X세대가 '요즘 애들'에게 추천하는 '뉴트로' 영화
태어나기도 전에 별이 된 장국영과 홍콩 영화에 열광한다.
New-tro
“당신의 추억은 나의 오늘보다 새롭다”
태어나기도 전에 별이 된 장국영과 홍콩 영화에 열광한다. 을지로에는 오래된 건물을 개조한 가게가 넘쳐난다. 밥은 50년 넘은 노포에서, 커피는 ‘서울우유’ 로고 컵을 내어주는 다방식 카페에서. 새것 티가 나는 건 어쩐지 멋지지가 않으니까. 이렇듯 새로운(New) 복고(Retro), 뉴트로(New-tro)는 하나의 현상이 됐다.
낯설수록 설레고, 몰라서 신선하며, 경험하지 못한 시간에서 온 것이기에 더욱 매력적인 무엇. 밀레니얼 세대에게 새로움이란 그런 것이다. 각계각층에서 활약하는 70-80년대생 ‘X세대’ 6인이 꼽았다. 뉴트로에 매료된 10~20대에게 추천하는 요즘 옛날 영화.
개코,
뮤지션
<백 투더 퓨쳐 2>(1989)
자동차 들로리언이 미래와 과거를 넘나들며 시간 여행을 한다. 로버트 저메키스 감독의 상상력과 갈매기가 날갯짓하듯 양쪽 문이 열리는 슈퍼카의 멋진 비주얼은 어린 시절 나에게 큰 충격을 줬다. 영화에서 그려졌던 미래, 그리고 그 미래와 닮은 지금의 모습을 비교해보면 감독과 제작진의 통찰력에 감탄하게 된다. 들로리언(Delorean dmc-12)이 나의 드림카가 되고 나이키 운동화를 더욱 사랑하게 된 것도 이 영화 덕이 아닐까 생각한다. 다이나믹 듀오 7집에 ‘슛 골인’이라는 노래 가사에도 영화 속 주인공들의 이름이 등장한다.
주성철,
<씨네21> 편집장
<아비정전>(1990)
15년 전 우리 곁을 떠난 배우 장국영이 흰 러닝셔츠를 걸치고 맘보춤을 추던 <아비정전>만큼 영화, 드라마, CF의 경계를 넘어 끊임없이 반복되는 청춘의 이미지가 있을까. 지금의 뉴트로 세대가 그에 매료된 것은, 60년대 배경의 90년대 영화 <아비정전>을 통해 60년대의 레트로와 만나는 것이다. 아비(장국영)가 거울을 보며 빗질하는 이미지는 엘비스 플레슬리에게서 왔고, 그가 친어머니를 만나지 못한 채 돌아 나오던 뒷모습은 아카데미 작품상 수상작인 흑인 게이 영화 <문라이트>(2017)로 이어졌다. 그렇게 우리의 레트로는 시공간을 초월해 언제나 새로워지고 있다.
정욱준,
Juun.J 크리에이티브 디렉터 / 삼성물산 상무
<페임>(1980)
알란 파커 감독의 1980년 원작을 시작으로 2009년의 리메이크작 그리고 뮤지컬로 제작되며 유명세를 이어가고 있는 <페임>. 하지만 원작이 지닌 매력과 의미는 내게 각별하다. 이 영화는 유년 시절의 나에게 패션에 대한 열망을 갖게 해준 아주 고맙고도 뜻깊은 영화이기 때문이다. 80년대 패션이 ‘레트로’라는 이름으로 다시금 재조명되면서, 그 시절의 과감하고 현란한 패션, 뮤직, 댄스 등이 다시 주목을 받고 있다. <페임>은 가히 그 열풍의 시초라 해도 과언이 아니라고 생각한다. 최근에는 ‘미드’ <포즈>를 통해 그 편린을 찾아볼 수 있다.
이윤호,
신도시 / 우주만물
<메이드 인 홍콩>(1997)
나의 고교 시절 1997년은 모두가 스톰과 텍스 리버스, 보이런던과 안전지대, 배드보이와 스포트 리플레이에 열광하던 시대였다. 야간자율학습을 마치면 ‘영화마을’ 비디오 대여점에 들러 닥치는 대로 테이프를 빌렸고, 자취방 바닥에 덩그러니 놓인 VHS 플레이어로 영화를 봤다. <나쁜 영화>부터 <초록물고기> <비트> <해피투게더> <도베르만> <트레인스포팅> <케미컬제너레이션> <롤라런> <검모> <퍼니 게임>까지. 보석 같은 작품들이 그야말로 쏟아져 나오던 시절을 회상하면서, 나는 프루트 첸 감독의 이 영화가 가장 먼저 떠올랐다.
표기식,
포토그래퍼
<중경삼림>(1994)
디지털 영상 제작의 흐름이 막 태동하던 시절, 핸드헬드 기법으로 촬영하고 프레임을 늘어뜨린 <중경삼림>의 영상은 내겐 너무나 매력적으로 다가왔다. 지금 당장이라도 카메라를 들고 나가면 나도 그런 장면들을 찍어낼 수 있을 것만 같았고, 누구에게나 ’파인애플을 좋아하는지’, ‘어디든 당신이 좋은 곳으로 가자’ 같은 뜬금없는 대화를 건네고 싶었다. “사랑에도 유통기한이 있다면 나의 사랑은 만년으로 하고 싶다” 이 대사에 사로잡혔던 나는 그때와 조금 달라졌지만, 여전히 중경삼림의 OST인 ‘마마스 앤드 파파스’의 ‘California Dreaming’을 즐겨 듣는다. 그런데 만년까지는 얼마나 남은 걸까?
장승호,
<하입비스트> 시니어 에디터
<주유소 습격사건>(1999)
2월 20일, <극한직업>(2019)의 1,500만 명의 관객동원 신기록 행진은 기억 속 1999년의 <주유소 습격사건> 신드롬을 소환했다. 영화의 유행어를 빌어 말하자면 지금까지 이런 영화는 없었다지만, 유사한 감각을 깨우는 영화는 분명 존재했다. 허를 찌르는 웃음, 막무가내식 전개, 만화 같은 설정의 캐릭터 등 <극한직업>의 여러 부분은 <주유소 습격사건>과 일견 닮았다. ‘야 진짜 골때리는 영화가 하나 나왔어.’ 당시 <주유소 습격사건> 또한 개봉과 동시에 엄청난 화제를 모으며 하나의 신드롬을 낳기도 했다는 면에서도 두 영화는 유사하다. 느닷없이 큰절을 하는 류승룡의 애환은, 사장도 예외 없이 ‘대가리를 박아’야만 했던 박영규의 비굴과 포개진다. ‘이런 코미디가 분명 한국에도 존재했었지’ 영화의 언어에도 패러다임이 존재한다면 <주유소 습격사건>은 20세기 한국 코미디 영화의 ‘레트로’로 길이 남을 영화 같다. 과연 ‘요즘 애들’도 이걸 보며 웃을까? <극한직업> 같은 영화가 자주 나왔으면 좋겠다고 푸념하는 친구들에게 꼭 한번 권유하고 싶은, <주유소 습격사건>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