칸예 웨스트의 첫 브랜드 '파스텔'은 왜 세상에 나오지 못했나?

칸예 웨스트 최고의 미스터리.

패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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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7년, 슈퍼 선글라스를 만든 다니엘 베커맨은 덴젤 워싱턴, 멜 깁슨, 캐서린 제타 존스를 배출한 에이전시 윌리엄 모리스로부터 한 통의 이메일을 받았다. 때는 레트로슈퍼퓨처의 슈퍼 선글라스가 엄청난 유명세를 탄 직후였다. 이메일에는 칸예 웨스트가 다니엘의 아에웨어 브랜드 레트로슈퍼퓨처와의 협업에 관심이 있다는 내용이 적혀 있었다. 하지만 당시의 다니엘 베커맨은 윌리엄 모리스와 칸예 웨스트가 누구인지 전혀 알지 못했다. 다니엘은 자신이 운영하고 있는 이탈리아 음악 매거진 <PIG>의 한 에디터에게 칸예 웨스트가 누구인지 물었고 그는 “칸예 웨스트는 다프트 펑크의 노래를 리믹스한 전도 유망한 래퍼”라고 다니엘에게 설명했다. 칸예 웨스트가 알랑 미끌리의 셔터 셰이드 선글라스와 함께 신곡 ‘Stronger’를 막 내놓은 즈음이었다.

칸예 웨스트의 첫 브랜드 '파스텔'이 세상에 나오지 못한 이유, 이지 외

다니엘 베커맨은 칸예 웨스트의 제안에 몹시 들떴고, 이후 몇 번의 메일을 더 주고 받았다고 말했다. 결국 둘은 윌리엄 모리스 에이전시의 사무실에서 첫 미팅을 가졌고, 이후 칸예는 뉴욕 맨하탄에 있는 그의 아파트로 다니엘을 초대해 여러 선글라스의 아이디어를 교환했다. “모든것이 순조롭고 빠르게 진행됐어요. 이 세상의 대화가 아닌 것 같았죠.” 다니엘은 당시의 감상에 대해 이렇게 밝혔다. 이후 칸예 웨스트와 다니엘은 약 20종류의 커다란 선글라스를 제작했다. 그중에는 유명한 나무 셔터 셰이드 선글라스도 있었다. 다니엘은 이 협업이 새로운 형태의 비즈니스의 시작처럼 느껴졌다고 말했다. 당시 다니엘 베커멘은 알지 못했지만, 이 협업은 칸예 웨스트가 만들고자 한 브랜드 파스텔의 초석으로, 다니엘은 칸예 웨스트가 브랜드를 위해 섭외한 30명의 컨설턴트 중 한 명인 것으로 밝혀졌다.

버질 아블로, 돈 C, 매트 조지, 윌로 페론, 그리고 칸예 웨스트로 구성된 프로젝트 팀은 그들의 첫 브랜드, 파스텔을 위해 3년 동안 지구를 샅샅이 뒤지며 잠재적 협업 가능성이 있는 모든 것들을 조사했다. 분야 막론, 그들이 물색한 리스트는 그야말로 쟁쟁했다. 킴 존스가 프로젝트의 컨설턴트로 초빙됐고, 당시 최고의 인기였던 베이프가 의류의 유통을 도맡기로 했으며, 카우스는 브랜드의 로고를 제작하기로 했다. 이외에도 CMMN SWDN의 엠마 헤드런드와 사이프 바키르, 홈룸 클로딩의 설립자 알렉산더 발드만 등이 의류 디자이너로 프로젝트 리스트에 이름을 올렸다.

칸예 웨스트의 첫 브랜드 '파스텔'이 세상에 나오지 못한 이유, 이지 외

프로젝트에는 빈티지 아이템 조사를 전담하는 사람들도 있었다. 그들은 뉴욕과 엘에이의 모든 빈티지 숍을 뒤지며 여러 아이템을 찾아냈고, 70~80년대의 스포츠팀 그래픽 티셔츠를 통해 파스텔 초기 디자인의 윤곽을 잡았다. 칸예 웨스트가 2008년 아메리칸 뮤직 어워즈에서 처음 입고 등장한, 파스텔의 보라색 버시티 재킷은 당시 빈티지 소싱 팀이 찾아낸 가죽 재킷에서 영감을 맏아 만들어졌다.

당시 파스텔에 대한 칸예 웨스트의 야망은 꽤 드높았다. 그는 지금은 사라진 블로그 kanyeuniversecity.com에 패션에 대한 자신의 열망을 다음과 같이 성토했다. “저는 요즘 무대를 제외한 모든 곳에서 패션 디자인과 관련된 일에 집중하고 있습니다. 진심으로 좋은 디자인을 하고 싶어요. 유명세에 집착하는 그런 디자이너가 될 생각은 없습니다.” 실제로 칸예 웨스트는 두 앨범 <808s & 하트브레이크>와 <MBDTF> 사이의 2년 동안 패션과 관련된 작업에 매우 몰두한 것으로 보인다. 루이비통, 나이키와의 협업 스니커 시리즈 역시 이 2년 사이에 출시됐고, 각종 매체와의 인터뷰에서 자신의 패션 디자인에 대한 열망을 빈번하게 토로했다. 그가 벌인 일련의 작업들과 함께, 브랜드 파스텔에 대한 사람들의 관심은 점점 엄청난 수준으로 증폭됐다.

칸예 웨스트의 첫 브랜드 '파스텔'이 세상에 나오지 못한 이유, 이지 외

칸예 웨스트 파스텔의 디자인에 구체적인 도움을 준 이들도 있었다. 바로 당시 인기 스트리트 웨어 브랜드 VNGRD의 설립자 조르지오 디 살보와 파올로 부두아다. 칸예 웨스트는 블로그를 통해 그들의 오랜 팬임을 밝힌 바 있다. 여느 경우와 마찬가지로 VNGRD의 두 대표에게 연락을 취했고, 슈퍼 선글라스의 다니엘 베커맨과 달리 그들은 칸예 웨스트가 누구인지 잘 알고 있었다. 칸예는 VNGRD에게 파스텔의 초기 디자인이 담긴 PDF 파일을 보내, 부족한 점이 무엇인지를 물었다. 이를 토대로 VNGRD의 두 디자이너는 스트리트 웨어에서 영감을 받은 약 20개의 아이템을 만들었다. 또한 그들은 약 31가지 버전의 파스텔 로고를 제작하기도 했다.

칸예 웨스트와 버질 아블로, 돈 C, 의 프로젝트 팀은 LA, 뉴욕, 파리, 등지에 파스텔 제작을 수반하는 스튜디오를 설립하기도 했다. 각종 의류 아이템부터, 스튜디오 인테리어 디자인, 그리고 파스텔과 관련된 별의 별 아트워크까지 칸예 웨스트는 모든 작업에 열정적으로 관여했다. 당시 프로젝트에 참여했던, 익명의 디자이너에 따르면 칸예 웨스트는 가장 먼저 출근해 가장 나중에 떠나는 사람이었다고 한다.

칸예 웨스트의 첫 브랜드 '파스텔'이 세상에 나오지 못한 이유, 이지 외

브랜드 파스텔의 출시는 이제 초읽기의 단계에 다다랐다. 파스텔에 대한 팬들의 관심도 엄청났다. 인터넷에는 파스텔에 대한 온갖 예측이 난무하기도 했다. 당시의 칸예 웨스트나 루페 피아스코 등의 프로젝트 인물이 입고 나온 아이템은 파스텔이다, 아니다를 두고 사람들이 설전을 벌이기도 했다. 하지만 사람들의 가장 큰 관심은 브랜드의 출시 일정에 관한 것이었다. 이에 칸예 웨스트는 자신의 블로그에 ‘2010년 1월부터 온라인을 통해 일부 아이템을 공개할 예정’이라고 말했다. 파스텔의 출시에 대한 윤곽이 확실히 드러나는 듯 했다. 3년간의 긴 작업, 그리고 약속된 날짜가 도래했다.

결론부터 말하자면, 파스텔은 세상에 나오지 못했다. 출시 예정일, 뉴욕 매거진 <더 컷>은 ‘칸예 웨스트의 파스텔은 결코 입을 수 없는 옷이 될 것’이라고 적었다. 수많은 패션 소식 매체가 파스텔의 출시 보류 소식에 대해 다뤘다. 2009년 가을 ‘MTV’ 뮤직 비디오 어워즈에서 벌어진, 테일러 스위프트를 향한 칸예 웨스트의 기행 사건이 시발점이 됐다. 이후 칸예는 각종 미디어에서 종적을 감췄다. 예정돼 있던 레이디 가가와의 투어와 대부분의 일정을 취소했다. 파스텔과 관련된 모든 작업 역시 해산의 수순을 거쳤다. LA의 스튜디오는 문들 닫았고, 뉴욕 패션 위크 기간 오픈 예정이었던 최초의 파스텔 스토어와 이벤트 역시 무산됐다. 파스텔의 홈페이지에는 로고만이 덩그러니 남게 됐다.

산처럼 쌓인 재고만큼이나 또다른 문제가 존재했다. 바로 파스텔을 위해 맺은 수많은 협력관계들이었다. 하지만 칸예는 사람들의 시선에서 사라졌고, 그에게 직 간접적으로 도움을 줬던 이들은 칸예에게 아무 말도 들을 수 없었다. 레트로슈퍼퓨처의 다니엘과 VNGRD의 디 살보와 부두아처럼, 파스텔과 공식적인 계약을 맺지 않은 모든 이들은 칸예로부터 한 푼도 받을 수 없었다. “우리는 이 프로젝트에 엄청난 노력을 기울였지만, 돈이나 영광 같은 건 일절 얻지 못했어요.”  VNGRD의 두 대표는 말했다.

칸예 웨스트의 첫 브랜드 '파스텔'이 세상에 나오지 못한 이유, 이지 외

칸에 웨스트가 파스텔의 런칭을 포기한 건 ’MTV’ 뮤직 비디오 어워즈의 사건 때문만은 아니라고 한다. 레트로슈퍼퓨처의 사이먼은 당시의 칸예 웨스트가 너무 다양하고 방대한 일을 다수의 사람과 동시다발적으로 진행하는 데 부침이 있었을 거라고 추측했다. “그의 주요 작업은 사실 음악이에요. 의류 사업과는 또 다른 분야죠. 여러 어려움이 있었을 거예요. 비록 한 푼의 보수도 받지 못했지만 우리는 칸예와 작업한 것을 후회하지는 않아요. 덕분에 우리의 아카이브에 넣을 엄청난 선글라스가 하나 생겼죠.” 익명을 요구한 한 파스텔 프로젝트의 관계자는 당시의 칸예에게는 사업적 수완이 없었다고 비난했다. “그의 브랜드는 칸예 웨스트의 패션에 대한 일종의 실험 무대 같은 거였죠. 애초에 수입을 목적으로 한 비즈니스가 아니었어요. 한가지 예로, 2009년 칸예는 과의 협업에 엄청난 관심을 보였는데 갭과 칸예의 의견차가 심해서 결국 무산됐더랬죠. 칸예는 지금까지 갭이 하지 못한 실험적인 시도를 원했는데, 갭은 그걸 받아들이지 못하고 사업적인 태도로 일관했었죠. 칸예는 그런 사람이었어요.” 또한 그맘때 쯤 발생한 어머니의 사망 사고 역시 칸예 웨스트가 당시 사업에 집중할 수 없었던 이유로 꼽힌다.

또다른 파스텔의 내부 관계자는 프로젝트 실패의 두 가지 결정적인 이유에 대해 말했다. “일단 현실적인 제약이 많았어요. 브랜드를 원만하게 운영하기 위해서는 꽤 많은 인력이 필요했죠. 우리에게는 여력이 없었어요. 또한 당시의 칸예는 파스텔 프로젝트에서 마음이 떠난 듯이 보였어요. 그는 스트리트 웨어보다는 좀 더 고급한 디자인을 하고 싶어 했죠. 그가 여성복 브랜드를 런칭하고 싶어했던 이유예요. 파스텔의 작업을 거치면서 그는 조금씩 디자이너로서 성장을 거듭했던 것 같아요. 그러니까 파스텔은 패션 디자이너 칸예 웨스트에 있어 일종의 대학교 수업이었던 셈이죠.” 실제로 칸예는 2011년 파리 패션위크를 통해 자신의 여성복 컬렉션인 ‘칸예 웨스트’를 발표했다. 결과는 비교적 성공적이었고, 칸예 웨스트는 2013년 아페쎄와의 협업을 통해 디자이너로서의 확실한 입지를 굳히게 된다.

칸예 웨스트의 첫 브랜드 '파스텔'이 세상에 나오지 못한 이유, 이지 외

2015년 2월 칸예 웨스트는 자신의 가장 거대한 패션 사업을 시작한다. 바로 버질 아블로, 돈 C, 제리 로렌조, 그리고 뎀나 바잘리아와 함께한 아디다스 이지 시즌 1 컬렉션. 이지의 스니커는 공개와 함께 매진을 기록했고, 의류의 반응도 나쁘지 않았다. 파스텔의 실패에서 얻은 교훈을 바탕으로 아디다스라는 든든한 비즈니스 후원에 힘입은 성공. 칸예 웨스트는 이지를 통해 비로소 자신을 온전한 패션 디자이너로 여길 수 있게 됐다고 고백했다. 이지 시즌 2에 이르러서 아디다스는 스니커를 제외한 이지 컬렉션의 후원을 끊었다. 그러니까 시즌 2 이후의 이지는 온전히 칸예 웨스트가 일구는 브랜드인 셈이다. 그리고 이지의 성공은 지금까지 이어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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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트로슈퍼퓨처의 다니엘 베커맨은 다시 당시 칸예 웨스트와 이야기를 나눴던 순간을 회상했다. “칸예 웨스트는 내가 만나왔던 여러 사람 중 가장 부지런하게 움직이는 사람입니다. 지금까지 그가 해 온 여러가지 일과 성공을 보면 알 수 있죠. 믿을 수 없는 성과예요. 칸예가 무언가 이루려고 하는 것이 있다면, 그것은 분명 이루어질 것입니다.” 다니엘은 첫 만남 당시 칸예 웨스트에게서 한 줄기 빛을 발견했다고 고백했다. 그리고 그 빛이 발하는 걸 지금 계속해서 목격하고 있다고 말했다. 그는 덧붙였다. “만약 선글라스를 다시 한 번 만들 생각이 있다면, 언제든 연락주세요. 번호는 이미 알고 있잖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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