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문식, 미스치프, 말립이 광주로 간 까닭은?
세 사람이 자유롭게 해석한 ‘물’과 광주비엔날레.
2년마다 찾아오는 광주비엔날레. 특별히 올해 개최된 제14회 광주비엔날레는 참여 인물의 면면이 호기심을 자극한다. 그중에서도 디자이너 강문식과 미스치프, 그리고 말립의 이름이 눈에 띈다. 이들은 물방울이 서로를 끌어당기듯 자연스럽게 모여 각자 브랜드 아이덴티티, 공식 굿즈 디자인, 티저 음악 프로듀싱을 맡았다. 전시 오프닝 첫 주, <하입비스트>가 그들과 광주비엔날레를 함께 찾았다. 마감이 끝난 작업자의 홀가분한 출장과 무리하지 않는 당일치기 여행 그 사이에서, 세 사람이 전한 광주와 비엔날레에 대한 이야기를 담았다.
강문식(디자이너)
‘물처럼 부드럽고 여리게’는 도덕경의 한 구절입니다. 이 구절에서 출발한 광주비엔날레의 디자인 작업을 위해 어떤 방식으로 접근했나요?
사실 물에서 출발했지만 직접적인 물이 드러나지 않았으면 좋겠다고 생각했어요. 한번은 광주 영산강 물을 수집하러 가기도 했어요. 단순히 광주의 물이기 때문이 아니라 물의 포용하고 한결같은 속성, 다양한 생명체를 포함해 광주라는 도시의 역사를 묵묵히 지켜보면서 계속 흐르고 있다는 시간성에 주목해서요.
그런데 강물을 떠와서 비싼 현미경을 구해 들여다봤더니 뭐가 하나도 안 보이더라고요. 고여 있는 물을 떠왔어야 하는데 너무 맑게 흐르는 물을 떠온 거죠. 그밖에도 먹물이랑 화선지를 사서 별걸 다 했는데 뭘 해도 예쁘게 안나오더라고요. 글자를 넣는 순간 수묵화 비엔날레 같은 분위기로 보였어요. 그래서 배경이 아닌 글자에 좀 더 이야기를 만들어야겠다고 생각했어요.
완성된 결과물 속 숨겨진 의도나 효과 같은 게 있다면요?
메인 포스터의 어두운 색이 사실은 굉장히 다양한 컬러를 합친 색이에요. 전시를 보고 광주를 여행하면서 이 색깔이 눈에 걸려 디자인을 다시 돌아보게 되는 느낌 같은 게 있었으면 했어요. 그래서 비엔날레 본관에 설치된 포스터가 가장 어두운 바탕색이 되고 점점 섞여 있던 색들이 도시 전체에 걸쳐 화사하게 퍼져나가는 방식을 떠올렸죠. 광주 밖에서도 이 색들이 퍼지며 각자 다르게 쓰이기도 하고요.
글자는 물이 찼다가 마르는 시간대를 한 축으로 두고, 물방울이 서로 분리됐다가 다시 섞이는 움직임을 픽셀화한 텍스트로 변형해 표현했어요.
이숙경 예술감독과의 작업은 어떻게 기억하나요?
광주비엔날레 감독이 되면 광주를 어떻게든 해석해야 되는 미션이 주어져요. 그런데 이숙경 감독님은 오랜만에 선임된 한국인 예술 감독으로서, 무엇보다도 힘을 빼고 일정한 감도로 모든 것을 마무리해 끌고 가는 점에서 굉장한 자신감이 느껴졌어요. 음식과 비교하자면 누구나 좋아하고 잘 먹을 수 있는 멸치국수 같아요. 자극적인 음식은 오래 못 가거나 유행을 타기 마련인데 이번 비엔날레는 정말 좋은 육수 같은 느낌이에요. 사진을 위한 예쁜 고명을 만든 것도 아니고요.
개인적으로는 그분이 디자인에 대해 ‘좋다, 나쁘다’가 아니라 기존의 어떤 스타일을 보고 ‘세다’고 표현하신 게 기억에 남아요. 전 디자이너기도 한데다, 미술관과 일할 땐 그런 생각을 많이 해본 적이 없거든요. 그만큼 감도를 낮추면 좋겠다는 요청이 저에게는 가장 어려운 과제였어요.
그 과제를 어떻게 해결했나요?
출장 때문에 광주에 내려갔을 때 한 택시 기사님이 광주비엔날레에 대해 “내가 가서는 안 될 곳 같았다. 선뜻 가기 어려워 보인다.”라고 말씀하시더라고요. 거기서 전 미술이라는 것이 날카로운 담론을 다루더라도 비엔날레만큼은 시민들에게 편안하게 다가가려는 접근 방식을 가져야 하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강하게 들었어요. 그 기사님을 비롯해 광주에서 만난 여러 사람들의 의견을 계속 떠올리면서 그 ‘감도’의 기준으로 삼았어요.
약 1년간 준비한 전시를 실제 본 소감은요?
감독님이 애초에 ‘행성적 큐레이션’이라는 개념을 꺼내 저마다의 ‘로컬적’ 가치를 마치 하나의 행성처럼 놓고 그것들의 배치를 통해서 이야기를 구성하겠다는 취지를 설명하셨거든요. 관객이 되어 전시장에 들어가니 그게 어떤 의미인지 알 수 있었어요. 작품들이 도발적이고 자극적인 게 아니라 굉장히 편안했어요.
강문식에게 ‘목 디스크’ 말고도 광주비엔날레가 남긴 건 뭘까요?
이 작업물을 보면 자꾸 미묘하게 이상한 지점이 보이고, 그래서 간질간질한 느낌이 오는 게 좋은 것 같아요. 타이틀은 왼쪽 정렬, 행사 정보는 가운데 정렬, 장소랑 로고는 양쪽 정렬로 맞춰져 있어요. 저는 한 번도 그렇게 한 적이 없고 앞으로도 안 할 것 같거든요. 그만큼 제가 하지 않을 선택만 다 해본 것 같은 작업이에요. 광주에 계신 어떤 기획자 분도 이번 여행에서 만났더니 뭐가 이렇게 다 따로 노냐고 하시더라고요. 생각해 보면 저게 무의식적으로 반영된 ‘행성적 큐레이션’의 느낌일 수 있지 않을까(웃음).
미스치프 서지은(패션 디자이너)
프로젝트에는 어떻게 참여하게 됐나요?
강문식 디자이너가 제안했어요. 이번 비엔날레 디자인 전반의 개발 과정과 의미를 들려줬는데 광주라는 장소와 이번 행상의 방향이 잘 어우러지는 작업 같아서 흔쾌히 하기로 했죠. 그 이야기를 듣고 나서 저희가 참여했을 때의 ‘그림’이 쉽게 그려졌어요. 단순히 굿즈를 제작하는 것이었다면 그렇게까지 흥미롭지 않았을 거에요.
미스치프는 다양한 뮤지션은 물론 안은미, 구기정 등 아티스트와도 활발하게 협업하고 있어요. 이런 프로젝트를 진행할 때 어떤 점을 특히 고려하나요?
원래 아트와 제품 디자인의 경계를 두지 않는 편이에요. 그런데 막상 비엔날레의 굿즈를 만들자니 확실히 브랜드의 상업적인 제품과는 다르게 가야한다는 생각이 들더라고요. 결과적으로 봤을 때 그 두 가지를 융합한 재밌는 작업이었어요. 앞으로 디자인과 아트, 패션의 연결고리 역할을 더 제대로 할 수 있을 것 같아요.
작품의 메인 모티프인 협업 로고는 어떻게 구상하게 됐나요?
비엔날레 측에서 광주 시민들을 비롯해서 어린 학생들이 방문할 때도 쉽게 구매할 수 있게 디자인과 제품 아이템, 가격대까지 장벽을 확 낮췄으면 좋겠다는 말씀을 해주셨거든요. 그래서 티셔츠, 미니 백, 에코백 같은 기본적인 아이템으로 제품군을 구성했고, 주된 디자인도 미스치프와 비엔날레의 아이덴티티를 한눈에 보여줄 수 있는 함축적이지만 명확한 비주얼로 정했어요. 비엔날레의 주제인 ‘물’에 착안해 물방울이 서서히 움직이는 모양을 저희 롬버스 로고에 적용했는데 이 아이디어를 강문식 디자이너도 똑같이 떠올렸다고 하더라고요.
전시 작품을 관람하면서 자주 “예쁘다”고 말했어요. 본인의 취향에 맞는 작품이 많았나요?
‘예쁘다’는 건 제 주관적인 판단이긴 하지만 정말 그랬어요. 이숙경 큐레이터가 나랑 취향이 맞나 이런 생각도 들 정도로요. 작품들이 서로 다른 미감을 지녔음에도 통일성이 느껴졌어요. 패턴이 다양하고 컬러가 화려하거나 민속적인 소재나 기법을 쓴 디테일 속에서 오히려 시각적인 안정감이 있더라고요.
아무래도 광주가 상징적인 도시다 보니 가기 전까지 역사적인 관점이 강한 작품이 많지 않을까 했는데 실제로는 다른 것보다도 눈이 너무 즐거운 전시였고, 전체 비엔날레가 세련된 감각으로 구성됐다는 걸 깨달았어요.
그렇다면 가장 아름답다고 생각한 작품은 뭔가요?
장지아 작가의 <아름다운 도구들>이요. 다채로운 컬러나 핸드 크래프트 방식 등에서 앞서 얘기한 대로 이번 전시 특유의 민속적인 테마가 가장 깊숙이 느껴진 작품이었어요. 콜라주나 아플리케를 활용하는 기법, 아이템을 해체해서 다시 이어 붙이고 자투리 원단으로 태피스트리를 만드는 방식 등에서 저희가 예전에 했던 작업이 떠오르기도 했고요.
또 그 작품이 이렇게나 기억에 남는 이유는 음악을 굉장히 효과적으로 사용했기 때문인 것 같아요. 미스치프를 운영하면서도 옷 다음으로 음악을 굉장히 중요하게 여기고 있거든요. 제품을 공개할 때나 행사를 진행할 때 항상 그에 맞는 음악을 제작해서 공개해 왔고요. 우리가 제작한 음악도 이렇게 직접 체험할 수 있게끔 전달하면 어떨까 싶기도 했어요.
광주비엔날레 방문을 계획한 사람들을 위한 여행 팁이 있다면요?
시간적 여유가 있다면 다른 기획전 및 국가별 파빌리온을 둘러볼 수 있도록 1박 2일 코스가 적당할 것 같긴 하지만 저희처럼 당일치기(약 10시간)로 다녀오더라도 충분히 알차게 보낼 수 있다는 걸 알려드리고 싶어요. 광주 현지분들이 왜 가는지 모르겠다고 말하던 떡갈비 골목이 있는데 저는 여행객이라 그런지 맛있게 잘 먹었어요(웃음). 그리고 여행의 마무리는 역시나 ‘인생 네 컷’이죠.
말립(프로듀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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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주는 처음 방문했나요?
10년 전쯤 광주에 음악을 틀러 자주 왔던 시기가 있어요. 그때 2014년 비엔날레 전시를 우연히 들리기도 했죠. 너무 오래전이라 가물가물하지만요. 그래서 이번 프로젝트를 맡으면서 행사의 배경과 맥락에 대해 공부하기도 했어요. 우리나라의 민주 항쟁의 역사부터 쭉 이어져오는 광주비엔날레의 명확한 기획이 다른 곳보다 훨씬 의미가 있다는 생각이 들었고, 저에게는 이런 점을 의식하고 전시를 보는 게 특별하게 다가왔어요.
그때도 전시관에 거시기 홀이 있었나요?
못 본 것 같아요. 이번에 처음 봤어요(웃음).
올해 비엔날레는 직접 참여한 만큼 여러모로 과거와 달리 오랫동안 기억에 남을 것 같은데요. 이번 전시에서 가장 좋았던 점은 뭔가요?
비엔날레처럼 큰 규모의 전시를 보면 많은 양의 작품을 한 번에 보게 되잖아요. 그 모든 작품을 한 번에 본다고 하면 부담스러울 수 있는데 그 시간 동안 나름대로 소화할 시간을 가질 수 있는 건물 구조가 마음에 들었어요. 그리고 호랑가시나무 아트폴리곤의 비엔날레 전시도 추천하고 싶어요. 큐레이터 분이 꼭 가보라고 하셔서 들린 곳인데 옛 선교사 마을에 위치한 고즈넉한 공간이었어요. 광주 곳곳에서 크고 작은 전시가 진행된다는 것을 꼭 언급하고 싶어요.
강문식 디자이너와 평소 자주 작업하잖아요. 이번 작업은 어떤 점이 달랐을까요?
강문식 디자이너와 알고 지낸지는 오래 되었지만 이번처럼 외주 작업을 함께 한 건 처음이었어요. 그래서 오히려 이 작업을 계기로 앞으로 지속할 수 있는 우리만의 시스템을 만들게 된 게 개인적으로는 더 큰 발견이에요. 다른 사람과 협업할 때보다 둘만 통하는 뉘앙스가 확실하니까 단순히 일을 하기 편한 것 이상으로 결과물도 더 만족스럽고요. 물론 우리가 최종 결정자는 아닐지라도요.
전시 타이틀 ‘물처럼 부드럽고 여리게’를 음악적으로 어떻게 해석했나요?
처음에는 ‘물’이라는 키워드만 듣고 당연히 물이 수직 낙하하는 형상 정도만 떠올렸는데 콘셉트가 갈수록 구체화되면서 물이 산발적이고 불규칙적으로 퍼지거나 튄다는 특성에 꽂히게 됐어요. 그래서 사운드 역시 한 방향이 아니라 좌우나 앞뒤로 이동 가능하다는 생각을 하며 배치했어요.
그리고 이번엔 주노 신시사이저 하나로만 작업을 했는데 소위 플러그인이라고 하는 컴퓨터 소프트웨어를 사용하지 않고 하드웨어 이펙터만 썼어요. 앞서 언급한 물의 무작위성에 조금이나마 더 가깝게 만들려고요.
공개한 트랙을 ‘광주비엔날레 미스치프 협업을 위한 음악’이라고 명명했어요. 다른 제목을 붙인다면 무엇으로 짓고 싶나요?
1분짜리 곡의 제목은 <패턴 없는 패턴>이라고 짓고 싶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