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재범 인터뷰 - 락네이션 최초의 아시아 아티스트
제이지 사장님이 지켜보고, 투 체인즈와 ‘SOJU’ 마시는 래퍼.
한국 힙합의 ‘굳히기’에 일조한 뮤지션, AOMG를 명실공히 많은 사랑을 받는 국내 레이블로 정착시킨 사업가, 어쨌든 현시점에 케이팝의 여러 결에서 강렬한 마침표가 되는 래퍼. 그리고 제이지가 이끄는 레이블 락네이션과 계약한 최초의 아시아 아티스트. 그렇다, 박재범이다.
지난해 여름 들려온 그의 락네이션 합류 소식은 힙합 신을 한바탕 떠들썩 하게 했다. 아티스트 자신에게도 음악 팬들에게도 꿈만 같던 이 이야기의 인트로는 ‘SOJU’다. 5월 25일, 투 체인즈가 피처링한 첫 US 싱글 발표와 함께 Jay Park의 본격적인 미국 활동이 시작되었다.
새삼스러운 사실은 이 모든 일이 1년 만에 일어났다는 점이다. 박재범을 처음 만난 건, 2017년 2월 AOMG 콘서트 백스테이지. 당시 한국 힙합 어워즈 올해의 아티스트 부문 후보에 올랐던 그는 어느덧 ‘17년과 ‘18년 2년 연속으로 ‘올해의 아티스트’ 상을 거머쥐었고, AOMG의 박재범이 아닌 락네이션의 Jay Park으로 미국 시장에 진출하며 뮤지션으로서 커다란 전환점을 맞이했다. 1년 3개월여 만에 일어난 변화치고는 꽤 다이내믹한 변천사가 아닌가.
‘SOJU’ 발매 기념 인터뷰를 위해 박재범과 다시 만났다. 1년 전, 리허설 지연으로 중단된 채 세상의 빛을 보지 못하고 훗날을 기약해야 했던 인터뷰 때와 똑같은 질문도 건넸다. 그가 ‘지금은 존재하지 않는 과거의 것 중 되돌리고 싶은 것’은 그때도 지금도 ‘마이클 잭슨’이며, 상복이 있다면 갖고 싶은 타이틀은 ‘오스카’ 트로피라는 상상이 추가되었다. 2017년의 박재범과 2018년의 Jay Park은 어떻게 닮고 또 다를까?
Part.1
“10년 차 가수인데 이제 시작이네.”
투 체인즈와 ‘SOJU’ 한잔 더
25일에 투 체인즈가 피처링한 ‘SOJU’로 미국 시장에 출사표를 던진다.
락네이션이 투 체인즈에게 들려줬는데, 그들도 좋다고 해서 피처링에 참여하게 됐다. 하이어뮤직의 우기가 프로듀싱한 곡이다. 잘 나온 것 같다.
투체인즈와 작업하면서 특별한 에피소드는 없었나?
사실상 따로 작업해서 특별한 에피소드는 없지만 투 체인즈가 내 곡에 참여한 것 자체가 에피소드다. 투 체인즈의 참여 소식을 듣고 나서부터 “와, 언제 오지?” 매일매일 생각하면서 한 달이고 두 달이고 목 빠지게 기다렸다. 미국의 유명 래퍼와 처음으로 작업하다 보니, 너무 기대되고 흥분되어서 기다렸던 기억이 난다.
애틀랜타 출신의 투 체인즈가 소주를 알까?
확실히 안다. 뮤직비디오를 같이 찍었거든. 사실 이런 콘셉트 자체가 너무 신기하고 신선하다. 케이팝 백그라운드에서 나온 나와 애틀랜타 출신의 투 체인즈가 소주란 노래를 하는 것이니까. “한 잔 더’ ‘석쇠갈비’ 이런 가사에 투 체인즈가 피처링을 하다니 말이다. 가슴이 벅차다.
락네이션 최초의 아시아 아티스트
케이팝을 대표하는 래퍼가 락네이션에 합류하기까지의 여정이 궁금하다.
2016년 AOMG 세계 투어 당시, 락네이션의 추천으로 뉴욕 공연에 타이들(Tidal)의 제이슨(Jason Kpana)이 왔다. 케이팝 공연이라고 하니 아이돌 음악을 생각하고 왔다가, 외국인 관객들이 우리의 힙합, 알앤비, 랩 음악에 맞춰 떼창 하는 모습을 보고 감동과 충격을 받은 것 같다. 공연이 끝나고 만나고 싶다고 요청해서 뭔가 같이 해보고 싶다고 했다. 그분이 락네이션에 얘기를 해서 처음엔 유통 쪽만 논의하다가, 나중엔 아예 소속 아티스트로 영입 제안을 받아 합류하게 됐다.
내가 <Everything You Wanted> 앨범을 냈을 때, 뮤직비디오부터 안무 영상까지 한국어 영어 가리지 않고 ‘열일’하는 걸 보고 “뭐지 얘?” 했다더라.
아시아 아티스트 최초로 락네이션과 계약한 소감과 포부라면?
완전 영광이다. 정말 꿈에도 상상도 못 했던 일이다. 대신 그만큼 어깨가 무겁다. 내가 동양인 그리고 한국 힙합 신 대표로서 이 큰 세계에 들어가 많은 사람을 대표하는 거니까. 동양인의 멋, 한국인의 멋을 제대로 보여줘야 한다는 부담감이 있지만 그래도 감사하다. 이런 기회가 생겨서.
하긴. 타이들 측에서 처음 유통 제안을 했을 때만 해도 락네이션행을 상상이나 했겠나.
근데 나는 항상 자신이 있었다. 어차피 락네이션이 아니었어도 앞으로 영어로 음악 활동을 해야겠다고 생각하던 찰나였는데, 때마침 딱 락네이션과 인연이 닿은 거다. 운명처럼.
제이지 사장님이 보고 있다
락네이션 계약 이후 제이지와의 에피소드, 혹은 새롭게 친구가 된 아티스트가 있나?
그저께도 저스틴 스카이의 노래를 내 유튜브에 리믹스해서 올렸다. 어제는 영 패리스라고 아프로비트를 많이 하는 친구가 내 곡의 피처링을 해줬고. 멋있고 좋은 아티스트가 많아서 계속 교류하고 있다. 사실 제이지와는 첫 만남에서 잠깐 인사 나눈 게 전부다. “우리를 믿어줘서 고맙다” 그 한 마디 하고 악수하고 그게 끝이었다.
CNN과의 인터뷰에서 “그(제이지)가 나를 안다는 사실이 날 미치게 하네요”라고 했는데.
당연하다. 계속 믿기지 않았다. ‘이 사람이 나를 알까?’ 싶었다. 제이지는 나를 아직 지켜보고 있는 것 같다. 내가 미국에서 보여준 게 아직은 없으니까.
사장님이 보고 있다? 뭐 그런 건가.
앞으로 내가 어떻게 하는지에 따라 조언을 하거나 거리를 두거나 그렇게 되지 않을까. 좋은 모습을 보여야 제이지의 ‘예쁨’을 받을 수 있을 것 같다.
AOMG, 하이어 뮤직, 락네이션
가수가 되기 위해 미국을 떠났다가, 락네이션의 일원으로 다시 미국 땅을 밟았을 때 감회가 새로웠겠다. 2PM 탈퇴 직후 힘든 시기를 보냈으니까. 시애틀에 돌아와 가수가 아닌 중고차 가게에서 일하기도 하고.
사실 그때가 마음은 훨씬 편했다. 고민할 게 없으니까. 지금은 해야 하는 것들에 대해 생각하고 고민해야 하는데 그때는 그게 정해져 있었다. 밥 먹고 친구를 만나고 비보이 춤을 추는 일상이. 그런데 지금은 내가 쏟아붓는 만큼 돌아오는 시기다. 할 수 있는 게 많아진 현재도 행복하고 좋지만, 지금이 몸과 머리와 마음이 훨씬 힘들고 지친다. 훨씬 더 많이 고생하는 것 같다. (폭소)
SXSW 2018에서 하이어뮤직이 공연했다. 레이블 단위로 쇼케이스를 개최한 사례로는 최초였다.
너무 좋았다. 내가 시애틀 출신이지 않은가. 미국과 시애틀 아티스트들도 많이 모인 무대이다 보니, 내가 시애틀과 한국의 다리가 된 것 같은 기분이었다. 서로 언어도 안 통하고 배경도 다르지만 이렇게 음악과 힙합으로 함께한다는 게 좋았다. 미국의 뜻깊은 페스티벌에서 공연하고 에너지를 쏟아부을 수 있어서 잊을 수 없는 하루였다. 정말로.
박재범은 식지 않는다
’17년과 ’18년, 2년 연속 한국 힙합 어워즈 올해의 아티스트로 선정되었다. 엉뚱하게, 음악상 외에 꼭 한번 받고 싶은 상이 있다면?
오스카 상. 아주 만약에, 나중에 내가 음악이 조금 질려서 연기로 전향하는 상상을 해보자면 말이다.
그냥 단순한 상상인가? 아니면 어떤 제안이 있었나?
그렇지는 않다. 지금은 미국에서 음원을 내고 활동을 시작하면서, 음악으로 나를 알려야 하는 시점이다. 연기는 나중에 자리를 잡으면 생각해볼 만한 상상이랄까.
“아주 만약이라면, 오스카 상을 받고 싶다.”
요즘 가장 아끼는 패션 아이템은?
나이키 에어 맥스 95. 처음 신은 이후 거의 매일 신는 수준이다. 엄청 편하다. 사실 나는 주변에서 선물을 많이 받는 편이라, 쇼핑을 별로 안 한다. 꼭 럭셔리 브랜드가 아니라도 내 눈에 예쁘면 다 입는다. 하지만 그중에서도 정말 좋아하는 브랜드가 있다면 나이키. 나이키가 짱이다.
AOMG의 박재범과 락네이션의 Jay Park은 어떻게 달라질까?
두고 봐야 알겠지. AOMG, 락네이션, 하이어뮤직 모두 열심히 하고 있다. 몸은 하나고 하루는 24시간이니 밸런스를 잡는 게 사실 힘들다. 미국과 한국을 왔다 갔다 해야 하고 나의 개인 커리어도 생각하면서 내 레이블 소속 아티스트들의 방향도 생각해야 하니까. 힘들지만 감사한 마음으로 계속 달려가고 있다. 아직까지 열정이 식지 않아서.
Part.2
2017 박재범, 2018 Jay Park
“AOMG의 성공이 놀랍지는 않다.”
AOMG는 꼭 5만 원권 화폐같다. 갑자기 생겨나서 지금은 너무 당연하고 필수적인 존재가 되었다.
2017: 사실 일 관계이긴 하지만 아티스트로서 존중하고 사람으로서도 좋아하는 래퍼들이 뭉친 레이블이다. 소속 아티스트들이 계약에 따라 다른 회사로 옮기는 것이 상상이 안 될 정도로 한식구가 되었다. 진심이 담긴 관계다.
2018: 처음부터 돈을 많이 벌고 그런 것보다는, 순수하게 재밌고 멋있는 뮤지션들이랑 함께 식구처럼 만들어나가고 싶다는 마음이 컸다. 난 항상 나에 대한 자존감이 강하거든. 다들 같은 방향을 향해 달려가니까 점점 회사에 대한 자신감도 붙더라. 그레이 형, 로꼬가 잘되기 전에, 쌈디 형이 들어오기 전에 이미 나는 상상했었다. 열심히 잘하면 우리가 무시할 수 없는 존재가 되겠구나. AOMG의 성공은 너무나 감사하지만 그렇게 막 놀랍거나 하지는 않다.
“가수가 되고 나서 그분의 파격적임을 새삼 실감하게 됐다.”
“마이클 잭슨이 다시 생겼으면 좋겠다.”
지금은 없어진 것 중에 다시 생겼으면 하는 그리운 것은?
2017: 마이클 잭슨이 다시 생겼으면 좋겠다. 공연을 못 봤는데, 죽기 전에 한번 보고 싶다. 그에게 영감을 많이 받았으니까.
2018: 지금도 마이클 잭슨. 가수가 되고나서 그분이 얼마나 대단하고 파격적인 존재이었는지 새삼 더 실감하게 됐다. 춤이면 춤, 공연이면 공연, 말하는 것 한마디 한마디까지 모든 면에서 파급력 있는 아티스트였으니까. 그의 공연을 직접 보거나 대화를 해보면 어떨까 상상해본다.
‘2017년에 마이클 잭슨이라 답했다’는 사실을 방금 당신에게 말해주지 않았다 해도 같은 대답을 했을까?
아마도? 마이클 잭슨 아니면, 옛날에 아무것도 모르지만 순수했던 마음. 그 둘 중에 하나를 고민하고 있었거든.
“가끔씩 재미 되게 없다, 내가.”
화폐 가치가 바뀌어 10만 원짜리가 수표에서 지폐가 되는 시대가 온다고 상상해보자. 박재범이 10만 원 권의 모델이 된다면 어떤 이미지가 실렸으면 좋겠나?
2017: 10만 원 짜리에 내 얼굴이 실린다는 것 자체가 부담스럽긴 하다. 많은 사람들이 쓰는 돈이니까, ‘이 사람이 누굴까’ 궁금해하는. 묘비명처럼 글자도 넣을 수 있다면 ‘AOMG’.
2018: 만약 내가 돈에 실릴 만큼 뭔가 이루었다면, 그냥 가수라서가 아니라 이 사회와 세상에서 좋은 일을 해, 역사적으로 좋은 변화를 주거나 불가능한 일을 했다면 좋겠다. 그냥 멋있고 잘생긴 뮤지션으로는 남고 싶지 않다.
매번 느끼지만, 정말 진지하고 신중하다.
응, 그래서 가끔씩 재미가 되게 없다 내가.(웃음) 지금 한창 가수로서, 젊은 남자로서 나의 자리와 길을 뚜렷하게 찾아가는 시점이지 않은가. 아직까지는 좀 부족하다. 상상이긴 해도 화폐 모델은 대단한 사람들이 실리는 건데 단정해서 함부로 얘기하기가 힘들다.
“인기만 생각했다면 7분짜리 노래를 타이틀로 하지 않았겠지.”
“꼭 인기를 얻지 않더라도”
애착이 있는데, 예상보다 반응이 약했던 아쉬운 곡이 있다면?
2017: <Worldwide> 앨범 자체가 그냥 그런 사연이다. 인기만 생각했다면 7분짜리 노래를 타이틀로 하지 않았겠지. 분위기가 대중적인 인기를 얻기 힘든 낯선 음악이지만 힙합 애호가와 아티스트들에게 인정받을 수 있었던 앨범이었다. 나도 만족했고. 꼭 인기를 얻지 않더라도, 내가 원하고 마음 가는 대로 음악을 할 수 있다는 것 자체로 복 받은 것 같다.
2018: 아쉬움은 항상 있지. 왜냐면 나는 약간 이거를 먹고 숨 쉬고 살잖아. 음악을 하는 이런 삶을, 아티스트로서 365일 24시간 그냥 매일매일 매순간을 살면서 고민하고 연구하고 노력하고 내 열정을 쏟아붓고 있다. 재밌는 건, ‘뻔하잖아’ 같은 곡은 한국에서는 잘 모르는데, 해외에 가면 진짜 반응이 좋다.
“나 오직 너만이와 행복하게 살 수 있어.”
한국말이 서툴러서 실수로 만든 문장이, 기발한 표현처럼 받아들여진 가사도 있을 거란 상상도 해봤다. 그렇게 얻어 걸린 명가사도 있나?
2017: ‘미스’할 때도 있고 꽂힐 때도 있고. 그레이 형의 곡 ‘위험해’의 펀치라인의 ‘회를 한번 쏠게 이건 나의 사시미야’나 ‘니 생각에 머리 빨리 자랐다’ 등 너무 많다. 사실 호불호는 갈린다. 특이해서 좋아하는 사람들도 있고 유치하다는 반응도 있고, 취향의 차이다.
2018: 실수로 만들거나 그런 건 없다. 나한테는 완전히 말이 되니까. 예를 들면 ‘좋아’의 ‘나 오직 너만이와 행복하게 살 수 있어’ 같은 것. 문법적으로는 말이 안 되는데, 이 노래를 들려준 많은 사람도 너무 자연스러워서 몰랐다고 하더라. 언어가 서툴러서 표현이 좀 부족해도 그냥 그대로 보여주려 한다. 그게 나니까. 나도 사람이니까, 사람은 모자랄 수 있다. 내 가사와 내 모습을 음악에 그대로 담을 뿐이다.
“레츠기릿”
하루에 한 번은 꼭 사용하는 자신만의 표현이나 슬랭이 있다면?
2017: ‘레츠기릿’. <쇼미더머니>에서도 그냥 그게 자연스럽게 나왔다.
2018: ’렛츠기릿’이 아닐까. 가자! 해보자! 으쌰! 화이팅! 이런 거다.
“나의 열정은 식지 않는다.”
한국 힙합계에서 박재범은 이미 애정의 대상이나 우상을 넘어 하나의 롤 모델이 되었다. 많은 걸 성취해 오히려 공허한 적은 없나? 예전에는 뭐든 될 수 있고, 뭐든 상상할 수 있었는데, 지금은 이미 뭔가 되어버린 느낌이 들 때가 있다든가.
2017: 크게 부담은 안 된다. 그냥 내 자신이 옳다고, 현명하다고 판단하면 가치관대로 움직이려고 노력하는 편이라서. 그게 누군가에게 영향을 주기 때문이라기보다는, 그냥 내가 떳떳해야 해서다. 진심이 아니거나 그냥 자극적이라서 하는 건 없다. 생각이나 가치관은 나이를 먹으면서 똑독해지고 중요한 걸 깨달으면서 바뀌겠지만, 그런 마음은 변함이 없지.
2018: 나의 열정은 식지 않는다. 계속 하고 싶은 것이 있고, 욕심이랄까. 야망이 있다. 끊임없이 새로운 것을 찾고 있다. ‘난 이미 이렇게 되었으니까, 이걸 안 해도 된다’거나 ‘돈을 벌었으니 열심히 안 해도 된다’ 그런건 없다. 나는 사람들이 믿지 않아도, 계속 나 자신을 믿고 내 신념에 맞게 움직이는 사람 같다. 한마디로 Self-Belief.