젊은 거인, <오징어 게임> 시즌 2 음악 감독 정재일 인터뷰
“케이팝은 수준이 매우 높아져서 ‘이 정도까지 하는구나’하고 감탄할 때가 많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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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 대중음악사의 ‘작은 거인’이 김수철이라면 ‘젊은 거인’은 정재일이다. 음악 신동으로 소문이 자자했던 초등학교 시기를 지나 한상원 밴드, 언니네 이발관, 프로젝트 그룹 긱스로부터 홍상수의 ‘강원도의 힘’과 장선우의 ‘나쁜 영화’ 음악에 참여한 것이 불과 청소년 시기다. 김민기의 위대한 ‘공장의 불빛’ 프로듀서와 학전의 음악 감독 역시 정재일, 뮤지컬 ‘지저스 크라이스트 수퍼스타’의 음악 감독도 정재일, 솔로 앨범 ‘눈물꽃’과 더불어 한승석, 요조, 박효신 등 음악가들과 함께하며 족적을 남긴 인물도 정재일이다.
정재일의 음악은 깊고 넓다. 국악부터 머나먼 동유럽과 발칸 반도의 집시 음악까지, 인간의 역사와 감정을 담아내기 위한 도구를 찾아 나선다. 음악을 향한 구도의 순례와 험난한 여정은 예술가의 순수한 열정 아래 아름다운 영감으로 기억되어, 또 다른 소리로 영원히 문화의 역사를 써 내려간다.
정재일의 음악은 들리는 것을 넘어 보인다. 1970년대 한국 노동자들의 한이 서린 노래극 ‘공장의 불빛’부터 5.18 민주화 운동을 조명하는 ‘psalms’까지, 기술을 통달한 대가의 손길 아래 음악은 대한민국의 역사와 대한민국의 문화를 현현한다. 2008년 영화 ‘그녀는 예뻤다’를 시작으로 숱한 영화감독들이 그에게 러브콜을 보내며 영상의 힘을 드높이고자 한 것은 최선의 결정이었다. 그 중심에는 ‘옥자’부터 ‘기생충’, ‘미키 17’까지 이어지는 봉준호 감독과의 인연이 있다.
그리고 ‘오징어 게임’. 전 세계를 사로잡은 기괴한 생존 게임의 음악은 황동혁 감독과 더불어 음악 감독 정재일의 이름을 수많은 이들에게 각인했다. 처음 맡는 시리즈물, 작곡가들과의 합작, 누구도 기대하지 않았던 거대한 성공. 젊은 거인은 초연하다. 인터뷰 내내 정재일에게서는 어떤 들뜸도 보이지 않았다. 그는 겸손했다.
*주의* 본 인터뷰는 ‘오징어 게임’ 시즌 2의 스포일러가 담겨있습니다.
‘오징어 게임 시즌 2’가 2024년 12월 26일 전 세계 넷플릭스 플랫폼을 통해 공개됐습니다. 기분이 어떠신가요?
현재 ‘오징어 게임 시즌 3’을 작업 중이라 아직 완성본을 감상하지 못했는데요, 굉장히 시니컬한 김병극 믹싱 엔지니어가 정말 재미있다고 극찬 하더라고요. 보통 사운드 믹싱이 대사를 포함해서 최종 단계이기 때문에 저는 거의 90% 완성본을 봤다고 보시면 됩니다. 어떤 회차는 음악 없어도 충분히 재미있을 것 같다는 생각도 들고요. 성기훈이 복수를 이루려고 하는 장면 이라거나. 그러다가도 ‘음악 잘 넣었다’ 싶을 때도 있습니다.
넷플릭스 역사상 가장 흥행한 시리즈 1위와 3위에 ‘오징어 게임’이 자리하고 있습니다. 음악을 맡으신 정재일 감독님도 세계 시장의 주목을 받으며 함께 작업을 이어 나가고 있죠. 처음 작업 의뢰를 받으셨을 때가 궁금합니다.
황동혁 감독님의 팬이었어요. 모든 작품을 다 봤죠. 특히 ‘남한산성’ 같은 경우는 수십번을 돌려 봤던 기억이 납니다. 한국에 이런 연출가가 있었구나!’ 하며 감탄했어요. 그런 가운데 감독님께서 ‘오징어 게임’ 제안을 주셨을 때 ‘아이고 이게 무슨 횡재냐’ 싶어서 기뻤습니다. 실제로 만나보니 훌륭한 연출가의 덕목을 갖고 계신 분이셨습니다. 이야기도 너무 재미있었어요. 몇 권 짜리 책을 순식간에 읽으면서 ‘황동혁 감독님이 이런 글도 쓰시는구나, 굉장히 스펙트럼이 넓은 분이다’고 느꼈죠. 작품 한 편 나오겠다는 직감이 왔습니다.
정재일 감독님께서는 2008년 ‘그녀는 예뻤다’부터 ‘기생충’과 ‘브로커’, 곧 개봉하는 ‘미키 17’까지 다수의 영화 음악 작업을 맡으셨습니다. ‘오징어 게임’은 시리즈로는 최초인데요. 1시간 분량의 7편 에피소드의 음악을 만드시며 어떤 점에 집중하셨는지가 궁금합니다.
모든 음악의 목적은 작품을 돋보이게 하고 관객과 시청자에게 성공적으로 작품을 보여주기 위해 노력하는 것입니다. 아무래도 호흡이 기니까 좀 힘들었죠. 학습과 협업을 번갈아 가며 완성했습니다. 오래전 꼬마 때부터 알았던 김성수 작곡가와 그의 제자 박민주 작곡가가 시즌1에 이어 시즌2에도 참여 했고요. 제가 원래는 영화 작업을 홀로 진행하는데, 시리즈 전체를 관통 하면서도 에피소드 마다 새로움을 더하기 위해 이번에 처음 같이 해보게 되었습니다.
‘같이’하셨던 어떤 부분이 마음에 드셨나요?
저와 다른 결의 작곡가들이 참여 했기에 다양한 음악을 넣을 수 있어서 좋았고요. 잔인한 신의 음악을 김성수 작곡가가 많이 만들어주셔서 마음을 좀 덜 수 있었습니다. (웃음)
시즌 2에서 잔인한 신이라면 가장 먼저 떠오르는 장면이 ‘둥글게 둥글게’ 음악이 흐르던 ‘짝짓기’ 게임인데요. 서사, 장면, 음악 모두 기괴하면서도 잔인하게 사람을 압박하는 에피소드였습니다. 시즌 1과 비교하여 강렬하게 쓰인 전자 음악 역시 귀에 들어왔고요. 이 장면은 잔인하지만, 정재일 감독님께서 맡으셨는데, 작업 비화가 궁금합니다.
굉장히 무자비한 장면이죠. 아주 해맑은 동요로 시작해서 살육이 이어집니다. 그 대비를 어떻게 하면 가장 극단으로 넓혀 표현할 수 있을까에 대해 중점을 뒀습니다. 일렉트로닉인데 거의 헤비메탈에 가까운 일렉트로닉 사운드를 많이 탐구했어요. 각 장마다 약간의 변주가 들어가는데, 그 과정에서 악기가 더 들어가기도 하고, 몽환적인 음향을 넣어보기도 하고, 강력한 부분을 추가하기도 했습니다.
전자 음악과 더불어 이번 시즌 2에서는 전작에 비해 보다 리듬감이 두드러지는 음악과 함께 훨씬 많은 수의 노래가 수록되었습니다. 특히 무한궤도의 ‘그대에게’가 인상적인 ‘여섯 개의 다리’ 에피소드에서 크게 느껴졌고요.
시나리오를 극대화하면서 음악가의 독특함을 찾으려는 과정이었습니다. 거듭 말씀드리지만, 감독님이 좋아하실만한 음악을 찾기 위해 노력했어요. ‘그대에게’와 같은 가요와 극 중간마다 등장하는 클래식은 모두 감독님의 선곡이에요. 굉장히 절묘했죠. 음악이 많다고 말씀하셨는데, 정말 많습니다. 시즌 1 사운드트랙은 20곡, 시즌 2 사운드트랙은 29곡이에요. 최근 영미권 시리즈물 사운드트랙 음반 보면 곡 수가 매우 많거든요. 원래 제가 노래를 많이 넣는 스타일은 아닌데, 나도 그래야 하나 싶은 생각도 있었고, 만들어놓고 걷어내는 대신 의도적으로 곡을 다수 수록해 보자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Time To Say Goodbye’와 더불어 ‘Nessun Dorma’ 아리아도 등장하죠. ‘오징어 게임’ 시리즈가 한국인의 정서, 한국 사회, 한국의 놀이 문화를 독특하게 풀어내며 화제를 모았다는 점을 생각해 보면, 저는 선곡의 방향 역시 ‘한국인이 사랑하는’ 시리즈의 방향이 읽혀서 흥미로웠습니다.
그 콘셉트를 감독님께서 확실하게 갖고 계세요. 하이든의 콘체르토는 장학 퀴즈로 익숙하죠. 슈트라우스의 왈츠도 광고 등 여러 매체를 통해 유명하고요. ‘그대에게’도 그 감정의 연장선에 있다고 생각합니다.
337 박수, 음정이 맞지 않는 리코더 연주의 ‘Way Back Then’이 ‘오징어 게임’을 상징하는 곡이자 이 시리즈의 정수를 담고 있는 곡으로 자리매김한 원인이기도 합니다.
시즌 2에서는 ‘Way Forward’라는 제목으로 편곡했어요. 시즌 1을 보셨다면 아시겠지만, 이 노래는 사실 오프닝 이후로 한 번도 극에 등장하질 않아요. 그런데 ‘오징어 게임’을 상징하는 곡이 됐죠. 감독님께서 ‘Way Back Then’이 어느 장면에서든 전체 곡이 끊이지 않고 들어갔으면 좋겠다는 의견을 주셨어요. 이견을 조율하다가 찾은 지점이 첫 번째 에피소드에서 성기훈이 딱지남을 찾아 헤매는 긴 시퀀스였어요. 사채업자들이 으쌰으쌰 하면서 서울의 모든 지하철 노선을 뒤지는데, 호기롭게 출발했지만 결국 실패하고 기훈에게 쓸쓸히 셀카를 보내는 장면이거든요. 기훈의 외롭고 지친 마음을 표현하는 방향으로 변주했습니다.
성기훈은 분명한 목적을 갖추고 ‘오징어 게임’에 다시 참여하죠. 시스템을 엎어버리겠다, 불의에 저항하겠다. 그런 비장함이 테마에서 많이 느껴졌습니다.
마지막 회까지도 그 바람이 이루어질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들도록 음악으로 많이 노력했던 기억이 납니다. 성기훈은 정의감을 가지고 여정을 시작하지만, 후에 광기에 사로잡히기도 하고, 그 행동으로 소중한 사람을 잃게 되니까요.
‘오징어 게임’ 시즌2 작업 중 정재일 감독님께 가장 인상적인 에피소드는 어떤 회차였나요?
제일 몰입해서 봤던 회는 ‘여섯 개의 다리’였어요. 가장 약자들이 성공하는 게임이에요. 그리고 모두가 서로를 응원합니다. 모두가 서로를 죽여야 하는데 말이죠. 소외된 사람들이 무언가 이뤄내는 지점에서 많은 영감을 받았어요. 그리고 경기에 참여하는 프론트맨에게서도요. 사실 프론트맨의 테마가 없어요. 이 사람은 거짓으로 행동하고 있지만, 사실 그가 과거를 고백할 땐 진실과 거짓이 반반으로 섞여 나오거든요. 음악을 만드는 데 있어 많은 생각을 하게 되었습니다.
프론트맨의 테마가 없는 반면 정배에게는 ‘Jung-Bae Ya!’라는 곡을 만들어 주셨습니다.
시즌 2 마지막 에피소드에서 정배가 죽음을 맞이하죠. 죽음에 가장 어울릴만한, 누구나 생각할 법한 음악이 나오면 안 된다고 생각했어요. 중립적이면서도 비장하고, 약간의 슬픔과 동시에 성기훈이 앞으로 어떤 행동을 해나갈 것인지, 그리고 시즌 2의 마지막을 어떻게 장식할 것인지에 대해서 고민하며 만든 곡입니다.
또 한 명의 인상적인 등장인물 현주를 위한 ‘Hyun-ju’에 대해서도 소개해 주세요.
그 곡도 현주가 자기 과거를 고백할 때 흐르는 노래거든요. 슬프고 짠한 감정의 노래를 만들었다가 감독님께서 뉴트럴하게 가자고 해서 지금과 같은 곡이 나왔어요.
여러모로 감독님의 의사 결정이 가장 중요하군요.
제일 중요하죠. 거의 유일한 결정권자고요. VIP를 뛰어넘는 VVIP라 할 수 있겠네요. (웃음)
‘옥자’ 때부터 정재일 감독님이 함께하고 계신 헝가리 부다페스트 심포니 오케스트라, 그리고 꾸준히 감지되는 발칸 반도 음악가들과의 협업과 집시 음악에 대한 관심이 눈에 들어옵니다. ‘Way Back Then’의 멜로디 역시 저는 ‘옥자’ 시절 마케도니아 브라스 밴드 잠보 아구세비와의 협업이 떠올랐습니다.
아쉽게도 대한민국에는 오케스트라를 녹음할 수 있는 녹음실이 없어요. 오케스트라 세션이 필요할 때는 무조건 해외를 나가야 해요. 부다페스트 스코어링과 처음 함께한 작업은 ‘옥자’입니다. 그들과의 작업이 순조롭고 훌륭해서 계속 호흡을 맞추고 있어요. 지도를 조금 옮기면 발칸 반도가 나오는데요. 제가 발칸의 영화를 많이 보던 시절이 있었어요. 특히 유고슬라비아연방 시절 에밀 쿠스트리차 감독의 작품을 좋아했는데요. 에밀 쿠스트리차 감독님과 항상 음악 작업을 함께하는 파트너가 ‘동유럽의 비틀즈’라 불리는 밴드 비엘로 두그메의 리더인 고란 브레고비치입니다. 세계에서 가장 유명한 집시 음악가죠.
당시 ‘옥자’를 작업하면서 봉준호 감독님이 굉장히 이상한 음악을 주문하셨어요. 보통 추격 신이면 긴장감 넘치고 빠른 템포의 음악을 상상하잖아요. 그런데 저는 좀 촌스러우면서 어딘가 슬프고, 왠지 모르게 웃긴 복잡다단한 감정의 소리를 담고 싶었어요. 그게 고란 브레고비치의 작품이었고, 작업을 함께하면서 인연을 이어 나가게 되었죠. 그래서 아주 만족한 음악이 나왔고요.
딱히 발칸 반도, 동유럽과 같이 지역을 구분 짓지는 않습니다. 독특함을 계속 찾아나가면서 세계의 전통 음악, 마이너한 음악에 귀를 기울이게 된 거죠. 이를테면 조금 전에 말씀드렸던 추격 신처럼요. 황동혁 감독님과도 봉준호 감독님과 동일한 자세로 작업에 임하고 있습니다.
황동혁 감독님과의 음악 작업 과정은 어떠신가요?
독특한 음악을 좋아하세요. ‘업자라면 이렇게 만들었겠지?’하는 음악을 가져가면 아주 싫어하시더라고요. 시리즈물의 장점이라면 장점인데, 시즌 1을 오래 함께하다 보니 감독님의 성향이나 취향을 잘 알게 되어서 별로 힘든 부분이 없었어요. 전혀 엉뚱한 것, 지금 생각하면 감독님께서 싫어하실 게 뻔한 음악도 들려드리게 되고요. 시즌 2가 시즌 1보다 상대적으로 양이 많았다는 것만 빼면 힘든 점은 없었어요.
그렇다 해도 시즌 1과 비교하여 시즌 2를 작업하실 때 어려운 부분이 전혀 없지는 않으셨을 텐데요.
일단 감독님께서 게임을 또 한다, 살육 게임을 또 한다고 하셔서 ‘또 피를 많이 보겠구나. 죽음을 많이 보겠구나.’ 싶은 생각에 조금 긴장하기도 했어요. 마음도 무거웠고요. 게임을 계속 이어 나갈지 말지를 결정하는 OX 게임에서 참가자들이 광기에 휩싸이는 모습도 섬뜩했고요. 인간의 이중성이 계속 드러나는 모습을 봤죠. 그런데 지금 우리가 살고 있는 이 세상은 그것보다 훨씬 더한 일들이 이루어지고 있잖아요? 대면하기가 어려웠습니다.
그런 시선이 가장 잘 드러난 음악이 있다면요?
마지막 에피소드에서 총기를 탈취하고 시즌 2가 끝나기까지 음악이 계속 이어집니다. 그중 대호라는 캐릭터가 있죠. 해병대 정신 이야기하고 정의로운 사내처럼 그려지지만, 사실 총을 쏠 줄도 모르고 겁먹어서 탄창을 배달하지도 못하잖아요. 그가 못돼서 그런 행동을 한 건 아닐 텐데. 그 지점에 정말 마음이 갔어요. 더 큰 비극으로 가는 시발점이 되는 거잖아요. 시즌2 작업하며 오케스트라를 거의 쓰지 않았는데 그 신에서 오케스트라 편성을 들으실 수 있습니다.
사람이 죽어 나가는 게임이라는 아이러니와 비극이 ‘오징어 게임’의 핵심이죠. 여담이지만 정재일 감독님께서 시즌 2에 등장하는 게임 중 가장 자신 있는 게임이 있을까요?
공기놀이를 진짜 잘했어요. 공기에 들어가는 소재에 따라 게임의 난이도가 달라지거든요. 그것까지 고려하면서 공기를 했던 기억이 납니다. 반대로 제일 못할 것 같은 게임은 무궁화 꽃이 피었습니다 같아요. 가만히 있는 걸 힘들어해서요.
정재일 감독님은 ‘오징어 게임’ 외에도 다양한 활동을 이어가고 계십니다. 2003년부터의 개인 음반부터 한승석, 요조 등 음악가들과의 합동 작품, 영상 작업과 아이유, 임영웅, 보아, 박효신 등 음악가들의 작업에 참여하셨죠. 최근에는 솔로 앨범 ‘pslams’와 ‘Listen’, 그리고 봉준호 감독의 신작 ‘미키 17’도 함께하셨고요. 어떻게 이렇게 왕성하게 활동하실 수 있는지, 경이롭게 느껴집니다.
사실 왕성하게 못 하고 있습니다. 대부분의 작업을 혼자 하거든요. 객관적으로 봐도 우리 회사 달파란님이 저보다 한 일곱 배는 더 많이 작업을 하세요. 다행히도 ‘오징어 게임’을 통해 세계적으로 저의 작품이 알려지게 되면서 클라이언트가 있는 음악이 아닌 음악만을 위한 음악, 저만의 음악을 지원해 주시겠다는 분들이 많이 연락을 주셨어요. 데카 레코드와의 계약도 그렇게 진행됐고요. ‘오징어 게임’이 저의 창작에 지대한 영향을 주고 있어요. 예를 들어 ‘Listen’을 작업하면서 굉장히 바쁜 해외 스튜디오 일정이 있었는데, 제가 ‘오징어 게임’ 음악을 했다고 하니 바로 다음 주에 장소를 내어주더군요.
작품의 성공으로 좀 더 창작의 폭을 넓히셨던 거군요. 처음 시리즈 제안 받으셨을 때 이 정도의 글로벌 흥행을 예측하셨나요?
아무도 못 했을 것 같아요. 이렇게 성공하리라고 누가 예상했을까요? 음악에 대해 인터뷰를 나누고 있지만, 사실 영상 음악은 영상을 봐야 사람들이 음악을 들을 수 있는 거거든요. 사람들이 안 보면 아무리 내가 뭘 해도 알려질 수가 없어요. 감독님께 항상 감사한 마음입니다.
그럼, 이번에 시즌 2를 작업하시면서 즐겨 들었던 음악은요?
마이 블러디 발렌타인, 스피추얼라이즈드, 소닉 유스, 스매싱 펌킨스… 이런 밴드들의 음악을 많이 들었습니다. 노이즈 록, 인더스트리얼 록, 슈게이징 사운드를 찾아 들었어요. 그래서 이번 앨범은 기타 위주로 가볼까 싶기도 했어요. 그래도 자세히 들어보시면 앞서 언급했듯 헤비메탈스러운 전자음악도 있고요. 기타를 꽤 많이 썼습니다. 제가 타고난 로커거든요. 하지만 최근에는 케이팝도 많이 듣고, 닥치는 대로 듣고 있습니다. 특히 케이팝은 수준이 매우 높아져서 ‘이 정도까지 하는구나’하고 감탄할 때가 많아요. 한국어로 부른 노래가 빌보드 1위에 오르는 현실도 신기하고요. 더불어 공부하기 위해서 또 새로 나오는 음악들, 각 나라의 신작들을 많이 찾아 듣곤 합니다.
케이팝도 ‘오징어 게임’ 시리즈에 등장하면 재미있겠다는 생각이 드네요. 혹시 최근에 가장 재미있게 들으신 케이팝이 있으실까요?
케이팝인지 아닌지 모르겠는데, 로제와 브루노 마스의 ‘APT.’요. 그냥 좋아요. 수백 번도 넘게 들었죠.
‘오징어 게임’은 정재일 음악 감독님과 함께 김성수, 박민주 작곡가님, 그리고 수많은 분의 노력으로 영상과 더불어 음악도 주목받고 있습니다. 정재일 감독님께서 가장 감사함을 느끼는 분들이 있다면 알려주세요.
두 분을 꼽을 수 있을 것 같은데요. 황동혁 감독님, 그리고 감독님과의 만남을 주선해 주신 저희 LMTH 임연정 대표님입니다. ‘남한산성’을 보고 받은 충격이 지금도 생생하거든요. 그 작품을 연출한 거장이 저를 믿어주고, 그와 함께할 수 있는 이 상황이 꿈같고 또 기적같습니다.
마지막으로 ‘오징어 게임’의 시청자, 특히 음악에 집중하여 시리즈를 감상하는 모든 분께도 인사 부탁드립니다.
시리즈를 보면서 음악에 귀를 기울이는 분은 그리 많지 않죠. 크레딧도 안 보시는 경우가 많으니까요. 그런 점에서 정말 저는 과분한 사랑을 받은 것 같습니다. 대단히 감사드리고요. 그런데 물론 음악이 시리즈에서 중요하지 않을 수도 있지만, 음악이 없는 편집본을 보시면 엄청나게 지루할 때도 있습니다. 음악이 드라마를 만드는 데 큰 일을 하거든요. 그 점에 조금 더 집중해 보시면 또 다른 재미를 느낄 수 있으실 겁니다. 개인의 삶에 좋은 영향을 끼칠 수도 있고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