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사랑은 때로 다 지나간 자리에서 더욱 선명하게 덧난다. 3년 만에 <하입비스트>와 다시 마주한 키드밀리의 얼굴은 묘하게 평온해 보였지만, 그가 불쑥 꺼내놓은 새 앨범의 내면은 온통 지나간 사랑의 열병으로 가득하다. 달콤했던 환상부터 끝내 마주해야 했던 쓰라린 배신감, 다 지워진 줄 알았지만 여전히 마음 한구석을 맴도는 감정들까지.
그의 정규 앨범 <LOVESICK>은 은 누구에게나 하나쯤 묻어두었을 법한 사랑의 이면을 일렉트로닉과 하우스를 기반으로 한 트렌디한 사운드 위에 가감 없이 쏟아낸다. 크러쉬와 함께한 타이틀곡 ‘TORO’의 애틋함부터, 감추고 싶었던 날 것 그대로의 연애담을 적나라하게 고백한 트랙에 이르기까지. 가장 지독한 사랑의 흔적을 들고 돌아온 키드밀리. 그와 나눈 속 깊은 이야기는 아래에서 확인할 수 있다.


<하입비스트>와 벌써 3년 만이다. 그동안 어떻게 지냈나?
시간이 정말 빠르다. 뭐가 뭔지도 모를 정도로 빠르게 휙 지나간 느낌이다.
과거 인터뷰에서 30대의 최원재는 기품이 있고 생각의 틀을 깨줄 사람들이 곁에 많길 바랐다. 이제 막 서른의 문턱을 넘었는데, 그 바람대로 당신의 세계는 좀 더 넓어졌나?
확실히 POV를 같이 이끄는 스태프들도 그렇고 평소 만나는 친구들도 그렇고, 친구들 한 명 한 명 모두 다 스스로의 브랜드나 가게, 혹은 프로젝트들을 성공적으로 이뤄내는 모습을 보면 마음속에서부터 진심으로 기쁘다. 예전에는 이런 여유가 없었다. 기품까지는 모르겠지만 여유가 많이 생긴 것 같다.
작년 KHA ‘올해의 R&B 트랙’ 수상 축하한다. 래퍼로서 R&B 트랙으로 인정받은 후 준비하는 정규 앨범이라 감회가 남달랐을 것 같은데?
소식을 듣자마자 웃음이 났다(웃음). 정말 기대도 안 했다. 사실 딘 형과 라드 뮤지엄 형이 다 했다. 나는 숟가락만 얹었다.
선공개 곡 ‘Damn I Flex’의 뮤직비디오를 해외 지하철역에서 촬영했더라. 사람들이 많이 지나다니는 곳인데, 특별한 에피소드는 없었나?
어떤 노부부가 사진 요청을 하셔서, ‘와, 일본에 계시는 노부부께서 나를 안다고?’ 싶어 신기하고 감사한 마음으로 흔쾌히 웃어드렸는데, 알고 보니 본인들의 사진을 요청한 것이었다. 그래서 사진을 찍어드렸고, 꽤 잘 나왔다. 아마 만족하고 계실 듯?


드디어 3년 만의 정규 앨범 <LOVESICK>이 발매된다. 어떤 앨범인가?
언제나 영감은 삶에서 받았다. 그래서 이번에도 작업 전에 내 삶을 책처럼 쭉 되돌아보았다. 청자들에게 들려주지 못했던 부분이 뭐가 있을까 하다가, 1집의 테마인 사랑이라는 키워드가 떠올랐다.
그 후 8년이 지난 지금, 그사이 시간에 정말 많은 에피소드가 쌓여있었다. 또 8년 전에는 내가 어렵거나 혹은 가리고 싶어서 꺼내지 못했던 이야기가 많았는데, 그걸 다시 해보고 싶었다. 예전부터 ‘AI, THE PLAYLIST’의 두 번째 시리즈를 만들고 싶었는데, 이번 앨범이 완전한 두 번째 시리즈라는 것은 아니지만 어떤 부분에서는 조금 닮아 있다고 생각한다.
타이틀곡 ‘TORO’는 한국 대표 R&B 아티스트 크러쉬와 함께했다.
크러쉬 형이랑은 예전부터 항상 작업을 해보고 싶었다. 사실 이 노래는 거의 3년 전에 만든 노래다. 베이지를 릴리즈하고 오카시 메이슨 홈이 괜찮은 가이드 트랙이 있다고 해서 들어보았고, 같이 작업을 마쳐놓은 뒤 피처링도 거의 같은 시기에 크러쉬 형에게 받아놓은 트랙이었다.
그 당시엔 마땅한 앨범 계획도, 구상도 없어서 싱글 컷을 할지, 다른 아티스트에게 곡을 줄지 고민했다. 하지만 시간이 지난 뒤 들어도 곡이 너무 좋아서, 결국 ‘TORO’를 중심으로 앨범 사운드를 정하게 됐다. 크러쉬 형은 인간적으로나 음악적으로나 너무나 리스펙트할 만한 사람이다. timeless라는 말이 가장 어울리는 아티스트가 아닐까 싶다.
4번 트랙 ‘Lovesick’의 가사가 상당히 과감하다. 전 여자친구의 직업과 얽힌 본인의 실제 경험담이라고 들었는데, 이런 개인적인 이야기를 음악으로 풀어내기까지 고민은 없었나?
전혀 없다.


이번 앨범에서는 8번 트랙 ‘DJ, DROP IT’에 참여한 dowoo를 비롯해 신인 아티스트들과의 조합이 눈에 띈다. 신인 아티스트들이 이번 앨범에 어떤 색을 입혀줬나?
씬에서 활동을 이어온 만큼 서로에 대한 존중이 있었고, 자연스럽게 협업으로 이어졌다. 무엇보다 작업 과정 자체가 즐거웠다. 매번 의도한 것은 아니지만 새로운 아티스트들과 협업하는 경우가 많은 편이다. 마음이 통한다면. 아크의 soon과 dowoo, 그리고 오카시의 매튜, 그리고 일본 프로듀서 타이요와는 하우스 음악의 믹스와 테크닉에 대해 많은 이야기를 나눴고, 그 과정에서 받은 영향이 이번 앨범에도 반영된 것 같다.
8년을 함께한 인디고 뮤직을 떠나 POV를 설립하게 된 계기가 궁금하다.
인디고 뮤직은 나에게 많은 것을 준 곳이다. 그만큼 다음 세대에게 돌려주고 싶다는 생각이 컸다.
경영자로서의 최원재는 어떤 모습일까? POV의 운영 철학이 있다면?
운영을 해본 지 얼마 안 되어서 잘 모르겠다(웃음). 다만, 인디고 뮤직에서 좋은 에너지를 가진 사람들이 모였을 때 조직이 얼마나 강해질 수 있는지를 배웠다.
‘키드밀리는 늘 새롭다’는 대중의 찬사는 때론 독이 든 성배 같다. 매번 ‘다음’을 보여줘야 한다는 압박을 어떻게 해소하나?
압박은 없다. 때마다 하고 싶은 사운드를 풀어내는 데 집중한다. 음악 듣는 것을 좋아하다 보니 표현할 수 있는 소재는 늘 충분하다. ‘새롭다’는 평가는 감사하지만, 이미 주목받고 있는 아티스트뿐 아니라 아직 드러나지 않은 뛰어난 플레이어들도 많다고 생각한다. 스스로 어떤 흐름의 선두에 있다고 여기지 않는다.
과거엔 1:1 작업보다 비트를 받아 작업하는 방식을 선호한다고 했다. 이번 <LOVESICK>을 만들 땐 어떤 변화가 있었나?
여전히 비슷하다 (웃음). 약간 ‘오타쿠’들의 특징이 아닐까 싶은데… 하루 중에서도 일을 다 마치고 혼자 음악 듣거나 누워서 만화 보는 게 제일 좋다. 다만 아까 말한 신인 아티스트들과는 많이 만나서 작업을 했다. 그들과 있으면 마음이 편하다. 마음이 편한 사람과는 몇 시간이고 같이 있을 수 있다.


<Cliché> 당시 ‘돈 되는 음악’과 ‘하고 싶은 음악’ 사이의 딜레마를 고백했다. 지금의 키드밀리는 어디쯤 서 있나?
신경 쓰지 않는다. 당시에는 진지한 고민을 많이 했던 것 같은데, 미래에 대해 걱정이 많았던 것 같다. 미래 걱정이 많다 보니 현실에 가시가 돋았던 것 같다. 당시의 ‘나’도 ‘나’지만, 현재의 ‘내’가 더 좋다.
이번 싱글 포스트에 달린 카더가든의 댓글이 베스트더라. 평소 주변 동료들의 피드백 중 가장 기억에 남는 것이 있다면?
피드백이 참 무서운 것은, 그 사람이 날 어떻게 생각하느냐 또 내가 그 사람을 어떻게 생각하느냐에 따라 정말 다르게 받아들여질 수 있다고 생각한다. 좋은 피드백이든 나쁜 피드백이든 자체가 스트레스로 다가오는 경우가 대부분이라 듣더라도 금방 까먹는다. 언젠가부터 스트레스로 다가오는 걸 그냥 까먹어버리는 능력이 생겼다.
위스키 애호가로 유명하다. 최근 가장 즐겨 마시는 보틀과 그 이유가 궁금하다.
요즘은 웬만하면 금주 중이다. 가장 좋아하는 보틀 세 개를 꼽자면, 하쿠슈 12년(니트 말고 하이볼로 마셨을 때), 보모어 22년 체인질링, 라프로익 18년 구형.


반려묘 ‘최김경덕’ 의 소식을 기다리는 팬들이 많다. 이름에 얽힌 비화와 근황을 들려달라.
경덕이는 이름은 평범한 인명에서 따오면 오래 산다는 이야기를 듣고 지었는데, 사실 경덕이처럼 생겨서 경덕이다. 요즘엔 해외 스케줄이 많아서 경덕이가 혼자 있는 일이 많아질 거 같아 어머니 집에 보내놓았다. 근데 어머니가 경덕이와 사랑에 빠져서 돌려주지 않고 싶어하셔서 걱정이다.
최근 패션 씬에서 새롭게 꽂힌 브랜드가 있나? 반대로 과거의 나를 부정하고 싶은 스타일링이 있다면?
꽂힌 브랜드는 베트멍, 관심 있는 브랜드는 구찌, 퍼블릭 하우싱 스케이드보드, 스톤 아일랜드. 부정하고 싶은 스타일링은 너무 많지만, 스타일링 때문이라기보단 그 당시의 소비 습관이 내 눈에 보여서 그게 후회된다.
침착맨부터 예능 ‘파김치갱’까지, 음악 외적인 활동에 이토록 열심인 이유는 무엇인가?
결국 같이 촬영하는 사람들과 있을 때 마음이 편하고 재미있어서 하는 것 같다. 더 보여주고 싶은 건 이제 관심이 없다. 콘텐츠도 내가 좋아하는 것만 나간다. 억지로 유명해지기 위해 하고 싶지 않은 콘텐츠에 나가지 않는다. 몸이 힘든 건 일시적이지만 추억과 관계는 지속될 수 있다고 믿는다. 그러면서 돈도 벌 수 있으니까 너무 좋다.


마지막 질문이다. 당신이 그리는 힙합의 미래, 그리고 그 중심에 있을 본인의 모습은 어떤 모습일까?
플레이어들이 아프지 않은 문화가 되었으면 좋겠다. 내가 그리는 힙합의 미래에서 나는 중심에 있을 생각이 없다. 그때 쯤이면 벌어둔 돈으로 집 사고 차 사고 주식하면서 노래 가끔 내고, POV에 남은 시간을 쏟을 것 같다.























포토그래퍼
Seunghoon Jeong/Hypebeast에디터
Jisoo Yoon