셰퍼드 페어리 인터뷰: 행동하는 예술가의 힘

‘오베이’의 창립자, 예술가, 사회운동가.

미술 
6,510 Hypes

셰퍼드 페어리는 작품 활동을 통해 사회적인 메시지를 던지고 세상을 변화시키는 데 누구보다 적극적인 아티스트다. 어린 시절부터 스케이트보드와 펑크 록 그리고 힙합 음악 등 서브컬처의 영향을 받으며 성장한 그는 뉴욕에서 스트리트 아트를 통해 존재감을 드러냈고, 지금은 지금은 전 세계 유수의 갤러리에서 전시를 펼치는 미술가이자 스트리트웨어 브랜드 ‘오베이’를 전개하는 사업가 그리고 환경, 정치, 사회운동가로 활동하고 있다.

셰퍼드 페어리의 본격적인 작품 활동 시작은 로드 아일랜드 스쿨 오브 디자인 재학 시절로 거슬러 올라간다. 1989년 그는 프랑스의 전설적 거구 프로 레슬러 ‘앙드레 더 자이언트’의 초상을 따와 만든 <Andre the Giant has a Posse> 스티커를 로드 아일랜드 곳곳에 스티커 바밍 형식으로 퍼뜨렸고, 이것이 스케이트보더 커뮤니티와 그래피티 아티스트들을 중심으로 주목을 받게 됐다. 그는 이후 세계적인 ‘오베이 자이언트’ 캠페인으로 발전한 이 상징적인 모티프를 토대로 2001년에는 ‘오베이’ 의류 브랜드까지 창립한다.

이처럼 서브컬처 기반으로 활동을 하던 그가 세계적으로 주목을 받게 된 것은 2008년 당시 미국 대선 후보였던 버락 오바마의 초상화를 담은 포스터 작품 <HOPE> 덕분이었다. 셰퍼드 페어리는 개인적인 지지의 의미로 포스터를 만들었지만, 작품이 큰 반향을 불러일으키면서 추후 오바마 캠프의 공식 포스터로 채택되기도 했다. 또한 여러 버전이 재생산되며 스티커, 티셔츠, 머그 컵 등으로 만들어졌고, <타임> 표지를 장식하기도 했다. 지난 5월에는 3장의 원본 중 하나가 경매를 통해 약 10억 원에 판매되며 또 한 번 화제를 모았다.

전 세계에서 전시와 공공 미술, 의류 협업, 사회 운동을 펼치고 있는 셰퍼드 페어리는 오는 11월 6일까지 롯데뮤지엄에서 열리는 전시 <셰퍼드 페어리, 행동하라!> 개최를 맞아 5년 만에 다시 한국을 찾았다. 이번 전시에는 처음 공개되는 신작들을 포함해 그의 작품 세계를 총망라한 대표작 4백70여 점을 만날 수 있다. 전시 첫날 만난 셰퍼드 페어리는 “<하입비스트>와의 인터뷰는 나에게 큰 의미가 있다”며 길거리에서 시작된 본인의 예술 세계와 한국에서 펼친 벽화 작업들, 오베이 브랜드의 방향성 및 NFT에 대한 의견까지 다양한 이야기를 들려줬다.

2017년 <위대한 낙서: 평화와 정의> 전시 이후 첫 한국 방문이에요. 전시의 규모와 주제도 많이 달라졌는데, 이번 전시와 지난 전시의 가장 큰 차이점은 무엇일까요?

‘평화와 정의’는 여전히 제 작품 세계에서 중요한 테마예요. 하지만 제가 국가주의에 기반한 가짜 뉴스 선동이 벌어지는 것을 보면서 느낀 게 있어요. 사람들이 어떤 정보를 신뢰해야 할지 모르게 되고, 많은 정치인들은 끊임없이 거짓말을 하면서 대중들을 조종하잖아요. 그런 상황에 거짓말을 샅샅이 찾기 위해서는 반드시 눈을 열고 마음을 열어야 한다는 거예요.(EYES OPEN – MINDS OPEN.) 그래서 이 주제를 작품에 담아내는 게 중요하다고 느껴졌죠. 이번 전시에는 몇 가지 테마가 있지만, 새로운 테마는 바로 ‘허위 정보와 싸우는 것, 거짓말과 싸우는 것, 진실을 찾는 것’입니다. 그 부분이 더해진 것이 두 전시의 가장 큰 차이겠네요.

얘기하신 것처럼 전시의 영어 제목은 <EYES OPEN – MINDS OPEN>, 즉, “눈을 열어라 – 마음을 열어라”인데요. 한국어 제목은 <행동하라!>예요. 뉘앙스가 다르게 느껴지기도 하는데요.

행동을 불러일으키려면 그 이전 단계가 필요하죠. 행동을 해야겠다고 마음먹기 위해서는 먼저 눈과 마음을 열어야 해요. 그렇게 해야만 세상에서 벌어지고 있는 일들이 자신에게 관련 있는 일이라는 것을 깨닫게 되고, 뭔가를 해야겠다는 생각을 하게 되니까요. 그러니까 한국어 제목은 의미가 조금 다르지만, 그건 그거대로 좋다고 생각해요. 눈을 열고 마음을 연 이후에 취해야 할 다음 단계를 나타낸 거니까요.

이번 전시와 함께 서울의 다섯 곳에 벽화 작업을 진행한 것으로 알고 있어요.

공공 공간에 작품을 남기는 건 저에게 늘 중요한 작업입니다. 보통 갤러리나 박물관에 가지 않는 사람들이 미술을 경험할 수 있게 해주는 일이니까요. 그런데 서울에서는 벽화를 그릴 적절한 장소를 찾는 게 아주 어려웠어요. 하지만 여러 도움으로 다섯 곳에 작품을 남길 수 있었죠.

롯데월드몰 외벽과 롯데월드타워 1층 내부에도 별도의 그림을 그렸어요. 그리고 문화실험공간 호수라는 곳에 작은 벽화를 그렸는데, 아주 멋진 작업이었어요. 이미 사람들이 창의적인 무언가를 위해 찾아오는 장소에 창의적인 작품을 선사하는 거니까요. 강남 도산대로의 벽화 공간은 제 친구인 이규창 프로듀서의 도움으로 확보할 수 있었어요. 그와 처음 만난 건 2017년이었는데요. 그는 지금 배우 이정재, 정우성과 함께 일하는 파트너거든요. 그들이 운영하는 아티스트컴퍼니 회사 건물에 창문 없는 빈 벽이 있는데, 저에게 그 공간을 제공해줬어요. 그 벽은 정말 이상적인 벽화 공간이라고 생각해요. 굉장히 눈에 띄는 자리에 있고, 또 창조적인 일을 하는 사람들이 운영하는 건물이잖아요. 아주 좋은 협업이죠.

각 벽화에는 어떤 내용의 그림을 담았나요?

아티스트컴퍼니 회사 빌딩에 그린 그림은 가시 철사와 그 족쇄 위로 피어나는 장미예요. 족쇄 위로 피어난 장미는 억압을 벗어나 결실을 맺는다는 테마를 담은 작품이에요. 누군가 이 그림을 보게 되면 제 다른 작품을 찾아보고 싶게 할 만큼 시각적으로 강렬한 벽화라고 생각해요. 그리고 캔버스에 같은 그림을 그린 작품이 여기 전시장에도 걸려 있는데요. 제가 길거리에서 하는 작업과 미술관을 위해 하는 작업 사이의 관계를 보여주는 작품이죠.

문화실험공간 호수에 그린 벽화에는 몇 가지 이미지가 포함돼 있는데, 그 중에는 비둘기도 있고, 지구 모양이 그려진 담요를 걸치고 있는 코끼리도 있어요. 코끼리는 여러 문화권에서 장수, 지혜, 존경의 상징이잖아요. 그래서 지구에 대한 존중을 담았고, 우리가 지구를 돕는 존재가 되어야 한다는 생각도 표현했습니다. 바로 옆에는 꽃 모양 패턴과 다른 그래픽 요소들이 있는데요. 그것들은 환경을 존중하고 평화를 추구한다는 의미를 담고 있어요.

혹시 다음에 기회가 된다면 또 벽화 작업을 해보고 싶은 한국의 지역이나 장소가 있을까요?

피치스 도원’이 위치한 성수의 오래된 수제화 공단 지역이 정말 멋졌어요. 세월이 느껴지기도 하고, 인더스트리얼한 느낌이 있어서 좋았어요. 제가 뉴욕이나 LA에서 마주쳤을 때 작업하고 싶다고 느끼게 되는 장소들과도 비슷해요. 20년 전의 윌리엄즈버그 같다고나 할까요. 그래서 다음에 한국을 방문하게 되면 그 동네에서 뭔가 더 많은 작업들을 해보고 싶네요.

이번에 피치스 도원에서 펼친 작업은 어땠나요?

이번에 피치스 도원에서는 큰 규모의 스텐실 작업과 작은 스텐실 작업들을 여러 개 남겼는데요. 그곳에는 스케이트보딩과 자동차 문화가 있고, 음악을 위한 DJ 세트도 있고, 도넛도 있더라고요. 그러니까 멋진 것들이 한데 모여 있는 거죠. 그리고 제가 바로 그 문화들, 일종의 ‘하이브리드 스트리트 레벨 컬처’를 흡수하면서 성장한 사람이잖아요. 그래서 아주 맘에 들었고, 다음에도 함께 작업하고 싶다고 느꼈습니다.

한국은 셰퍼드 페어리 작가가 관심 있는 ‘전쟁, 평화, 정치’라는 테마와 관련해 흥미로운 지점이 많은 나라라고 생각해요.

실제로 서울은 북한과 아주 가깝잖아요. 그리고 항상 전쟁의 위협이 있죠. 그래서 전 세계적으로 평화란 중요한 문제지만, 특히나 이곳에서는 더욱 중요한 문제라고 생각해요.

그 밖에 이곳 사람들에게 듣는 사회 문제들은 다른 곳에서 듣는 것들과 같아요. 경제적 양극화와 젠트리피케이션 문제 같은 것들이요. 그런 문제들은 LA나 뉴욕, 런던에서도 모두 큰 문제거든요. 그래서 저는 아티스트로서 사람들에게 자신의 힘으로 무언가를 바꿀 수 있다는 생각을 갖게 하려고 노력합니다. 그리고 그 중 하나가 바로 투표죠. 물론 제가 지금 구체적인 의견을 이야기할 수 있을 만큼 한국 정치 상황을 잘 알지는 못하지만, ‘정의에는 참여가 필요하다’는 대전제를 제 작품에 담을 수는 있죠.

본인의 작품에서 사회적인 목소리를 낼 뿐 아니라 실질적으로 사회 운동에도 참여하고, 여러 단체에 지속적으로 기부도 해오고 있는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기부를 통한 부의 순환이 자본주의의 이상적인 모델이 되어야 한다고 생각해요. 돈을 버는 사람은 누구나 ‘모든 사람의 삶의 질 향상’을 위해 환원을 해야 한단 거죠. 제가 BLM이나 NRDC, 350.org 같은 환경 단체 혹은 교도소 개혁 자선 단체, ACLU 등에 기부하는 건, 그 운동이나 단체들이 모두 제가 생각하기에 더 나은, 살고 싶은 세상을 만들어가도록 도울 사람들이기 때문이에요. 작품을 판매해서 수익이 생기면 그런 활동에 도움이 되도록 돈을 쓰는데요. 그러면 제가 작품에서 하고 있는 이야기와 제가 돈으로 하고 있는 일 사이에 진정성 있는 관계가 형성되는 거죠.

하지만 일을 하다 보면 어쩔 수 없이 현실과 가치가 충돌하는 일도 생길 텐데요, 어떤 식으로 그런 상황을 극복하는지 궁금해요.

사실 충돌은 어디에서나 발생하죠. 예를 들어 어제 기자회견에서 한 분이 저에게 전시가 열리고 있는 롯데타워 건물이 환경적으로 영향을 줄 수 있는 구조물인 것을 아느냐고 물어보시더라고요. 사실 저는 그런 문제를 몰랐거든요. 그런데 또 제 철학에 완벽하게 부합하는 장소에서만 전시를 열어야 한다면, 아마 작품을 보여줄 수 있는 곳이 거의 없을 거예요. 그래서 이러한 모순은 항상 따라오겠죠. 하지만 제 작품의 의미가 제대로 전달된다면, 결과적으로 부정적인 측면보다 긍정적인 효과가 더 클 것으로 판단하고 있습니다.

또 저는 환경을 위해 작품을 만들 때 재생 종이를 사용합니다. 하지만 환경적으로 완전히 적합한 재료만을 사용할 수는 없는 영역이 있어요. 예를 들어 제가 사용하는 스프레이는 환경에 그다지 좋지 않겠죠. 하지만 그걸 대체할 수 있는 도구가 없어요. 그래서 나무 심기 운동 단체에 돈을 기부함으로써 그런 부분을 상쇄하려고 노력하죠. 균형을 맞추기 위한 카본 오프셋(배출된 이산화탄소의 양만큼 온실가스 감축 활동을 하거나 환경 기금에 투자하는 것)을 하고 있어요.

“옷은 사람들을 저의 작품 세계에 인도해줄 아주 민주적이고 접근성 좋은 방식이라고 생각해요.”

의류 사업은 더욱 경제성이나 환경 문제와 관련이 많은 분야예요. ‘오베이’ 브랜드를 운영하면서 생기는 가치 갈등을 어떻게 극복하고 있나요?

의류 산업은 환경적으로 봤을 때 아주 안 좋은 산업이라고 볼 수도 있어요. 하지만 저희는 공정 거래 공장들과 일을 하고, 지속 가능한 소재들을 가능한 한 많이 사용하려고 해요. 물론 윤리적으로 운영하려면 비용이 조금 더 발생하기 때문에 업체들을 설득하는 것이 쉽지는 않습니다. 그러니까 저희는 자본주의 내에서 좀 더 긍정적인 것을 하려고 부정적인 힘과 싸우고 있는 거죠. 이런 것들이 제가 늘 맞닥뜨리는 충돌이에요. 그런 문제에 대한 해결책으로 오베이 브랜드에서도 기부를 하고 있어요. 제가 아티스트로서 하는 것과 오베이 브랜드가 하는 것 사이에는 일관성이 있습니다.

그러한 문제들과 부딪히면서도 계속해 오베이 브랜드를 전개하는 데에는 이유가 있을 것 같아요. 벌써 브랜드의 역사도 20년을 넘었는데요.

저는 옷이 사람들을 저의 작품 세계에 인도해줄 아주 민주적이고 접근성 좋은 방식이라고 생각해요. 그래서 패션 세계의 일부 얄팍한 부분들을 좋아하지는 않지만, 그것조차 받아들이고 사업을 진행하는 거죠. 저는 예술의 문제점이 엘리트주의에 있는 경우가 많다고 보거든요. 그래서 저는 반대로 제 작품이 가능한 한 많은 사람들에게 닿도록 하겠다는 마음으로 접근을 합니다. 제 작품을 접한 사람들이 이 문화나 예술을 잘 모른다고 해도 괜찮아요. 오히려 제가 만든 작품이 그들에게 새로운 발견이 되기를 바랍니다. 옷은 그런 사람들을 위한 아주 좋은 매개체죠.

또 10대 시절을 생각해보면, 그때는 저도 제가 멋있다고 생각하는 주변 사람들이 뭘 입는지 두리번거리면서 찾아보고 그랬거든요. 그게 제가 누구인지를 만들어가는 데 큰 부분이 되기도 했고요. 그래서 저도 이제 더 어린 세대를 위해 똑같은 일을 하는 거죠.

오베이와 아이앱 스튜디오의 협업은 한국 팬들에게 강한 인상을 남겼어요. 그 프로젝트를 진행하게 된 계기는 무엇인가요?

오베이의 여성복 리드 디자이너가 한국 사람이에요. 한국에서 14살까지 살다가 뉴욕으로 왔다고 해요. 어반 아웃피터스에서 일을 하다가 오베이에 온 디자이너인데요. 한국 문화와 트렌드에 대해 잘 알고 있어요. 그리고 한국에 있는 저희 크루에는 정말 멋있는 사람들이 많거든요. 그래서 저희도 음악, 디자인 무엇이든 한국에서 일어나고 있는 일에 관심을 가지고 지켜보고, 또 잘 맞는 사람들과 협업을 하려고 하고 있어요.

실제로 아이앱 스튜디오 협업 직전에는 오베이 레코즈의 이름으로 한국의 서울 커뮤니티 라디오(SCR)와 합엽을 펼치기도 했어요.

SCR과 함께한 협업도 좋았어요. DJ들을 소개하고 협업 티셔츠도 만들었죠. 저도 디제잉을 하고 오베이 클로딩의 몇몇 친구들도 디제잉을 하거든요. DJ 컬처는 저희에게 정말 중요한 부분입니다. SCR은 특별한 언더그라운드 바이브를 가지고 있었고, 재밌는 협업이었어요.

실제로 음악에 커다란 애정을 가지고 있는 것으로 알고 있어요. 어떤 음악들에 영향을 받았나요?

어린 시절 펑크 록에서 아주 큰 영향을 받았어요. 1980년대 펑크 록과 스케이트보딩은 밀접하게 얽혀 있는 문화였거든요. 그러다가 1980년대 후반에는 힙합이 유행했죠. 런 DMC, 비스티 보이즈, 퍼블릭 에너미, 에릭 B & 라킴, 슬릭 릭, 어 트라이브 콜드 퀘스트, 더 노토리어스 B.I.G., 1990년대로 넘어가면서 그 모든 음악들이 제게 큰 영향을 줬어요. 레게도 빼놓을 수 없죠. 특히 밥 말리요. 물론 다른 종류의 음악들도 좋아합니다. 블랙 사바스나 메탈리카, 슬레이어 같은 메탈도 좋아하고, 레드 제플린 같은 클래식한 록도 좋아하고, 블론디나 빌리 아이돌도 좋아합니다. 여러 음악들이 제 인생에서 중요한 역할을 했고, 지금도 일할 때 매일매일 음악을 듣습니다.

요즘 가장 많이 듣는 음악은 무엇인가요?

더 클래시가 최근에 아주 큰 영감을 준 밴드고, 요즘에는 영국 출신의 포스트 펑크 밴드들을 많이 들어요. 야드 액트라는 밴드가 있는데, 아주 좋아해요. 아이들스도 좋아하고 폰테인스 D.C.도 좋아합니다.

스트리트 문화와 아트 그리고 음악과 의류까지 다양한 장르에서 영향을 받으면서 지금의 셰퍼드 페어리가 존재하게 된 거군요.

맞아요. 그래서 <하입비스트>와의 인터뷰는 저에게 큰 의미가 있어요. 제 성장 배경에는 늘 스케이트보드, 힙합, 펑크 록이 있었거든요. 제 뿌리가 길거리 문화에 있고, 그 문화들이 저를 만들었죠. 이번 전시 ‘더 파크’ 섹션에서 그런 부분들을 확인할 수 있어요.

제가 지금은 큰 박물관이나 갤러리에서 전시를 열고 주목을 받지만, 그건 다 제가 길거리에서 쌓아 올린 것들이 있었기 때문에 가능한 거예요. 그래서 저는 항상 사람들이 그 연결성을 이해해줬으면 좋겠다는 바람이 있어요. 물론 그렇다고 제가 길거리 아티스트에서 진화해서 지금 같은 아티스트가 됐다는 이야기를 하는 건 절대 아니에요. 저는 여전히 길거리 문화의 참여자이기도 하거든요. 기존에 가지고 있는 영역에 뭔가 새로운 것이 하나씩 더 더해진 거지, 제 정체성이 바뀐 건 아니에요. 제 정신적인 바탕은 여전히 길거리에 있습니다.

최근 환경 문제와 관련된 작품들을 많이 선보이고 있어요. 이번 전시에도 ‘지구의 위기(EARTH CRISIS)’ 섹션에 관련 작품들이 있는 것으로 알고 있는데요.

‘어스 크라이시스(Earth Crisis)’는 제가 프랑스에서 선보였던 프로젝트의 이름이기도 해요. 에펠탑에 매달려 있는 지구본 모양의 작품이요. 그 외에도 제가 환경과 관련된 작업을 한 건 1990년대부터니까 상당히 오래 됐어요. 그린피스와 350.org 같은 다양한 환경 단체와 함께 작업하기도 했고요.

최근 작업물 중에는 조 바이든 대통령을 주제로 한 작품이 있어요. 조 바이든이 대통령으로 당선됐을 때, 그린피스와 협업해서 절반은 초록색, 절반은 빨간색으로 칠한 조 바이든의 초상화를 만들었어요. 초록색 쪽에는 식물이 그려져 있고, 빨간색 쪽에는 불이 그려져 있죠. 그에게 기후 변화 관련 법안을 진행하도록 촉구하는 의미를 담은 작품이에요.

최근 예술계의 뜨거운 이슈인 NFT에 대한 생각도 궁금해요. 예술가에 따라 NFT에 대한 시각이 확연히 다르더라고요.

저는 NFT가 예술과 사람들을 이어주는 또 하나의 방식이라고 생각해요. 저는 실물 작품을 좋아하지만, 어떤 사람들에게는 주된 사회생활 공간이 메타버스일 수도 있잖아요. 그들에게는 NFT를 사는 게 제가 티셔츠나 벽에 걸 그림을 사는 것만큼 중요하겠죠. 저는 그런 부분을 존중합니다. 저도 3개의 NFT 프로젝트를 진행한 적이 있고요.

그러면 소비자가 아닌 창작자의 입장에서 본 NFT에 대한 생각은 어떤가요?

NFT는 아직 자리를 잡지 못해서 어려움을 겪는 예술가들과 디자이너들에게 좋은 도구라고 생각해요. 전통적인 작품 전시회를 열지 못해서 제대로 된 수입원이 없는 예술가들에게는 NFT를 팔아서 돈을 버는 것이 큰 도움이 될 테니까요. NFT 작품은 만드는 데 상대적으로 비용이 덜 들잖아요. 물론 NFT도 세상의 다른 모든 것들처럼 문제점을 가지고 있죠. 어떤 NFT는 돈을 빨리 벌어보려는 사람들의 욕심으로 진행되는데 그런 걸 좋아하진 않아요. 하지만 NFT가 사람들에게 접근하기 쉽고, 많은 예술가들에게 기회를 준다는 점은 좋아합니다.

NFT와 관련해 이야기를 하다 보면 어떤 사람들은 ‘현실 세계의 작품 vs NFT’ 이런 식의 대결 구도를 만들더라고요. 그런데 사실 그 중 한쪽을 고를 필요는 없습니다. 둘 다 할 수 있으니까요. 오히려 선택을 강요하고 서로 공존할 수 없는 관계로 보는 것이 편협하다고 생각합니다.

새롭게 시작하는 예술가들에 대한 이야기를 하셨는데요, 오랜 경력을 지닌 아티스트로서 전 세계의 수많은 신인 작가 혹은 지망생들에게 조언을 해줄 수 있을까요?

지금은 그 어느 때보다 자기 작업물을 공유할 수단이 많아진 것 같아요. 하지만 또 그만큼 경쟁이 치열하고 더 혼란스러운 부분이 있겠죠. 그래서 언제나 본인이 만드는 작품이 온갖 잡동사니들 사이에서 충분히 눈에 띌 만큼 유니크한지 확실히 판단해야 해요. 그리고 또 전략적이어야 하고, 끈기도 있어야 해요.

제가 처음 활동을 시작할 때 제가 가진 유일한 노출 창구는 길거리였어요. 저는 각기 다른 크기의 이미지를 만들었고, 어디가 작품을 배치하기 좋은 곳인지 알아봤죠. 그래서 모든 뉴욕시 횡단보도 박스의 램프 베이스 사이즈에 딱 맞는 스텐실을 만들어서 보일 때마다 그리고 다녔어요. 제게 맞는 공간을 찾아낸 거죠. 그 도시에서 길을 걷는 사람들은 누구나 봐야 하는 곳이었으니까요. 캔버스든, 메타버스든, 인스타그램이든, 어디든 본인의 작품이 관객들과 연결될 최고의 장소를 찾아내야 한다는 거예요.

그 장소를 찾아냈다면 이제 계속해서 끈기 있게 해나가야죠. 많은 사람들이 인터넷에서 하루아침에 성공한 것처럼 보이는 사람들을 보고, 성공이라는 게 되게 금방 얻어지는 줄 알거든요. 그러면 조바심이 생기죠. 하지만 저는 제 작품이 처음 주목받기까지 5년이 걸렸어요. 하지만 그 기다림은 가치가 있었죠. 많은 사람들이 인내심이 없어서 하던 걸 엎고 다시 시작하고, 엎고 또 다시 시작하곤 하는데, 그러면 제대로 주목을 모을 만한 한 세계관의 작품 임계량에 도달하지 못해요. 그러니까 결론은 특별한 목소리를 가지고, 전략적으로, 끈기 있게 하세요.

아직 공개되지 않은 새로운 프로젝트에 대해 미리 알려줄 수 있나요?

지금 독일 뮌헨에 있는 길거리에 어마어마하게 큰 벽화를 그리고 있어요. 기후 변화와 지구 온난화 그리고 화석 연료 사용 중단 필요성에 대한 작품이에요. 폭이 120 미터 정도 되고, 높이가 6미터 정도 됩니다. 아직 공개되지 않은 프로젝트예요. 그리고 오는 9월 미국 텍사스 달라스에서 또 다른 전시회를 진행할 예정입니다. 아주 큰 규모의 전시가 될 거예요.

더 보기

이전 글

양홍원 인터뷰: 너네 준비됐어?
음악

양홍원 인터뷰: 너네 준비됐어?

“너네 준비됐어.”

호미들 인터뷰: 새 출발을 알린 죽마고우들
음악 

호미들 인터뷰: 새 출발을 알린 죽마고우들

“우리의 정점은 아직 오지 않았다.”

비비 인터뷰: 태도가 작품이 될 때
음악 

비비 인터뷰: 태도가 작품이 될 때

“비비는 당신의 거울이에요.”


아이앱 스튜디오, 2023년의 마지막 캡슐 컬렉션 룩북 공개
패션

아이앱 스튜디오, 2023년의 마지막 캡슐 컬렉션 룩북 공개

브랜드 최초의 체크 셔츠재킷 포함.

트레메인 에모리, 버질 아블로의 '파이렉스 비전' 부활시킨다
패션

트레메인 에모리, 버질 아블로의 '파이렉스 비전' 부활시킨다

슈프림의 디렉터, 데님 티어스의 파운더가 나섰다.

샤오미, 생각으로 가전 기기 조종하는 '미구 헤드밴드' 공개
테크

샤오미, 생각으로 가전 기기 조종하는 '미구 헤드밴드' 공개

초능력자가 된 기분 아닐까?

'GTA 6' 맵 크기는 '레데리 2' 수준으로 어마어마하다?
게임

'GTA 6' 맵 크기는 '레데리 2' 수준으로 어마어마하다?

세컨드 맵까지 존재한다고?

킴 카다시안 & 피트 데이비슨 커플이 결별했다
엔터테인먼트 

킴 카다시안 & 피트 데이비슨 커플이 결별했다

9개월의 열애 끝에.

뉴발란스 1906R이 두 가지 새로운 라인으로 출시된다
신발

뉴발란스 1906R이 두 가지 새로운 라인으로 출시된다

하세가와 아키오가 연출한 화보.


만화 '원피스' 발행부수 5억 부 돌파, 기네스 세계 기록 갱신하다
엔터테인먼트

만화 '원피스' 발행부수 5억 부 돌파, 기네스 세계 기록 갱신하다

역대급은 역대급이다.

코리안 럭셔리카의 상징, 현대자동차 ‘그랜저’ 연대기 들여다보기
자동차

코리안 럭셔리카의 상징, 현대자동차 ‘그랜저’ 연대기 들여다보기

1986년부터 출시된 역대 그랜저를 모두 한자리에.

영화 '배트걸' 전면 폐기에 대한 주인공의 반응은?
엔터테인먼트

영화 '배트걸' 전면 폐기에 대한 주인공의 반응은?

“#Batgirl for life!”

애니메이션 '체인소 맨' 새 예고편과 함께 방영 시기 발표
엔터테인먼트

애니메이션 '체인소 맨' 새 예고편과 함께 방영 시기 발표

드디어 등장한 체인소 맨의 모습.

HBX의 '메종 키츠네 캠핑백' 무료 증정 이벤트
패션

HBX의 '메종 키츠네 캠핑백' 무료 증정 이벤트

팔지도 않는 레어템.

More ▾
 
뉴스레터를 구독해 최신 뉴스를 놓치지 마세요

본 뉴스레터 구독 신청에 따라 자사의 개인정보수집 관련 이용약관에 동의한 것으로 간주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