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자로드 연말특집 - 낮 편
10시부터 18시까지 우리가 먹어야 할 것들.
<최자로드> 시즌 1이 끝난 지 5개월. 미식가들의 머릿속에 새로운 로드맵이 생겼다. 순대는 와인과 함께, 삼겹살에는 위스키를 곁들여야 한다는 일종의 공식이 자리잡았다. 종로의 닭한마리 칼국수를 먹은 뒤에는 혀부터 태극당 모나카를 찾는다. 보석 같은 맛집과 참신한 주류 조합을 소개했던 당사자의 근황은? ‘힙합계의 황교익’이라는 별명을 얻은 최자는 진짜 황교익 선생님을 만났다. <수요미식회> 닭 편의 패널로 등장해 혀깨나 썼다.
12월의 이른 아침, 최자에게서 한 통의 전화가 걸려왔다. 내년 여름 시즌 2에 앞서, <최자로드> 연말 특집이 시작되는 순간이었다. 집을 나설 때만 해도 몰랐다. 24시간 동안 먹게 될지.
“일단 나와. 묻지 말고.”
10:00 AM
아침녘의 방어 어택
흔히 경찰과 의사 그리고 변호사는 한 명씩 알아두면 좋다고 말한다. 하나 추가하자. 살면서 진짜 귀인이 되는 사람은 ‘아는 셰프’. 시비송사의 해결사는 아니지만, 요지경 같은 세상에서 더한 구원의 손길을 내밀 것이다. 특히 오늘처럼 낚시꾼 친구가 보내준 특방어가 손에 들어오는 날이라면.
“참치가 진짜 맛있는 미국 소라면, 방어는 한우야.”
오늘은 겨울 바다의 한우, 방어가 제주에서 올라오는 날. 얼마 전 TV에서 목격한 대형 참사가 떠올랐다. 선물 받은 ‘자연산’ 송이버섯과 국내산 대게, 전복 그리고 귀한 무늬 오징어를 라면에 투하하는 비통한 광경이었다. 진귀한 재료를 어찌 조리해야 할지 몰라 라면 100봉지 가격으로 한 그릇을 만들어버리는 비극이었다. 그런 참사를 막기 위해서라도 아는 셰프, 특히 일식 요리사는 한 명쯤 알아두면 좋다. 집에서 회만 썰어 먹기엔 직접 잡은 방어는 정말 특별하니까.
제주의 낚시꾼 친구에게서 ‘땡겨 받은’ 가불 방어를 가지고 찾아온 일본 요릿집. 몇 해 전 최자와 개코가 지나가다가 우연히 발견한 맛집이다. 왠지 들어가보고 싶어 들어왔다가 지금은 아침 댓바람부터 횟감을 들고 들이닥칠 정도로 단골이 되었다.
“첫 피스를 먹어보고 ‘허읍, 맛있다’고 감탄했다니까. 그때는 개업 초기라 왠지 나만 아는 것 같아서 개척자가 된 기분이었어. 그동안 숨겨두고 있었지. 여기는 단품도 있지만 코스로 먹는 게 좋아.”
이곳은 사시미 코스인 오마카세 전문이다. 생선을 여러 가지 조리법으로 맛볼 수 있고, 사시미와 스시의 매력을 비교하는 재미가 있다. 그날그날 신선한 제철 생선을 손님상에 낸다
“제발 기도하십쇼.
충이 안 나오길.”
방어를 손질하던 셰프가 기도하듯 외쳤다. ‘겨울 방어’라는 말도 있듯, 방어는 기름이 차오르는 겨울에 유독 담백하다. 단점이라면 충이 많은 생선이라는 것. 오랜 경력의 셰프도 충 없는 방어를 본 적 없을 정도고 여름에는 낚시꾼들도 먹지 않고 방생한다. 기도발인지 평년보다 제주 바다의 수온이 일찍 떨어진 탓인지, 작은 충 한 마리 나온 것이 다였다.
“낚시꾼들은 잡은 생선을 집에서 직접 손질해 먹기도 해. 하지만 전문가의 칼질은 차원이 다르지. 사실 일식집은 주방장의 칼을 다루는 솜씨를 구경하는 재미가 있잖아. 꼭 공연 보는 것처럼. 아기 새처럼 입 벌리고 감상하고 있다가 정성껏 다룬 식자재를 받아 먹지. 그리고 은근히 다찌에 앉아야 하나라도 더 주신다?”
“일본 요릿집에 오면 귀한 부위를 낭비 없이 여러 가지 방식으로 조리해서 먹을 수 있어. 전문가의 예술에 가까운 칼질로. 산지에서는 생선이 흔하기 때문에, 방어 가맛살 같은 맛있는 부위를 그냥 버리기도 하거든.”
마침 낫토 아에가 등장했다. 방어와 낫토를 비벼 김에 싸 먹는 요리다. 식자재에 대한 이해가 없으면 잘 쓰지 않는 부위인 지아이(가운데)를 활용했다.
“가맛살은 뱃살과 얼굴이 접합되는 부위야. 기름이 풍부하지만 지나치지 않아. 쫄깃쫄깃한 얼굴 살과 뱃살의 기름기가 적당히 조화를 이루지. 한 마리당 정말 조금밖에 없는 귀한 부위야.”
이번 메뉴는 니모노(찜). 두껍게 썰어 낸 방어 등살을 소금과 후춧가루로 간하고, 술과 미림, 다시마를 밑에 깔고 쪘다. 소스는 고기 육수와 다시마 육수 두 가지를 혼합했다. 고기의 단맛과 다시마의 시원함이 합쳐진 맛이 일품. 겨울에 몸을 따뜻하게 하는 데 찜만 한 게 없다.
“노렌이 더러울수록 맛있는 초밥집이었대.”
“생선마다 씹는 느낌이 다른데, 기름이 오른 방어는 진짜 입에서 녹아 없어지거든. 특히 가맛살은 정말 맛있어. 씹는 느낌이라기보다는 부드럽게 녹는 느낌이야.”
스시의 밥알을 뜻하는 샤리는 주방장의 개성이다. 흑식초, 백식초, 현미식초 등 간을 하는 식초의 종류만 해도 여러 가지라 셰프의 취향에 따라 맛이 갈린다. 이곳의 셰프는 군내와 묵은 맛이 덜한 일본산 현미식초를 사용한다.
“이 집 샤리는 너무 튀지 않고 안정적이야. 쌀이 너무 딱딱하면 부서지는 씹는 맛이 재밌지만 생선 살과 섞이는 맛이 덜하지.”
최자가 손으로 스시를 집어 먹었다. 흠칫 당황했지만, 1인당 하나씩 주어진 물수건을 보고 스시집에서는 낯선 행동이 아님을 알아챘다. 사실 인도에서 카레를 손으로 먹듯, 원래 스시도 손으로 집어 먹는 음식이다.
“스시가 원래 무사들 도시락이었대. 단백질이 풍부하잖아. 전쟁 통에 빨리 먹어야 하니까 손으로 먹기 시작했다지. 사실 무사가 전투 중에 젓가락 들고 다니면서 꺼내 먹는 게 더 이상하지 않나?”
실제로 일본 에도 시대에 노렌을 보면 그 집이 장사가 잘되는 집인지 알 수 있다는 말이 있었다. 초밥을 먹고 나가면서 노렌에 손을 닦는 풍습이 있었기 때문이다. 고로 노렌이 더러울수록 맛있는 스시집이다.
“그거 알아? 일식집은 간장이 너무 맛있으면 안 된다는 말도 있어. 재료 본연의 맛이 돋보여야지 간장에 지면 안 되거든. 그래서 어떤 종류의 사시미는 소금에 찍어 먹어.”
최자와 셰프의 조언대로 천일염을 찍은 방어 가맛살을 한 점 입에 넣는다. 아, 참치와는 또 다른 부드러움이 느껴진다.
“조직의 씹는 맛이 방어가 더 촘촘하고 부드러워. 입에서 녹아 없어지지. 참치가 진짜 맛있는 미국 소라면, 방어는 한우야.”
“12월 중순 이후, 진짜 한겨울 방어에서만 이 맛이 나.”
“여기는 직접 잡은 생선 없이 와도 가지고 있는 생선이 워낙 좋아. 들고 온 재료 외에 가지고 있는 재료도 내어주시니까. 여러 가지를 먹을 수 있어서 좋아. 일식집의 단골이 되면 숨겨놨던 좋은 부위를 딱 썰어 주시는 게 매력이지.”
사실이다. 방어 외에도 살짝 토치해서 비린내와 기름기를 빼낸 청어 아부리부터 한치초밥, 유자와 트러플 오일로 맛을 낸 금태초밥, 훈제 참치회까지 온갖 횟감을 맛보는 호사를 누렸다.
“스시 입문하려면 이렇게 좋은 데서 하면 안 돼. 학교 앞에 있는 합리적인 가격의 체인부터 차근차근 밟고 올라와야 맛의 차이를 느끼지.(웃음)”
횟감이 생겼다고 모든 요릿집에서 환영받는 건 아니다. 드물게 단골이나 지인이 재료를 들고 오기는 하지만, 모든 낚시꾼의 요청에 응답할 수는 없는 노릇. 직접 잡은 생선을 가지고 방문하려면, 스케줄이 가능한지 반드시 사전에 확인해야 한다. 단골이 되는 것이 곧 프리패스겠지만.
“직원들에게 바로 먹으라고 해. 썰어놓은 회는 오래 못 간다.
그건 유죄야. Guilty.”
남은 방어의 운명이 정해졌다. 손질한 재료의 반은 셰프에게 선물하고, 먹고 남은 것은 아메바컬쳐로 향한다. 낚시꾼을 대표로 둔 덕에, 아메바컬쳐에는 종종 제철 생선을 맛볼 수 있는 ‘사시미 복지’가 있다.
14:00 PM
남산 위의 저 탄탄면
“우리에게 허락된 유일한 마약이 탄수화물 아니야?” 시즌 1에서 최자가 남긴 명언을 기억한다면, 다음 메뉴는 탄수화물이 되어야 마땅하다. 고담백 방어를 섭취한 뒤에는 면으로 입가심하는 것이 지당한 순서. 남산 아래 외진 골목에 자리한 면 요릿집으로 향한다. 좌석도 메뉴도 단출하다. 딱 여덟 석의 테이블만 갖추고, 오직 탄탄면 하나로 승부한다.
“여기는 토핑이 여섯 가지야.
난 이거 다 시켜. 그랜드 슬램.”
“이 집은 메뉴는 하나지만 자유도가 엄청 높은 식당이야. 기본으로 먹다가 토핑을 하나씩 추가해 먹는 맛이 좋아. 맛의 변화를 즉각 느낄 수 있어.”
기본 소스는 산초와 흑식초 그리고 고추기름이다. 그랜드 슬램을 달성하고 싶다면 마라부터 짜샤이, 대파, 다진 고기와 쪽파, 반숙 계란 그리고 양파 플레이크를 올린 밥까지 여섯 가지 토핑을 모두 주문해보자. 다음은 여섯 가지 토핑의 적용법.
“기본으로 시작해서 마라 넣고 먹다가 짜샤이랑 대파를 추가해봐. 그러고 나서 흑식초도 조금 넣어보고. 계란은 바로 넣지 말고 한참 먹다가 면이 조금 남았을 때 비벼 먹어. 그럼 또 확 달라져. 맛이 리치해 지지. 먹다가 조금 느끼해졌다 싶을 때 넣는 게 고추기름이야.”
“매운 것을 잘 못먹는 사람은 마라 토핑 금지. 욕심 금지.”
“무턱대고 여섯 가지 토핑을 다 추가하면 안돼. 처음부터 마라가 조금 들어가 있긴 한데, 이게 생각보다 맵거든.”
토핑 그랜드 슬램의 마무리는 밥. 남은 탄탄면 소스에 바삭한 양파 플후레이크와 고슬한 밥을 비벼 먹는다. 산초향을 좋아한다면 처음부터 넣어도 되지만 향이 부담스럽다면 마지막에 넣는 게 좋다. 어라, 그러고 보니 이 탄탄면은 국물이 없다?
“탄탄면은 원래 국물이 없는 요리야. 아카사카의 첸켄이치라는 사람이 국물을 처음 넣었는데, 그 버전이 오리지널보다 더 대중화되었지.”
탄탄면의 스테레오타입을 깨뜨리는 이 집만의 특징이 하나 더 있다. 탄탄면 하면 으레 땅콩 소스 맛을 떠올리기 마련이지만, 다른 집 탄탄면과 달리 여긴 땅콩 소스 맛이 튀지 않는다. 땅콩보다는 깨 페이스트를 더 많이 부각해서다. 땅콩향이 강하지 않아서 오히려 더 좋다.
낯익은 손님이 등장했다. 문을 열고 들어오는 손님은 개코. 지난 ‘최자로드 – Ep.4 고등어 샌드위치와 순두부 우동’ 편 촬영 당시, 취재팀에 앞서 방문해 오돌뼈를 품절시킨 장본인이다. 덕분에 재료가 동 나서 오돌뼈는 구경도 못 했고. 그런 개코와 최자의 입맛이 또 통했다.
“우리는 자라온 양분이 거의 비슷해. 부모님이 둘 다 종로 근처에서 일하셨고, 식성도 똑같고. 서로 좋아하는 게 같아. 취향도 일치해. 비슷한 디자인의 옷이나 똑같은 색상의 신발을 신고 나온 적도 되게 많아. 오늘도 내가 저렇게 입고 나오려고 했거든.”
“마라가 생각보다 맵긴한데, 기분 나쁜 매움이 아니라 기분 좋게 매운 맛이 나.”
“너는 매운 거에 약하니까 마라 추가 하지 마. 식초 넣어 식초.”
개코의 젓가락질 한 번이 끝나기 무섭게 참견하는 최자지만, 개코에게 전수받는 맛집도 꽤 많다. 개코의 전문 분야는 쌀국수. 최자가 국내 1호 쌀국수 가게의 1호 알바생은 자신이라며 자부해도, 사실 쌀국수 전문가는 따로 있다.
“개코는 쌀국수 익스퍼트지.
여기저기 혼자 먹으러 다녀. 암행어사 스타일이야.”
면이라면 일가견이 있는 쌀국수 전문가 개코도 이 집 면의 식감에 엄지를 추켜세웠다. “면 씹는 느낌이 기가 막혀. 이런 얇은 면이면 왠지 쫄깃할 것 같은데 꼬들함이 느껴져. 처음 느껴보는 식감이야. 면이 얇으니까 후루룩 들어가서 씹는 느낌도 피곤하지 않고. 매워서 해장 느낌도 드네.”
사실 개코도 쌀국수 콘텐츠를 제작하고 있다. 면식가로서 개코가 본 최자로드는? “난 그게 좋았어. 전혀 상상도 못 한 콤비네이션 있잖아. 어떻게 먹으면 더 맛있다는 팁들. 개개인의 식성이긴 하지만.”
“소화 잘되는 면을 만들다가 셰프가 그냥 제면소를 차렸어.
그런데 소화 잘시키는 나 같은 애들이 와서 먹지.”
밀가루가 부대껴서 면 요리가 부담스러운 사람도 걱정 없다. 이 집은 밀가루를 잘 소화하지 못하는 셰프가 속 편한 면을 찾다가 직접 차린 가게이므로.
이곳의 오너는 대중에게도 익숙한 정창욱 셰프. ‘면 음식은 면이 맛있어야 한다’는 것이 그의 지론이다. 라면 회사에서도 스프보다 먼저 개발하는 게 면이니까. 제면소를 차린 계기는 일본 여행 중에 우연히 들른 식당에서 맛본 탄탄면이었다. 처음으로 밀가루 음식을 먹고 속이 부대끼지 않은 놀라운 경험을 한 뒤, 속으로 외쳤다. ‘지저스 크라이스트.’ 그렇게 탄탄면을 한국에 들여왔다.
“우리나라 식품위생법상 출하를 하면 보존료를 넣어야 해. 그런 변수를 제어 못 하니까 셰프가 그냥 매일 직접 뽑기로 한 거지. 그래서 이 집 면은 보존료가 안 들어가.”
“여기는 면 자체의 씹는 느낌이 최고 강점인 가게야. 면이 가진 특유의 쫀득함과 씹을 때마다 더해지는 고소함이 이 집만의 특징이거든. 면의 굵기도 참 적당한 것 같아. 충분히 씹히면서도 양념을 잘 머금어 주는 굵기. 단골 찬스지만, 가끔씩 이 면으로 메뉴에 없는 쇼유라멘이나 콩국수를 해주는데 정말 맛있어. 라멘에서 소스는 그저 거들뿐이라는 말이 딱이라니까.”
셰프에게 제면소의 오너로서 면 철학을 물었는데, 어딘가 경건하기까지 한 대답이 돌아왔다.
“면을 삼는다는 게 어떻게 보면 종교와도 같아. 하염없이 바라보면서 1분 50초 동안 ‘잘 삶아졌으면 좋다’고 생각하는 거야. 그 찰나의 순간에 별별 기도를 다 한다니까.”
“면교네 면교.
저 신자 하겠습니다!”
16:00 PM
춘천행 케밥열차
모닝 방어로 배를 채우고, 탄탄면을 디저트로 입가심했더니 어느덧 저녁 메뉴를 고민할 시간이다. 해산물과 면 다음에는 고기를 먹을 차례다. 영양학적으로도 저녁은 고기가 맞다. 목적지는 춘천. 기차를 타고 달려가서라도 먹을 가치가 충분한 집이라 자부하는 최자의 인생 고깃집이 그곳에 있다. 춘천행 ITX를 타기 위해 용산역으로 향하는 길, 최자가 이태원 부근에서 차를 멈춰 세웠다.
“잠깐 스톱.
정말 맛있는 케밥이 먹고 싶어?”
기차 여행의 묘미는 삶은 달걀과 맥주라지만, 이태원을 경유할 때는 준비물이 달라진다. 흔한 터키식 케밥이 아닌 레바논식 케밥 가게를 지나가서다. 문제는 기차 시간이 오후 4시라는 것. 현재 시간은 3시 40분. 무리다.
“먹을 때는 무리해야 해. 무리해서 먹어도 돼.”
이곳은 LA와 베를린에서 맛본 케밥 맛을 그리워하던 최자가 수소문한 맛집. 미국인 친구가 확신에 찬 어조로 추천한 레바논식 케밥집이다. 픽업만 하고 출발할 수 있게 미리 전화로 주문을 넣었다.
“파키스탄 아버지와 유럽인 어머니 사이에서 태어난 친구가 있거든. 자신 있게 소개할 만한 집이 있느냐고 물었는데, 한 번에 얘기하더라고. 일반 케밥이랑 비교하지 말라고 했어. 빵이 다르대.”
케밥 픽업 후, 4시 출발 열차를 4시 정각에 겨우 탑승했다. 전력질주 끝에 수명과 케밥을 맞바꿨다. 이렇게까지 해서 케밥을 먹을 일인가? 아니지. 최자가 전화로 사전 주문을 하는 열의까지 보이는 데는 다 그만한 이유가 있을 테다.
“터키 케밥은 얇은 대신 소스에 빵이 금방 눅진해지잖아. 얘는 빵이 워낙 두껍고 바삭하니까 수분이 침투를 못 해. 소스가 많은 편인데도 마지막에 쫀쫀한 느낌이 있어. 기본적으로 빵 맛도 좋고.”
이태원에 즐비한 터키식 케밥과의 가장 큰 차이는 빵. 이 집 빵은 일반 케밥에 사용하는 랩 같은 느낌이 아니라, 직접 구운 화덕 피자 도우만큼 두껍다. 적당히 바삭하고 씹을수록 쫄깃한 식감이 중독성 있다.
“일반 터키식 케밥에 비해 향신료 냄새가 세긴 해. 이 식당의 특징인지 레바니즈 케밥의 특징인지 모르겠지만. 이런 꼬릿꼬릿한 냄새는 싫어하는 사람은 싫어하는데, 좋아하는 사람은 엄청 좋아하거든. 간은 세지만 치킨이 튀려고 하면 빵이 두꺼워서 커버가 돼.”
이 집 치킨 케밥은 탄두리 치킨을 난에 싸 먹는 느낌이다. 커리 파우더에 푹 숙성시켜 커리에서 갓 꺼낸 듯 향이 강하다. 마치 비리지 않은 양고기를 먹는 느낌이랄까.
“소고기 치즈 케밥은 고기 파이 같아. 빵에서 갈릭 버터 맛 같은 게 은은하게 나는 것도 좋고. 치킨은 꼬릿꼬릿한 맛 그 맛이 지배적인데, 이건 치즈나 갈릭 소스같이 다양한 맛이 느껴져.”
“여기는 QC가 확실해. 현재는 무명 맛집이지만 미래의 맛집. 기가 막혀.”
서울로 돌아오는 차 안에서 화젯거리는 이 집 빵 맛의 비결. 그래서 다시 찾아갔다. 그 맛을 잊을 수가 없어서. 우리가 먹었던 치킨 케밥과 소고기 치즈 케밥은 이미 품절이다. 팔라펠 케밥과 양고기 케밥을 주문한 뒤 조리 과정을 지켜본다.
“여긴 주문과 동시에 빵을 구워. 도우부터 갈릭 마요네즈, 무절임까지 모두 직접 만들거든. 기성 재료를 사다가 만드는 것과 확실히 달라. 저렇게 바로 빵을 구워주는데 맛이 없을 리가 없지.”
빵 맛의 비결은 발효다. 서너 달 숙성시킨 반죽과 이틀 숙성시킨 반죽 두 가지를 섞어 오븐에 굽는다. 공갈빵같이 부풀어 오른 반죽의 숨이 죽으면 차곡차곡 재료를 얹는다.
“비트에 절인 무절임도 새로운 맛이야. 되게 맛있다. 간식이라기보다는 한 끼 식사가 되는 것 같아. 6000~7000원이 어떻게 보면 비싸게 느껴질 수 있는데, 한 끼 식사로 손색없어.”
둘둘 말린 케밥 속은 눈보다 혀끝이 더 잘 안다. 한입 베어 물면 그 속이 얼마나 알찬지 금세 느낄 수 있다. 통으로 썰어낸 토마토와 양파, 오이, 무절임을 듬뿍 넣었고, 고기도 제대로 들어 있다.
“갈릭 마요네즈를 듬뿍 넣어도 느끼하지 않은 이유가 저기 있네. 저기 와사비 보이지? 와사비를 넣네.”
하지만 최자도 틀릴 때가 있다. 한국 사람은 역시 청양 고추라는 사실을 잊지 말 것. 레바논 출신의 셰프가 발끈하며 이렇게 말했거든.
“아니 아니, 쩐냔고쭈!
쩐냔꼬쭈 짜른 거!”
18시부터 아침 해가 뜰 때까지, <최자로드 연말특집 – 밤 편>으로 다음 주에 다시 만나자. 본 기사에서 소개되는 맛집들의 상호명과 위치 등의 세부 정보는 마지막화에서 일괄 공개된다.
[최자로드 시즌 1 다시 보기]
프롤로그
Ep.1 을지로 푸아그라
번외편 최자의 집
Ep.2 집 앞 삼겹살, 학교 앞 떡볶이
Ep.3 선 커리 후 노가리
Ep.4 고등어 샌드위치와 순두부 우동
Ep.5 닭한마리와 모나카 아이스크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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