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treetsnaps: 뱃사공
“대한민국에서 저보다 옷 잘 입는 래퍼는 거의 없다고 봐야죠.”


#Streetsnaps: 뱃사공
“대한민국에서 저보다 옷 잘 입는 래퍼는 거의 없다고 봐야죠.”
올해로 10년째, 첫 믹스테이프 <출항> 이후 저만의 속도로 부지런히 노를 저어온 뱃사공은 어느덧 한국 힙합 신에서 자신만의 고유한 영역을 차지한 아티스트가 됐다. 그리고 지난 12월, 그는 자신의 왼쪽 팔뚝에 새겨진 타투와 똑같의 이름의 정규 앨범 <777>을 발표했다. 한국대중음악상을 수상하며 팬들을 놀라게 했던 정규 2집 <탕아>로부터 2년 만의 새 앨범. 두 앨범 사이의 공백 동안 뱃사공은 어떻게 달라졌을까? 그가 반기를 들던 <쇼미더머니>에 관한 생각은 바뀌었을까? 빈티지 마니아로 소문난 그의 옷장은 어떤 모습일까? 서울 마포구의 한 타투숍에서 뱃사공을 만나 이러한 질문을 건넸다.
2년 만의 정규 앨범 <777>으로 돌아왔어요. 정규 2집 <탕아>를 냈던 때의 뱃사공과 비교하면 지금은 어떤가요?
사람으로서 저는 비슷한 것 같아요. 음악적으로는 감흥이 조금 떨어졌고요. 뭘 하면 다시 음악이 재미있을까 고민하면서 이번 앨범을 만들게 됐어요.
감흥이 사라진 건 단순히 시간 탓이었을까요? 아니면 슬럼프?
같은 일을 오래 하다 보면 누구나 싫증을 느낄 때가 있잖아요. 저는 원체 모든 일에 싫증을 잘 느끼는 편인데 음악에도 그게 찾아온 것 같아요. 그렇다고 작업을 안 하지는 않았어요. 재미있게 못 한 거지. 그래서 이번 앨범을 만들 때는 일부러 한 가지 아이디어에 갇혀 있지 않고 의식의 흐름대로 만들려고 했어요. 이전까지는 밴드 사운드 위주의 음악을 했다면, 제가 처음 음악 시작할 때 영향받았던 음악을 다시 찾아듣기도 했고요.
‘뱃사공’의 가사는 스토리텔링에 대한 호평이 많습니다. 이번 앨범 <777>에서 가장 하고 싶었던 이야기가 있다면요?
그게 없는 게 특징인 것 같아요. 어떤 메시지도 남기고 싶지 않았거든요. 마지막 트랙이 끝났을 때 ‘개소리지만 쿨하네’하는 느낌만 주고 싶었죠. 그런데 절반만 성공한 것 같아요. <탕아>를 만들 때만 하더라도 앨범에 제 인생을 좀 더 세게 녹여내야 된다는 일종의 강박이 있었거든요. 항상 가사 쓰던 경로가 있다 보니 앨범 전체를 아우르는 주제가 없으면 작업이 힘들더라고요. 마지막 곡 ‘GRIND’에는 제 인생의 서사가 들어갔는데 원래는 이 곡도 빼고 싶었어요. 하지만 곡이 마음에 들어서 ‘뻔하지만 뻔하게 한방 먹이고 끝내자’ 싶어서 넣었죠.
총 12곡이 수록됐어요. 이 중에서 유독 마음에 드는 곡이 있을까요?
저는 ‘LET IT FLOW’를 제일 좋아해요. 처음에 작곡은 제가 하고 곧장 피제이 형한테 편곡을 부탁했어요. 그런데 형이 한참 듣더니 원곡의 무드가 좋은 것 같다고 하더라고요. 그래서 결국 처음 버전 그대로 쓰게 됐죠. 제 노래들에는 한국적인 ‘뽕’이 있잖아요. 저는 그거 별로 안 좋아하거든요. 팬들은 좋아할 수도 있는데 저는 굉장히 덜어내고 싶었어요. 이 곡에서 그런 색깔을 가장 많이 덜어냈다고 생각해요. 가사보다는 비트가 마음에 드는 곡이에요.
이번 앨범도 피처링 진이 화려한데. 앞으로 꼭 협업해보고 싶은 아티스트가 있다면요?
원래 ‘RHYME ON MY MIND’에 김심야 님이 피처링을 해주기로 했었는데 병역이 겹치면서 아쉽게 취소가 됐어요. 다음에 기회가 된다면 꼭 같이 해보고 싶고. 제가 닿을 수는 없지만 마스타 우 형님도 너무 좋아해서 함께 작업한다면 영광일 것 같아요. 그리고 앞으로 영원히 불가능해졌지만 원타임의 테디. 사실 <777>에 가장 큰 영감이 된 게 원타임이거든요. 이제는 랩을 그만두셨으니 피처링 부탁드릴 일은 없을 테고 제 마음속 바람으로만 있죠.
원타임은 조금 의외인데요?
왜 우리 중학교 때는 ‘원타임은 가짜, 가리온은 진짜’ 같은 생각이 있었잖아요. 뭔지 알죠? 그런데 지금에 와서 다시 들어보니까 원타임 노래가 훨씬 와닿는 거예요. 물론 그렇다고 가리온이 가짜라는 건 아니지만.(웃음) 지금 들어도 하나도 안 촌스럽고 좋구나 싶더라고요. ‘RHYME ON MY MIND’, ‘HANDS ON MY DICK’ 두 곡은 특히 원타임 바이브를 녹여보려 했던 트랙이에요.
오늘 입은 옷들에 대해서도 설명해 주세요.
비니는 하키스틱 찹. 이번 앨범 수록곡이랑 이름이 똑같은 브랜드인데 샘플 나와서 쓰고 왔고요. 셔츠는 굿넥이라고 연남동에서 맨유 팬 전용 펍 운영하는 친구한테 선물 받은 건데 오늘 처음 입어 봤어요. 카디건은 지금 택 보니까 8디비젼이네요. 바지도 같은 브랜드로 기억하고 신발은 웨스턴 한창 입을 때 샀던 레드윙 부츠에요. 반지는 쿠잔 제품인데 이번 <777> 머천다이즈 목걸이도 여기랑 같이 만들었어요. 시계는 가끔 롤렉스로 오해하시는 분이 있는데 빈티지 세이코예요. 가격은 9만5천 원입니다. 지금 보니까 안 움직이네요.
빈티지 마니아로도 소문이 자자한데. 본인이 봤을 때 ‘나보다 옷 잘 입는다’ 하는 래퍼가 있나요?
거의 없다고 봐야죠. 솔직히 옷은 제가 제일 잘 입거든요. 이 얼굴, 비율에 이 정도 비주얼이면 훌륭하다고 봐줘야죠.
그럼 질문을 바꿔서 ‘뱃사공이 인정한 옷 잘 입는 래퍼 3인’을 꼽는다면?
그래도 굳이 꼽자면 제이통? 옷을 엄청 잘 입는다고 생각하지는 않지만, 뻔하지 않고 자기한테 어울리게 입어서 멋있어요. 다음은 오케이션. 한 번은 직접 물어본 적이 있어요. “이게 너여서 되는 거냐, 아니면 원래 진짜 멋있는 거냐?”하고요. 볼 때마다 의문이긴 한데 멋있으니까 패스. 마지막은 언에듀케이티드 키드요. 언에듀도 그 얼굴에 그 비율을 따져보면 훌륭하다고 생각해요. 2020년대에 트루릴리전을 입는 행위 자체가 멋있는 거죠.
그럼 반대로 ‘스타일링에 도움이 필요하다’ 싶은 3명도 골라본다면요?
이건 또 너무 많은데. 옷을 못 입는 게 그 사람이 멋없다는 이야기는 아니지만 일단 가까이서는 제이호요. 따로 설명할 필요도 없을 것 같아요. 넉살은 키는 작지만 비율이 괜찮아요. 예전에 넉살이 뜨기 전에 뮤직비디오 스타일링을 한번 해준 적이 있는데 바로 멋있더라고요. 마지막으로는, 음. 래퍼는 아니지만 차정원? 카더가든도 옷 못 입어요. 스타일리스트가 옷 한 번 입혀주면 그대로 걸어놨다가 자기 개인 외출할 때 입더라고요. 치트키 쓰는 거죠.
그간 <쇼미더머니(이하 쇼미)>에 관한 생각을 가감 없이 말해 화제가 되곤 했는데. 이번 시즌 보면서 어떤 생각이 들었는지 궁금해요.
이번 시즌은 처음으로 한 회 빼고 본방송으로 다 봤어요. 요즘 집에만 있잖아요. 확실히 무대들이 더 멋있어졌더라고요. 릴보이, 테이크원의 ‘Bad News Cypher vol.2’랑 스윙스의 ‘Upgrade 2020’ 두 무대가 제일 좋았어요.
현시점에서 <쇼미>를 바라보는 개인적인 생각은요?
이 부분에 대해서는 저 스스로에 대해 완벽히 깨달은 게 있어요. 물론 옛날에 <쇼미>를 깠던 건 진심이었어요. 진심이 섞인 캐릭터여서 먹혔다고 생각하고요. 하지만 지금 와서 진짜 냉정하게 돌이켜보면 저도 제 입장을 만든 거더라고요. 게임하기 전에 캐릭터 고르는 것처럼 ‘나는 <쇼미> 까는 쪽을 선택해야겠다’했던 거죠. 기믹이었다는 건 아니지만 그런 마음도 섞였던 게 사실이에요. 마치 가족을 건든 것처럼 굴었던 건 좀 가짜가 아니었을까 싶은? 그게 ‘정말 한국 힙합을 망칠 일인가’, ‘그렇다 한들 나랑 무슨 상관인가’ 하는 생각이에요.
식상한 질문이 됐지만 뱃사공을 <쇼미>에서 보게 될 날도 올까요?
이제는 그걸 단언하지 않으려고요. 제가 저 스스로에게 바라는 점은, 그런 순간이 온다면 욕먹을 걸 눈치 보지 않고 그때 나의 기분, 하고 싶은지 아닌 지에만 집중했으면 좋겠어요. 물론 사람이니까 잴 수도 있지만 안 그랬으면 좋겠어요.
2012년 첫 믹스테이프 <출항>을 냈고 벌써 10년 차 뮤지션이 됐어요. 가장 기억나는 순간이 있을까요?
<출항> 내기 전에도 사실 음악은 혼자 집에서 하고 있었거든요. 그러다 스물여섯 10월쯤에 마지막으로 하던 일을 때려치우고 자전거를 타고 집으로 돌아왔는데, 그때 뭔가 알 수 없는 확신과 좋은 기분이 있었어요. 더 이상 갈팡질팡하지 않고 이 일을 해낼 수 있겠다 하는 확신과 함께 집에 돌아왔을 때 기분이 진짜 좋았어요. 물론 그 기분이 오래가진 않았지만 그 순간만큼은 지금도 또렷해요. 무슨 옷을 입고 있었고, 자전거를 타고 어디서 어디까지 갔는지도 기억날 만큼요.
‘한국 힙합 박사’로 유명하잖아요. 조금 거창하지만 ‘앞으로 한국 힙합에 바란다’ 하는 게 있다면요?
음악을 하면 할수록 힙합 신에 관한 생각은 사라져요. 예전에는 이 문화를 부흥시켜야 한다는 가짜 수호감, 정의감이 있었거든요. 그런데 지금은 각자가 멋있는 걸 하는 게 베스트인 것 같아요. 물론 한쪽에서는 문화를 살리자는 취지의 앨범을 내는데 그런 움직임도 분명 필요하다고 생각해요. 전 <녹색이념> 엄청 좋게 들었거든요. 제가 그들의 이야기에 공감하냐 마냐를 떠나서, 아티스트의 진심이 제대로 와닿아서 좋았어요. 음악에 맞고 틀리고는 없잖아요. 좋은 게 좋은 것 같아요.
마지막으로 <하입비스트> 독자 그리고 뱃사공 팬들에게 하고 싶은 말이 있다면 부탁드려요.
제 인터뷰에서 이런 말을 하게 될 줄은 몰랐지만, 저희 크루의 제이호가 6년 만에 정규 앨범을 냅니다. 거의 조용필이네. 원래 1월에 나왔어야 하는 앨범인데 아버지께 간 이식을 해드리느라 일정이 조금 밀렸어요. 저는 제가 객관적이 사람이라고 생각하거든요? 같은 크루 사람들끼리는 친해서 더 칭찬을 안 하는데, 이번 앨범은 제이호가 제 마음속 래퍼 탑 3라고 느껴질 만큼 굉장한 앨범이에요. 많은 분들이 충분히 기대할 만한 가치가 있는 앨범이라고 생각합니다. 많이 기대해 주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