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센스 & 김수철 인터뷰: ‘가난한 마음을 담은 음악이야말로 최고의 음악이에요’
이센스와 한국 대중음악사의 ‘작은 거인’, 김수철이 나눈 대담.
이센스 & 김수철 인터뷰: ‘가난한 마음을 담은 음악이야말로 최고의 음악이에요’
이센스와 한국 대중음악사의 ‘작은 거인’, 김수철이 나눈 대담.
이센스: 오늘 선생님께선 저와 함께 ‘DMZ 피스트레인 뮤직 페스티벌’에 참여하게 된 것을 계기로 제 합주 현장을 지켜보셨어요. 제 첫인상은 어땠습니까?
김수철: 머리가 없구나 싶었고, 끼가 있는 게 보였어요. 그리고 합주를 시작할 때 첫 소리를 들으면 본인이 음악에 심취해서 하는 건지 딱 보이는데, 시작부터 끝까지 초지일관 괜찮았어요.
이센스: 합주가 끝나면 개인적으로 여쭤보고 싶었던 질문이 있었어요. 그런데 연습이 끝나고 나서 선생님께서 “재밌지? 그거면 된 거야”라고 말씀했는데 그게 이미 그 질문의 답이 된 거 같아요. 아무튼 전 지금까지 음악을 20년 넘게 하면서도 종종 음악을 안 하고 싶다고 느꼈어요.
김수철: 많이 느끼지 않았어요? 첫째는 내가 좋아하는 것과 현실의 격차가 커서, 그리고 두 번째 심지어 내가 좋아하는 게 대중성이 상대적으로 없는 거다 보니 부딪히는 지점이 많아져서. 그런데 또 사회의 관심은 대부분 돈이 되는 쪽으로 가 있어요. 그러니 저처럼 음악 하는 사람에겐 기회도 잘 오지 않았고, 조건도 좋지 않았죠. 저도 그럴 때 힘들었어요.
이센스: 그럼 궁금한 게 있습니다. 노래를 만드는 과정에서 전 이런 ‘파괴’가 왔었거든요. 저는 제 취향대로 음악을 하는데, 막상 그렇게 하면 사람들이 많이 듣질 않더라고요. 그런데 또 제 취향을 버리고 한 건 결과가 좋았고요. 그래서 한때는 취향은 취향일 뿐이고 결국엔 음악을 하는 사람은 ‘프로’로서 사람들에게 접근해야 하는 건가 싶었습니다. 특히 ‘젊은 그대’가 히트하셨는데, 그 노래는 회사의 강압적인 요구에서 비롯된 노래였나요?
김수철: 자꾸 요구를 하긴 하는데, 내가 말을 안 들었죠(웃음). 그리고 사실 그 누구도 대중성을 알진 못해요. 그건 잘 되고 난 다음에 하는 거짓말이지. 대중을 겨냥하고 하는 사람은 아무도 없어요. 자기가 좋아하는 걸 하다가 그중에 사람들이 좋아하는 게 있을 뿐이죠. 당장 스티븐 스필버그도 영화를 노리고 하는 게 아니라, 본인의 철학대로 한 작품 중 몇 개가 많은 사람들에게 와닿은 거로 생각해요. 저 역시도 제가 좋아하는 거 중 하나가 잘 된 거지, 음악을 대중적으로 만들려고 작정한 적은 단 한 번도 없었어요.
이센스: 깜짝 놀란 게 전 선생님 이름도 모르던 꼬맹이 때부터 ‘젊은 그대’를 알았고, 그게 대중성의 끝 아닐지 생각했거든요. 그러니까 한 시대를 지배한 노랜데, 그렇게 말씀하시니 약간 ‘파괴’가 오거든요.
김수철: 지금까지 제 음악이 잘 됐을 시기에만 인터뷰하게 돼서 그렇게 느끼는 거지, 전 돈 안 되는 음악을 더 많이 했어요. 앞서 언급한 ‘젊은 그대’가 나오기 전에도 7 ~ 8년은 고생하며 보냈으니까요. 당시 조건은 아마 지금 랩 하는 분들과 비슷했을 거예요. 그런 시기를 겪으며 포기할까 싶던 와중에 기회가 갑자기 찾아왔죠.
이센스: 반면 전 이런 걱정을 했었어요. 전 음악을 업으로 삼고 싶은데, 집에선 제가 늘 돈 한 푼도 안 되는 음악을 한다고 걱정하더라고요. 그래서 (이것도 내 직업일 뿐이다, 생각하며) 내 능력 있는 그대로 순수하게 발휘하고, 동료와 함께하면 좋은 결과가 나올 수도 있겠다 싶었죠. 그런데 막상 그렇게 해보니까 그 안에서 저 자신이 없어지고, 정신적으로 힘들어지더라고요. 돈이 벌리든 말든 간에요.
김수철: 어느 아티스트에게나 본인과 합이 잘 맞는 사람이 있고, 그렇지 않은 사람도 있어요. 만약 자신과 안 맞으면 그건 헤어져야 해요. 그런데 막 헤어지지 못하죠.
이센스: 도장이 찍혀있으니까요.
김수철: 도장? 아 우리 땐 말로 했지. 그래도 금방 못 헤어져요. 그게 힘든 거예요. 헤어질 준비만 한 1~2년 걸리는 거지. 그러면서 시간은 흐르고, 본인의 음악은 아직 세상에 제대로 나오지도 않았는데 자기들끼리 부딪히는 거죠. 그러다 결국 음악을 들고 사회에 가면 사람들은 수익성만 논하죠. 그러니까 환장하죠.
이센스: 한때 전 친구와 “생각해서 될 거면 내가 빌보드 1위를 100번 했고, 이 세상에 스타가 아닌 사람이 누가 있겠냐?”라는 이야기를 하곤 했어요. 결국 사람들에게 보이게끔 하는 건 비즈니스의 영역이고, 전 할 게 똑같더라고요. 음악 만들고, 공연하고. 그런데 제가 사람들의 반응을 의식해서 고민하고, 스스로 의구심도 느끼면 사람들이 그 사실을 기가 막히게 알아차리더라고요. 그럼 그건 결국 대중성을 계산해서 대실패한 거잖아요. 그래서 이제 계산은 이제 아무 의미 없고, 숫자에도 아무런 연연을 하지 않겠다는 생각을 해요.
김수철: 원래 대중이 젤 무서워요. 누가 가짜로 음악 하는지를 알아보거든. 그러니까 늘 진지하게 임해야 해요. 래퍼도, 아이돌도, 발라드 가수든 다 똑같아. 아무튼 이센스도 고생 많이 했지?
이센스: 고생 좀 했는데 선생님 말씀을 듣고 편견이 좀 사라졌어요. 지금까지 전 아이돌 연습생 시스템 등이 생기고 나서 지금의 엔터테인먼트 산업이 공장화됐다고 오해했거든요. 전 이런 이분법적인 생각 속에서 자라왔어요. 아무리 장르 구분이 있다고 해도 모두가 이 바닥에서 다 같이 올라오는 게 아니라, 마치 잘 되는 건 그 시스템이고 고생하는 건 그냥 진심으로 음악을 하는 거라는. 그런데 말씀을 들어보니 선생님 젋으셨을 땐 더 힘들었겠더라고요.
김수철: 지금은 여러분이 음반을 직접 낼 수 있잖아. 그런데 우리 땐 지금과 달리 법적으로 레코드 회사만 음반을 낼 수 있었어요. 그래서 과거엔 음반이 나왔으면, 그 사실만으로도 인정받은 거였죠. 그런데 그 과정도 힘들었어요. 녹음하고 싶어도 회사에서 이른 아침부터 여덟 곡 전부 녹음하라고 하면 다 불러야 했어요. ‘별리’, ‘못다 핀 꽃 한 송이’ 그런 곡도 다 그렇게 녹음했어요. 마찬가지로 랩도 녹음하기 전에 기분이 좋아야 하죠? 그런데 옆에 있는 관계자는 또 “야 빡빡아 빨리 해” 이런 식으로 말하고 있다고 생각해 봐요. 기분 나쁘잖아요. 그래도 우리는 그 타이밍을 놓치면 음반을 못 냈어요. 그러니까 죽기 살기로 하는 거예요.
이센스: 저도 과거에 아침부터 방송 대기 시간에 틈틈이 가사를 쓰고, 방송하고, 그 이후엔 또 다른 일정을 소화하고 그 뒤엔 바로 녹음해야 하는 식의 하루를 반복하곤 했어요. 그리고 회사에선 음반 발매 일자를 박아놓는 거죠. “이때 음반을 내야 하니까 한 달 만에 다 만들어야 한다”라고. 그런 식으로 하니까 정신이 나가는 거예요. 그런데 산업에서 요구하는 걸 하다 보니 절 우연히 알게 된 사람들도 제 음악을 듣게 하는 효과가 있긴 했어요. 아무튼 여러 ‘썰’을 들어보면 과거엔 고통스러운 일들이 정말 많았더라고요. 물론 그런 부조리는 없었으면 하지만, 선생님이 생각하시기에 그런 ‘담금질’이 음악의 재료가 되기도 했다고 생각하나요?
김수철: 원래 고생했던 게 다 자기 노래에 묻어나. 그게 자기 인생이고, 생각이고, 삶이니까요. 그래서 전 후배들에게 상처 대신 희망과 용기를 북돋아 주자는 마인드에요. 전 상처 많이 받았었거든요. 대학가요제에 나가서 기타로 음 하나를 쳤을 뿐인데 시끄럽다고 내려가라는 일도 두 번이나 겪었어요. 그래서 전 지금도 심사는 ‘서울가요대상’ 심사 위원장 하나만 해요. 거기선 밴드 상을 만들었어요. 유명세와 무관하게 잘 하기만 하면 누구나 받을 수 있는 상이죠.
그런데 그 상을 만드는 데 3년이 걸렸어. 모두 음원을 틀고 공연하는데, 실제 연주를 하는 밴드가 거기에 끼면 제작비가 올라가니 다들 안 하려고 했거든. 아무튼 어떤 역경이 있든 간에 후배들이 끝까지 잘 버텨줘야 해요. 언젠가 하다 보면 본인이 빛나는 순간이 오기 마련이거든요.
이센스: 음악을 하다 권태로울 때 어떤 시도를 해서 개운해진 순간은 없습니까? 마치 이건 기존과는 완전히 다른 다음 경지 같다고 느껴지면서, 대중에서도 반응이 나온 그런 전환점이 된 곡들 중 기억에 남는 게 있나요?
김수철: 지난 45년간 음악을 하며 시도를 정말 많이 했죠. 과거 돈 안 되는 국악으로 여러 실험을 해서 빚이 1억 원이 생긴 적이 있어요. 지금으로 치면 거의 10억 원이지. 그러다 돈이 없으니까 원맨밴드 형태로 만든 ‘정신차려’가 히트를 쳐서 빚을 갚게 됐어요. 그런데 그것조차 대중을 생각하고 만든 게 아니었어요. 더불어 살 생각은 안 하고 돈만 따지는 사람들에게 정신 좀 차리라는 메시지를 담은 곡이었죠.
이센스: 인기가 없었던 국악으로도 결국엔 좋은 성과를 내셨다고 들었어요. 국악은 어쩌다 갑자기 하게 됐나요?
김수철: 전 원래 록 음악을 주로 했어요. 그런데 문득 록은 서양의 음악인데, 우리의 음악은 어떤 것인지에 대한 질문이 생기는 거야. 그러다 대학생 때 친구들과 함께 한국 젊은이의 단면을 그린 <탈>이라는 영화를 만든 게 계기가 됐어요.
당시 그 작품을 프랑스의 한 청소년 영화제에 보냈어요. 그런데 그 영화가 덜컥 본선까지 진출한 거예요. 그런데 그때 영화 음악도 한국 젊은이를 대변할 수 있는 방식으로 작곡했어야 했는데, 국악을 모르니까 할 수가 없지. 그래서 찾아보니 교과서에서조차 우리 음악이 별로 없어요. ‘아리랑’ 정도가 전부지. 그때 국악을 연구해야겠다고 결심했죠.
그렇게 국악을 공부하면서 13년 동안 계속 망했는데, <서편제>가 100만 장 넘게 팔렸어요. 그런데 그다음 판을 내니 또 망했어요(웃음). 제가 지금까지 만든 히트곡이 12곡 정도 되는데, 모두 대중과 타협하지 않은 곡이에요. 내가 걸어온 길을 포기하지 않았고, 순간순간 타이밍이 맞아서 여기까지 온 거죠.
이센스: 전 그것과 겹친 부분도 있고, 아닌 부분도 있어요. 커리어 초반에 낸 믹스테이프는 혼자서 컴퓨터로 만든 거라 질도 높지 않았고, 사람들이 들어줬으면 하는 생각 자체를 안 했어요. 어차피 제 즐거움을 위해 만든 거니까요. 그런데 세상에… 그 믹스테이프가 세상에 나올 리가 없다는 생각으로 했는데, 정말 잘 됐거든요. 그런데 막상 기회를 잡으니까 힘들어졌어요. 마음대로 할 땐 행복했는데, 나중에 이름을 얻고 나니 그 위치를 유지해야 한다는 생각이 들더라고요.
김수철: 보통 가수들은 본인이 정상을 찍었다고 생각하게 되면 대중과 명예, 그리고 돈을 모두 다 잡으려고 해요. 우리가 산 정상에 오르면 다시 내려가야 하거든. 그런데도 다들 한 봉우리에서 다음 봉우리로 뛰어넘으려고 해요. 그런데 그건 불가능한 일이에요. 그 사실을 깨닫는 게 중요해요.
이센스: 마찬가지로 저 또한 “이 노래가 히트했으면 다음 곡은 이 정도로 히트해야 한다”라는 생각으로 살다가 제 첫 번째 앨범인 <The Anecdote>를 내게 됐어요. 의도했다면 절대로 안 냈을 앨범이에요. 완전 울거든요. “난 이 세상이 너무 힘들고, 난 어릴 때 이런 인생을 살았다”라는 식의 이야기가 담겼어요. 그런데 앨범을 내고 나니 옆 친구가 이러더라고요. “야, 작품 나왔다.” 그걸 듣고 전 “뭐가 작품이야, 이 지루하고 질질 짜는 걸 누가 들어”라고 얘기했죠. 그때까지만 해도 전 잘 되는 음악과 아닌 것을 구분하고 있었던 거죠. 그런데 그런 부끄러운 감정이 담긴 앨범을 내고 나니 사람들이 반응하는 거예요. 이 앨범을 계기로 제가 생각하는 건 의미가 없고, 대중들이 어떻게 생각할지도 계산할 수 없다는 걸 깨달았어요.
김수철: 그런 깨달음을 얻었다는 거 자체가 이센스가 생각이 깊다는 뜻이에요. 그 깨달음을 바탕으로 또 가사를 써요. 다만, 욕은 쓰지 말고요(웃음).
이센스: 그럼, 선생님께선 가사에 대한 영감을 어디서 받으시나요? 전 스물세 살까진 아르바이트나 막노동을 하다 남는 시간에 음악을 하곤 했었어요. 그땐 당연히 삶의 현장감이 드러날 수밖에 없었죠. 그런데 스물네 살부터는 음악에서 나오는 돈이랑 공연으로만 먹고살게 됐어요. 그러면 감사한 마음으로 음악을 하면 되잖아요? 그런데 그때 친구랑 이런 얘기를 했어요. “어렸을 땐 일하고 들어와서 겪는 걸 적었는데, 지금은 내 안에서 모든 걸 꺼낸다면 ‘난 스튜디오에서 음악을 만든다’에서 이야기가 끝나는 거 아니냐”고요. 선생님께선 가사나 음악의 영감이 자기 자신이라는 사람 안에 다 있는 건가요?
김수철: 모든 가사는 본인 안에서 와요. 여기서 중요한 건 내가 왜 여기에 있는지, 왜 이걸 하고 있는지에 대한 고민이에요. 그런 고민을 하기 위해선 쉬어야 해요. 쉬다 보면 나에게 부족한 게 무엇인지, 무엇이 혼란스러웠는지를 알게 되거든요. 그리고 세상사가 바뀌어도 삶의 태도와 자세는 변함이 없어야 해요. 그리고 그건 가난한 마음이 존재해야지 가능해요.
이센스: 그런데 가난한 마음이 정확히 어떤 걸까요? 저도 어렴풋이 겪고는 있는 거 같아요.
김수철: 돈이 많든 적든 간에 인간에겐 누구나 본연의 외로움이 있어요. 그 공통적인 본연의 외로움이 가난한 마음이고, 우리는 그걸 항상 들여다봐야 해요. 그게 바로 가난한 마음이고, 그런 마음을 표현한 음악이야말로 최고의 음악이에요. 한 장이 팔리든, 백만 장이 팔리든.
이센스: 뿌듯한 게 저도 비슷한 얘기를 한 적이 있어요. “야, 안 외롭기 위해 다 이 난리 치는 거 아니냐. 돈도 없어도 봤다가 의도 이상으로 벌어본 적도 있고. 그런데 가만히 보니 이건 궁상이 아니라 그냥 외로운 건데?”라고요. 음악도 결국엔 다른 사람들과 저를 묶어주는 거잖아요.
김수철: 그리고 그다음 단계는 본인이 외롭지 않기 위해 음악을 하는 게 아니라, 누구나 외로움을 맞이한다는 걸 깨닫고 서로를 보듬어 주는 거예요. 외로운 사람들끼리 따뜻한 밥 한 끼 같이 먹으면서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