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릴라즈 인터뷰 - 이상한 나라의 데이먼 알반

10년 뒤에 읽어야 할 고릴라즈 타임캡슐.

음악 
7,493 Hypes

지극히 주관적인 2017 지산 밸리록 뮤직앤드아츠 페스티벌의 명장면. 고릴라즈의 ‘클린트 이스트우드’ 떼창이 울려 퍼질 때였다. 서너 살 남짓한 꼬마가 관중 사이에서 우뚝 솟아올랐다. 아버지의 등에 올라 목말을 탄 채 리듬에 따라 작은 몸을 꿀렁거렸다. 이제 겨우 고릴라를 알 나이에 고릴라즈를 먼저 깨우친 소녀였다.

하지만 머지않아 이 순간은 소녀의 기억에서 흐릿해질 것이다. 적어도 10년은 지나야 할 테다. 아이가 자라 고릴라즈의 음악을 이해하고, 블러나 데이먼 알반 같은 이름의 무게를 실감하려면 말이다. 이런 상상 끝에 10년 뒤 읽힐 타임캡슐을 만들었다. 이 꼬마가 목도한 오늘의 기념비적 기억을 대신해서 고릴라즈의 흔적들을 정리했다.

밴드의 탄생부터 현재까지, 고릴라즈의 17년 역사를 되짚어보았다. 4개의 페이즈마다 기억해야 할 음악도 한 곡씩 꼽았다. 1997년 블러의 내한 이후 20년 만에 한국을 찾은 데이먼 알반의 인터뷰로 시작한다.

PART.1
‘고릴라즈’ 데이먼 알반 인터뷰

안녕, 데이먼. 20년 만에 한국에 왔는데 어때?
삼계탕(진생 치킨이라고 표현)을 먹었는데 정말 좋았다. 특히 그 대추. 이 요리가 기력을 북돋는 음식이라고 들었는데, 실제로 에너지가 넘치더라. (그 영향인지 데이먼 알반은 한국 일정 중 백화점에 들러 홍삼을 구매했다.)

새 앨범 <Humanz>에서 어떤 새로운 시도를 꾀했나? 시각적으로, 음악적으로 예전의 고릴라즈와 달라진 점은?
무서운 파티처럼 풀어내려 시도했다. 여기서 무서움이란 공포가 아니다. 그동안 고릴라즈의 음악에서처럼 무서운 스타일을 음악적으로 담아내고자 했다.

VR과 AI같은 기술 발전이 음반 산업 구조를 완전히 바꾸어놓았다. 가상 밴드로서는 환영할 일이다.
블러 시절은 레코드판을 만들어 레이블에 팔고 후원을 받아야 앨범을 낼 수 있는 시대였다. 지금은 다르다. 곡의 구상부터 공개까지 일주일이 채 걸리지 않는다. 이번 주 월요일에 쓴 곡이 다음 주면 유튜브 천만 뷰를 기록하는 시대니까. 기술의 발전? 한편으로는 무서운 일이기도 하지만, 동시에 굉장한 일 아닌가. 예술이 폭발적으로 생겨날 수 있는 현상이라고 생각한다.

최근 공개한 ‘Sleeping powder’ MV에 등장하는 배경은 북한인가.
뮤직비디오에 사용된 이미지들은 모두 내가 평양에서 직접 촬영한 영상이다. 물론 허용된 장소에서만 촬영했고. 나는 곧 2D다. 그래서 내 자신을 2D에 투영하고 그의 시선으로 평양을 바라본 듯한 느낌으로 이 장면들을 사용했다. (데이먼 알반은 2015년에 깜짝 발매한 블러의 8집 <The Magic Whip>의 수록곡 ‘Pyongyang’에도 이때의 경험을 녹여냈다.)

평양의 비주얼을 영상에 포함한 특별한 이유가 있나.
나에게 평양에 간다는 건 마치 <이상한 나라의 앨리스>의 토끼굴로 들어가는 것과 비슷했다. ‘마법 같다’는 말이 적절한 표현일지는 모르겠지만, 마법에 걸려 다른 차원의 세계로 입장하는 것처럼.

직접 평양에 다녀왔다. 최근 평양을 방문한 미국인과 관련해 좋지 않은 이슈가 있었다. 위협적이지는 않았나.
위협 같은 건 느끼지 않았는데? 평양 제1고등학교 방문부터 매스게임 관람, 전쟁 박물관 견학 등 다양한 경험을 했다.

북한 여행이라니. 다른 아티스트라면 상상도 못 할 일이다. VR, 3D등 항상 새로운 것을 시도했는데, 어디에서 영감을 받나.
한마디로 여행이랄까. 4년 전 북한과 말리 그리고 페루를 여행했다. 이 모든 게 3주안에 이루어졌지. 나는 세상을 돌면서 다양한 인간 군상을 보고 그들이 어떻게 사는지 보고 싶다. 그게 내 영감의 원천이다.

오랜 공백 탓에 해체설도 돌았다. 새 앨범 커버가 비틀스의 <Let It Be>를 연상케 한다. 고릴라즈의 마지막 앨범이자 블러 활동 재개에 대한 암시가 아니냐는 해석도 있다.
고릴라즈는 제이미 휴렛과 나 둘이서 하는 프로젝트다. 우리는 기존의 관습적인 밴드와는 다르다. 새로운 즐거움이 있다면 언제든 즐기면서 새로운 작업들을 만들어나갈 수 있겠지.

<Humanz>에 수록되지 않은 미발표 음원이 40곡이 넘는다고 들었다.
난 매주 곡을 쓰고 있다. 그 음악들을 발표할 의향이 있다. 기술의 발달이 빠른 음악적 소통을 도울 거고.

가까운 미래에 한국 방문을 또 기대해도 될까.
오늘 아침, 동묘 풍물시장에 가서 쇼핑을 했다. 100년 된 중국산 청동 심벌즈와 티베트 고승이 쓰는 모자, 힌두 사원에 걸려 있던 나무 등등을 샀지. 어제는 봉은사 산책도 했고. 오래 머무르고 싶지만 일정이 짧아서 아쉽다. 아, 조카가 다음달에 한국으로 영어를 가르치러 오거든. 케이팝을 좋아해서 한국어도 할 줄 안다. 어쩌면 조카를 만나러 한국에 또 놀러 올지도 모르겠다.

*본 인터뷰는 미디어 라운드 테이블 질문으로 구성되었습니다.

PART. 2
THE BEGINNING OF THE GORILLAZ

모든 것은 작은 우연에서 시작했다. 블러의 프런트맨 데이먼 알반과 만화가 제이미 휴렛이 룸메이트가 되게 한 신께 감사하자. 오아시스와 함께 1990년대 브리티시 록 전쟁을 이끌던 바로 그 블러 말이다.

어느 날 함께 MTV를 시청하던 두 아티스트는 문득 화면 속의 영상들이 쓰레기 같다고 생각했다. 그래서 둘은 구린 비주얼 대신 만화로 만든 가상 밴드를 창조하기로 결심했다. 데이먼은 곡을 쓰고 제이미는 캐릭터를 구상했다. 생김새부터 성격, 그들이 사는 세계관까지. 실존하는 밴드 못지않은 철저한 설정이었다. 그렇게 2D(보컬과 키보드), 머독(베이스), 러셀(드럼), 누들(기타)로 구성된 밴드 고릴라즈가 탄생했다.

데뷔작은 2000년 발매한 EP <Tomorrow Comes Today>. 이를 시작으로 올해 공개한 <Humanz>까지, 이들은 5장의 정규 앨범을 발표한다. 앨범 활동 시기에 따라 고릴라즈의 활동은 ‘페이즈(phase)’로 구분된다. 진화는 음악 스타일에 그치지 않는다. 페이즈를 거듭할수록 견고해지는 그림체와 매번 새롭게 전개되는 스토리. 음악 애호가들이 이들의 작업을 환영해 마지않는 데는 다 이유가 있다. 4개의 페이즈를 대표하는 상징적인 곡을 아래에 소개한다.

PHASE 1 (1998-2002)
<Clint Eastwood, 2001> ‘Clint Eastwood’ & <Gorillaz, 2001> ‘19-2000’

2001년 발매한 첫 싱글에 고릴라즈는 좋아하는 배우의 이름을 붙였다. 그들이 클린트 이스트우드의 광팬이었던 것은 널리 알려진 사실. (그 사랑이 어찌나 대단한지, 클린트가 출연한 영화와 동명의 노래 ‘Dirty Harry’를 2집에 담기도 했다.) 같은 해 발매한 데뷔 앨범 <Gorillaz>는 700만 장 이상이 팔려나가며 메가히트를 기록했다. 그 성공에 힘입어 고릴라즈는 ‘현존하는 가장 성공한 가상 밴드’로 기네스에 오른다. ‘Get the cool shoeshine’이라는 명가사를 남긴 ‘19-2000’도 빼놓을 수 없는 트랙이다. 음악 문외한에게도 <피파 2002>의 주제곡으로 기억되는 음악이니까.

PHASE 2 (2004-2007)
<Demon Days, 2005> ‘Feel Good Inc.’

이번 내한 공연이 끝난 뒤 관객들의 반응은 하나로 수렴됐다. “왜 그 노래 안 불렀지?” 여기서 말하는 그 노래가 바로 ‘Feel Good Inc.’ 팬들의 볼멘소리가 말해주듯, 고릴라즈의 시그너처라 할 수 있는 트랙이다. 역대 고릴라즈 음원 중 많은 사랑을 받는 노래 중 하나로 손꼽힌다. 2005년에 발매한 <Demon Days>는 대중성과 평단의 취향 모두에 충실했다. 800만 장의 판매고를 올린 이 앨범으로 이 밴드는 다섯 번의 영국 플래티넘과 두 번의 미국 플래티넘을 달성했다. 2011년, 머큐리 음악상 후보 지명을 고사했던 배짱이 단순한 허세가 아니었음을 증명하는 순간이었다.

PHASE 3 (2008-2012)
<Plastic Beach, 2010> On Melancholy Hill

이 노래야말로 ‘멜랑콜리’한 감성을 대하는 고릴라즈의 태도가 아닐까. 이 곡이 수록된 세 번째 정규 앨범은 그 당시 팝의 현재 시제를 집대성했다. 루 리드부터 스눕 독, 카노, 바쉬, 모스 데프, 드 라 소울에 이르는 화려한 피처링 명단이 그 증거다. 이 시기에 고릴라즈는 기네스 등재에 버금가는 업적을 남겼다. 바로 가상 밴드 최초로 글래스톤베리의 헤드라이너로 선 것. 앨범에 참여한 뮤지션들이 그대로 글래스톤베리 무대에 함께 올랐다. 비슷한 시기에 발표한 네 번째 앨범 <The Fall>은 실험적인 작업으로 평가받는다. 기타나 피아노 같은 악기 소리를 제외하면 앨범 전체를 아이패드로 사운드로만 작업했다.

PHASE 4 (2017-)
<Humanz, 2017> ‘Sleeping Powder’

지난 4월, 고릴라즈는 7년 만에 정규 앨범 <Humanz>로 귀환했다. 음악팬들의 긴 기다림에 힙합으로 응답했다. 사실 이 앨범은 대중성과는 멀어졌다는 평가를 받았다. 그러나 30년 차 싱어송라이터 데이먼 알반이 대중의 입맛을 모를 리 없다. 평단의 평가와 차트가 무슨 상관인가. 그는 <Humanz>의 스무 트랙으로 말할 뿐이다. 애초에 차트를 공략할 생각은 추호도 없었다는 듯, 고릴라즈 음악의 확장을 여지없이 보여주었다. 좀 더 적극적으로 힙합을 채택한 가운데, ‘Sleeping Poweder’ 같은 일렉트로 팝은 자연스레 귀에 꽂히는 곡이다. 위 인터뷰에서 언급한 것처럼, 알반이 평양 여행 도중 직접 촬영한 영상들을 뮤직비디오에 사용했다.

고릴라즈 2017 지산 밸리록 뮤직앤드아츠 페스티벌 셋리스트 일부





올해 고릴라즈를 헤드라이너 목록에 추가한 지산 밸리록 뮤직앤드 아츠 페스티벌의 이력은 화려하다. 그동안 오아시스, 뮤즈, 라디오헤드, 푸 파이터스, 레드 핫 칠리 페퍼스 등 팝 역사의 씨줄과 날줄을 정의해온 ‘레전드’들이 지산을 찾았다. 역사가 곧 약속이다. 매년 라인업을 기대하게 하는 이유다. 내년 7월도 마지막 주 일정에 지산행을 추가하자. 세부 정보는 여기에서. 계간으로 발행하는 <하입비스트> 페이퍼 매거진 18호 ‘감각’에 담긴 고릴라즈의 인터뷰 정보도 다시보기 할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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