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자로드 번외편 - 최자의 집
후암동 최자네. 온라인 집들이.
[지난 이야기]
대창 순대와 간 그리고 레드 와인의 환상 조합을 혀끝으로 확인한 ‘HYPEBEAST Eats: 최자로드 – Ep.1 을지로 푸아그라’ 편. 그 후 나의 순대 세계관은 <최자로드> 전후로 나뉜다. 기준은 막창이냐 대창이냐. 대창 순대의 고소한 기름 맛을 알아버린 이상, 최자의 이 말에 따라나서지 않을 수 없다. 간다, 후암동. 최자의 집.
“내가 오늘 대창 순대의 끝을 보여줄게. 진짜 부드러워.”
“아까 먹고 온 순대랑은 확실히 다를 거야. 완전히 다른 메뉴야. 일단 먹어보고 말하자. 뜨그뜨그으뜨그.”
“무슨 순대길래 집에 대창 순대를 쟁여놔요?”
“이게 제주에서 친구가 가끔 보내주는 건데, 제주 순대는 피가 진짜 제대로 들어가.”
“거의 뭐 순대 정기 구독이네. 어느 집 거길래.”
“나도 몰라. 얘기를 안 해줘. 그냥 ‘몇 줄 필요해?’ 물어보고 보내주거나 사와. 절대 안 가르쳐주대.”
아, 최자도 모르는 맛집이 있다니. 아직 미식의 세계는 무궁무진하다.
“야, 기름 보이지 기름. 기름이 달라. 나는 기름 좀 약간 더 빼서 먹으려고 오븐에 조리하는데. 구워 먹어도 씹혀. 씹혀.”
후암동 대창 순대 사절단의 ‘리액션 비디오’를 글로 표현하면 다음과 같이 쓰인다.
“Perfect!”
“인생 순대네.”
“와 너무 맛있어. 진짜 맛있다.”
“완전 달라. 다른 음식인데 이건?”
“어때. 이거 괜찮지? 이 순대가 진짜 레드 와인이랑 짱이야. 미쳤어. 집에서 먹을 땐 위스키도 빠질 수 없지. 느끼함을 딱 잡아줘.”
“와 너무 맛있어. 피순대의 피가 되게 고소하네요.”
“이건 순대계의 형-형이야. 그냥 형이 아니고. 일단 먹어봐 먹어봐. 조심해 뜨거워.”
“오븐에 한 번 구워서 그런가. 찐 거랑은 풍미가 다른 것 같아요.”
“해동 없이 바로 구운 거야. 스팀오븐에서 25분?”
“겉이 바삭한가 싶다가도 입에 넣자마자 녹는데요?”
“얘는 피가 들어서 또 다르지. 되게 재밌는거는 피비린내가 하나도 안 나. 이러기가 쉽지 않거든. 피비린내가 안 나는 건 말도 안되는 거거든?”
사실 처음 한입의 느낌은 ‘음 뭐 순대가 다 그렇지’. 이미 을지로 푸아그라를 맛보고 온 뒤라 입맛은 높고 배도 한껏 불렀…는 줄 알았다. 마지막에 대창이 씹히기 전까진. 입안에서 녹는 동시에 퍼지는 이 기름진 풍미. 미국 ‘돼지’ 액션 브론슨이 우리 ‘돼지들’이랑 함께였다면 이렇게 말했겠지. ‘Awwwesome!’.
“맛있지? 간장 찍을 필요도 없어.”
“와, 형. ‘This is it’!”
온종일 맛집 찾다 들렀는데 진정한 맛집은 후암동에 있었다.
<가디언즈 오브 갤럭시> 봤어요? 주인공이 지구를 떠날 때 <어썸 믹스테이프>를 챙겨가잖아요. 인류의 맛집 중 단 한 곳만 우주에 가져간다면 어디예요?
음식점 단위로? 품목 단위로?
왜요? 너무 가혹해요?
왜냐면 음식은 단일 메뉴인 집이 맛있는데. 딱 하나라면 약간 포기하더라도 메뉴가 여러 개인 집을 가져가야 하지 않나. 음… 고깃집? 아니다. 고기 좋은데 탄수화물을 못 먹으면 힘들 것 같아. 뭐 가져가지?
아, 이 정도로 진지하지 않아도 되는데. 아니다, 중요하네 이거. 인류의 후손에게 길이길이 전해질 건데.
영양 밸런스도 고려해야 하잖아. 단백질만 있음 안 되고 탄수화물에 섬유질까지 밸런스가 맞아야 하거든. 완벽한 한 끼는 무리인가?(고뇌).
이렇게 진지하게 말할 줄이야.
없어진 아바이 순댓국집 가져가고 싶어. 순대 자체의 단백질도 좋고 속에 만두처럼 고기랑 야채 소가 듬뿍 들었어. 딱 먹었을 때 껍질이 고기로 된 만두를 먹는 느낌? 깍두기도 너무 맛있어서 야채도 충족시키고. 지금 생각해 보니 영양 밸런스도 너무 괜찮았네.
그냥 물어본 건데 5대 영양소까지…
인류의 미래를 위한 거라는데 당연하지.
기승전 ‘아바이순대’구나, 이 형은.
거기는 확실해! 그런 건강한 한 끼를 데려가야지.
BGM: Hi-C – Let Me Know
나른한 일상의 평범함 속에 하루에 두세 번씩 찾아오는 식사. 그 두근거림처럼 소소한 신남.
근데 형은 밸런스보다는 딱 하나가 괜찮은 집을 선호하잖아요. ‘스탯’으로 따지면 오각형 아닌 거.
뭔가 하나가 특별한 집이 좋아. 고깃집은 고기만 맛있으면 ‘고’. 제일 중요한 건 맛 그리고 단품. 전체적으로 다 맛있는 데는 굳이 갈 필요가 없지. 그런 데는 전체적으로 음식이 괜찮지 결코 다 맛있지 않거든. 난 베스트 메뉴가 있는 집이 좋아.
나름 맛집 선정 기준이 있네.
‘이 동네 가면 이 집, 이 집 가면 이거’ 이런 식으로 시켜 먹을 때 행복해. 아까 그 순댓국집도 술국은 무난하지만 모둠순대? 인정. 자기 주특기가 없는 집은 전체적으로 무난해도 잘 안 가게 되는 것 같아.
와, 집에 ‘다찌’바가 있어요? 정말 최자답다.
좋아하는 사람들이랑 좋아하는 요리랑 안주 내서 술 마시면서 얘기도 한다는 게 결국은 어떤 가치를 공유하는 거거든. 근데 그게 좀 더 편한 장소면 좋겠더라고. 사람이 많은 데서는 하지 못하는 얘기도 많고. 환경이 바뀌면 재미는 있지만 마음이 불편해서 좋은 얘기가 안 나오지. 근데 친구 집에 가면 편하잖아.
그래서 ‘친구 집’을 아예 내 집 안에 차렸구나.
특히 아티스트들끼리 모였을 때는 서로 고백 같은 거 할 때 재밌는 작업들이 많이 나오거든. ‘사실은 그때 너 죽이고 싶었어, 네가 너무 잘해서 얄미웠어’ 그런 거 있잖아. 이런 대화에서 예술적인 새로운 에너지가 생긴다고 생각해. 그래서 이사할 때, 나한테는 음식이 되게 중요해서 주방을 넓힌 거야. 이 마루가 넓지 않은데도.
나는 우리 집이 그런 가치를 같이 공유하는 곳이었으면 했어. 누군가 놀러 오면 편하게 마음속에 있는 얘기도 많이 하고.
미국 가정집에서나 보던 주방인데 이거.
이런 게 언제 좋냐면, 생선이 올라올 때 내가 미리 정리를 다 해서 포만 떠놔. 친구들이 놀러 오면 그때 썰어서 한 접시씩 먹는 거지. 그럴 때 되게 좋더라고. 하는 나도 기분이 좋고 먹으면서 즐거워하는 친구들 봐도 기분이 좋고.
완전 최상급 회다 진짜.
내가 잡은 거니까 확실한 거잖아. 잡자마자 바로 피 빼서 몇 시간을 숙성시키고 깔끔하게 또 피 빼고. 수분 제거하려고 키친타월로 돌돌 말아서 진공포장까지 한 게 나니까. 이건 이 순간에 여기서밖에 못 먹는 거지. 그런 게 되게 즐거워. 재밌어.
근데 이 구도가 너무 좋다. 여기서는 이야기가 술술 나오네.
여기 앉아 있으면 너무 재밌는 게. 맞은편에 앉아 있는 사람들 얘기가 다 들려. 기분이 되게 좋아. 진짜 집중되는 느낌이야.
TV쇼 호스트처럼?
어. 질문을 던지면 여기 앉은 사람은 대답하기 되게 좋아지고. 한 명씩 눈 마주치면서 얘기할 수 있게 되어서 좋아. 내가 굳이 반대편에 앉을 수도 있잖아? 근데 자연스럽게 내가 여기 앉게 되더라고.
여기선 음식 내오는 것도 퍼포먼스 같아 보여요.
이 자리가 묘해. 아주 좋아. 여기 앉아볼래?
사람들이 #최자로드 SNS 보고 가서 먹어보잖아요. ‘역시 틀리지 않았다’는 반응이 많아요. 좀 합디다?
내 혀가 틀리지 않았다. 내 혀는 아직 살아 있구나.
그 혀는 어떻게 모르는 전국 맛집이 없지?
예전에는 보통 지방 공연이 생기면 자고 왔거든. ‘뭐 내일 광주 간다고?’. 그럼 가기 전날부터 광주 인근 맛집을 다 검색하고 수소문해서 무조건 괜찮은 데를 가는 거야. 그게 진짜 행복한 인생이었어. 광주에 괜찮은 수준을 넘어서서 애호박찌개의 새로운 지평을 여는 집도 있어. 아직 보여주지 않은 데가 많아.
원래 음식에 대한 열망이 남달랐네.
나는 먹는 거 얘기할 때 두근거리고 말이 빨라지고 많아지고. 눈앞에 없는데도 얘기하면 두근거려 막.
<최자로드>도 그런 열정으로 진행하게 된 거예요?
더 먹을 수 있잖아. ‘오피셜리’ 먹을 수 있잖아. 살찌면 나도 스트레스 받지.
자, 이제는 합법적으로 드세요.
이건 내 일을 열심히 하는 거니까 살 안 찔 거야. 괜찮아.(웃음) 나는 맛없는 건 패스를 하지 어설프게는 안 먹는 것 같아. 그 스트레스를 아니까. 운동도 열심히 해. 우리 집 1층에 작은 짐(gym)도 만들어놨어.
어쩐지. 사람들이 제일 궁금해하는 게 그 걸걸요. 그렇게 먹으러 다니면서 왜 살은 안 찌는지.
예전에 미국투어 갔을 때는 하루에 여섯 끼를 먹었어. 먹기 위해서 하루에 운동을 두세 시간씩 하니까 오죽하면 개코랑 DJ Friz가 제발 운동 좀 그만하자고 부탁했었어. 넌더리 났을걸.
요리할 때 식상한 건 안 하던데요. 그린 커리부터 중국 새우조림 이런 것도 만들고.
나는 전문 요리사는 아니잖아. 근데 머릿속에 내 기준에서 맛있는 공식들이 있어. ‘이 재료와 이 재료를 조합하면 이런 맛이 난다’. 나한테 요리는 굉장히 중요한 부분이야. 친구들 불러서 아침을 자주 먹어. 2인분 정도는 해야 아깝게 남는 재료도 없고 하니까. 그거 너무 행복한 것 같아.
맛있는 요리를 좋은 재료로 만들어서 내가 좋아하는 사람하고 공유하고 있는 거. 그 가치가 행복이랑 되게 근접한 가치라서.
그렇게 음식을 먹고 만드는 게 뮤지션으로서의 삶에도 영향을 미쳐요?
나는 음악을 하면서 휴식하지는 않는 것 같아. 일이기도 하고. 솔직히 공연을 세네 개씩 하면서 그게 휴식이 될 수는 없지 않냐? 좋은 음악이 나오면 일을 잘한다는 생각이 들지 나한테 힐링은 아니야 솔직히. 치열하고 힘들어. 하지만 재밌지. 그 과정에서 느끼는 성취감 때문에 행복하고. 근데 미식은 진정한 의미에서 휴식이 되는 것 같아. 일을 잘하기 위해서는 휴식이 되어야 하잖아.
그게 다 음악적 에너지로 가는 거네.
다음 무대를 하기 위한 준비인 거지 사실은. 나는 맛있는 거 만들어서 공유하고 사람들이랑 같이 먹으러 다니고 그러면서 술 한잔하면서 얘기하고 그럴 때 충전되는 것 같아.
요리 치트키가 없을 리가 없다 진짜.
필살기는 뭐냐면, 소스지. 뭘 집어넣어도 괜찮은 요리가 되는 페이스트나 소스들이 좀 있어.
뭐야. 라면 스프야?
캐주얼한 쌀국수 레스토랑도 페이스트 써. 집에서 고기를 삶아서 육수 내는 게 더 이상해.
그럼 소스 맛이 너무 강하지 않아요?
한국 라면 스프는 뭔가 들어가면 들어갈수록 맛이 애매해지잖아. 근데 쌀국수나 마라탕 관련 페이스트와 스프는 향이 강해 어떤 재료가 들어가도 감싸 안아줘. 반대로 말하면 덮어버리는 거지.
그런 요리를 기본으로 채소나 고기를 추가해서 도전하면 실패할 확률이 낮아. 혼자 사는 사람들한테 제일 중요한 거는 단백질 밸런스니까 집에 닭 가슴살을 쟁여두어야 해. 국물 끓일 때 닭 가슴살을 넣고 잘 끓이면 밸런스가 너무 괜찮은 요리가 돼.
거기다 면 대신 곤약면을 넣으면 최고의 다이어트 식품. 태국 고추나 스리라차 정도는 가지고 있으면 모든 요리에 어울리는 필살기지.
<HYPEBEAST Eats: 최자로드>에서 소개되는 맛집들의 상호명과 위치 등의 세부 정보는 시즌 1의 마지막화에서 일괄 공개됩니다.
[HYPEBEAST Eats: 최자로드 다시 보기]
프롤로그
Ep.1 을지로 푸아그라
번외편 최자의 집
Ep.2 집 앞 삼겹살, 학교 앞 떡볶이
Ep.3 선 커리 후 노가리
Ep.4 고등어 샌드위치와 순두부 우동
Ep.5 닭한마리와 모나카 아이스크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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