론 잉글리쉬 인터뷰 - 그가 예술가들에게 전하는 메시지

아시아 전시 투어를 위해 서울에 강림하셨다.

미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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론 잉글리는 스트리트 아트계의 대부라 해도 과언이 아니다. 그것은 오히려 그를 과소평가하는 표현일지도 모른다. 뉴욕 기반의 팝 아티스트 잉글리는 우리 시대 최초의 스트리트 아티스트다. 1980년대에 활동을 시작했음에도 그는 오늘날에도 스트리트 문화와 정치 시장에 엄청난 영향을 끼치는 인물이다. 2009년 ‘아브라함 오바마’ 초상화를 기억하는가? 셰퍼드 페어리와 함께 오바마 대통령 선거 캠페인을 도운 잉글리는 ‘아브라함 오바마’를 통해 수많은 젊은이에게 오바마를 소개하고 그가 선출되는 데 중대한 역할을 했다. 그 밖에 모두가 알아보는 상징적인 ‘베이비 헐크’와 ‘피카소 게르니카’ 시리즈도 잉글리 작품이다.

론 잉글리쉬 East Meets West 서울 전시 인터뷰 2017 ron english interview

하지만 잉글리스트리트 아트의 대부라는 명칭이 무의미할 정도로 겸손하고 차분하다. 지난주 시작한 <East Meets West> 전시의 아시아 투어를 위해 내한한 잉글리를 만나 그에 대해 더 자세히 알아볼 수 있었다. 잉글리는 털털한 생김새와는 달리 수줍은 아이처럼 조곤조곤하게 이야기했다. 자신의 어리석었던 어린 시절부터 희망하는 미래의 순수 음악 활동까지, 깊고도 친근한 이야기를.

아시아 전시 투어는 어쩌다 시작된 건가?

몇 달 전 플렉스콘에 벽화를 그리러 가서 무라카미 다카시의 쇼를 보게 되었다. 쇼에서 많은 아이템을 파는 것을 보고 영감 받았다. 나도 여러 가지 제품을 판매하되, 도시마다 특별 한정판을 팔면 어떨까 하는 생각에 이 투어를 시작했다.

작품에 자주 다루는 팝 문화의 매력은 무엇인가?

어릴 때 스누피 그리는 걸 즐겼는데, 1980년대에 어른이 되었을 때 스누피는 저작권 때문에 그리면 안 된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못 하게 하니까 더 하고 싶더라.

아이를 겨냥한 만화 캐릭터의 순수함을 제거하는 게 흥미롭다.

메트라이프생명 보험 회사를 보라. 그들의 영업은 사람의 생사에 달렸는데, 회사 마스코트는 스누피였다. 인간 대신 만화 캐릭터를 이용하는 게 이상하지 않은가. 메트라이프는 자신들의 이미지를 부드럽게 하고자 하는 것이다. 난 그저 그 부드러움을 없애고 더 진실한 것을 보여주는 것뿐이다.

론 잉글리쉬 East Meets West 서울 전시 인터뷰 2017 ron english interview

당신의 작품은 정치적이기도 하다. 정치에는 언제부터 관심이 있었나?

원래 전혀 정치적인 사람이 아니었다. 그저 술 마시고 작품 만드는 데만 신경 썼다. 그러다 텍사스에서 대학원 다닐 때 살던 집의 룸메이트들이 나를 정치로 조금씩 인도했다. 그들은 채식주의자에 나체주의자 운동가들이었다. 룸메이트들은 내가 술에 취한 채 동네방네 빌보드에 그림을 그리는 것을 보고 단순한 그림이 아닌 의미 있는 그림을 그리라고 권면했다. 나의 첫 정치적인 작품은 바트 심슨이 숲을 파괴하는 모습인데, 당시 심슨은 버거킹 홍보대사였다. 버거킹은 가축을 기르기 위해 열대 숲을 파괴했거든.

지금 가장 집중하는 정치 이슈가 있을까?

도널드 트럼프다. 나는 오바마가 선거할 당시 그가 선출되도록 도왔다. 셰퍼드 페어리와 함께 오바마 초상화를 그려 인터넷에 퍼뜨렸다. 버스 정류장과 거리 간판에도 선전하고. 대중은 대다수를 따르고 싶은 묘한 심리가 있다. 많이 노출되는 환경에 특정한 이미지를 삽입하면 그 이미지를 좋아하는 본인의 선택이 안전하고 옳은 선택이라 믿게 된다. 오바마는 미국 최초의 흑인 대통령 후보였지만 우리 작품이 그를 더 친근하고 믿음직스럽게 보이게끔 도운 것 같다. 트럼프가 선거할 때는 힐러리도 같은 맥락으로 도우려 했다. 하지만 힐러리는 우리가 전 선거 때 오바마를 도와 화가 나 있었다. 스트리트 아티스트들은 그녀의 편이 아니라 생각하고 우리의 손길을 거절했다. 그 대신 버니 샌더스와 작업하다가 그가 금방 선거 후보에서 탈락해 프로젝트를 접게 되었다. 그래서 나 혼자 안티 트럼프 캠페인에 나섰다. 브루클린에 트럼프가 빌딩에서 뛰어내리는 거대한 벽화를 그렸다. 그런데 내가 안티 트럼프 작품을 내놓을수록 뭔가 그를 돕는 것만 같았다. 트럼프는 사실이든 거짓이든 항상 논란되는 발언만 하지 않는가. 그는 자기 이미지가 좋든 나쁘든 무관하게 오로지 언론에 많이 언급되는 것에만 집중한다. 나는 그의 전략에 맞설 방법을 끝내 찾지 못했다.

론 잉글리쉬 East Meets West 서울 전시 인터뷰 2017 ron english interview

현대 팝 아티스트로서 전통 미술 역사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는가? 오늘날의 스트리트 아티스트들도 역사 공부를 할 필요가 있다고 생각하는가?

난 예술가가 되기 전에 공부하지 않았다. 그냥 좋아서 했지. 대학교 때 미술사 수업을 두 개 듣고 둘 다 낙제했다. 그냥 이해가 되지 않았다. 그러다 하루는 룸메이트의 몸을 마티스의 ‘그린 스트라이프’에 나오는 여자처럼 칠했는데, 그 결과물이 흥미로웠다. 그제야 비로소 나는 역사 속 선배들과 어떠한 연결 고리가 있다는 것을 깨달았다. 나는 앤디 워홀의 메인 어시턴트 로니 커트론의 어시스턴트 생활을 한 적이 있다. 워홀의 작품을 생산한 사람들은 아직 뉴욕에 다 남아 있다. 그래서 워홀에게 물감을 판 사람에게 가서 그가 쓴 똑같은 물감을 사고 그의 린 먼로를 나만의 버전으로 그렸다. 미술 역사를 알아서 할 수 있었던 것이다. 지식은 더 많을수록 좋다. 역사를 모르는 건 자랑이 아니다.

론 잉글리쉬 East Meets West 서울 전시 인터뷰 2017 ron english interview

일본 만화 캐릭터도 많은데, 유독 미국 캐릭터를 더 많이 다루는 이유가 있나?

나의 정체성 때문이다. 난 내가 경험하고 내가 존재했던 시기의 문화를 몸소 표현하고 싶다. 난 미키 마우스의 이미지에 둘러싸여 살았지만, 저작권 때문에 미키 마우스를 그릴 수 없다. 그 압박감을 호소하고 싶다.

오늘날의 예술가들에게 하고 싶은 조언이 있다면?

미술사를 공부할 것. 떠오른 아이디어에 순간 기뻤다가, 남이 이미 한 것을 보면 바로 우울해질 것이다. 무식해서 무시당하면 안 되지. 다른 아티스트들이 뭘 했고 뭘 하는지 보고 난 후에야 독창적인 작품이 나올 수 있다. 큰 그림을 먼저 보고 그 안에 없는 것을 찾아라. 그 빈공간을 채우는 게 예술가의 사명이다.

아시아의 아티스트들은 어떻게 하면 더 널리 알려질 수 있을까?

이제는 소셜 미디어 덕에 본인을 알리기가 더 쉬워졌다. 우리 때는 그런 노출 방법이 없었다. 사실 내가 최초의 ‘스트리트 아티스트’지만, 대부분은 아직도 리처드 해밀턴을 꼽는다. 나는 그의 활동 시기보다 몇 년 전에 시작했다. 하지만 나는 텍사스에 있었고 그는 모든 언론 매체가 모여 있는 뉴욕에 있었다.

지금 예술 시장은 하나의 르네상스를 거치고 있다. 예술이 이토록 풍부한 적이 없었다. 전에는 직접 방문해야만 남의 작품을 감상할 수 있었지만, 지금은 모두가 모두의 작품을 손끝에서 볼 수 있다. 모두가 경쟁하는 수준이 훨씬 상승한 것이다.

전시 판매 제품 중 스케이트보드도 많은데, 보드를 즐기는 편인가?

난 스케이트보드를 타기엔 너무 늙었다. 내가 어렸을 땐 스케이트보드도 없었다. 그냥 롤러스케이트 바퀴를 빼고 나무판에 두들겨 박으면 그게 스케이트보드였다. 어떤 숍에 가서 보드를 찾아볼 수도 없는 시절이었다. 하지만 스케이트 데크는 작품을 보여주기에 딱이다. 그리고 나의 전시에는 항상 스케이트보더 친구들이 찾아와 데크에 사인해달라고 요청한다.

음악 활동에 관해 이야기해달라.

우리 밴드 이름은 더 래비츠다 (The Rabbbits). 지난해 7월 조 존슨과 러셀 큐시크라는 친구들과 셋이서 구성했다. 현재 우리의 첫 번째 레코드와 록 오페라 작업 중이다. 우린 멍청이들이라 동시에 세 개의 레코드를 하고 있다. 나는 거의 프로듀서 역을 맡고 존슨이 작곡을 한다. 각 멤버의 스타일도 다르다. 대체로 올드 스쿨 록과 블루스지만, 한 명은 힙합도 좋아한다.

당신에 대해 아무도 모르는 사실 한 가지는?

어릴 적 나의 첫 아르바이트는 일리노이 주 옥수수가 가루받이하지 않도록 수확의 성기를 때어내는 일이었다. 열세 살 때다. 미국 중서부의 옥수수는 더 이상 먹을 수가 없다. 섭취용이 아니라 옥수수 시럽을 가공하기 위해 재배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1980년대에 시작한 일인데, 그때는 내가 뭘 하는지도 몰랐다. 열세 살에 구할 수 있는 유일한 아르바이트였다.

다음 전시 투어 일정은 홍콩인데, 여행할 때 꼭 챙기는 필수품이 있다면?

스티커. 나에게 스티커 붙이는 건 흡연자에게 담배 피우는 것과 같다.

론 잉글리의 <East Meets West> 서울 전시는 5월 14일까지 아래 주소에서 감상할 수 있다. 위 제품은 전시에서 구매할 수 있다.

SUPY
성동구 성수동2가 32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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