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지야 인터뷰: 카멜레온 같은 매력의 아티스트

EP ‘KHAMAI’에 담긴 깊은 속내를 들여다보자.

음악 
2,041 Hypes

‘현지’는 한국에서 흔한 이름이다. 하지만 미국에서는 엄청나게 독특한 이름이 된다. 이와 마찬가지로 터를 옮긴 후 겪는 문화적 차이, 누군가와 원활하게 의사소통할 수 없는 답답함 등은 디아스포라를 이야기할 때 꼭 나오는 주제다.

현지야의 새 EP <KHAMAI>에는 디아스포라가 겪는 고민과 이를 이겨내는 과정이 담겨 있다. 어릴 적 한국에서 미국으로 넘어가 삶의 대부분을 보낸 현지야는 현재 한국으로 돌아와 음악을 만들고 있다. 하루아침에 만나는 사람도, 쓰는 언어도 달라진 그가 겪는 혼란스러움, 떨어진 가족을 향한 그리움, 정체성에 관한 고민 등은 자연스레 음악의 주제가 됐다.

앨범 초반부에서 ‘내가 누군지 모르겠다’라며 정체성에 대한 고민을 겪던 현지야는 이제 자신을 카멜레온에 비유한다. 상황에 따라 색과 패턴을 바꾸는 카멜레온처럼, 다양한 모습이 모두 ‘나 자신’이라는 것이다. 현지야는 이 과정을 “두려웠지만, 하고 나니 카타르시스를 느꼈다”라고 이야기한다. 그 과정과 ‘KHAMAI’라는 단어의 의미 그리고 앨범에 담긴 메시지 등을 아래에서 확인할 수 있다.

웹사이트에 ‘현지야’를 검색했는데 세상의 수많은 ‘현지’가 나오더라고요. (웃음)

이게 참 재밌어요. 제가 미국에서 ‘Hunjiya’라는 이름을 쓸 때는 사람들이 ‘헌지야’가 되게 특이하다고 말했거든요. 그러다 한국 와서 한국어에 맞춰서 현지야로 바꾼 거예요. 주변에 한국 사람, 친구들이 없어서 한국에 이렇게 많은 ‘현지야’가 있는 지도 몰랐어요. 어렸을 때 부모님이 저를 “현지야”라고 불러서 제 이름이 ‘현지’가 아니라 ‘현지야’인 줄 알았던 때도 있거든요.

활동명을 현지야로 정한 이유가 있나요?

처음에는 제 영어 이름인 앨리스를 썼어요. 그런데 이 이름이 제게 전혀 의미가 없는 거예요. 그리고 앞에 말한 것처럼 미국에서 현지를 많이 안 쓰니까 괜찮다 싶었죠.

음악은 미국에서 시작한 거예요?

어렸을 때 피아노, 클라리넷 등을 배웠는데 사실 부모님이 원해서 했던 거에 가까워요. 그러다 고등학교 때인가 아시안 아메리칸 아티스트들이 유튜브에 올린 커버, 본인 곡 등을 보면서 저도 한 번 해보자 싶었어요. 아마존에서 우쿨렐레 싼 거 사서 연주하며 커버 올리고, 친오빠가 안 쓰는 기타를 뺏어다가 치고 그랬죠.

고등학교 때 유튜브에 음악을 올렸다면 주변에서 영상을 봤겠네요.

사람들한테는 안 보여줬어요. 부끄럽고 창피하잖아요. 그러다 저랑 과학 수업을 같이 듣던 여자애가 제 유튜브를 찾아서 모든 사람한테 다 보여준 거예요. 너무 충격받아서 어쩌지 싶었는데 좋은 반응이 많았어요. 이후로 친구들이 공연 연습이나 연주 같은 부분을 많이 도와줬어요. 음악을 계속하고, 프로그램에 지원하는 것에 대한 자신감도 많이 얻었죠.

예전에 발매했던 음악들, 예를 들어 <Look After August>는 한국 음원 사이트에 없더라고요. 일부러 안 올린 건가 싶었어요.

회사가 없을 때 앨범을 내려고 유통사 같은 것을 찾았었어요. 근데 거기가 한국 음원 사이트에 곡을 안 올리는 곳이였던 거예요. 중국 사이트에도 올라가고 다 올라가 있는데 이상하게 한국만 없어요. 저도 진짜 올리고 싶어서 방법을 찾고 있어요.

이번 EP <KHAMAI>는 올라오니까요. (웃음) 제목이 독특한데 어떤 뜻인가요?

‘KHAMAI’는 그리스어로 카멜레온을 뜻하는 말이래요. EP 주제가 카멜레온이거든요. 카멜레온이 외부로부터 자신을 지키기 위해 색이나 패턴을 바꾸는 것이 저랑 닮았다고 생각했어요.

‘MASQUERADE’가 앨범의 주제곡이라고 했죠. 이유가 있나요?

제게는 곡 하나하나가 상황에 맞춰 바꿔 쓴 가면 같아요. 각 상황은 노래가 되고, 제가 저 자신을 바꾸는 방식은 가면인 거죠. 그걸 가장 잘 보여주는 곡이에요.

앨범 첫 싱글로 ‘FAVORITE’과 ‘TALK2ME!’를 발매했어요. 왜 이 두 곡이었나요?

오랜만의 싱글이다 보니 사람들이 여름에 재미있게 즐기면서 들을 수 있는 노래를 내고 싶었어요. 사람들이 좋아할 거라고도 생각했고요. 사람들이 EP에 담긴 주제를 알아줬으면 하는 맘도 있고요. 물론 두 곡에도 같은 주제가 담겨 있지만, 약간 희미하다고 해야 할까요.

‘TALK2ME!’에는 문화, 언어 차이에 관한 내용이 담겨 있어요. 쓰는 언어가 다른 연인 관계 이야기인가 싶더라고요.

다른 친구들도 사랑 노래인 줄 알더라고요. 그렇게 생각하는 게 되게 재밌어요. 대화는 엄청 중요하고 사람들은 꽤 자주 수동 공격적으로 굴잖아요. 혹은 대화 자체가 부족할 수도 있고요. 그렇다 보니 연인 관계라 생각할 수도 있을 것 같아요.

그렇지만 이 곡은 연인, 친구 등 누구에게나 일어날 수 있는 상황에 대한 노래에요. 제가 한국에 처음 왔을 때나 부모님과 미국으로 처음 갔을 때, 하고 싶은 말을 못 하거나 무슨 말을 하고 있는지 알아듣지 못한 적이 많아요. 언어나 문화적 차이에 압도된 거죠. 그래서 제 한국어가 충분한지, 영어가 충분한지, 제게 한국인이란 무엇인지, 한국말을 잘 못하거나 문화를 완전히 이해하지 못해도 저는 한국 사람인지 같은 것을 많이 생각했었어요.

이 곡에 유일하게 피처링이 있어요.

교포 아티스트 피처링을 꼭 넣고 싶었어요. 저 뿐만 아니라 그 사람들도 같은 경험을 했을 거 같았거든요.

피처링에 참여한 pH-1과 그런 경험에 대해 많은 이야기를 했겠네요.

pH-1이랑 만나서 곡 얘기를 할 때 한국에 온 지 6개월밖에 안 된 상황에서 겪은 개인적인 이야기라고 말했어요. 제가 느끼기에 언어, 문화 장벽을 느끼고 있고 이 때문에 사람들과 깊은 관계를 맺고 있지 못하고 있다고요. pH-1도 똑같은 경험을 했다더라고요. 언어보다는 문화에서 처음 왔을 때 심지어 지금조차도 다른 걸 느낄 때가 있대요. 이 곡에 교포 아티스트 피처링을 꼭 넣고 싶었어요. 저 뿐만 아니라 그 사람들도 같은 경험을 했을 거 같았거든요.

“In these conversations something’s missing / Cause my words won’t show my feelings”라는 가사가 생각나요. 현지야가 한국어로 노래하지 않는 이유일까요? 

그런 것 같아요. 한국어로 가사를 쓰는 것이 아직 어색하고 익숙하지 않아요. 저는 정말 제 모든 감정을 한국어 가사로 전하고 싶거든요. 하지만 어떻게 해야 잘 할 수 있는지 아직 모르겠어요. 아마 ‘레벨 2’ 정도로 말할 수 있을 텐데 저는 ‘레벨 5’ 정도로 하고 싶거든요. 그래야 제 자신을 제대로 설명할 수 있어요.

‘CONFIDENCE HAT’이란 제목이 흥미로웠어요. 자신감 모자가 뭔가요?

엄마가 만들어준 간단한 노란색 모자에요. 엄마가 주면서 “이거는 자신감 모자다, 이걸 쓰면 자신감이 생긴다”라고 말해줬어요. 쓸 때마다 볼 때마다 그 생각을 해요. 제게는 많은 의미가 있어요.

이 곡에는 어머니의 목소리가 담겨 있어요. 어쩌다 녹음하게 된 거예요?

원래는 엄마랑 웃긴 이야기를 하고 있었어요. 그걸 녹음하고 있었는데 계속 말하다 보니까 제가 녹음하고 있다는 걸 까먹은 거예요. 그러고서 한국은 어떤지, 어떻게 지내는지 같은 걸 이야기했어요. 당시에는 엄마가 아직 미국에 있었거든요. 제가 정신적으로 좋은 상황은 아니었어요. 엄마한테 잘 모르겠다고, 친구를 어떻게 사귀어야 할지도, 음악을 어떻게 할 지도, 어떻게 살아가야 할지도 모르겠다고 말했어요. 그러니까 엄마가 “자신감이 있어야 돼. 뭐든 하려면 자신감이 있어야 돼”라고 말해줬어요.

어머니에게도 들려드렸나요? 반응이 궁금해요.

앨범을 다 만들고 들려줬는데 반응은 그냥 “내 목소리가 이렇게 들려?”였어요. (웃음) 그래도 엄마가 감동 많이 받았다고 했어요.

‘CONFIDENCE HAT’ 이후로 현지야가 더 성장한 듯한 느낌을 받았어요. 곡 제목도 ‘OUTGROWN’이고요.

신기하게도 저는 그런 식으로 생각해본 적이 없어요. 그런데 아마 맞을 거예요. 재밌는 게 앨범을 다 만들고 순서를 정할 때 ‘MASQUERADE’가 첫 번째 그 다음으로 ‘FAVORITE’ 식으로 정했는데요. 보니까 처음 만든 곡부터 시작해서 쭉 이어지더라고요. 성장했다는 느낌을 받는 건 ‘CONFIDENCE HAT’ 전까지 개인적이고 깊은 이야기를 하고 있기 때문 아닐까 싶어요.

개인적이고 솔직한 이야기를 하는 것이 무섭거나 두렵지는 않나요?

제게 음악은 정말 말하고 싶은 것을 과하게 생각하고 길게 늘어놓는 대신, 간결하고 말이 되게 하는 방법이자 일종의 치료에 가까워요. 노래를 쓰고 난 후 카타르시스랑 두려움을 동시에 느꼈던 것 같아요. 제가 잘 못하는 개인적인 이야기를 풀었으니 무섭고, 무서운 것을 해냈으니 기분이 좋은 거 같아요.

현지야의 개인적인 이야기에 사람들이 공감할 수 있는 것도 비슷한 이유라는 생각이 들어요.

사람들이 일반적으로 자신의 감정을 설명하는 데 어려움을 겪을 때가 많다고 생각해요. 그래서 저도, 다른 사람들도 정직하기 위해 노력하고 있을 거예요. 실생활에서 제 감정을 설명하기 어렵고 혼자 담아두는 편이라 노래에서는 솔직하려고 하고요. ​저는 음악을 통해 저를 자유롭게 하는 것이 일종의 축복처럼 느껴져요.

‘OUTGROWN’은 흔히 들을 수 있는 알앤비보다는 다양한 장르가 섞인 사운드잖아요. 이러한 색은 현지야의 취향이 반영된 걸까요?

‘OUTGROWN’은 제가 표현하고 싶은 저가 들어 있는 곡이에요. 저는 팝송 만드는 것도 좋아하고, 포크, 알앤비 등 다양한 장르도 좋아해요. 이 곡에는 감정뿐만 아니라 기타, 하모니, 스트링 편곡 등 저를 닮은 것들이 많이 들어있어요. 제가 항상 쓰고 싶었던 곡인 거 같아요.

뮤직비디오는 어떤 내용을 담고 있어요?

밴드랑 같이 찍었어요. 파리에 있는 멋진 다리에서 촬영했고요. 특별한 콘셉트를 담고 있다기 보다는 제 음악에 더 집중한 뮤직비디오에요.

앨범 전체에 기타와 현지야의 목소리로 만든 화음이 많은 것은 어떤 이유인가요?

화음 쌓는 것이 너무 재밌어요. 기타는 제일 편하고 소중한 악기고요. 제가 원래 어떤 곡이든 일단은 기타로 만들고 그 위에 다른 악기들을 얹어요. 하모니와 기타가 많은 이유도 비슷한 것 같아요. 자연스러운 거죠.

<KHAMAI>로 전하고 싶었던 음악적인 내용이 있나요?

조금 더 프로페셔널한 사운드. 저는 혼자서 음악을 해왔었으니까요. 스트링을 쓰는 것에도 관심이 많았고, 제 친한 친구가 편곡 같은 것도 많이 해서 그런 것들을 많이 담으려 했어요.

전달하고 싶었던 메시지는요?

앨범을 만들기 전, 앨범을 만드는 동안 제가 다른 사람들을 위해 왜 그렇게 많이 변하고 있는지, 왜 가족이나 친구를 위해 변해야 하는지 등을 궁금해하면서 정체성의 위기를 겪었어요. 정말 혼란스러운 시간을 보냈고, 제가 누군지를 잃기 시작하는 지경에 이르렀어요.

그렇지만, 앨범을 만들고 나서 상황에 따라 자신을 바꿔도 된다는 것을 깨달았어요. 계속해서 주어진 환경에 적응하고 배우는 거죠. 이제 한국에 와서 혼란스러움을 겪고, 제가 한국어를 충분하게 하지 못하는 것도 괜찮아요. 앨범을 통해 여러 종류의 정체성을 가져도 된다는 걸 전하고 싶었어요. 본인을 구성하고 있는 핵심, 심장이 있다면 다 괜찮다고요.

한국에 온지 시간이 조금 지났죠. 과거랑 지금은 어떤 게 달라요?

한국말이 좀 나아졌어요. 그리고 좋은 친구, 사람을 많이 만난 거 같아요. 처음 왔을 때는 아예 아무도 몰랐거든요. 그리고 부모님이 작년 겨울에 한국으로 돌아오셔서 마음이 편해진 거 같아요.

지금 현지야의 ‘FAVORITE’은 뭐예요?

고양이, 친구들, 코바늘 뜨개질 그리고 태국 음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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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타일리스트
Sohyeon In
헤어/메이크업
Seonjin Kee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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