왜 스테인리스 스틸 시계가 금으로 만든 시계보다 비쌀까?

시계 신에는 소재보다 중요한 것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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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장 비싼 가격에 거래된 손목시계는 금이나 플래티넘으로 제작된 것도, 티끌 하나 없는 다이아몬드나 보석으로 장식된 것도 아니다. 듀얼 다이얼, 20개의 컴플리케이션 플래그십이 탑재된 파텍 필립의 Ref. 6300A-010은 2019년, 2년마다 열리는 자선 경매 이벤트 ‘온리 워치’에서 3천1백만 달러, 한화 약 3백69억2천1백만 원에 낙찰되며 가장 비싼 손목시계 기록을 경신했다.

레퍼런스 넘버의 ‘A’는 ‘Acier’의 이니셜로, 시계가 건축부터 식기류까지 모든 분야에서 사용되는 금속, 스테인리스 스틸로 제작되었음을 의미한다.

가장 비싼 시계는 가장 비싼 소재로 만들어졌을 것으로 생각하기 쉽지만, 시계 세계에는 스테인리스 스틸로 만들어진 시계가 매우 비싼 가격으로 팔린 사례가 많다. 1천7백만 달러, 한화 약 202억 원에 판매된 영화계의 전설 폴 뉴먼이 소유했던 롤렉스 데이토나(해당 모델 열풍의 시작이기도 하다)부터 2016년 1천2백만 달러, 한화 약 1백42억 원에 팔린 파텍 필립 Ref. 1518 등이 그렇다.

스테인리스 스틸 시계가 금시계보다 비싸다는 증거가 더 필요하다면 파텍 필립 5711을 둘러싼 최근의 논란이 좋은 예다. 이 경우 파텍 필립의 결정으로 인하여 공급이 제한되었지만, 스테인리스 스틸 시계가 금시계보다 높은 가격이 거래된다는 논점은 유효하다. 파텍 필립 노틸러스 5711의 리셀 가격은 단종 선언 이후 천문학적 수준으로 솟구쳤다. 리셀 시장에서의 평균 가격은 18kt 골드 5711/1R 전체 모델의 소매가인 5만4천 달러, 6천4백만 원보다 두 배 가까이 높다.

50만 달러, 한화 약 5억9천만 원에 가까운 돈이 경매에서 희귀한 미개봉 노틸러스 5711-1A/014를 위해 지불됐다. 이는 5711/1R 모델 9개에 가까운 돈이지만, 해당 모델 또한 판매가의 3.5배에 리셀되고 있다. 그렇기에 현재로서는 노틸러스 모델을 둘러싼 ‘하입’을 언급할 가치가 있다.

그렇다면 시계 수집가들은 왜 스테인리스 스틸 시계에 열광할까?

그 이유는 시중에서 거래되는 일반적인 물건과 마찬가지로 ‘희소성’ 때문이다. 수요와 공급이 본질적으로 영향을 끼치는 셈이다. 하지만 스테인리스 스틸 시계의 경우 재료가 아닌 시계 그 자체가 희귀하다.

20세기에는 스테인리스 스틸 시계보다 귀금속 시계가 더 비싼 가치를 지녔었다. 귀금속과 보석은 시계 제작에 있어 가장 높은 가치를 가진 재료로, 매우 복잡한 손목시계를 금이나 백금 이외의 다른 것으로 제작된 케이스에 넣는 것은 상상조차 할 수 없는 일이었다.

이 때문에 스테인리스 스틸로 만들어진 퍼페추얼 캘린더나 스플릿-세컨드 크로노그래프, 미닛 리피터, 그랜드 컴플리케이션(컴플리케이션의 조합을 특징으로 가진 손목시계) 등은 특별한 고객의 주문 제작 요청으로 매우 한정된 숫자만이 생산됐다. 고급 시계를 스테인리스 스틸 같은 일상적인 소재로 제작한 이유는 알 수 없지만, 이는 20세기 중반에 부를 과시하기 위함이라기보다는 개인 취향에 따른 것일 가능성이 크다.

예를 들어 앞서 언급된 파텍 필립 Ref. 1518은 최초로 연속 생산된 퍼페추얼 캘린더 크로노그래프로, 1941년부터 1954년까지 13년 동안 구매할 수 있었다. 그사이 제작된 2백81 개의 시계 중 대부분은 옐로 골드로 제작되었으며 60개 미만이 핑크 골드로 만들어졌다. 스테인리스 스틸로 만들어진 것은 단 4개뿐이다. (파텍 필립은 1839년 창립 이후로 지금까지 판매된 모든 시계의 상세 기록을 보관하고 있다)

10개 미만으로 제작된 ‘유니콘 시계’는 매우 희귀하고 인기가 높아 이후에도 시장에 깊은 인상을 남겼다. 이 시계의 후광 효과는 오늘날 컴플리케이션 시계의 생산량이 20세기 전반과 비교해 기하급수적으로 증가했음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스테인리스 스틸 시계에 관한 소비자 취향과 시장 가격에 영향을 끼치고 있다.

하지만 이러한 정보가 브랜드의 기록 보관소에서 꺼내어지기까지는 수십 년이 걸렸다. 시계 수집가들은 1980년대 초중반까지 빈티지 손목시계보다는 회중시계 수집에 더 열을 쏟았기 때문이다.

경매 회사 앤티쿼룸의 설립자, 오스발도 파트리찌와 파텍 필립의 전 이사이자 파텍 필립 뮤지엄 컬렉션 건설을 도운 앨런 밴베리와 같은 선구자들은 스테인리스 스틸 시계가 지닌 역사적 사실과 수치를 무기 삼아 시장을 개척하고, 현대 시계 산업 마케팅의 초석을 닦았다.

역사적인 선례가 세워진 가운데, 일부러 스테인리스 스틸을 사용하여 개수가 매우 적거나 독특한 시계를 만드는 것은 오늘날에 20세기보다 훨씬 더 흥미롭고 예측할 수 있는 상업적 제안을 만들어낸다. 마치 그랜드마스터 차임의 최고 판매가가 이전 기록을 깨버린 것처럼 말이다.

파텍 필립 Ref. 6300A-010이 온리 워치 옥션에서 5분 만에 ‘가장 비싼 시계’가 되기 이전에도 귀금속으로 만들어진 ‘일반적인’ 그랜드마스터 차임 시계의 가격은 절대 저렴하지 않았다. 파텍 필립의 1백75주년을 기념하여 18kt 로즈 골드 한정판으로 7개만이 제작된 Ref. 5175R은 2백50만 달러, 한화 약 29억5천만 원에 처음 출시되었으며, 2년 후 화이트 골드로 제작된 Ref. 6300G는 2백20만 달러, 한화 약 26억 원에 판매됐다.

하지만 어떤 사람은 스테인리스 스틸로 제작된 파텍 필립의 가장 복잡한 컴플리케이션 시계에 3천1백만 달러, 한화 약 3백67억 원을 지출하는 것이 잠재적으로 장기 투자의 가치가 있다고 보았다.

부티크나 리테일러 숍은 소비자에게 앞으로도 금과 보석이 지니고 있는 익숙한 프리미엄 전략을 고수할 것이다. 하지만 시계를 진지하게 모으는 사람들에게 스테인리스 스틸 시계와 귀금속 시계의 값어치는 비교할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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