레 벤자민 인터뷰: 동양 문화를 서양에 전파하는 브랜드

‘East, Now’.

패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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벤자민 아이딘은 21세에 튀르키예, 이스탄불에 기반을 둔 콘템포러리 스트리트 브랜드, 레 벤자민을 설립한 이후로 지금까지 크리에이티브 디렉터로 활동하고 있다. 많은 튀르키예 디자이너가 이탈리아, 파리 디자이너처럼 보이고 싶어 하는 것과 달리 그는 자신의 뿌리라 할 수 있는 동양 문화와 서양의 의복 제작 방식을 결합한 독특한 컬렉션을 선보이는 중이다. 레 벤자민의 브랜드 슬로건이 ‘East, Now’인 이유 또한 그 때문이다.

<하입비스트>는 한국, 서울에 방문한 벤자민 아이딘과 직접 만나 레 벤자민의 중심은 어디에 있는지, 왜 동양 문화에 주목하고 있는지, 레 벤자민의 이번 컬렉션과 다음 컬렉션은 어떻게 다른지 등에 관한 이야기를 나눴다.

먼저 <하입비스트> 독자에게 본인과 브랜드에 대한 설명을 부탁합니다.

레 벤자민의 설립자이자 크리에이티브 디렉터인 벤자민 아이딘입니다. 독일에서 태어났고 2001년에 이스탄불로 이사했어요. 레 벤자민은 튀르키예, 이스탄불에 기반을 둔 콘템포러리 스트리트 브랜드입니다.

레 벤자민은 ‘East, Now’라는 슬로건을 내세우고 있어요.

레 벤자민은 2011년에 시작됐어요. 당시 저는 티셔츠와 후디를 만들었어요. 그런데 주위를 보니 많은 튀르키예 디자이너가 이탈리아, 파리에서 시작한 브랜드처럼 보이고 싶어 하더라고요. 튀르키예 자체 문화를 다루는 브랜드가 어디에도 없는 거예요. 저는 동양의 양식과 미국 스트리트웨어를 합치고 싶었어요.

왜 스트리트웨어 브랜드를 설립했나요?

파리에는 피갈이, 암스테르담에는 파타가 있듯이 이스탄불에는 힙합 문화에 영감을 얻은 레 벤자민이 있는 거죠. 어린 시절에 힙합 문화를 좋아했어요. 스트리트 문화도요. 모스 뎁, 맙 딥 같은 아티스트를 들으면서 자랐어요.

가장 큰 영향을 끼친 동양 문화는 무엇이었나요?

독일에서 튀르키예로 이주한 이후로 항상 ‘제’ 문화가 궁금했어요. 제게 동양은 튀르키예에 국한되지 않아요. 튀르키예와 가까운 동양, 중동 먼 동양도 포함돼요. 제게 영감을 준 것 중 하나가 실크로드였거든요. 실크로드는 옛날 인스타그램 같아요. 문화가 퍼지는 방식 그 자체였죠. 모든 상인들이 최고의 상품, 새로운 물건을 가지고 국가에서 국가를 이어갔잖아요.

당신의 컬렉션에 동양은 어떤 방식으로 드러나나요?

제 브랜드의 모든 것이 동양에서 비롯됐어요. 레 벤자민의 모든 시즌을 디자인할 때 동양의 이야기를 담으려고 해요. 한국이 될 수도 있고, 몽골이 될 수도 있고, 튀르키예가 될 수도 있죠. 더 많은 동양의 이야기를 담고 싶어요. 그 방식 중 하나로 로컬 아티스트와의 협업도 꼽을 수 있겠네요.

아프리카, 모로코에서 촬영한 2022 SS 컬렉션 캠페인도 비슷한 이유겠네요.

맞아요. 모로코는 아프리카에 있지만 동시에 동양 문화권이거든요. 저는 독일에서 자랐기 때문에 서양의 생각 방식을 가지고 있어요. 제 심장은 동양권에 있고요. 동양에서 온 열정과 서양의 방법론이 결합되어 있죠. 두 가지가 합쳐질 때 여러 문화가 결합된 독특한 스트리트웨어가 탄생하는 거예요.

2022 SS 컬렉션 제목은 ‘서울 투 부산‘이었어요. 서울과 부산에 주목한 특별한 이유가 있어요?

당시 저는 사이클링에 대한 정보를 찾고 있었어요. 그러다가 서울에서 부산을 사이클로 일주하는 문화를 봤어요. 단순히 일주하는 것이 아니라 멈추는 곳마다 전용 여권에 도장을 찍어준다더라고요. 완전히 미쳤어요. 이 얘기가 엄청 흥미로웠고 그 뒤 각 정차지를 조사했어요. 그 정보를 분석하고 제 컬렉션에 적용했죠.

2022 FW 컬렉션은 경마 문화에 주목했죠. 배경이 궁금해요.

아랍의 말 그 자체와 경마 문화가 결합되어 있어요. 제 아내는 사우디아라비아에서 왔는데요. 아내가 고향의 거대한 경마 문화에 대한 이야기를 들려준 적 있어요. 많은 사람이 경마를 즐기고 심지어 경마 행사를 위해 옷을 특별히 제작한다는 거예요. 마치 멧 갈라처럼요. 미쳤죠.

아랍 문화권의 말 또한 제가 어릴 시절부터 영감이 됐어요. 9개월 정도 두바이에서 산 경험이 있거든요. 나폴레옹이 타고 있는 하얀 말이 아랍 말이라는 사실을 아세요? 아무도 모를 거예요. 저도 몰랐고요. 왜냐하면 아무도 저희가 사는 곳의 이야기를 하지 않으니까요.

그래서 저는 이번 시즌에서 아랍의 말과 관련된 문화와 서양의 의복 양식을 합쳤어요. 경마 이야기에서는 경주복이나 경주마와 관련된 기능적인 세부 사항 등을 스타일에 적용했어요. 아랍 문화와 서양 양식이 더해진 특별한 무언가죠. 2022년 12월 혹은 2023년 1월 쯤 나올 예정이에요.

이스탄불은 동양에 있지만, 유럽 생활 양식에 더 가까운 독특한 도시예요. 이러한 특징이 동서양을 고루게 바라보는 데에 도움이 되나요?

그 사실을 알고 있는 게 놀라운데요? 보통은 모르거든요. (웃음) 이스탄불은 말 그대로 경계 위에 세워진 도시입니다. 동서양이 합쳐져 있어요. 저도 독일에서 태어나 자랐고 이스탄불로 이주한 사람이고요. 예전에는 이 사실이 저를 괴롭혔어요. 독일에도, 튀르키예에도 소속되어 있지 않다고 느꼈죠. 그런데 사실은 두 특징을 동시에 가지고 있는 거였어요.

이 점이 제가 동서양을 동시에 바라보고 이해하는 데에 도움이 돼요. 이스탄불은 그러기에 최적의 도시고요. 이스탄불에서 바다 하나만 건너면 유럽의 끝을 만나요. 바다 건너에 유럽이 보여요. 아시아와 유럽을 잇는 다리 그 자체죠. 지금도 이스탄불은 제게 가장 매력적인 도시에요.

여러 인터뷰에서 ‘커뮤니티’를 강조했어요. 이유가 있나요?

커뮤니티는 서로 돕고, 축하하는데 그게 참 좋더라고요. 솔직히 패션을 좋아하는 사람들은 서로를 잘 안 도와요 하지만 스트리트 문화에서는 서로 돕고, 다 함께 무언가를 하죠. 이 점이 콘템포러리 스트리트 디자이너가 전통적인 패션 시스템을 따를 필요가 없는 이유라고 생각해요. 서로가 서로를 돕는 방식으로 패션을 새롭게 정의하고 있죠. 누군가 성장하면 저도 성장하고, 반대도 마찬가지예요. 이 점이 브랜드에게 커뮤니티가 중요한 이유죠. 제가 손을 누군가에게 내밀면 그 사람도 언젠가 제가 필요할 때 손을 내밀어 줄 거예요.

브랜드가 아닌 개인으로서는 어때요?

제게도 중요하죠. 패션을 시작하고 싶은 어린 친구들과 항상 메시지를 주고받아요. 이스탄불에서 활동하고 있는 디자이너들에게 멘토링도 제공하고 있고요. ‘카펫티즘’이라는 이름의 디스코드 채널에서 디자인, 사진, 웹 3.0과 같은 이야기를 논의 하기도 하고요. 이 채널에서는 67명 정도의 디자이너가 들어와 있어요. 그들이 디자인을 보여주면 저는 필요한 조언을 남겨줘요. 동시에 다함께 리서칭 프로젝트를 할 때도 있고, 무언가를 다같이 디자인할 때도 있고요. ‘카펫티즘’은 이스탄불에서 활동하는 유스 디자이너들을 돕고 다함께 무언가를 만드는 커뮤니티죠.

서로 돕는 것을 굉장히 중요하게 여기는 것 같아요.

제가 브랜드를 만들었을 때 아무도 제 손을 잡아준 적 없거든요. 사람들에게 도와달라고 요청했지만 모두 거절했어요. 혹은 질투했죠. 제가 디자이너가 되고 싶다고 하니까 다들 “응, 잘해 봐” 하고 손을 떼거나 “너무 어려운 길이니까 그냥 포기해” 같은 식이었어요. 저는 제가 알고 있는 모든 것을 다른 사람에게 알려주고 싶어요. 그러다 한 명이 저보다 잘 되면? 완벽하죠. 제가 그 거대한 사람을 도와준 거잖아요.

채널 이름이 ‘카펫티즘’인 이유는 당신이 카펫을 좋아하기 때문이겠죠. (웃음)

맞아요. 제 아버지가 카펫을 모으셨었어요. 그랑 바자라고 튀르키예에 가면 오래된 거대한 시장이 있어요. 거기에 카펫 숍이 엄청나게 많아요. 제가 21살 때에는 대체 왜 그렇게 많은 카펫 숍이 있는지 이해가 안 됐어요. 그래서 사람들에게 카펫을 디자인한다는 것이 대체 무슨 의미인지를 물어봤죠. 그랬더니 그 사람이 카펫은 사실 하나의 프레임이라고 말해주더라고요.

카펫의 끝은 프레임 그 자체이자 이야기의 시작이에요. 카펫 중앙의 패턴은 이야기고요. 카펫에 있는 꽃 패턴은 누군가의 정원이에요. 카펫에는 제 생각 이상으로 많은 의미가 있어서 더 찾아봤어요. 많은 양식이 각자 뜻이 있더라고요. 카펫을 만든 사람의 이름을 절대 적지 않는 신기한 문화도 있었어요. 누가 만들었는지 알 수 없으니 직접 그 의미를 찾아내야 하죠. 이 점이 제게 흥미로웠고 그 뒤로 카펫을 모으기 시작했어요. 그 영감을 레 벤자민에도 적용했고요.

나이키와 협업으로 에어 포스 1 로우를 디자인한 적도 있어요.

1백 개 한정으로 만들었어요. 스우시와 힐탭에 카펫의 패턴을 입혔죠. 저는 이걸 ‘카펫 스우시’라고 불러요. 10분 만에 매진됐어요. 저에게도 망가진 것 하나밖에 없네요.

나이키와의 첫 번째 협업은 2017년에 진행한 에어 맥스 97이었죠. 그때 기억은 어때요?

제가 밀란에서 패션쇼를 마치고 나서 나이키에서 편지를 받았어요. 제가 동양의 문화를 전파하고 있는 것을 봤다고, 본사에 와서 에어 맥스를 디자인해달라고 하더라고요. 저는 나이키를 엄청 사랑하거든요. 그때 여러 도시의 디자이너가 왔고 한국인 디자이너 신광도 있었어요. 나이키가 회사 바깥 디자이너에게 신발 디자인을 맡긴 최초의 사례라고 하더라고요. 당시에도 저는 동양과 서양의 만남을 기초로 신발을 디자인했어요. 에어 맥스 97과 베이퍼맥스를 합치고 카펫 패턴을 더했죠.

2023 SS 시즌에 관한 힌트를 줄 수 있나요?

지난 시즌과 크게 다를 거예요. 엄청난 변화가 있어요. 사실 저 개인의 지금과 레 벤자민의 지금이 가끔 일치하지 않을 때가 있어요. 제가 좋아하는 것을 브랜드로써 소개하지 못할 때가 있죠. 이번 컬렉션은 제가 원하는 것들로 가득 채웠어요. 굉장히 미래적인 것들로요. 레 벤자민에서는 시도한 적 없는 것들이죠. 일반적으로는 전통문화에서 영감받은 것들을 소개해왔으니까요. 그것들도 충분히 멋있지만, 다음 컬렉션은 미래와 동양 요소가 섞인 것들이에요.

레 벤자민의 핵심은 어디에 있나요?

우리 자신에게 솔직해야 해요. 저희는 현재 1백20 명의 직원이 일하고 있는데도 가끔은 저를 도와줄, 제 비전에 맞는 사람을 찾는 것이 어려울 때가 있어요. 그렇기 때문에 팀과 관계를 형성하는 것은 정말 중요하죠. 커뮤니티와의 관계도 마찬가지고요. 하지만 그와 동시에 컬렉션을 디자인하기 위해서는 오로지 저 혼자만의 시간도 필요해요. 그런 의미에서 제 자신에게, 저희 스스로에게 솔직해야 해요.

두 번째로는 동양 문화에 대한 조사입니다. 그들의 이야기를 듣고, 대화하는 것이 중요해요. 세상은 변하고 있어요. 더 많이 대화해야 해요. 저가 레 벤자민의 크리에이티브 디렉터이자 디자이너지만, 가끔은 커뮤니티가 레 벤자민을 디자인하도록 내버려 둬야 할 때도 있어요. 레 벤자민은 저에 대한 브랜드가 아니에요. 우리에 대한 것이죠. 세상도 그렇게 개인이 아니라 우리가 중요한 곳으로 바뀌고 있다고 생각해요. 그게 미래에요. “내가 최고야”, “내가 제일 대단해” 이런 태도가 먹히던 세상은 끝났어요. 스트리트 컬처에서 경쟁은 중요한 요소지만, 이제는 필요 없어요. 특히 유스들에게는요. 그들은 함께 하길 원하고, 함께 축하하길 원해요.

마지막으로 <하입비스트> 독자에게 한 마디 남긴다면?

더 많은 대화를 통해 서로를 이해할 필요가 있다는 말을 남기고 싶어요. 패션 브랜드와 사람들은 서로 다리를 놓아야 할 책임이 있습니다. 특히 지금 같은 세상에서 더 그래야 해요. 서울과 이스탄불의 다리를 놓는 것도 마찬가지고요. 문화적 다리를 만드는 것은 매우, 매우 중요하다고 생각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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