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알못'을 위한 사케 가이드 1편
니혼슈, 알지도 못하면서.

삶이란 때때로 알싸하고 알알한 것이지만, 술기운을 빌린다고 뭐 달라지는 것이 있나? 고대 스코틀랜드의 격언가들이 일찍이 답을 내렸다. 그들은 인생의 진리를 깨우친 애주가들이었다.
“술 마신다고 문제가 해결되는 건 아니지만
우유 마신다고 나아지는 것도 없다.”
아시아의 선조들, 이웃 나라 일본의 사정도 비슷했다. 삼시 세끼 밥을 먹어도 풀리지 않는 문제를 해소하기 위해, 쌀로 밥 대신 사케를 빚어 마셨다. 쌀알만큼이라도 나아지는 게 있다면 그것으로 술의 존재 이유는 충분했다.
모든 술은 어려운 것을 쉬이 하고자 세상의 부름을 받았다. 다시 말해 어려운 술은 없다. 그게 맥주든, 와인이든 일본 술이든. 사케에 대한 막연한 거리감도 편견이다. 여기 ‘사알못’들을 위한 사케 가이드가 있다. 알고 마시면 더 재미있는 니혼슈 종류의 분류 기준을 열거한다.
사케의 종류와 분류 기준
사케와 니혼슈
사케 고수와 하수의 오라 차이는 용어에서 결정된다. 관건은 사케와 니혼슈를 구분할 수 있는가다. 사케는 원래 일본에서 ‘술’을 통칭하는 단어. 쌀을 발효한 일본식 청주는 제 이름을 따로 불러주는 것이 센스 있는 애티튜드다. 그러니 우리가 아는 그 사케의 정확한 명칭은 니혼슈(전통주)임을 알아두자.
순정 사케에만 허락되는 칭호, 준마이
그중에서도 쌀과 누룩으로만 만든 ‘순정’ 니혼슈를 준마이라 부른다. 순미(純米)라는 이름 그대로다. 쌀과 누룩 외에 양조 알코올인 주정과 감미료, 산미제 등 기타 첨가물이 들어가는 술은 준마이 호칭을 붙이지 않는다.
‘쌀’을 깎아내는 고통이 클수록 고급 술
인간이 아름다움을 위해 살을 깎는 고통을 감내하듯, 기품 있는 사케를 만들기 위해서는 쌀을 깎아내는 과정이 필요하다. 이렇게 쌀을 도정한 후 남은 쌀 알갱이의 비율을 정미율이라고 한다.
아프니까 좋은 사케다
일반적으로 정미율이 낮을수록 고급 술. 도정을 많이 할수록 진하고 깊은 향기, 깔끔하고 순수한 맛이 나서다. 정미율은 곧 장인의 손길, 경험과 기술 그리고 정성을 의미하니까. 도정 후 남은 극소량의 쌀 알갱이만으로 술을 빚으니 비싼 건 당연한 이치고.
니혼슈의 등급
정미율에 따른 니혼슈의 등급은 크게 네 가지다. 다이긴조(50% 이하), 긴조(50~60%), 혼조조(60~70%) 나머지는 후쓰슈(70% 미만)로 분류한다. 마루나 간바레오토상같이 편의점에서 살 수 있는 사케의 대부분은 후쓰슈, 즉 보통주라 생각하면 된다. 정미율이 60% 이하라도 주조장의 특별한 제조법으로 빚은 술은 ‘도쿠베츠’라는 명칭을 더한다.
준마이 다이긴조, 최고의 니혼슈?
그렇다면 순미와 정미율, 이 두 가지 기준을 고려한 최상의 니혼슈는? 이론상으로는 준마이 다이긴조다. 쌀과 누룩만을 사용해 감칠맛이 풍부하고, 낮은 정미율로 잡향과 잡미를 최소화한 고급 사케인 셈이다. 하지만 양조장의 개성에 따라 맛의 특징과 향이 다른 것이 니혼슈의 매력이 아닌가. 개인의 취향에 맞는 사케를 찾는 것이 정답이다. 등급이 높다고 항상 좋은 사케는 아니라는 얘기다.
2017 서울 사케 페스티벌에서 꼽은 추천 니혼슈 7
지난 9월 3일부터 4일까지 양일간 서울 사케 페스티벌이 개최되었다. 일본 전역의 80여 개 양조장에서 만든 300종 이상의 술을 직접 시음한 뒤 엄선했다. 준마이 다이긴조부터 혼조조까지, 니혼슈의 등급별 추천주를. 일본 요릿집에서 만나면 반갑게 아는 체해야 할, 집에 한 병 구비해두면 애쓰지 않고도 젠체할 수 있는 니혼슈 7가지.
준마이 다이긴조 - 알파 카제노모리 타입2
정미율이 무려 22%. 쌀의 약 80%를 깎아내 재료가 가진 잠재력을 아낌없이 끌어냈다. 깎고 깎고 또 깎은 뒤 남은 쌀을 한 번 더 발효한 정성이 눈물겨워 못 먹을 지경이다. 은은한 나무 향과 탄산이 상쾌한 풍미를 만들어낸다.
정미율: 22%
알코올 도수: 16도
마시는 법: 차게
가격 및 구매 문의: 일로 02-587-5048
다이긴조 - 고쿠류 다이긴조 류
와인 숙성법을 응용해 만든 니혼슈. 1975년 출시 이래 한 해에 한정 수량만 발매하는 귀한 술이다. 숙성주 특유의 부드러운 맛과 은은한 긴조 향의 멋진 밸런스가 압권. 성게알, 생새우, 로브스터 등 재료 본연의 맛이 중요한 고급 요리에 제격이다.
정미율: 50%이하
알코올 도수: 15도
마시는 법: 차게
가격 및 구매 문의: 니혼슈코리아 02-545-3251
준마이 긴조 - 은하철도의 밤
<은하철도 999>의 모티프가 된 소설 <은하철도의 밤>을 기념했다. 소설의 작가이자 시인인 미야자와 켄지의 고향인 이와테 고장의 지자케(지역술)다. 첫인상은 밤하늘을 수놓은 무수한 별이 떠오르는 청량감. 은하수를 달리는 기분을 맛으로 표현하면 이런 맛일까? 과일 향이 입안에서 부드럽게 퍼져나가는 맛이 일품이다.
정미율: 50%
알코올 도수: 14도
마시는 법: 차게
가격 및 구매 문의: 사카야코리아 02-2298-2735
긴조 - 기세키노 잇폰마츠
동일본 대지진 당시 홀로 살아남은 소나무 한 그루를 기억하는가? 희망의 상징이 된 이 기적의 소나무(기세키노 잇폰마츠)에 영감을 받은 건 몽블랑뿐만이 아니다. 이와테의 대표 효모인 ‘유우코노오모이’를 무기로 50% 정미율이라는 총알을 장착했다. 화려하고 진한 긴조 향의 여운이 긴 고급 긴조주.
정미율: 50%
알코올 도수: 14.5도
마시는 법: 차게
가격 및 구매 문의: 사카야코리아 02-2298-2735
준마이 - 미요시기쿠 이치 무여과겐슈
매년 그해의 12간지 동물로 꾸민 라벨 덕에 더욱 특별하다. 2017년은 정유년을 맞아 활기 넘치는 닭 라벨을 선보였다. 보틀만 통통 튀는 게 아니다. 신선함이 느껴지는 새콤달콤한 향기, 파인애플같이 고급스러운 단맛 그리고 화이트 와인의 부드러운 산미가 삼위일체를 이뤘다.
정미율: 65%
알코올 도수: 15도
마시는 법: 차게
가격 및 구매 문의: 지자케씨와이코리아 070-7770-1777
혼조조 - 혼조조 비비비
여성 양조인 특유의 섬세함이 느껴지는 니혼슈. 여릿여릿한 보틀과 달리 터프하고 시원한 맛이 반전 매력이다. 세토나이카이의 작은 섬, 쇼도시마의 유일한 양조장에서 빚었다. 간장으로 유명한 지역 음식 특색에 어울리는 깊이감과 감칠맛이 특징. 간이 센 음식과 페어링하기 좋다는 말이다.
정미율: 70%
알코올 도수: 16도
마시는 법: 차게, 상온, 데워서
가격 및 구매 문의: 일로 02-587-5048
후쓰슈(보통주) - 와타루세켄 오니타이지
합리성의 승리. 비싸야만 좋은 술이 아님을 맛으로 증명했다. 보통주임에도 깔끔한 감칠맛이 있어, 입맛을 돋우는 안주 도둑이다. 첫맛은 깔끔하고 목 넘김은 칼칼해 어떤 자리, 어떤 음식에도 어울린다. 오래도록 질리지 않는 풍미는 덤. 맛도 가격도 부담이 없다.
정미율: 70% 미만
알코올 도수: 14도
마시는 법: 차게 또는 데워서
가격 및 구매 문의: 니혼슈코리아 02-545-3251
(*지자케 제품들은 업소를 대상으로 대량 유통되는 경우가 많아, 소량 판매 여부와 가격은 유통 회사에 따로 문의해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