고 생각한다. 스트리트웨어가 스포츠웨어를 뜻한다면 그것도 하나의 정의가 될 수 있는 것처럼. 하지만 나에게 스트리트 패션은 기이한 세계다. 사람들이 패션에 의미를 부여하기 위해 만든 것처럼 느껴진다. 다분히 유행성을 띠는 단어이기도 하다. 내가 만든 옷이 길거리로 나가면 그것 또한 스트리트웨어가 되는 거다. 이처럼 스트리트 문화는 포괄적인 의미를 지니고 있다고 생각한다.

로에베의 크리에이티브 디렉터로서 단기적 혹은 장기적 목표는?

지금 내가 향하는 방향으로 계속 발전하고 싶다. 로에베는 꾸준히 성장하고 있다. 이는 하룻밤에 일어난 기적이 아니다. 두 시즌 뒤 사람들의 기억에서 사라지는 브랜드는 내가 지향하는 바가 아니다. 나에게는 로에베가 수백 년간 역사를 이어갈 수 있도록 해야 할 책임이 있다. 내가 내린 결정과 행동이 브랜드의 긴 역사에 추가될 것이고, 나는 장기적인 비전을 세워야 한다.

개인적으로는?

내가 열심히 기반을 다져 두 브랜드가 나의 커리어나 인생보다 더 오랜 시간 동안 유지될 수 있으면 좋을 것 같다.

당신의 2017년 하이라이트는 무엇인가?

헵워스 박물관(Hepworth Museum) 전시를 기획한 것. 올해 가장 의미 있는 일이다. 박물관에서 진행한 첫 행사였는데, 결과가 너무 좋았다.

최근 로에베가 크리스마스 캡슐 컬렉션을 론칭했다. 윌리엄 모리스를 영감의 원천으로 삼은 이유는?

로에베에 첫발을 들였을 때, 윌리엄 모리스의 수섹스 의자(Sussex Chair)를 재해석했다. 이는 나와 로에베의 만남을 상징하는 오브제다. 수섹스 의자는 최고 수준의 공예 기술을 보여주는 작품이며, 이를 로에베에 적용함으로써 영국과 스페인의 결합을 표현했다. 윌리엄 모리스는 언제나 내게 큰 영감을 주는 대상이며, 진정한 공예가라고 생각한다.

프린트를 위한 작품 셀렉트 기준은?

윌리엄 모리스의 프린트 중 그의 전성기를 상징하는 작품을 선택했다. 그의 프린트는 곧 영국 문화라고 생각한다. 그렇기 때문에 영국과 스페인 문화를 융화시켜 제품으로 탄생시키는 상징적인 의도에 적합하다고 생각했다.

로에베의 핵심 가치는 장인 정신, 가죽 공예, 그리고 혁신으로 표현된다. 당신이 정의하는 로에베는?

문화. 우리가 지향하는 가치가 삶에 반영되기를 바라고, 모두에게 영향을 미치는 것이 나의 목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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