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9 FW 런던 남성 패션위크 베스트 컬렉션 6
키코 코스타디노브의 다음 아식스 협업은 어떤 모습?
2019 가을, 겨울 런던 패션 위크는 막을 내렸고, 몇몇 브랜드는 강렬한 여운을 남겼다. 파리아 파르자네라는 재능 있는 디자이너가 이번 런던 패션위크를 통해 높이 부상했다. 반면, 큰 기대를 모았던 브랜드들은 실망스러운 모습을 보였다. 물론 어 콜드 월 같은 예외도 있다. 사무엘 로스는 시대 정신을 담은 컬렉션을 선보이며, 패션이 예술로서 수행해야 할 이상적인 역할까지 담당했다. 키코 코스타디노브부터 리암 호지스, 찰스 제프리까지. 2019 가을, 겨울 런던 패션위크에서 이름을 아로새긴 여섯 가지 브랜드는 다음과 같다.
어 콜드 월
“BIRTH.ORGAN.SYNTH.” 컬렉션은 사무엘 로스의 손에서 탄생한 설치 예술품 같았다. 주제는 정치적 혼란과 세계 이주민 위기. 민족주의적 무지와 집단적 개인으로 인한 맹목 등, 우리 문화의 마지막 세기를 지배해온 감정들을 패션으로 풀어냈다. 컬렉션은 그 자체로 우리 시대의 온도와 색을 보여주는 한 폭의 그림. 불확실의 시대에서 우리에게 보이는 것과 들려오는 것, 그리고 도래해 올 무엇에 대한 두려움을 포착하고, 르네상스 그림을 재해석한 기법으로 혼돈의 세계를 비유했다. 이번 쇼를 위해 런던 동부에 위치한 두 개의 물탱크가 런웨이로 탈바꿈되었다. 행위 예술가들이 물이 가득 찬 울타리를 뚫고 들어가는 모습이 연출되었는데, 이는 영국 해협을 가로지르는 망명 이주민들의 모습에서 영감을 받은 것이다. 이들을 향해 짖어대는 로트와일러의 사나운 울음소리가 더해져 시대의 카오스를 재현했다.
파리아 파르자네
기능적 낭만주의는 지금 패션 트렌드를 말할 때 빼먹을 수 없는 거센 흐름이 됐다. 중동아시아에 대한 편견을 깨트리고자, 에스닉 무드로 무장한 스트리트웨어를 선보이며 지난 2019 봄, 여름 런던 컬렉션에 뜨거운 모래바람을 일으킨 파리아 파르자네가 이번 시즌에는, 디지털 사막을 부유하는 젊은 유목민을 런웨이로 끌어들였다. 뒷골목처럼 꾸민 스테이지에서 돌연 등장하는 이란의 젊은 소년 소녀, 힘차게 울리는 스마트폰을 들고 등장한 이들은 여느 젊은이들과 마찬가지로 사진과 비디오를 주고 받으며 SNS와 런웨이를 넘나들었다. 버킷햇과 사파리 재킷, 워크 셔츠로 가득한 봄, 여름 시즌이 현재였다면, PVC 소재 위에 덧댄 이란 전통의 패턴이 돋보이는 파리아 파르자네의 이번 컬렉션은 미래에 가깝다. 전통 페이즐리 패턴으로 만든 교유의 협업 컨버스 척 테일러 역시 이번 2019 가을, 겨울 컬렉션에도 빠지지 않고 등장했다.
크레이그 그린
2019년 가을과 겨울, 크레이그 그린은 지난 피티 워모를 통해 선보인 워크웨어에 대한 사랑을 계속해서 펼쳐나갔다. 그는 본 컬렉션의 개념을 설명할 주요 캐릭터로 무지개 색의 반투명 플라스틱 옷을 입은 모델을 내세웠다. 크레이그 그린이 이들을 통해 표현하고자 하는 건 인간 감정의 연약함. 그는 유리 옷을 입은 사람을 떠올리며 이같은 코스튬을 지었다고 말했다. 컬렉션의 또다른 구성은 구멍 뚫린 카르판, 앞 뒷 판을 이어 붙인 레인코트, 반투명 소재의 워크 슈트 등 여러가지 양식이 한 데 어우러진 아이템이 주를 이뤘다. “이색 문화의 충돌” 크레이그 그린은 자신의 2019 가을, 겨울 컬렉션을 이렇게 표현했다.
키코 코스타디노브
예서를 서울의대에 보내는 데에 한 치의 오차도 없는 <SKY 캐슬>의 김주영처럼, 우아한 실용주의를 구현하기 위한 키코 코스타디노브의 설계는 늘 날카롭고 정확하다. 이제 막 데뷔한 지 4년 차인 그가 런던 남성 패션위크의 헤드라이너가 된 것도 바로 이러한 이유에서다. 이번 시즌, 코스타디노브는 1960년대 스릴러 영화인 <미드나잇 레이스>를 현대로 불러들였다. ‘도리스 데이가 연기한 킷 프레스턴을 옷으로 표현하면 어떤 형태일까?’ ‘영화 속 의상을 제작한 전설적인 의상 디자이너 아이린 렌츠가 남성복을 디자인한다면?’ 그는 이러한 물음에 대한 답을 기하학적 실루엣과 패턴으로 정의내렸다. 여러 종류의 스트라이프, 둥근 코쿤 세이프, 팔목을 타고 흐르는 지퍼와 단추, 움직임에 따라 변모하는 드레이프, 여성성과 범죄학을 동시에 연상케 하는 아식스 협업 장갑, 일본의 헤어 아티스트 ‘카모’와의 호흡으로 완성한 가발 장식. 영화 속 극도의 불안감과 히스테릭한 감정선을 이토록 현대적이고 정제된 방식으로 표현한 그의 독창력은 인정받아야 마땅하다.
리암 호지스
휘황찬란한 연출과 대형 브랜드의 런웨이 쇼가 대거 빠졌음에도 불구하고 런던 남성 패션위크가 여전히 흥미로운 건 리암 호지스의 공도 크다. 이유는 간단하다. 밀레니얼 세대의 감성과 취향, 그러니까 트렌드를 정확하게 관통하는 컬렉션을 선보이기 때문이다. 리암 호지스의 2019 가을, 겨울 컬렉션 제목은 ‘4차원에서의 변화’. 해커를 다룬 1990년대 영화, Y2K 등 뉴 밀레니엄을 맞은 당시의 화두인 컴퓨터 대란을 재료 삼아 새로운 디스토피아적 비전을 선보였다. “한국의 예술가 이불씨의 ‘바이오펑크’ 프린트, 기하학적 형태의 트랙 슈트, 엘레쎄와 함께 작업한 타이다이 아이템, 스키복 등 다양한 요소를 리암 호지스의 방식으로 묶어 놓았습니다. 이는 새로운 물결의 발견을 위한 시도인 동시에 현재 상황과 사고방식을 표현한 것입니다. 정통성은 구식이며, 정체성은 변할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더는 현실과 온라인 세계를 구분하는 건 무의미해요. 온라인 안에서의 삶은 실제이기 때문입니다. 재미를 경험하고, 새로운 것을 발견하며 자기 이해를 위한 도전을 위해서는 지속적인 시도와 실패가 있어야 합니다.” 도전적 정신과 시대를 정의하는 트렌드의 크로스오버. 이 컬렉션을 보고 나니 젊은 세대가 리암 호지스에 반응하는 건 어쩌면 당연한 ‘본능’이라는 생각이 스쳤다.
찰스 제프리 러버보이
템스강의 버려진 산업 발전소에서 컬렉션을 선보인 찰스 제프리. 그의 2019 가을, 겨울 ‘러버보이’ 라인은 밝고 명랑한 색감과는 달리 다소 근엄한 메시지를 전달했다. 윌리엄 골딩의 1954년도 소설책 <파리 대왕>, 앤디 워홀의 팩토리, 그리고 <피터팬>을 모티브 삼아 트랜스젠더와 퀴어 커뮤니티에 헌정을 표하는 동시, 미국과 영국의 차별적인 성소수자 인권 제도에 손가락질했다. 알록달록한 패치워크, 베레모 액세서리 등으로 프레피와 펑크 감성을 골고루 섞어 반항적이면서도 감성적인 라인업을 연출했다. 1920년대 베를린 클럽에서 영감을 받은 타르탄 체크 슈트, 연극의 캐릭터를 연상시키는 피카소 메이크업, 그리고 제프리가 학생 시절 디올에서 인턴한 영향으로 제작한 볼 가운에서 그만의 실험적인 정신을 엿볼 수 있다. 에디터가 그의 컬렉션을 최고 중 하나로 꼽은 가장 큰 이유는 곰의 발톱 같은 스터드 부츠. 앞으로 찰스 제프리 러버보이가 선보일 추후 컬렉션들이 기대될 따름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