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니커 역사상 가장 극적인 부활, 리복 삭 런.R & 런.R 96
30년만에 부활한 스니커가 있다.
베트멍의 크리에이티브 디렉터 뎀나 바잘리아와 리복이 처음 만난 건 지금으로부터 약 3년 전인 2015년이다. 리바이스, 챔피온, DHL 등 미국의 팝 컬처를 대변하는 브랜드의 재해석에 심취해 있던 그는 우연한 기회로 메사추세츠 주 캔톤에 위치한 리복 본사에 방문하게 된다. 때는 뎀나 바잘리아가 베트멍의 첫번째 컬렉션을 성공적으로 마친 직후였다. 리복 본사의 이곳 저곳을 견학하던 뎀나 바잘리아는 자연스레 리복의 역사가 모조리 담긴 기록 보관소에 들르게 됐고, 그곳에서 그는 리복과 베트멍의 이름에 한 획을 그을 운명적인 스니커를 만나게 된다. 그 스니커는 바로 리복 펌프 에볼루션 러너다.
1995년 처음 만들어진 펌프 에볼루션 러너는 스니커에 적용할 수 있는, 당시 리복의 최신 기술이 모두 담긴 혁신적인 스니커였다. 펌프 에볼루션 러너의 가장 큰 특징은 ‘스플릿 툴링’이라고 불리우는 조각 조각 흩어진 미드솔. 이는 유연성을 극대화함과 동시에 무게를 최대한으로 줄인 당시 리복의 혁신 중 하나였다. 하지만 펌프 에볼루션 러너는 결국 세상에 나오지는 못했다. ‘젤’, ‘에어’, ‘펌프’ 등 1995년은 모든 스포츠 브랜들이 앞다투어 쿠셔닝 혁신에 혈안을 올리던 시절로, 펌프 에볼루션 러너는 같은 집안의 간판 스타였던 인스타 펌프 퓨리의 기세에 밀려 시제품으로만 남은 채 기록 보관소 한 구석에 안치하게 된다. 그리고 30년 후인 2015년, 펌프 에볼루션 러너는 당대 최고의 유명세를 달리는 디자이너, 베트멍의 뎀나 바잘리아를 만난다.
한 편의 드라마와 같은 히스토리. 스니커 역사를 통틀어 이렇게 극적으로 부활한 사례가 또 있을까? 뎀나 바잘리아는 리복 기록 보관소에 고이 모셔진 펌프 에볼루션 러너의 ‘스플릿 툴링’에 큰 감명을 받고, 이를 응용해 전에 없던 스니커를 만들어 낸다. 베트멍과 리복이 손을 잡고 만든 최초의 스니커 삭 런.R (Sock Run.R)이다. 뎀나는 펌프 에볼루션 러너의 조각난 미드솔이 삭스 스니커의 문제점인 취약성을 최대한 보강해줄 최적의 기술이라고 생각했다. 실제로 당시의 여러 삭스 스니커는 취약한 안정성으로 많은 지적을 받기도 했다.
뎀나 바잘리아의 숨결로 부활한 리복 삭 런.R은 2017년 베트멍의 홍콩 팝업 스토어를 통해 세상에 첫 선을 보였다. 90만원에 달하는 가격에도 불구하고 반응은 폭발적이었다. 인기의 시리즈는 총 9가지 버전의 모델이 출시됐고, 모두 발매와 동시에 매진을 기록했다. 베트멍과 리복의 협업으로 만든 스니커는 인스타 펌프 퓨리 등, 몇 가지 모델이 존재하지만 삭 런.R은 한 번도 세상의 빛을 본 적이 없는 스니커의 부활이라는 점에서 더 의미가 짙다.
2018년 6월, 삭 런.R은 베트멍의 이름을 떼고 홀로서기를 시작한다. 펌프 에볼루션 러너의 ‘스플릿 툴링’ 쿠셔닝의 혁신을 처음으로, 그리고 오롯이 증명할 시간. 이를 리복 펌프 에볼루션 러너의 진정한 부활이라고 말해도 좋을 것 같다. 베트멍의 이름만 떼어냈을 뿐, 삭 런.R의 미래지향적인 디자인과 미니멀한 감성은 그대로다. 심플한 디자인을 선호하는 이들에게는 이 홀로서기가 더 반가운 소식일 것이다. 또한 1백만원을 호가하는 베트멍 x 리복 삭 런.R의 가격이 부담이었던 사람들에게는 이번이 더할 나위 없는 기회일 것이다.
삭 런.R과 함께 조각난 미드솔의 ‘스플릿 툴링’을 적용한 또 하나의 모델 런.R 96(Run.R 96)도 출시된다. ‘청키 스니커’, ‘대디 슈즈’로 대변되는, 최신 스니커 트렌드에 완벽하게 부합하는 디자인. 추측컨대, 펌프 에볼루션 러너는 아마 런.R 96의 모습이었을 것이다. 리복의 헤리티지를 계승하는 진정한 의미로서의 부활. 리복 삭 런.R과 런.R 96은 무신사와 카시나, 10 꼬르소 꼬모, 비이커 등의 주요 편집숍을 통해 출시될 예정이다. 리복 공식 SNS 채널에서는 두 모델의 출시에 관한 더 상세한 정보를 만날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