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해 인터뷰 - 유기농의 맛과 멋

힙합 말고, 래퍼 말고, 정한해.

음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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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름이면 서울 도처의 평양냉면 명가는 군더더기 없이 솔직한 맛을 찾는 발길로 붐빈다. 평양냉면 마니아가 되는 이유는 십중팔구 자극적인 양념에 지친 혀를 보듬어주기 때문. 밍밍함과 싱거움 사이의 매력을 알아차리는 순간 그 산뜻함과 묘한 감칠맛에 중독되고 만다. 개코는 한해의 진솔함을 평양냉면에 비유했다. 음악적 재능은 말할 것도 없다고 덧붙이며. 꾸밈없이 민낯을 드러내는 한해가 본명으로 활동하는 이유는 ‘내 이름이라서’다. ‘자연주의’, 약 치지 않은 한해의 이야기를 들어보자.

신곡 ‘Clip Clop’을 소개해달라.

제목은 말발굽 소리를 의미한다. 나는 말띠이기도 하고 말을 좋아한다. 좋아하는 브랜드도 말과 관련이 있다(웃음). 한 발짝 더 나아가는 것을 형상화한 노래다. 피처링으로 참여한 돕덕과는 초등학교 때부터 친구다. 지금 서로 하는 음악이 달라서 안 어울릴 수도 있다고 생각했는데, 곡 주제랑 부합해서 부탁하게 됐다. 내가 추구하는 가치관이 담겨 있으니 재미있게 듣길 바란다.

고등학생 때는 돕덕을 디스했었는데.

(웃음) 원래는 학원에 같이 다녔다. 그러다 내가 고2 때 제이통 형과 벅와일즈를 처음 만나면서 음악에 관심이 생겨 지역 활동을 시작했다. 당시 돕덕은 부산 로컬 신에서 센 형들이랑 어울리며 당시 유행하는 남부 스타일 음악을 했다. 둘 다 힙합을 한다고 하는데 서로의 음악이 마음에 안 들었나보다. 나는 버벌진트 형의 음악 같은 걸 좋아했으니까. 내 실력을 뽐내고 싶어서 싸이월드에 디스 곡을 올렸다. 돕덕이 댓글로 욕 달고(웃음).

EP <Organic Life>의 1번 트랙 ‘유기농’은 의외의 조합이다.

과하지 않고 담백한 멋을 얘기하고 싶었다. 처음 떠오른 사람이 레디 형이었다. 자기 얘기를 편안하게 하는 사람이라 그의 음악을 좋아한다. 사실 잘 모르던 사이였는데, 연락해서 노래를 들려줬더니 흔쾌히 하자고 하더라. 그러다 자기만의 스타일이 있는 노엘이 떠올랐다. 노엘도 전혀 모르는 사이였는데, 좋다고 해서 원활하게 작업했다. 이 노래는 콘서트에서 라이브로 부르고 싶다.

앨범에서 이별 얘기가 눈에 띈다. 실제 본인의 이야기인가?

(웃음) 헤어졌다. 헤어진 뒤 원래 앨범의 3분의 2는 엎고 두세 달 만에 다시 작업해서 낸 앨범이다. 그전엔 신나는 곡이 많았는데, 헤어지고 나니 그 분위기로 완성을 못 하겠더라. 그냥 있는 그대로 흘러가는 내 삶이 담긴 앨범이다.

비교적 팝에 가까운 한해의 음악에 거부감을 느끼는 힙합 팬도 있다.

나는 힙합을 표방하기보단 랩이라는 도구로 좋은 음악을 하고 싶다. 내 음악을 주로 소비하는 사람들이 완전 힙합 팬은 아니라고 생각한다. 하지만 내가 어릴 때부터 힙합을 좋아했고 그 영향이 나타나는 건 어쩔 수 없기 때문에 그걸 애써 부정하거나 일부러 숨길 필요는 전혀 없다. 특히 지금은 장르가 모호해지는 시기이기도 하고. 좋은 음악을 만드는 게 첫 번째다.

한해 인터뷰 clip clop 2018

회사나 현실적 제약을 떠나 진짜 하고 싶은 음악은 뭔가?

브랜뉴뮤직이라는 회사가 상업적인 걸 유도한다는 인식은 오해다. 다 아티스트 본인이 하고 싶어서 하는 거다. 산이 형, 버벌진트 형이 회사에서 시켜서 억지로 음악을 만드는 게 아니다. 어느 정도 규모가 있는 회사 중에 우리만큼 음악적 자유가 보장되는 회사는 없다. 난 내 나이에 얘기할 수 있고 또래들이 공감하거나 위안을 얻을 수 있는 이야기를 하고 싶다. 누구처럼 허슬해서 일 년에 앨범을 네다섯 장씩 못 낼지언정 꾸준히 좋은 음악을 하고, 순간순간 좋은 것을 표출해 만족스러운 작업물을 내고 싶다. 나도 듣는 사람으로서 음악이 나오면 들어보고 싶은 아티스트들이 있는데, 그런 아티스트가 되고 싶다.

브랜뉴뮤직 특유의 가요와 힙합 사이에 애매하게 걸쳐 있는 듯한 이미지가 싫지는 않은가.

회사나 소속 아티스트가 극복해야 할 몫이다. 좋은 음악은 배신하지 않는다. 소속 아티스트들이 충분히 편견을 극복할 하드웨어를 가지고 있다고 생각하기 때문에, 자연스럽게 바뀔 것으로 생각한다. 또 그 때문에 내 음악이 평가절하 되는 부분은 없다. 나도 예전 내 앨범을 들으면, 부족한 점이 많았다는 걸 느낀다. 작업을 거듭할수록 나아지고 있다고 느껴서 긍정적으로 생각하고 있다.

‘힙합은 이래야 한다’라는 선입견, 예술가와 연예인의 이분법적 구분을 어떻게 생각하나?

이해는 되지만, 좀 촌스럽다. 마음속 깊숙이 보면 90% 이상의 래퍼가 미디어를 원한다고 생각한다. 현 상황에서 미디어를 똑똑하게 이용하면서 자기 가치를 높이는 건 나쁜 게 아니다. 물론 예능에 나와서 웃음거리가 되면 반감을 살 수 있다. 그런데 그것도 자기 기준이다. 그게 음악을 표현하기 위한 수단일 수도 있다. 각자의 상황이 다르기 때문에 일반화할 수 없다.

한해 인터뷰 clip clop 2018

랩 스타일이 확고하다. 어디서 영향을 받나?

어릴 때 ‘레이드백(laid-back)’ 스타일의 랩을 하는 래퍼들을 좋아했다. 예전 내 랩은 박자나 뱉는 것들이 좀 심하게 레이드백 할 때도 있더라. 레이드백이 과하면 리듬을 탈 때 방해가 되는 요소도 있다. 그래서 요즘은 그 접점을 잘 찾으려고 한다. 지금의 페이버릿은 드레이크다. 1, 2집 시절의 칸예 웨스트도 사랑한다. B.o.B도 엄청 좋아했다. 버벌진트, 다이나믹 듀오 형들도. 힙합과 랩을 기반으로 팝을 흡수한 음악을 좋아한다.

음악적 정체성이 애매하다는 피드백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나?

사실이다. 내 작업 방식 자체가 그때그때 하고 싶은 것을 상황에 맞게 하다 보니 일관성이 없어 보일 수 있다. 그래서 느끼는 바가 많다. 비단 스펙트럼의 문제는 아니다. 나 역시 스펙트럼 넓은 뮤지션을 좋아하지만, 그 안에서도 본인만의 스타일을 보여주는 게 뮤지션의 역량이라고 생각한다. 나한테는 그게 부족했다. 어투나 화법이 들쑥날쑥했다. 솔로 래퍼로서 커리어를 쌓은 지 이제 3년, 방향성의 갈피를 잡아가고 있는 단계라 앞으로의 음악들에서 조금씩 느낄 수 있을 것이라고 생각한다.

음악도 옷도 과한 걸 싫어하는 것 같다. 미의 기준이 있다면?

<하입비스트>같이 트렌드에 민감한 매체에서 유행을 신경 쓰지 않는다고 하기 민망하다(웃음). 나는 유행도, 브랜드도 잘 모른다. 핫한 브랜드 어디에서 어떤 제품이 나왔다는 걸 다 꿰고 먼저 입는 게 패션 감각이 좋은 것이라고 생각하지 않는다. 자기한테 어울리는 것을 입는 게 멋이라고 생각한다. 나는 심플한 걸 좋아한다. 그런데 지금이 과한 것에 몰입하는 시대라서 오히려 시대적 특수성이 생긴 것 같다. 나는 간결하고 담백한 것이 어울리는데 과한 것이 유행한다고 해서 따라가는 건 어색하니까 둔감하게 살고 있다. 음악에 관해서도 부족하다는 피드백은 받아들이지만, 단순하다거나 평범하다는 피드백은 신경 쓰지 않는다. 음악하면서 ‘내가 아닌데 왜 이러고 있어야 하지’하는 스트레스는 받기 싫다. 내 모습이 아닌 틀에 맞추면 음악을 할 이유가 없다. 그리고 결국 다 들통난다.

한해 인터뷰 clip clop 2018

혹시 입맛은 어떤가? ‘슴슴’한 맛을 좋아할 것만 같다.

너무 예상하는 대로 흘러가지만, 진짜 ‘슴슴’한 걸 좋아한다. 달고 맵고 짠 거 말고.

개코가 한해를 평양냉면에 비유했는데.

나는 평양냉면을 굉장히 좋아해서 엄청난 칭찬으로 들린다.

다이나믹 듀오가 아메바 컬쳐 영입 제안을 하진 않았나?

장난스레 얘기한 적은 있는데, 군대라는 큰 걸림돌이 있으니까(웃음). 당장은 아니지만, 시간이 많이 남지 않았다. 빠르면 올해 갈 수도 있고, 내년에 갈 수도 있다. 개코 형이 한 말 중에 <쇼미더머니>하면서 너무 이기려고만 하지 말고 앞으로 음악 할 거 생각하고 프로그램에 임했으면 좋겠다는 말이 오래 남았다. 거기에 동감한다. 잠깐 반짝할 사람들은 아니니까 나중에 다시 만날 수도 있지 않을까.

한해 인터뷰 clip clop 2018 한해 인터뷰 clip clop 2018

팬텀이 해체됐다. 그 활동은 한해에게 어떤 시간이었나?

5~6년이라는 시간 동안 아쉬운 점은 있지만 후회는 없다. 하기 싫은 것도 있었고 나의 모습을 못 보여준 시기도 있었는데, 그래도 돌아가라고 하면 다시 할 것 같다. 그만큼 형들한테 많은 걸 배웠다. 음악을 폭넓게 볼 수 있게 됐고 신기하고 진귀한 경험도 많이 했다. 조용필 선생님 쇼케이스에도 서보고. 나 혼자였으면 그런 경험을 하지 못했을 거다. 그래서 좋은 기억이다.

함께 연습하던 지코, 박경과 송민호가 모두 잘된 모습을 보면 어떤가?

재능이 많은 친구들이 한 그룹에서 트러블 없이 유기적으로 흘러갔다는 게 신기하다. 당시에는 지코와 의견 충돌도 있었다. 고등학생, 스무 살 때니까 그런 것도 재미있는 추억이다. 지금 각자의 영역에서 가치 있는 것을 하고 있다고 생각한다. 박경은 얼마 전에 프로그램에서 만났다. <복면가왕>에 나왔더라(웃음).

마지막 질문이다. 양념 안 친 유기농의 매력에 대한 확신이 있나?

내 랩이 화려하거나 톤이 특별하지는 않지만, 나는 내 스타일의 가치를 알기 때문에 음악을 하는 거다. 나는 상업적인 행보가 대중성을 만든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나의 색깔을 좋아하는 사람들의 파이가 커지는 게 대중적인 것이라고 생각한다. 또 방송에서 어떤 척을 하면 보는 사람들이 똑똑해서 다 알 것이다. 내 음악이 됐건 캐릭터가 됐건 나와 공감하고 나를 좋아하는 사람들이 많아졌으면 좋겠다. 그것에 대한 확신이 있고, 그걸 잘해나가는 게 내 몫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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