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자로드 - Ep.1 을지로 푸아그라
최자가 편의점 와인 사들고 찾아간 맛집은?
세상엔 두 가지의 ‘괜찮다’가 있다. DJ Friz의 표현을 빌리자면 “여자가 괜찮다고 말하면 안 괜찮은 거고 최자가 괜찮다고 하면 XX 맛있는 거야”. 전자에는 여자의 심리를 섬세하게 헤아리기 위한 눈치와 센스가 필요하지만, 후자는 직관적으로 받아들이자. 그래서 ‘HYPEBEAST Eats: 최자로드 – 프롤로그’ 편에서 소개한 추천평처럼 “밥 먹을 땐 여자보다 최자” 말을 들어보자는 얘기는 일리가 있어 보인다. 왜냐면 최자가 초면에 이렇게 말했거든.
“와인. 레드 와인이 필요해.”
을지로의 어느 편의점에서 그는 옐로테일 시라즈 와인 한 병을 집어 들었다. ‘서울에서 제일 맛있는 순대’를 맛보게 해주겠다고 했다. 말하자면 레드 와인은 오늘 최자로드의 입장 팔찌 같은 거다. 팔찌 대신 와인이 든 봉지를 손목에 걸고 들어가면 된다. (물론, 가게에서 판매하는 술을 많이 팔아주는 센스와 염치 하에 이모님의 허락을 받아야 한다.) 와인이라고 해서 부담 느낄 필요도 없다. 합리적인 한 병이면 충분하다.
“옐로 테일 정도가 딱 적당한 것 같애. 전국 어디서나 구할 수 있잖아. 그리고 싸.”
빨간색 파란색 플라스틱 테이블과 의자, 삼파장 백열전구 불빛. 가게 앞에서 ‘다라이’째 깍두기를 담그고 있는 이모를 보고 깨달았다. 뭔진 모르겠지만 제대로 찾아온 것 같다.
“이모, 모둠 순대에 간이랑 대창 순대만 주세요.”
“왜 그렇게 시켜요?”
“이집은 대창 순대랑 간이 미쳤거든. 난 이렇게 먹어야 맛있더라고. 이 팁이 핵심이야.”
이곳은 30년 넘게 자리를 지켜온 서울 을지로의 ‘ㅅ’ 순댓집. 대창 순대와 굵직하게 썰어낸 간이 특징이다.
“여기는 아주 그냥 비주얼이 압권이네요.”
“장난 아니라니까 두께 봐 두께. 자 이제 시작할까. 간부터 먹어봐 간이 아주 좋아. 아, 잠깐만 그전에 와인 와인!”
오자마자 원샷으로 비워버린 맥주잔에 발밑에서 대기 중이던 레드 와인을 따랐다. 이게 또 ‘봉다리’에 담긴 채 따라내야 느낌이 산다.
“레드 와인이랑 순대랑 진짜 어울려! 특히 피순대랑은 짱이야. 블러드 소시지잖아. 어떻게 보면.”
부드러운 대창이 입에 넣자마자 녹아버린다. 대창의 풍부한 지방이 씹을 새도 없이 고소한 소와 어우러져 독특한 끝맛을 만든다. 내 혀가 대창인가 순대 소가 내 혀인가. 와인을 이 조합으로 먹으니까 또 새롭다.
“여기가 다른 음식점보다 특별한 부분이 순대, 이 대창 순대거든. 이 집? 서울에서는 대창 순대 1등이야. 대창 순대를 파는 데가 조금 있긴 한데 이렇게 잘하는 데가 없고. 간도 이렇게 두껍게 썰어주는 데가 없지. 보통 우리가 먹는 순대는 창자로 만든 순대고 대창 순대는 거의 안 만들거든. 귀하고 비싸잖아. 제주나 대구 가면 조금 있을까, 이렇게까지 만드는 데가 별로 없어. 여기 대창이 되게 좋아. 부드럽고.”
“술국? 이건 뭐예요?”
“안주로 먹는 순댓국 같은 건데 밥은 안 들어 있고 건더기가 많지. 근데 여긴 물론 수육도 좋고 순댓국도 나쁘지는 않은데 특별하진 않은 것 같아. 국을 좋아하는 사람들이 만족할 수 있는 순댓국은 아니야. 그래서 이 집의 매력은 대창 순대. 서울에서 새로운 경험을 할 수 있는 곳이지. 사실 얘들이 나쁜 게 아니라 순대가 너무 좋은 거야. 찹쌀 느낌이 너무 좋아.”
“간은 어때. 간 너무 좋지? 퍽퍽한데 와인이랑 퍽 잘 어울리잖아.”
“와 장난 아니다!”
“그래서 갖고 온 거야. 소주보다 훨씬 잘 어울려.”
그러게. 흡사 푸아그라 같은 느낌이다.
“입 안에서 간이 퍽퍽해지는 순간 와인을 한 모금 머금으면 크림처럼 녹아버린다.”
“간이 좀 퍽퍽하거든? 그때 와인을 넣어서 같이 먹어야 해. 그래야 맛있어”
순대를 기대하고 왔건만 간이 와인이랑 너무 잘 어울린다. 새로운 맛이다. 원래 간도 귀한 먹거리지만 정말 고급 음식 먹는 느낌이 난다. 아, 프랑스 맛!
“이거 좀 강조해서 써줘. 간 먼저 입에 넣고 씹다가 퍽퍽해지는 그 순간에 와인을 한 모금 머금으면 두 개가 섞이면서 간이 ‘크리미’하게 녹으면서 마지막에 살짝 느끼한 맛이 난다고! 이게 너무 좋아.
“대창 순대는 이렇게 막장에 찍어서 먹어야 맛있어.”
김치와 마늘종 맛도 평타 이상이다. 굵은 마늘종에서 먼저 이 집 성격이 드러난다. 간도 시원시원하고 두껍게 썰어 손님상에 낸다.
최자: “두껍게 썰어서 간이 이렇게…”
맹차장: “촉촉한 거야. 이렇게 두꺼운 데가 없어.”
최자: “간을 얇게 썰면 퍽퍽하고 막. 그거 알지? 동네 분식에서 파는 간처럼 되면…”
맹차장: “떡볶이 국물 찍어 먹어야 되는 거야.”
최자: “그래, 이렇게 못 먹어.”
저기… 듀엣 하세요? 일본에서 혀깨나 썼다는 도쿄 유학파 출신 <하입비스트>의 맹모 차장이 거들었다.
“이런 데는 또 골든타임이 있어. 쪄서 딱 나오는 시간. 그 시간에 오면 아~ 진짜.”
때마침 이모가 술국을 데워 왔다. ‘엘레이(LA)’ 출신 포토그래퍼가 간이 고소하다고 넉살을 부린다.
그러고 보니 이 친구가 “저 엘레이에서 왔는데요~ 한 장만 찍어도 돼요?” 하면 거절하는 곳이 없었다. KBS? JTBC? <하입비스트>? 다 필요 없다. 다음부터 취재 나갈 땐 나도 써먹어야지. “저, ‘씯니’에서 왔는데요”
“이모, 간이 완전 고소해요.”
“간이 원래 고소하잖아. 그러니까 맛있으라구 두껍게 썰지. 얇게 하면 손님들이 시원치않잖아. 입에 있는지 없는지.”
“몇 시에 나와요?”
“간? 우리는 얼은 간이 아니고 생간 그대로 삶기 때문에. 그전엔 올 수도 읎어. 새벽 5시에 삶아서.”
“전 작은 거, 소창이 제일 맛있어요.”
“이거? 다 대창이야. 이게 한 줄이야. 한 줄인데 갈수록 얇아지는 거지.”
“아 진짜요? 어쩐지 몇개는 진짜 부드럽더라.”
“애기 돼지는 처음부터 얇고 부드럽고. 늙은 돼지는 두세 시간은 삶아야 이렇게 부드럽게 되는 거야. 그러니까 맛있는 그야.”
BGM: Mos Def – ‘Life is Good(DJ Deckstream Remix)’
인생은 좋은 거니까. 대낮의 모둠 순대와 와인만큼.
“여기는 어떤 사람들이랑 오면 좋을까요?”
“여기는 ‘호미(homie)’들이지. 순대 피 맛 좀 아는 친구들. 이집은 주말 저녁에 오기 괜찮아. 주말을 마무리하면서 가볍게 마시고 집에 가서 쉴 때. 주말에는 해지기 시작할 때 가게 앞 주차장에 차가 하나도 없거든. 그쪽에다 테이블 펴놓고 먹으면 좋아.”
“그럼 여기 꼭 데리고 오고 싶은 뮤지션은?”
“여기는 개코를 데려와서 간이랑 와인을 먹이고 싶어. 개코는 먹는 거 좋아하고 여러 군데 다니는데 돼지가 가이드로 한 명이 붙어야 해. 입이 짧아. 본인 위 사이즈에 비해 열심히 먹는데 이게 체급이 다르니까 어쩔 수 없어. 옆에서 ‘야, 이렇게도 먹어봐!’ 알려줘야 돼. 와인 남았니?”
“아 오늘 ‘간과 레드 와인’ 이거, 발견인데? 진짜 신의 한 수였어요”
“위대한 발견이지.”
주관으로 보나 여론으로 보나 오늘 최고의 발견은 간과 레드 와인의 조합이다.
“원래도 집에서 먹을 때는 무조건 순대랑 와인이랑 먹으니까.”
“집에서도 순대를 먹어요?”
“제주도에서 공수해오는 대창 순대가 있어. 대창 순대 거의 끝판왕이거든. 내가 오늘 순대의 ‘넥스트 레벨’을 보여줄게. 진짜 부드러워.”
그래서 우린 대창 순대의 끝을 보러 후암동 최자의 집으로 떠난다. 그렇게 <HYPEBEAST Eats: 최자로드>의 번외편이 탄생했다. 그래서 오늘은 하루 먼저 왔지만 #수요일은수요미식회목요일은최자로드. 자, 그럼 내일 최자 집에서 다시 만나자.
“아 잠깐! 근데 형, 아까 왜 순대 먹으면서 DJ Deckstream이 리믹스한 ‘Life is Good’을 떠올렸어요?”
“이 노래가 되게 긍정적이잖아. 긍정긍정긍정 완전 초긍정이지. 이 곡을 처음 들은 게, 내가 여러 가지로 힘들 때 친동생이 추천해줬는데. ‘형 사는건 되게 좋은 거야. 형이 살아있으니까 나도 좋아’ 이러면서.
좀 전에 사람들이랑 얘기하면서 순대 먹는데 ‘아, 살아 있으니까 이런 걸 먹고 즐길 수 있구나. 새로운 사람들도 만나고. 근데 또 간이랑 와인을 먹었더니 재밌는 맛이 나네? 역시 살아야 하는구나. 104세까지 살아야지. 인생은 좋은 거니까.’ 그런 생각이 들었던 것 같애. 그래서 어울리지 않나 해서.
일상에서 즐거움을 찾는다는 게 말이야. 특별함 속에 살아야 일상이 특별하지, 일상 안에만 있으면 그리움을 모르잖아. 그래서 사람들은 특별함을 계속 좇아야 하고 특별함을 겪으면서 일상의 소중함을 깨닫는 거니까. 이게 나는 좀 행복한 인생인 것 같아.”
“현대사회에서 인간이 즐길 수 있는 것 중에 비교적 공정하고 값싼, 어떻게 보면 가장 합리적인 도박이 미식인 것 같아 나는.”
을지로에서 푸아그라를 조우한 이 요릿집은 평범한 일상 속에서 문득 특별하게 느껴지는 어느 순간이다. 가령 직장 상사한테 탈탈 털렸는데 ‘야 밥이나 먹으러 가자’고 해서 따라나가야 할 때가 그렇다. 밥은 먹어야 하니까. 울컥 눈물도 날 것 같고 그런 상황에서 음식이 나를 위로해주는 느낌? 그런 위로 같은 느낌이 있다.
“됐고. 나는 살아야 하잖아. 다~ 됐고, 상사도 됐고, 우린 살아야 해! 오늘은 지나갔어 이제!!!!”
<HYPEBEAST Eats: 최자로드>에서 소개되는 맛집들의 상호명과 위치 등의 세부 정보는 시즌 1의 마지막화에서 일괄 공개됩니다.
[HYPEBEAST Eats: 최자로드 다시 보기]
프롤로그
Ep.1 을지로 푸아그라
번외편 최자의 집
Ep.2 집 앞 삼겹살, 학교 앞 떡볶이
Ep.3 선 커리 후 노가리
Ep.4 고등어 샌드위치와 순두부 우동
Ep.5 닭한마리와 모나카 아이스크림
#믿고먹는 #최자로드 #수요일은수요미식회목요일은최자로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