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드잔잔 인터뷰 - 에이셉 몹이 지목한 한국 일러스트레이터

“저는 그림도 언어의 한 방식이라고 생각해요.”

미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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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년에 한 번, 에이셉 몹 멤버 전원이 한자리에 모이는 날이 있다. 바로 2015년 세상을 떠난 에이셉 얌스의 추모 공연이 있는 얌스데이다. 그리고 올해 1, 2020 얌스데이에서 유독 화제가 된 티셔츠가 있다. 에이셉 얌스, 맥 밀러, XXX텐타시온, 닙시 허슬 등 세상을 떠난 뮤지션들이 한자리에 모인 그림이 새겨진 작품 <Legends>가 새겨졌기 때문. 더 놀라운 것은 이 작품을 그린 장본인이 다름 아닌 한국 일러스트레이터라는 사실이다. 아티스트의 이름은 무드잔잔. 최근 서울 합정동에 새롭게 둥지를 튼 그의 작업실로 찾아가 작품에 관한 질문들을 던지고 왔다.

인스타그램으로만 보면 해외 아티스트인 줄 아는 분들도 많을 것 같아요. ‘무드잔잔’은 영어 이름인가요?

반반이에요. 원래는 제 성이 문 씨여서 ‘문문’으로 활동했어요. 그러다 이름을 바꿔야겠다 싶던 차에 자주 가는 빈티지숍 사장님이 ‘잔잔’이라는 이름을 추천하더고요. 너는 기분이 좋을 때나 나쁠 때나 늘 잔잔한 편이니까 잘 어울리겠다면서요. 그래서 ‘잔잔’이라는 의성어에 분위기를 뜻하는 ‘무드’를 더해서 지금 이름을 갖게 됐죠.

에이셉 라키, 드레이크, 릴 야티 등등. 이런 굵직한 해외 아티스트들과는 어떻게 연이 닿게 됐어요?

시작은 인스타그램이었어요. 해외 인스타그램에 덕질 계정이 많잖아요. <하입비스트>도 제게 그런 매체 중 하나였고요. 7년 전쯤이었나? 지금은 후이스셀러브리티바이(@whoiscelebrityvice)라는 이름으로 바뀐 계정이 있어요. 버질 아블로, 무라카미 다카시, 에이셉 바리 같은 유명 크리에이터들이 팔로우 하고 있었는데, 그 채널에 제 그림이 소개된 게 계기가 됐죠. 가장 먼저 에이셉 바리가 연락이 왔고, 그 뒤로 버하나한테도 연락이 왔어요.

그중에서도 가장 기억나는 피드백이 있나요?

푸샤 티 그림을 그렸는데 푸샤 티가 댓글을 달았고 그 뒤로 DM 몇 번 주고받은 적 있어요. 지금은 게시물을 지웠는데 트래비스 스콧이 좋아요를 눌렀던 적이 있고요. 캑터스 플랜트 플리 마켓의 신시아 루, 에이셉 앤트와 에이셉 일즈, XO 레이블의 수장 캐쉬한테서 팔로우가 왔던 것도 신기했어요. 이 밖에도 토리 레인즈, 메트로 부민, 거너, 인터넷 머니한테서도 피드백이 왔었죠.

보통 음악을 좋아하면 래퍼나 프로듀서가 되고 싶어 할 텐데, 계속 그림을 그리게 된 이유가 있을까요?

저 원래 랩도 했었어요.(웃음) 중학생 때 처음 자작곡 만들었고 힙합 플레이야, 힙합 엘이에 올리기도 했어요. 공연도 했고요. 그런데 박자 타는 게 너무 힘든 거예요. ‘박자를 잘 타야지’ 하고 타면 되게 멋없는 거 아시죠? 음악에는 재능이 없다는 걸 빨리 인정하고 계속 해오던 그림에 완전히 집중하기로 했죠.

그때 랩네임 공개해도 되나요?

아뇨. 그건 비밀이에요.(웃음)

아무래도 무드잔잔의 이름을 알린 데는 얌스데이가 가장 결정적이었던 것 같아요.

그렇죠. 2019년 얌스데이를 앞두고 에이셉 바리한테 에이셉 얌스를 스톤콜드랑 같이 그려달라는 제안을 받았어요. 그런데 정말 신기한 게 그 연락을 받기 바로 전날 제가 스톤콜드 빈티지 티셔츠를 샀었거든요. 억지처럼 들릴지는 몰라도 당시에는 심상치가 않다는 생각이 들었죠. 그 뒤로 좋은 인연들이 많이 생겼어요.

여태껏 그린 작품 중에도 가장 마음에 드는 작품이 있다면요?

아무래도 <Legends>죠. 무든잔잔이라는 이름을 가장 많이 알려준 작품이니까. 2020년에도 바리가 또 연락이 왔는데, 이번에는 죽은 자기 친구들을 그려달라고 했어요. 그래서 나온 게<Legends>라는 작품이고, 그 작품이 새겨진 티셔츠를 에이셉 멤버들이 입고 얌스데이 무대에 올랐어요.

워낙 오랜 힙합 팬이니 <Legends>를 그릴 때 심정도 남달랐을 것 같아요.

사실 그렇진 않았어요. 워낙 급하게 그렸거든요. 제가 징크스가 하나 있어요. 그림 속 분위기에 너무 몰입해버리면 정작 그 작품이 정말 부끄러워지더라고요. 영화감독이 영화를 찍는데 펑펑 울면서 찍지는 않잖아요. 그림에 대한 평가는 다른 사람들의 몫이고 저는 최대한 객관적으로 작업에 임하려고 해요.

집안을 보니 영감을 주는 영화감독이나 만화가도 있을 것 같은데요.

쿠엔틴 타란티노는 언제나 제 원픽 아티스트에요. 데이빗 린치도 정말 좋아해요. 오컬트의 아버지잖아요. 제가 타일러 더 크리에이터를 영화 <이레이져 헤드>에 녹여서 그린 작품이 있어요. 타일러의 음악적인 색채와 데이빗 린치의 기괴함이 잘 어울릴 것 같았거든요. 비슷한 방식으로 플레이보이 카르티를 <스카페이스> 포스터 느낌으로 그린 작품도 있고요. 언뜻 보면 무질서해 보일 수 있지만, 아는 사람들 눈에는 질서가 보이겠죠.

이스터에그를 숨겨놓는 거네요.

맞아요. 작품 속 주인공은 힙합 아티스트인데 그 안에 잘 살펴보면 <오즈의 마법사>, <트루먼 쇼>, <101마리 강아지>, <부르스 올마이티> 등 다양한 콘텐츠들이 녹아있어요. 숨은그림찾기한다는 생각으로 보시면 더 재미있을 거에요.

작업할 때 ‘나는 이것만큼은 꼭 지킨다’ 하는 게 있나요?

작품에 포함된 소스들을 정확하게 이해해야 한다고 생각해요. ‘아는 척’, ‘좋아하는 척’하는 거 말고요. 그렇다면 그건 특정 문화에 대한 애정이 아니라 그 소스를 작품으로 소비해야겠다는 욕심이 앞선 거예요. 작가 스스로가 작품에 대한 이해도가 높을 때 저절로 소비자들에게 설득이 된다고 생각해요.

가장 보람을 느낄 때는 언제에요?

입금 들어올 때죠.(웃음) 전 돈을 쓰는 것도 작업의 연장선이라고 생각해요. 아티스트의 라이프스타일로 팬덤을 구축할 수 있다면 그것만큼 멋진 일도 없다고 생각해요. 저 역시 그렇게 되고 싶고요.

협업해보고 싶은 아티스트가 있나요?

프랭크 오션이요. 프랭크 오션은 제가 지금 동시대에 태어나서 다행이라고 생각할 정도예요. 한때 제 꿈이 크리스마스에 프랭크 오션이랑 같이 트리를 만드는 거였거든요. WWE도 너무 좋아해서 같이 뭔가 해보면 재미있을 것 같아요. 국내 아티스트 중에서는 검정치마, 김일두 아저씨랑도 같이 작업해보고 싶어요.

티셔츠 판매를 사고 싶어 하는 분들이 많을 것 같아요. 국내에서도 구입할 수 있게 될까요?

생각 중이에요. <Legends> 티셔츠는 애초에 얌스데이 기념으로 만든 거라 프렌즈 앤 패밀리로만 제작했고 저도 판매할 생각이 없었어요. 그런데 언제부턴가 가짜가 너무 많이 나오는 거예요. 하나하나 고소할 수도 없고 해서 차라리 내가 만들어야겠다 싶었죠. 참고로 트래비스 스콧 시리즈가 굿즈로 곧 나올 예정이니 기대해 주셔도 좋을 것 같습니다.

한국에서, 그리고 외국에서 어떤 아티스트로 인식되었으면 하는지?

컬렉터요. 사실 제가 뭘 사 모으고 그리고 하는 것도 다 컬렉팅이잖아요. 쉽게 말하자면 덕질인거죠. 한 번뿐인 삶을 살면서 삶의 질을 가장 높이면서 행복하게 사는 사람이 컬렉터라고 생각해요.

무드잔잔의 작품을 보는 사람들이 이것만큼은 꼭 느꼈으면 하는 게 있다면요?

제 작품을 보고 그림 속 아티스트가 궁금해졌으면 좋겠어요. 제 작품이 매개체가 돼서 자신에게 생소한 문화에 빠져들 수 있다면 그건 너무나 근사한 일이죠. 문화를 풍요롭게 만들겠다는 건 너무 거창하지만, 적어도 계속하다 보면 제가 좋아하는 문화를 폭넓게 즐길 수 있도록 돕는 건 할 수 있을 것 같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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