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pen Road: 2022 포르쉐 타이칸 GTS
어쩌면 지금 당신이 살 수 있는 지구상 최고의 전기차.
자동차 마니아에게 운전은 단순히 기술적인 행위 그 이상의 의미를 지닙니다. ‘Open Road’ 시리즈는 자동차의 기능뿐만 아니라 그 차가 지닌 의미에 대해 탐구합니다. 오래된 차든, 새 차든, 해외의 이국적인 차든 상관없이 말이죠. <하입비스트>는 단순히 숫자로만 설명되는 성능 너머, 자동차가 선사하는 순수한 즐거움을 파헤칩니다.
‘GTS’. 오늘날 포르쉐가 만들고 있는 모든 시리즈에는 GTS 엠블럼이 붙은 모델들이 존재한다. 앞서 공개된 911 GTS, 718 박스터 GTS, 파나메라 GTS, 마칸 GTS는 ‘과연 GTS 답다’라고 말할 수 있는 저만의 스포티한 주행 감성을 앞세워 포르쉐 마니아들의 까다로운 입맛을 만족시켜 왔다. 그리고 지난 7월, 포르쉐는 한국에 가장 최신의 GTS 모델을 출시했다. 전기차 모델, 타이칸 GTS가 바로 그 주인공이다.
타이칸은 투르크어로 ‘활기 넘치는 젊은 말’을 뜻한다. 수많은 이들이 꿈꾸는 포르쉐 엠블럼 속 날뛰고 있는 검은색 말에서 영감받은 이름이다. 오늘날 포르쉐의 유일한 전기차 모델인 타이칸은 베이스 모델부터 4S, 터보, 터보 S 등 다양한 라인업으로 출시되고 있다. 그중 타이칸 GTS는 4S와 터보 사이에 해당하는 모델이다. 단순 출력만 놓고 비교한다면 중간급에 위치하지만, GTS는 어쩌면 현재 나온 타이칸 중 가장 ‘포르쉐’다운 모델이라고 할 수도 있다. 포르쉐만큼 ‘GTS’에 진심인 브랜드도 없기 때문이다.
‘그란 투리스모 스포츠’를 뜻하는 GTS를 처음 적용한 포르쉐 모델은 1963년 공개된 904 카레라 GTS다. 포르쉐 창립자의 손자이자 오늘날 브랜드를 상징하는 모델 911을 디자인한 장본인, 페르디난트 알렉산더 포르쉐는 “모든 포르쉐는 레이싱에 적합하다”라는 말에 걸맞는 최초의 GTS 차량을 제작했다. GTS는 공도에서 운용할 수 있지만, 모터스포츠에서 얻은 레이싱 노하우를 녹여내 그 어떤 라인업보다도 스포티한 주행감각을 선사한다. 쉽게 말해 같은 포르쉐 양산차 중에서도 GTS 엠블럼이 붙은 차라면, 운전 재미로는 최고라는 뜻이다.
<하입비스트>가 ‘Open Road’를 위해 받기로 한 2022 타이칸 GTS는 한국에 출시된 지 이제 갓 한 달이 조금 넘은 신차다. 우리는 저 멀리 주차장에서 올라오는 모습을 처음 보자마자 탄성을 금치 못했다. 회색빛 아스팔트 위에서 단숨에 시선을 끄는 외장 컬러의 이름은 ‘카민 레드’다. 포르쉐가 GTS 라인을 위해 특별히 만든 색깔이다. 정신을 차리고 차를 둘러보자 포르쉐의 금빛 크레스트가 박힌 휠이 가장 먼저 눈에 들어온다. 정교하게 펼쳐진 거미줄을 연상케하는 21인치 RS 스파이더 디자인 휠은 차의 존재감 더욱 돋보이게 한다. 참고로 해당 휠의 옵션 가격은 3백80만 원이다. 한때 ‘눈물자국’이라 불리던 타이칸 에어 인테이크 디자인은 GTS에 들어서면서 기존보다 가로가 더 넓게 수정됐다. 이는 디자인적으로 근사하게 느껴지지만 실제로 공기의 흐름을 더욱 개선시켜 주행성능에 도움을 준다.
약 6백 마력에 달하는 타이칸 GTS의 출력을 느끼기 위해서는 서울 도심을 벗어나야 했다. 곧장 차에 올라탄 뒤 우리는 내비게이션에 영종도를 검색한 뒤 올림픽 대로에 올라탔다. 타이칸에는 총 5개의 주행모드가 있다. 에너지 효율을 높여 멀리 달릴 수 있는 ‘레인지’, 편안한 승차감을 위한 ‘노멀’, 보다 단단한 하체 세팅으로 스포티한 운전 감각을 선사하는 ‘스포츠’, 최고의 출력을 뽑아내는 ‘스포츠 플러스’, 그리고 개인의 취향에 맞춘 ‘인디비주얼’이다.
노멀 모드에서의 승차감은 2억 원이 넘는 스포츠카답지 않게 편안했다. 말캉하지 않으면서도 적당히 단단한 서스펜션은 데일리카로도 손색이 없는 수준이다. 영종대교에 들어서면서부터는 속도를 내기 위해 주행모드와 서스펜션을 스포츠 모드로 변경했다. 곧장 가속 페달에서 발끝으로 전해지는 감각이 묵직하게 바뀌면서 훨씬 강한 토크감이 전해졌다. 여기에 운전 재미를 더하는 것은 ‘포르쉐 일렉트릭 스포츠 사운드’다. 일명 ‘우주선 소리’라 불리는 E 스포츠 사운드는 실제 모터에서 나는 소리가 아닌 인위적으로 만든 가상 사운드다. 911에서 즐길 수 있었던 ‘팝콘 터지는 소리’는 없지만, 페달을 밟을 때마다 ‘지금 최고의 전기 스포츠카를 타고 있구나’하는 감흥을 느끼게 한다.
앞뒤 바퀴 사이에 각각 배치된 총 두 개의 전기 모터는 최대 5백98 마력을 쏟아낸다. 그 힘을 오롯이 느끼기 위 텅 빈 일직선 도로에서 론치 컨트롤을 켜보기로 했다. 브레이크와 가속 페달을 동시에 밟자 론치 컨트롤 활성화 표시가 운전석 맞은편 디스플레이에 떠올랐다. 크게 한숨을 내뱉고 브레이크에서 발을 떼자마자 누군가 뒤에서 머리를 낚아챈 듯 뒤통수가 헤드레스트에 달라붙는다. 타이칸 GTS의 제로백은 3.7초. 전기차에서 3초대의 제로백은 이제 어렵지 않게 볼 수 있는 수치가 됐지만 스포츠카에 맞게 조율된 하체 세팅과 실내 전체에 울려대는 E 스포츠 사운드는 ‘포르쉐 GTS’의 명성에 손색이 없다.
차의 바닥 전체에는 포르쉐 터보 S와 동일한 93.4 kWh 용량의 배터리가 탑재됐다. 국내 인증 기준 주행 가능 거리는 317km지만 실제로는 이보다 훨씬 긴 거리를 달릴 수 있다. 고속도로와 도심을 주행하면서 무엇보다 인상 깊었던 것은 코너링과 브레이크다. 가뜩이나 전기차 특성상 무게 중심이 낮게 깔린 타이칸 GTS는 코너를 돌 때마다 회전축을 따라 바닥을 움켜쥐고 매끄러운 코너링을 선보였다. 포르쉐가 개발한 고성능 브레이크 ‘포르쉐 서페이스 코티드 브레이크’는 민첩하게 제동을 걸었다. 코너링과 제동 성능이 안정적일수록 운전자는 차를 더욱 극한으로 몰아세울 수 있다.
실내에는 외장 컬러와 동일한 ‘카민 레드’로 포인트를 준 ‘GTS 인테리어 페키지’가 적용됐다. 운전석 헤드레스트에 자수로 새겨진 GTS, 모든 좌석마다 배치된 새빨간 안전벨트, 시트와 대시보드와 정교하게 적용된 스티칭 디테일을 포함한 이 패키지는 이번 시승차에 적용된 옵션 중 가장 비싼 것으로 가격은 5백80만 원이다. 센터페시아부터 조수석까지 이어지는 거대한 터치형 디스플레이는 전기차 특유의 미래적인 디자인과 어울렸다. 대시보드 위에는 그와 상반되는 아날로그형 시계가 올려졌다. 이는 포르쉐 디자인에서 제작한 작품으로, 특수 입사광 기술을 적용해 빛이 모자란 야간에도 선명하게 시간 정보를 확인할 수 있다.
타이칸 GTS의 국내 가격은 1억8천30만 원부터 시작한다. 하지만 우리가 탔던 시승차는 ‘카민 레드 외장 컬러’, ‘카민 레드 GTS 인테리어 패키지’, ‘포르쉐 서페이스 코티드 브레이크’, ‘보스 서라운드 사운드 시스템’ 등의 옵션을 탑재해 2억7백70만 원의 가격으로 완성됐다.
지갑에 2억 원이 있다면 살 수 있는 자동차의 선택지는 너무나도 많다. 하지만 당신이 전기차를 염두에 두고 있다면, 그중에서도 최고의 전기차를 원한다면 그 고민의 끝은 결국 타이칸일 것이라고 확신한다. 타이칸은 내연기관 시대부터 최고의 스포츠카를 만들어온 포르쉐가 미래를 걸고 만든 차다. 내연기관 시대의 포르쉐는 터무니없는 기술력으로 ‘외계인을 고문해서 만든 차’라는 별명을 얻었다. 타이칸 GTS가 만들어지는 동안 슈투르가르트 어디선가 또 한 번 희생되었을 이름 모를 외계인들의 희생에 감사를 표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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