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간을 압축한 케이코 쇼텐 파이어킹 카페
명동이 좋아진 이유.
본격적으로 신년을 맞이할 때다. 소매를 걷어 올리고 새해 목표를 향해 직진하고 싶지만, 한편으로는 올해도 작년과 크게 다르지 않다는 걸 안다. 그래도 자연스레 흘러가는 현실을 환영하면 소소한 일상도 풍성해지기 마련. 매일 작은 것부터 하나하나 실천하며 이를 증명한 사람들이 있다. 케이코 쇼텐의 김윤지와 민재기 부부를 소개한다.
케이코는 가나자와 출신인 김윤지의 일본 이름이다. 지난 11월 명동역 부근에 개점한 케이코 쇼텐은 빈티지 파이어킹을 판매하는 상점이자 카페다. 주로 직장인이나 관광객으로 들썩이는 구역에 어울리지 않는 적산 가옥에 자리했다. 붐비는 인파를 피해 휴식을 취할 수 있는 안식처. 들어서는 순간 오감을 자극하는 커피 향, 꽃 향, 낡은 것 특유의 냄새와 60년대 음악이 오묘하게 섞여 왠지 모를 편안함을 안겨주는 곳이다.
파이어킹은 1940년대에 미국 오하이오주에서 론칭한 특정 식기류를 가리킨다. 두껍고 둥근 유리 소재가 특징이며, 그 중 우윳빛 옥색이 대표적이다. 누구나 한 번쯤 봤을 법한 뿌연 하늘색이나 반투명 앰버 그릇도 이 파이어킹 부류에 속한다. 당시의 전자레인지, 오븐과 함께 사용할 수 있는 그릇으로 개발된 파이어킹은 이름 그대로 ‘Fire-King’, 열이나 방사선에도 끄떡없다. 가정집 뿐만 아니라 슈퍼마켓, 주유소, 식당, 학교, 군부대 등 어디서나 쉽게 접할 수 있는 국민 필수품이었다. 하지만 생산 약 30년 만에 단종되며 구하기 어렵고 수집 가치가 높은 빈티지 카테고리로 등극했다.
케이코 쇼텐이 본격적으로 파이어킹을 수집한 건 2015년, 김윤지와 민재기 부부가 결혼한 해부터다. 둘은 예전부터 빈티지 애호가 사이에서도 개성 있는 스타일로 유명했지만, 서로를 만나 그 개성을 더 키울 수 있었다. 빈티지를 향한 서로의 열정을 격려하며 취향을 더 깊이 파고든 것이다. 신혼집에서 파이어킹을 그저 거창한 뽐내기용이 아닌 일상생활에서 즐겼다. 일반인에게는 다소 생소하고 낯선 파이어킹이지만, 케이코 쇼텐 부부는 그 낯설음을 환영했고 라이프스타일의 소소한 일환으로 받아들였다. 이들이 파이어킹을 애정하는 이유는 간단하다. “파이어킹을 쓰면 기분이 좋아진다. 왠지 영화 속 주인공이 된 것만 같은 기분이 드니까.”
파이어킹은 2000년에 레스토레이션 하드웨어가 리론칭한 바 있다. 하지만 남미에서 저렴하게 제작한 탓에 품질 관리 문제로 재빠르게 중지되었고, 되레 ‘가짜 파이어킹’이라는 꼬리표가 달린 상품들만 대량 남겼다. 그리고 2010년, 미국 빈티지에 열광하는 일본에서 라이선스 전개로 파이어킹 재팬을 설립했다. 아시아에서 행운을 상징하는 옥색 ‘제이다이트’ 파이어킹의 인기가 치솟으며 부활하는가 했지만, 안타깝게도 원본 그대로의 우윳빛을 재현하지 못해 수집가들을 만족시키지 못했다. 그래서 케이코 쇼텐은 오직 40년대부터 70년대까지 생산되었던 오리지널 파이어킹만 취급한다.
이들은 명동에 개점하기 전, 블루진밥이 속했던 창전동 매드대디 매장의 작은 책장에 불과했다. 2년 동안 카페를 계획하며 서두르지 않고 완벽한 공간을 모색한 후 로고까지 리디자인하는 수고를 거쳤다. 공작새 문장은 그래픽 디자이너 겸 타투이스트의 이력을 가진 민재기의 손을 거친 결과물. 그는 자신의 영문 이름 ‘잭’을 딴 위스키와 커피를 섞은 ‘잭스 크림 커피’도 개발했다. 프렌치 셰프인 아버지를 따라 요리사의 꿈을 키운 김윤지 역시 오믈렛, 오픈 샌드위치, 파스타 등을 메뉴에 추가했다. 체계적인 식당처럼 빠른 속도를 기대할 순 없지만, 슬로우 푸드만의 매력, 소울 푸드만의 위안을 만끽할 수 있다.
케이코 쇼텐의 비전은 손님들이 “하나밖에 없는 제품을 찾는 재미와 자신만의 개성, 자신만의 옷을 찾고 음악, 라이프스타일을 같이 즐길 수 있는” 목적지로 거듭나는 것이다. 그리고 개점 한 달여 만에 이미 그 목적을 이룬 듯하다. 손님들은 구매보단 오히려 선물을 하나씩 남기고 갈 정도로 케이코 쇼텐의 팬이 되어 돌아가니까.
새해 목표 중에 새로운 시도, 다양한 경험이 있다면, 케이코 쇼텐을 방문하길 추천한다. 원망스러울 정도로 바쁘게 지나가는 시간을 잠시라도 느리게, 소중하게, 소소하게 보내보자.
케이코 쇼텐 파이어킹 카페
서울시 중구 퇴계로 24길 12-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