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콸 인터뷰 - 개인의 삶, 은밀한 삶
다음 생엔 몰타의 고양이로.

미술 작가들은 종종 무의식적으로 자신의 모습을 작품에 투영시킨다. 특히 장콸은 이에 능통한 작가 중 한 명이다. 무슨 생각을 하는지 도통 가늠할 수 없는 표정의 검고 긴 머리의 소녀는 가끔은 반항적이고, 때로는 유혹적이다. 한국 사회에서 ‘여성 작가’로 살아오며 겪은 감정과 경험이 그녀의 절제된 화폭에 고스란히 묻어난다. 그래서인지 장콸은 유독 여성 팬이 많다. <하입비스트>가 그녀의 두 번째 개인전 <Private Life>를 앞두고 그동안 공개되지 않았던 지극히 개인적인 그녀의 작업실을 찾았다. 그녀의 세계관은 여성뿐만 아니라 남녀노소 모두가 빨려들어갈 정도로 매력적이다.
첫 개인전 이후 16개월이 지났다. 무엇을 하며 시간을 보냈나?
그림 그리고 국내외에서 열리는 작은 전시에 참여하고 여행도 가고 친구들을 만났다.
두 번째 개인전 <Private Life>는 어떤 이야기를 담고 있나?
개인의 삶, 또는 은밀한 삶이라고 해석해주었으면 한다. 혹자는 개인의 선택이라 하겠지만, 한국 사회가 여성에게 기대하는 역할, 미적 기준에서 벗어난 여성을 바라보는 시선은 무시하지 못한다. 사회의 압력은 우리가 하는 일에 무의식적으로 영향을 미치고 이것을 떼어놓기는 불가능하기 때문이다. 군살을 거들 속으로 구겨 넣는 것, 몸에 자란 털을 주기적으로 면도하는 것과 길을 걸으며 담배 피우는 행위, 또는 동거 중인 비혼 여성이라는 것 외에도 여성의 위치에서 사회 구성원의 일부가 되기 위해 암묵적으로 감춰야 하는 규범이 많다. 당연하다고 생각해온 것들이 당연하지 않다는 것을 알게 되었을 때, 새로운 사람을 만나거나 외출하는 것이 어려워졌다. 하지만 많은 것이 필수가 아닌 선택이라는 것을 알게 된 이후 내 삶의 질은 향상되었다. <Private Life>는 여기서부터 시작되었다.
첫 번째에 이어 두 번째 개인전도 같은 갤러리에서 진행한다.
첫 개인전 <Girl Scouts> 이후 두 번째로 ‘에브리데이몬데이’와 함께하는 전시다. 이자영 대표님과 심지현 큐레이터님 모두 최상의 전시 구성을 위해 작가와 함께 아이디어를 공유하고, 메일이나 메시지를 통해 부지런히 대화한다. 무엇보다 갑과 을 관계가 아닌 동등한 관계에서 함께 일하는 것이 좋다.
작업실에 흔한 물감 하나 보이지 않는다.
동양화를 그릴 때 사용하는 가루로 작업한다. 종종 절에 가서 불화를 보거나 무신도를 보는 것을 좋아했다. 그럴 때마다 그것에 사용되는 재료와 기법을 배워보고 싶었다. 새로운 것을 배운다는 건 설레지만, 동시에 우려되는 일이기도 했다. ‘금세 포기하지 않을까’라는 생각을 하게 된다. 나 자신에게 실망할 수도 있고, 재료값도 만만치 않기 때문이다. 우려는 뒤로하고 기본적인 것들을 공부했다. 나와 내 그림의 성격과 잘 맞았다. 채색 전 종이에 밑 작업을 하는 것, 안료를 곱게 가는 것, 채색이 끝나고 배접하는 것까지 모두 정성이 필요한 과정이다.
주로 인물화, 특히 소녀가 자주 등장한다.
내가 살아오면서 느낀 것, 겪은 것, 본 것, 들은 것 그리고 상상한 것을 그려왔는데, 그중에는 한국에서 여성으로 살면서 겪은 문제도 포함된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작품의 소녀들은 작가를 대변하는가? 아니면 그 반대인가?
나는 주도적이고 독립적이며 능동적인 사람이지만, 이런 내 성격의 요소들이 사회나 가족의 압박 때문에 억눌려 있었다는 것을 알게 된 지는 얼마 되지 않았다. 이전 작업들은 뭘 몰라서 시각적으로 자유롭게 표현할 수 있었던 반면, 알고 난 후에는 오히려 표현이 조심스러워졌다.
장콸의 소녀들은 감정을 거의 드러내지 않는 듯한 무표정이다. 가끔은 다소 야할 때도 있다. 작품을 보는 사람에게서 어떤 감정과 생각을 이끌어내고 싶나?
매력적인 여성으로 보이는 인물들과 현대사회의 미적 기준을 벗어난 부분을 과장하고, 사회 통념적으로 여성이 하고 있으면 낯선 행동들을 시각적 언어로 관람자를 꾀어 여성의 위치를 비춰봤으면 했다. 왜 콧잔등에 난 잔수염까지 관리 해야 하는 건지, 왜 기분 나쁜 상황에서도 미소 지어야 하는지, 관람객이 작은 의심을 하기 시작한다면, 그것으로 만족할 것 같다.
그림 그릴 때 빼면 보통 무엇에 시간을 많이 투자하나?
독서와 수면.
최근 읽은 것 중에 기억에 남거나 공유하고 싶은 책이 있나? 혹은 기억에 남는 꿈이 있다면?
최근에 읽은 것은 아니지만, 배수아 작가님이 번역한 사데크 헤다야트의 <눈먼 부엉이>를 권한다. 읽으면 자살하게 된다는 우려로 한때 페르시아에선 금서였던 책이다. 가끔 타원형 도넛처럼 생긴(하얗고 탄성이 있는 느낌의) 밀가루 반죽 안에서 반복적으로 추락하는 꿈을 꿀 때가 있는데, 읽는 동안 이 꿈을 꾸는 것 같은 기분이 들었던 소설이다.
어느 순간부터 긴 생머리가 작가의 트레이드마크가 되었다. 작품 속 머리카락은 어떤 의미를 지녔는가?
그림 속 인물이 지닌 성질을 숨겨주거나, 그 사이에 나타난 빨간 눈은 반대로 성질을 나타내는 오브제로 작동한다.
많은 작품에서 유독 도트 패턴을 자주 볼 수 있다.
꽃, 줄무늬, 체크 등과 같이 그림을 아름답게 꾸미기 위해 사용하는 무늬 중 하나다.
최근 작품에서 유독 고양이가 눈에 띈다.
어릴 때부터 한 장소에 오래 정착하기 어려운 환경에 있었다. 길게는 5년, 짧게는 1년에 한 번씩 거처를 옮겼어야 했다. 성인이 되고서 의식주를 모두 스스로 해결해야 하니까 일정한 수입이 없는 작가로 살면서 하루하루가 임시 캠프 생활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지금 사는 곳에는 작년 6월에 이사를 왔는데, 처음으로 길고양이랑 친해졌다. 고양이가 다가와 그르릉 소리를 내며 내 다리 사이를 빙글빙글 돌았다. 어릴 때부터 할머니, 할아버지에게서 고양이는 영물이라는 말을 듣고 자라 고양이를 무서워했었다. 아무튼, 이때가 스스로 잘 살고 있는지 돌아보는 시기였는데, 이 고양이에게서 동질감을 느꼈다. 나는 건물 꼭대기 층에 살고 이 고양이는 옆 건물 어딘가에 살고 있는데, 서로 눈이 마주치면 내가 사는 건물 입구 앞으로 온다. 다음 생에는 몰타의 고양이로 태어나고 싶다.
다음에 머물게 될 곳은 어디인가?
현재 거주지의 계약 기간이 오는 6월에 끝난다. 또 임시 거처를 찾아야 한다. 2019년 1월부터는 네덜란드에 머물 예정이다. 얼마나 있을지는 모르겠다. 또 오래전부터 배워보고 싶은 것이 있었는데, 새로운 것에 대한 불안함 때문에 미뤘던 것을 배워볼 예정이다.
장콸의 두 번째 개인전 <Private Life>은 2018년 5월 6일까지 아래에서 감상할 수 있다.
에브리데이몬데이
서울시 송파구 송파대로48길 1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