절대 받고 싶지 않은 밸런타인데이 선물 7
래퍼, 디자이너, 비디오그래퍼 등의 ‘원픽’은 초콜릿.

매해 밸런타인데이에 연인들은 사랑하는 마음이 듬뿍 담긴 선물을 주고받는다. 하지만 마음이 담겼다고 모두 이상적인 선물은 아니다. 달콤한 케이크는 누군가에게 처치 곤란한 음식물이 되고, 애초에 누군가에겐 이런 ‘특별한 하루’ 자체가 부담으로 느껴질 수 있다. 이렇듯 제각기 다른 성향 때문에 선물 구매를 망설이는 사람들을 위해 <하입비스트>가 다양한 분야에서 일하는 7명의 남성에게 ‘받고 싶지 않은 선물’을 물었다. 참고로 사전 조사 결과 ‘오직 초콜릿’은 무려 1위였으니 초콜릿만 준비하는 것은 지양하자.
독한 향수
학창 시절 남자애들이 “비싼 거 쓴다”라며 뿌리던 향수에서는 주로 독한 향이 났다. 그 향수를 빌려 내 몸에 뿌려보면 왠지 어른이 된 듯한 신비로운 느낌이 들었다. 그렇다고 그 향이 어울렸다는 뜻은 아니다. 어른 남성의 ‘스킨 향’이 내게서 풍겨져 나오는 모습은 참으로 어색했다. 그때는 어른이 되면 자연스레 몸에서 독한 향수가 어울릴 줄 알았는데, 23살이 된 지금도 내게 그 향은 그저 알코올 냄새로만 느껴진다. 머드 더 스튜던트 (뮤지션)
옷
주변으로부터 옷 선물을 많이 받는다. 하지만 나는 내가 직접 만든 떠그클럽 옷만 입는 병에 걸려있다 보니 선물 받은 옷에는 손이 잘 안 간다. 그 대신 내가 만든 옷을 다른 사람들에게 선물로 주곤 하니, 괜찮지 않을까? 떠그민 (브랜드 떠그클럽 대표)
단 음식
‘오다 주웠다’ 싶은 느낌을 주는 편의점 초콜릿 세트부터 달콤한 케이크까지, 단 음식은 아무래도 별로다. 편의점 세트에서는 정성도 느껴지지 않을뿐더러 엄마한테 먼저 받는 경우가 많다. 케이크는 밸런타인데이 기념으로 초를 불기 위해 받곤 하는데, 사실 나를 포함한 남자들 대부분은 초를 부는 행위에서 특별함을 느끼지 않는 듯하다. 그럴 바에는 밥이나 사주는 게 낫다. 더군다나 케이크는 한두 조각 먹으면 ‘이걸 어떻게 보관하지’ 싶은 생각부터 든다. 맥대디 (래퍼)
여자친구 취향의 옷
“자기야, 옷이 그게 뭐야? 안 어울리니까 이거 입어.” 얼핏 보면 ‘걸크러쉬’ 느낌의 여자친구 멘트 같지만, 그것도 한두 번이어야 즐겁다. 내 의사와 상관없이 여자친구가 원하는 스타일을 강요하는 옷 선물은 정말 받고 싶지 않다. 사실상 선물의 탈을 쓴 협박 아닌가. 그런 상황에서 “나도 입고 싶은 옷이 있다”라고 말할 수도 없다. 괜한 다툼을 만들지 않기 위해 고맙다는 말과 함께 받을 수밖에. 일방적인 선물은 선물이 아니니 어떤 선물이든 상대방의 의사를 고려했으면 한다. 서준 (브랜드 써저리 디자이너)
사정지연콘돔
밸런타인데이는 선물을 주고받는 날이지만, 누군가에게는 ‘19금 이벤트’를 위한 날이다. 내게도 그랬다. 특수 콘돔 세트를 받은 적이 있다. 돌기형, 스크루형, 발열젤 등 다양한 구성이었다. 나와 연인은 밸런타인데이의 흥분감과 함께 그중 하나를 사용하기로 했고, 끝나지 않는 밤을 기대하며 사정 지연 콘돔을 뜯었다. 정체를 알 수 없는 화이트 크림이 가득 묻은 콘돔을 착용한 나는 내 안의 남성성을 200% 가까이 깨웠다. 하지만 우리에게는 ‘뜨밤’ 대신 고요함이 찾아왔다. 사정 지연 크림이 들어있는 부분을 반대로 착용해 내가 아닌 상대방이 ‘사정 지연’된 것이다. “전신마취한 듯 아무런 느낌이 들지 않는다”라며 당황하던 상대방의 목소리가 아직도 생생하다. 그 뒤로 특수 콘돔 같은 선물은 받고 싶지 않다. 라픽 (비디오그래퍼)
특별한 하루
기념일에 큰 관심이 없다. 그렇다 보니 밸런타인데이라는 이유로 초콜릿을 주고받고, 멋진 레스토랑을 가야한다는 사실이 조금 부담스럽게 느껴질 때가 있다. 그저 제육볶음이 먹고 싶은 날일 수도 있지 않나. 임재린 (세이투셰 대표)
본오본 초콜릿
초등학교 시절 나는 여자애들에게 짓궂은 장난을 치는 부류였다. 자연스레 밸런타인데이 같은 기념일에는 본인의 ‘원픽’에게 주는 초콜릿을 감추기 위한 연막용으로 이용되곤 했다. 하지만 대기만성형 인간의 꽃은 늦게 피는 법이다. 6학년 밸런타인데이에 고백이 담긴 편지와 함께 문구점에서 1백 원에 팔던 본오본 초콜릿을 받았다. 그 주인공은 말괄량이 같은 매력을 뽐내며 남자애들의 맘을 흔들던 같은 반 여자아이였다. 그렇게 13년 인생 처음으로 여자친구라는 ‘변곡점’을 맞이한 나는 친구들에게 “여자친구가 생겼다”라고 떠들고 다녔다. 하지만 ‘여학우’를 괴롭힐 줄만 알던 나는 ‘여자친구’를 어떻게 대해야 할지 몰랐다. 그날 이후로 여자친구와는 눈만 마주쳐도 고개를 떨구고 말 한마디 직접 건네지 못하는, 친구보다 못한 사이가 됐다. 결국 참다못한 그 친구는 내게 “어디 가서 내가 네 여자친구라고 떠들고 다니지 마라”며 나를 떠났다. 그렇게 20살까지 내 인생에 여자친구는 없었다. 그 기억이 담긴 본오본 초콜릿, 다시는 받고 싶지 않다. 이상엽 (산산기어 디자이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