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최초 싱글 몰트 위스키’ 맛의 모티브는 제육볶음이다
쓰리소사이어티스의 마스터 디스틸러와 대표가 밝힌 ‘기원’.

코로나19의 범유행은 사회의 많은 것을 바꿨다. 국내 주류 시장의 흐름도 그중 하나다. 음식점에서 술을 마시는 것이 불가능했던 사회적 거리 두기 기간을 거치면서 집에서 술을 마시는 사람이 늘어났다. 2021년 롯데멤버스가 리서치플랫폼 ‘라임’을 통해 공개한 설문조사에 따르면 2000명 중 총 83.6%가 ‘집에서 술을 마신다’고 답했다. 코로나19 이전 기록인 40%와 비교하면 두 배가 넘는 수치다. 현대백화점 또한 2021년 와인, 위스키 제품 매출이 2020년 대비 418% 성장했다고 밝혔다. 이렇듯 집에서 자신이 직접 고른 술을 마시는 사람들이 늘었고, 자연스레 다양한 위스키에 대한 관심도 높아졌다.
한국 크래프트 싱글 몰트 증류소 쓰리소사이어티스가 지난 2021년 9월 출시한 싱글 몰트 위스키 ‘기원’에 많은 관심이 쏠린 것도 이 때문이다. 기원은 당화, 발효, 증류, 숙성 등 모든 생산 과정을 한국에서 진행한 최초의 국산 싱글 몰트 위스키다. 당시 출시된 ‘기원 소사이어티 컬렉션’은 적은 수량, 200ml의 소용량 등의 조건에도 국내외 위스키 마니아들의 많은 주목을 받으며 한국 싱글 몰트 위스키 시장의 포문을 열었다.
그리고 2023년 2월 쓰리소사이어티스가 기원 제품의 첫 번째 정규 배치 ‘기원1’을 출시했다. 기원1은 버진 아메리칸 오크에서 숙성돼 풍부한 오크, 캐러멜 향과 함께 스파이시한 여운이 남는 노트가 특징이다. 지난 에디션이 소용량이었던 것과 달리 ‘기원1’은 700ml로 출시돼 비교적 오래, 많은 양을 마실 수 있다.
최초는 항상 새로운 것을 전달하는 법이다. 그렇다면 쓰리소사이어티스의 마스터 디스틸러, 앤드류 샌드와 도정한 대표는 한국 최초의 싱글 몰트를 통해 어떤 것을 보여주고 싶었을까. <하입비스트>는 그들을 만나 ‘기원1’이 어떤 과정을 통해 태어났는지, 한국에서 싱글 몰트 위스키를 만드는 것은 어떤 의미를 가지는 지 등에 관한 이야기를 나눴다.
자기소개를 부탁합니다.
앤드류 샌드: 남양주에 위치한 쓰리소사이어티스의 마스터 디스틸러입니다. 1980년 글렌리벳 증류소에서 쿠퍼리지로 처음 위스키 커리어를 시작했습니다. 글렌리벳 증류소를 소유한 시바스 그룹의 여러 회사에서 경험을 쌓았고, 1991년에는 일본 니카 증류소에서 마스터 디스틸러로 일했습니다. 이후 2001년에는 스코틀랜드 스페이사이드 증류소에서 마스터 디스틸러와 마스터 블렌더를 겸직하며 위스키를 만들었습니다. 그뒤로 미국 버지니아 증류소, 윌리엄스 버그에 있는 코퍼폭스 증류소 등의 몰팅 시설을 디자인하고 설계했습니다.
쓰리소사이어티스는 어떤 증류소인가요?
앤드류 샌드: 쓰리소사이어티스는 한국 최초의 싱글 몰트 증류소입니다. 2020년 6월에 설립됐어요. 이름은 도정한 대표와 저 그리고 한국인 직원들이 상징하는 세 개의 사회를 뜻해요. 도 대표는 재미교포 사회를, 저는 스코틀랜드를, 한국인 직원들은 한국을 의미하는 거죠. 세 개의 사회가 함께 만든 증류소에요.
한국산 싱글 몰트 위스키를 만들게 된 계기가 있나요?
도정한: 제가 해외에 나갈 때마다 항상 싱글몰트 위스키를 가지고 나갔어요. 그러다가 한국에서 만든 싱글 몰트 위스키는 왜 없을까 싶더라고요. 좋은 품질의 싱글 몰트 위스키가 생산되면 한국의 술 문화를 바꿀 수 있을 거 같았어요. 술을 취하려고만 먹는 게 아니라, 사람들과 즐기면서 먹는 문화를 만들고 싶었죠.
최초가 어려운 건 전례가 없기 때문인데요. 한국에서 위스키를 만들겠다 다짐했을 때 가장 어려웠던 점은 무엇이었나요?
앤드류 샌드: 증류소를 지을 장소를 찾는 것이 가장 어려웠어요. 몇 년 동안 한국의 여러 지역을 돌아다녔죠. 질 좋은 지하수를 얻을 수 있는지가 가장 중요했어요. 좋은 물이 좋은 위스키를 만들거든요. 누군가가 저한테 증류소를 짓고 싶다고 하면 두 가지를 물어봐요. 돈이 얼마나 있는지, 지으려는 곳의 물은 어떤지(웃음).
남양주에 쓰리소사이어티스 증류소를 지은 건 좋은 물을 발견했기 때문이겠네요.
앤드류 샌드: 물도 좋았지만, 날씨도 중요했어요. 남양주는 겨울에는 햇빛이 잘 안들고 엄청나게 추워요. 반대로 여름에는 무척 덥죠. 이 과정에서 위스키를 담은 나무 캐스크가 팽창과 수축을 크게 반복하면서 위스키를 보다 빠르게 숙성해요.
그렇게 만든 기원 위스키가 어떤 맛과 향을 냈으면 했나요?
앤드류 샌드: 한국 음식과 유사한 느낌을 내려 했어요. 한국 음식은 주로 매운 주요리와 함께 여러 가지 반찬을 곁들어 먹잖아요. 기원 위스키도 스파이시한 노트를 중심으로 반찬 같은 여러 맛과 향이 동시에 났으면 했어요. 그러면서도 단맛이 느껴졌으면 해서 바나나나 바닐라 같은 노트를 더하기 위한 장치를 했죠.
도정한: 저희가 위스키에 어떤 맛과 향을 입혀야 할까 고민하다가, 백반집에서 제육볶음을 보자마자 “이거다” 싶었어요. 한국만의 매운맛이 있어요. 너무 맵기만 한 게 아니라 약간의 단맛이 들어가는 거죠. 그걸 재현하고 싶었어요.
요즘은 제품 디자인도 정말 중요하죠. 어떤 과정을 통해 기원의 디자인을 완성했나요?
도정한: 브랜드 이미지와 어울려야 하고 동시에 따라가기보다는 미래의 흐름에 가까워지고 싶었어요. ‘위스키’하면 어두운 방에서 남자끼리 얘기하면서 마시는 느낌이 있잖아요. 그런데 제가 요즘 위스키 바를 가면 여성분들이 대부분이더라고요. 7:3 정도? 그래서 디자인을 여성스럽게 만들어야겠다 싶었어요. 그리고 한국 최초니까 한국적인 요소가 들어가야 했고요. 그래서 전체 패키지를 보면 한국적인 요소가 많고, 내부에 홍경희 작가의 작품도 있어요.
기원 위스키는 어떤 위스키로 기억됐으면 하나요?
도정한: ‘이게 K-위스키다’라고 인식됐으면 해요. 3월부터 쓰리소사이어티스 증류소의 정식 투어를 시작하는데요. 사람들이 증류소를 둘러보며 한국 위스키에 대한 자부심을 느낄 수 있도록 꾸려보려 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