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민훈 인터뷰: 인디펜던트 워치메이커

독립 시계 제작자 유민훈을 만났다.

미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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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민훈을 만났다. 그는 자신을 독립 시계 제작자, 인디펜던트 워치메이커라고 소개하며 독립 시계 제작이란 ‘이름을 걸고 자기표현을 타임피스에 녹여내는 과정’이라 설명했다. 그래서 계속 만들고 있고, 이 작업을 계속하고 싶다는 유민훈에게 독립 시계 제작과 그의 철학, 목표 등에 대해 물었다.

독립 시계 제작자로 활동하게 된 계기가 궁금하다.

처음에는 가구 제작자가 되려고 했다. 대학 시절 학과 선배들이 가구를 조각처럼 만드는 모습을 어깨 너머로 많이 봤거든. 그들 중 제작, 전시, 판매의 과정을 매끄럽게 잇는 소위 ‘풀타임 아티스트’ 선배들이 있었다. 그들의 작업 흐름을 살펴보면 결과를 도출하는 방법론이 보였다. 나는 그 방법론을 독립 시계 제작에 가져왔다. 조형과 순수 예술은 시계 제작보다 자유도가 높다. 하지만 그것이 새로운 것을 해야만 한다는 강박처럼 다가오기도 했다. 그러던 중 독립 시계 제작에 관심을 두게 됐고, 기술적 숙련도를 쌓아가는 과정이 즐거워 본격적으로 빠져들었다.

선배이기도 한 현광훈 워치메이커와의 인연을 설명해 준다면?

현광훈 작가와 나는 학과 조교와 재학생으로 처음 만났다. 군대를 전역하고 돌아오니 수업을 진행하고 계셨다. 금속 가공에 대한 강의였다. 수업에서 기본적인 기계를 다루는 법을 알려주시기도, 관련 다큐멘터리를 자주 보여주기도 하셨다. 지금은 작업자로서 종종 교류한다. 가끔 풋살도 하고(웃음).

미술적 요소를 포착해 시계를 제작하는 과정이 눈길을 끈다.

미술을 전공했다 보니 남아있는 습관이다. 좋은 시각이라고 생각한다. 책을 보고, 영상을 보고 내게 다가오는 생각이 있을 때 그 생각들을 조합해 시계를 만든다. 지금껏 백남준부터 요스 드콕, 한국 전통 반닫이에 이르는 다양한 요소가 도움이 됐다. 철학가로부터 영향받는 때도 있다. 그들은 자신이 믿는 삶을 밀어 나가지 않나. 그들이 당대에 어떤 생각을 했을지 추측하며 작업하기도 했다.

여러 인터뷰에서 “정밀한 공정과 모호한 해석의 여지를 가지는 작품을 만들고 싶다”고 말한 것을 봤다. 이 표현을 좀 더 상세히 설명한다면?

고 백남준의 저서 <말에서 크리스토까지> 속 “모호하면 모호할수록 의미가 많아지고 풍요로워진다”라는 구절을 인용했다. 구상적 개념이 없는 것은 해석의 여지를 준다. 흔히 기계식 시계는 정밀함과 맞아떨어짐이 덕목처럼 여겨지나, 그것만이 돋보이는 타임피스를 만들고 싶지는 않았다. 대비되는 요소가 있을 때 더욱 흥미롭게 다가온다.

좀 더 넓은 범위의, 작업 전체를 아우르는 철학도 있나?

단어나 문장으로는 없다. 처음에는 ‘내가 하고 싶어서 한다’였다. 지금은 사람들이 용인할 수 있는 정도의 ‘감’을 염두에 둔다. 판매도 제작의 일부니까.

기계식 시계를 제작하며 특별히 신경쓰는 부분이 있나?

전체적인 밸런스. 프로젝트마다 내가 생각한 컨셉을 어떻게 다르게 풀어낼 수 있을지도 고민한다. 상황에 따라 매 순간 힘을 주는 부분이 다르다. ‘카브드 피스’ 프로젝트는 다이얼 제작에 가장 신경 썼다. 그리고, 제작자인 나 자신에게 집중한다. 내 스스로 납득할 수 있으면 다른 이에게도 설명이 되더라. 제작 중에 방향성에 대한 질문이 떠오를 때는 주변에 질문하기도 한다.

그렇다면 가장 좋아하는 시계는 무엇인가?

러시아 제작자 콘스탄틴 차이킨의 ‘시네마’. 재미있는 시계를 많이 만드는 워치메이커다. 그의 도록도 가지고 있고, 모스크바에 가서 만나기도 했다. ‘시네마’는 에드워드 마이브리지의 ‘달리는 말’ 모션픽처가 특징이다. 태엽이 두 개 있고, 감으면 슬라이드가 도는 형태. 무브먼트는 총 두 개다. 하나는 애니메이션을 구동하는 동력보로, 하나는 타임키핑 용도로 쓰인다. 컨셉, 제작 과정, 결과물 모두 흥미롭다. 브랜드 중에서는 바쉐론 콘스탄틴의 얇은 드레스 워치. 빈티지 모델을 눈여겨보게 된다.

2021년 공개한 ‘카브드 피스’는 일종의 드레스 워치라 설명한 적 있다. 의도가 있나?

작은 시계를 만들어 보고 싶었다. 주로 프로토타입 및 연습용으로 사용했던 ETA-6497 무브먼트는 큰 편이었다.

케이스백의 무브먼트가 눈에 띄었다.

범용 무브먼트를 사용하기도 하지만 결국 세심한 수정이 필요하다. 주로 폴리싱에 공들인다. 이 부분이 개인 제작자가 가질 수 있는 무기다. 빛이 반사되는 면을 다듬어 주면 다채로운 반사를 표현할 수 있다.

사용한 무브먼트가 ‘프쥬-7001’이라고 추측했다.

‘프쥬’는 스위스의 동네 이름이다. ‘프쥬-7001’은 프쥬에서 만든 7001번 무브먼트라는 뜻. 일종의 라벨이다. 프쥬-7001은 꽤 작은 무브먼트에 속한다. 이전에 사용했던 무브먼트는 ETA-6497. 지름 36.6mm 정도의 사이즈로, 남성 손목에 채울 수 있는 조금 큰 규격이다. 나는 작은 드레스 워치를 만들고 싶었다. 프쥬-7001은 23.3mm 정도의 크기다. 작은 무브먼트는 다른 공간을 추가할 수 있다는 강점이 있다. 남는 공간에 브랜딩을 새겨볼 수도 있고, 문페이즈, 캘린더도 추가할 수 있다. 유명한 시계인 ‘F. P. 주른 크로노미터 아 레조낭스’의 프로토타입도 프쥬-7001 무브먼트 두 개를 사용해서 개발됐다.

크기 외에 다른 장점도 있나?

안정적으로 작동하고, 수급도 쉽다. 보통 이 무브먼트를 채택한 브랜드 시계는 약 1백93만 원~2백58만 원(1천5백 달러~2천 달러) 선에 거래된다. 내가 만드는 시계는 약 2천3백만 원(1만8천 달러). 가격을 납득하지 못하는 사람들도 있겠지만 나는 핸드 피니싱에 많은 시간과 공을 들인다. 이렇게 1백, 2백 개를 만들어 팔면 말이 안 되겠지만 나는 10개 정도 만든다. 타협하기 어려운 부분이다.

최근 눈여겨보고 있는 워치메이킹 스튜디오는?

조슈아 샤피로의 워치메이킹 스튜디오. 미국 로스앤젤레스에 있다. 그는 워치메이커들에게 성경 같은 책인 조지 다니엘스의 <워치메이킹>이라는 저서에서 많은 영향을 받은 것으로 보인다. <워치메이킹>의 다이얼 파트 속 ‘기요셰’라는 패턴에 관한 언급이 있는데, 조슈야 샤피로는 연습 끝에 자신만의 제작법을 터득했다. 나도 조지 다니엘스의 책을 수없이 봤지만, 같은 뿌리에서 다른 결과물이 도출되는 것이 재미있다. 최근 자신의 무브먼트를 직접 제작하는 것으로 보인다.

앞으로 제작하게 될 시계에 대해서 힌트를 줄 수 있나?

골드 프레임에 인하우스 무브먼트를 채택한 타임 온리 시계. 이제는 여유가 생겨서 무브먼트를 직접 제작해 시계를 완성하고 싶다.

어떤 사람이 유민훈이 만든 시계를 착용할지 생각해 보기도 하나? 더불어, 커스터마이징도 가능한가?

생각해 본 적 없다. 커스터마이징도 진행하지 않는다. 커뮤니케이션도 시간을 쓰는 과정이니까. 그 대신 개인적으로 소모하는 시간이 늘더라도 내가 구현하고자 하는 것을 현실화하고자 한다. 지금 하는 것은 내가 만들고 싶은 조각품을 만드는 것에 가깝다. 사고 싶은 사람은 살 거다.

현재 주요 고객의 성향이나 연령대는 어떻게 되나?

미국에서 많이 주문한다. 지금까지 한국 고객 한 명을 제외하고는 거의 캘리포니아나 뉴욕에서 연락이 왔다. 나는 주문이 들어오면 전화로 이야기를 나눠본다. 부티크에 접수한 게 아니고 내가 좋아서 찾아오신 고객이니 초기 커뮤니케이션 과정을 거치는 것이다. 대화하며 받는 조언에 감사함을 느끼기도 한다.

아웃캐스트의 안드레 3000을 만나기도 했다.

우연히 성사된 만남이다. 안드레 3000이 일본과 한국 여행을 잠깐 왔는데, 일본 호텔에서 아침에 TV를 보다가 <CNN>에 내가 출연한 모습에 흥미를 느끼고 방문하게 됐다더라. 꽤 많은 이야기를 했다. 사진도 찍었고. 즐거운 바이브를 가진 사람이었다.

궁극적으로 어떤 워치메이커가 되고 싶은가?

내가 보여주고 싶은 프로젝트를 위해 작업하는 워치메이커. 사실 프로젝트를 위해서는 돈이 필요하다. 그런데 그것만 쫓으면 내가 하고 싶은 것을 잃는다. 뱀처럼 꼬리를 무는 돈과 작업 사이에 자유가 있다. 내가 표현하고 싶은 것에 무게를 둘 생각이다. 균형을 찾으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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