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명의 남성이 직접 말하는 ‘최악의 밸런타인데이 선물’

이런 선물만은 제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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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느덧 밸런타인데이가 다가왔다. 많은 사람들이 나름대로 연인을 위한 선물을 준비하고 있겠지만, 그 선택이 늘 최선일 수는 없다. 실제로 지난해 6명의 여성들에게 ‘최악의 화이트데이 선물’을 물었더니, 아주 난감한 선물부터 웃픈 선물까지 상상도 못한 에피소드들을 들려줬다. 그 이야기를 들으면서 반대로 남자들은 어떤 최악의 선물들을 받았을지 궁금해졌다. 그래서 올해는 ‘최악의 밸런타인데이 선물’ 편을 준비했다. 사람마다 취향은 다르니 절대적인 ‘최악’은 없겠지만, 다양한 분야에서 일하는 8명의 남성들이 전해주는 생생한 경험담이 피해야 할 선물에 대한 힌트가 될 수는 있을 것이다.

거북이

표현 방식이 돈이든 노동력이든 선물은 그 사람의 정성을 나타낸다. 하지만 밸런타인데이에 받은 ‘거북이’는 어떻게 해석할 수 있을까? 사귄 지 얼마 안 된 시점에 놀러간 아쿠아리움이 문제였다. 수족관 속 생물을 보며 즐겁데 데이트를 한 후, 그녀는 평범한 선물이 싫다며 거북이를 선물했다. 내가 아쿠아리움에서 너무 해맑은 표정이었나 보다. 집에 돌아와 생각해보니 퍽 난감했다. 곰 인형이야 버리면 되는데, 이 친구는 여자친구보다 오래 살 거라고 생각하니 어떻게 키울지 막막했기 때문이다. 주는이보다 받는이의 정성이 필요한 선물이었던 셈이다. 다행이라고 하긴 그렇지만 거북이는 생각보다 오래 살지 못했고, 그 친구도 전 여자친구가 되었다. 아쿠아리움 데이트가 예정돼 있다면 표정 관리를 잘하자. 그리고 밸런타인데이에는 그냥 가나 초콜릿 정도면 충분하다. 유영민 (아시아나항공 승무원)

카카오톡 기프티콘

30대의 연애에는 밸런타인데이가 없다고 생각했다. 그건 (전) 여자친구도 마찬가지인 줄 알았다. 그렇기에 어느 2월 13일 “내일이 밸런타인데이네? 선물 줄게”라고 그녀가 말했을 때는 괜히 더 설렜다. 하지만 잠시 뒤 바로 옆에 있는 나에게 그녀가 보낸 카톡 알람이 떴을 때 뭔가 이상하다고 생각했다. 아, 밸런타인데이 선물도 기프티콘으로 주는 21세기라니. 2월 13일 밤에 받은 기프티콘에 내 주소를 입력하며 배송된 선물은 그렇게 달갑지 않았다. 내 손에 들어온 방식이 마음이 들지 않았기 때문인지 처음 먹은 몰티저스 초코볼의 맛도 마음에 들지 않았다. 차라리 그냥 편의점에서 사서 직접 건네줬더라면 그렇게 싫지는 않았을 텐데. 서수일 (퍼포먼스 시리즈 마케터)

십자수 & 커플 키링

지금까지 밸런타인데이에 받았던 선물 중 가장 난감했던 것은 십자수와 애매모호한 커플 키링이었다. 일단 십자수는 그 사람이 한 땀 한 땀 정성을 들였다는 것은 고마웠지만, 선물한 사람의 기대에 부응할 만큼 활용하기가 어려웠다. 내 취향 가득한 집 안 어디에 두기에도 애매했고, 결국 서랍장 어딘가에 들어가 있던 걸로 기억한다. 애매모호한 그녀의 취향이 담긴 커플 키링은 더욱 난감했다. 대부분의 커플 아이템이 그렇듯 고맙다는 말만 하고 지니고 다니지 않으면 상대방이 실망할 것이 뻔하기에 눈치가 보일 수밖에 없는데, 그렇다고 또 그걸 하고 다니자니 내 취향도 아닐뿐더러 친구들에게 놀림받기 십상이었기 때문이다. 마일로 (타투이스트)

눈물

수년 전 만나던 여자친구가 밸런타인데이 기념으로 만들어줬던 초콜릿이 엄청 신기한 고무 같은 맛이라서 당황했던 기억이 있다. 단맛은 하나도 없는 것이 마치 카카오 99%에 환경 호르몬 향을 살짝 곁들인 맛이라고 해야 하나. 물론 아직 이것이 최악의 선물은 아니다. 나는 뭔가 오브제스러운, 사랑이 담겼지만 먹으면 수명이 줄어들 것 같은 이 수제 초콜릿을 어떻게 처리해야 할지 고민하다가 무심코 “이거 어떻게 만든 거야?”라고 물었는데, 그녀는 “꼭 그렇게 말해야 돼?”라고 외치며 갑자기 울어버렸다. 오묘한 맛의 초콜릿보다 그 눈물이 더 문제였다. 나는 어린 마음에 크게 잘못한 것도 없는데 여자친구를 울린 꼴이 된 듯해 억울했고, 그래서 그날은 결국 싸웠던 것 같다. 지금 생각해보면 둘 다 귀엽긴 하지만, 그렇다고 다시 겪고 싶지는 않다. 피곤해… 김경태 (버시스 오디오맨)

복분자주

‘팽창’은 어쩌면 우주를 상징하는 단어다. 태초에 대폭발로 인한 팽창으로 우주가 태어났고, 그 거대한 나비 효과로 인해 지금의 우리도 존재하니 말이다. 그리고 매일 아침마다 남자들은 이불 속에서 다른 종류의 ‘팽창’을 마주한다. 하지만 때로 이 팽창은 과도한 업무 및 스트레스 혹은 무리한 폭음이 반복될 경우 발동에 제약이 생긴다. 그럴 때는 사람들 사이에 ‘좋다’고 알려진 각종 아이템들이 도움이 된다. 그 언젠가 밸런타인데이에  동년배 친구가 ‘복분자주’라는 선물을 준 것도 은밀한 응원이었으리라. 물론 너무나도 값진 선물이었지만, 이것은 최악의 선물이 되고 말았다. 왜냐하면 그때 나는 솔로였으니까. 그리고 올해 누군가가 이 선물을 한다면 그 또한 또 하나의 최악의 선물일 뿐이다. 이유는 생략하겠다. 선호탄 (아티스트)

이별

무턱대고 쥐어진 선물이었다. 정확한 시점은 밸런타인데이와 거리가 있지만 그리 멀지도 않다. 특별한 기념일 계획은 없었지만 언제나처럼 소중한 추억을 만들었을 우리다. 그녀는 나와 내 세상을 이해해주는 사람이었다. 그녀는 너무나 착해서 모든 행복의 공을 내게 돌려주었다. 그리고 틈만 나면 내게 필요한 걸 찾아내줬다. 끝 무렵에도 마찬가지였다. 부쩍 바이닐을 사 모으던 내게 턴테이블이 필요한지 물었다. 꽤 전부터 정해둔 제품도 있었기에 내심 들떴지만 손사래 쳤다. 우린 각자도생이 모토인 커플이었기에 정말 선물은 기대하지 않았다. 이별은 더더욱. 아무튼 우리는 그렇게 밸런타인데이를 앞두고 헤어졌다. 돌아보면 평생 우연에 우연이 몇 번이나 겹쳐도, 같은 카페에서 다른 커피를 주문하는 정도였을 인연이다. 모르겠다. 여전히 그녀가 보고 싶고 듣고 싶고 닿고 싶다. 권창모 (위더플럭 A&R)

카카오 99% 초콜릿

나에게 있어 밸런타인데이는 ‘달콤한 날’이다. 그래서 작은 선물이라도 달콤함을 선사한다면 기쁘게 받아들일 수 있다. 하지만 카카오 함량 99% 초콜릿은 건강에 좋을지 몰라도 전혀 달콤하지 않다. 그래서 분명 이것도 초콜릿인데 정작 밸런타인데이에 받으면 나를 놀리는 건지, 정말 좋아서 주는 건지 햇갈린다. 그러니까 밸런타인데이를 달달하게 보내자는 건지 씁쓸하게 보내자는 건지 선물의 의도를 잘 모르겠다. 실제로 밸런타인데이에 카카오 99% 초콜릿을 받고 상처 아닌 상처를 받은 경험이 있다. 웻보이 (코미디 아티스트)

프리 허그

오랜 기간 미국에서 유학을 했던 나에게 밸런타인데이는 한국과 반대로 남성이 여성에게 선물을 주면서 고백하는 날이었다. 그리고 당시 학업과 사업에 매진하던 나에게는 무의미한 날들 중 하나로 기억된다. 나도 교내 광장에서 “Will you be my Valentine?(나의 밸런타인이 되어 줄래?)”라는 고백 멘트와 달달한 선물을 전하는 다른 커플들처럼 로맨틱한 시간을 보내고 싶었지만, 내가 누릴 수 있는 것은 오직 소외된 자들을 위해 프리 허그를 해주는 교내 동아리 이벤트뿐이었다. ‘밸런타인 프리 허그’ 이벤트 팻말을 들고 서 있는, 척 보기에도 2m가 넘어 보이는 친구와 눈이 마주쳤을 때의 그 묘한 감정과 이끌림, 껴안았을 때 느껴지는 현타와 위안 아닌 위안은 아직도 최악의 웃픈 추억으로 남아 있다. 앤디 (피치스 COO)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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