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신양 인터뷰: 배우에서 화가로
어쩌면 당연한 일이었다.
누군가에게는 여전히 스크린 속에 강렬하게 남은 그 이름, 배우 박신양. 이제 그는 카메라라는 ‘제3의 눈’을 뒤로하고 캔버스 앞에 섰다. 화가가 된 모습이 다소 생소할 수 있지만, 박신양이 붓을 든 이유는 명확했다. 배우라는 가면을 잠시 내려놓고 인간 박신양을 오롯이 대면하게 만드는 고독한 수행이 반드시 필요했다.
그는 10년이 넘는 시간 동안 매일 밤 작업실로 숨어들었고, 때로는 거대한 캔버스와 사투를 벌이다 앓아눕기도 했다. 아무런 생각없이 물감을 짜고 붓에 묻혔고, 그렇게 캔버스에 새겨진 작품은 거울이 되어 가감 없이 박신양을 비췄다.
이에 <하입비스트>는 <박신양의 전시쑈: 제 4의 벽>에서 스스로 세운 벽을 허물고 본인을 마주한 박신양을 만났다. 대표작 <당나귀 13>부터 딸에게 전하는 편지 <거북이: 나의 에이미에게 2>까지, 그가 캔버스 위에 고백한 비하인드 이야기는 아래에서 확인할 수 있다.
<당나귀 13>
내가 가장 많이 그린 그림이 당나귀다. 나는 왜 당나귀를 그렸을까. 결론은 나 스스로를 당나귀라고 생각해서였다. 짐을 지기 위해 태어나는 짐승, 그런데 그 모습이 내가 짐을 대하는 태도보다 훨씬 우직해 보였다.
나는 꾀를 부리고 짐을 벗어 던지려 한 순간이 많았지만, 결국 며칠이 지나면 다시 짐을 찾아 나서는 나를 발견하곤 했다. 짐이 있으면 행복하지 않을 거라는 잘못된 생각에 갇혀있었던 게 아닐까 싶었다. 모든 사람이 각자의 무거운 짐을 지고 살듯, 나 역시 나만의 짐을 짊어지는 게 숙명인데 말이다.
<당나귀 13>은 9시간 동안 사투를 벌인 작품이다. 몇 달을 써야 할 에너지를 한꺼번에 쏟아붓고 석 달을 앓아누웠다. 묵묵히 나아가는 당나귀의 모습은 곧 자기 짐을 지고 살아가는 예술가의 삶과 닮아 있다.
<사과>
내 인생에 가장 강한 인상을 남긴 인물 중 한 분이 두봉 주교님이다. 어느 날 주교님을 뵙고 돌아오는 길에 그 분이 빛바랜 보라색 비닐봉지에 사과 두 알을 싸 주셨다. 소중히 들고 와서 제일 잘 보이는 곳에 두고는 며칠 동안 먹지도 못하고 빤히 쳐다만 봤다. 그러다 보니 사과가 시들고 있더라.
사실 나는 사과에 대해 아픈 기억이 하나 있다. 초등학교 시절, 사과를 스케치북 가득 그렸다가 선생님께 호되게 꾸중을 들었다. 너무 심하게 호통을 쳐서 귀가 먹먹해지더니 한동안 소리가 안 들렸을 정도였다. 어린 내가 감당하기에는 상당한 충격이었기에, 그날부터 그림에는 손도 안 댔다. 미술 시간이 정말 싫었다.
20년이 지나 다시 마주한 사과는 ‘동그랗고 빨개야 한다’는 고정관념을 부수는 계기가 됐다. 두봉 주교님께 받은 감동을 그려내려 애쓰기도 했지만, 동시에 초등학교 1학년 첫 번째 미술 시간을 다시 마주하는 순간이기도 했다. 나에게 사과를 그리는 일은 내 안의 움직임이 어떻게 생겨나는지 확인하는 실험이었다.
<피나 바우쉬 4>
현대무용가 피나 바우쉬는 감정 표현에 있어 독보적이었지만, 초기에는 파격적인 방식 때문에 비평가들의 모진 비난을 견뎌야 했다. 그럼에도 그녀는 묵묵히 자기 길을 갔고 결국 무용사의 혁신이 됐다. 나는 그런 사람의 얼굴을 그리고 싶었다.
가끔 이런 생각을 한다. 노력했다고 해서 최선을 다했다고 말하지 말자. 나는 아무것도 하지 않았다. 즐겁게 최선을 다하자. 결과는 예측하지 말자. 결과는 의미가 없다. 삶이 여행이듯 내가 하려는 작업도 여행이다. 여행의 결과는 중요하지 않다. 여행하는 과정 자체가 모두 여행이니까. 종착점에 너무 연연해하지 말자. 두려워하지 말자. 걱정하지 말고 노여워하지 말자.
내가 무슨 말을 하려는지조차 불분명해 아무것도 설명하지 못하던 시간이 있었는데, 나를 비난하지 않고 내 이야기를 들어줄 것 같은 사람의 얼굴이 필요했다. 고전 무용의 문법을 파괴하고 자기만의 길을 걸었던 그녀의 얼굴에서 나는 내가 가야 할 예술적 여정의 이정표를 보았다.
<거북이: 나의 에이미에게 2>
매일 밤마다 작업실로 사라지는 아빠를 어린 딸은 이해하기 힘들었을 거다. 그러던 어느 날 딸이 사진 한 장을 들고 와 그려달라고 했다. 말과 거북이가 담긴 사진이었다. 여러 가지 생각이 들었지만 차마 물어보지는 못했다.
나조차 내가 뭘 하는지 모르고 있는데 그런 아빠를 헤아리려고 노력하는 아이의 마음이 딱했달까. 그런데 더 큰 문제는 내가 거북이와 말을 어떻게 그려야 하는지 전혀 모르고 있다는 점이었다. 하지만 딸과 약속했으니 어떻게든 그려내야 했다.
등딱지에 피가 나고 아물며 딱딱하게 굳어가는 거북이의 형상을 그리며 이전에 시도하지 않았던 나만의 기법을 찾아냈다. 그리고 언젠가 내 딸이 볼 수 있도록 편지도 썼다. 그 편지는 이번에 낸 책 <감정의 발견>에 실었다.
<종이팔레트>
드라마 <파리의 연인> 촬영 당시, 수개월 동안 계속되는 밤샘 촬영으로 이동 중에 링거를 맞아야 할 만큼 초주검 상태였다. 어느 날은 대사 세 마디가 기억나지 않아 멍하니 서 있던 적이 있다. 시간이 얼마나 흘렀는 지도 몰랐다.
근데 감독은 그걸 감정 연기인 줄 알고 계속 찍었다. 한참 후에야 내가 매우 심각한 상태라는 것을 감지하고는, 할 수 있는 만큼만 대사를 하라고 했다. 나는 겨우 한 단어씩 떠올리며 발음했고, 감독은 카메라의 앵글을 바꿔가며 찍은 컷을 이어붙여 편집했다.
나중에 편집본을 보니 그 장면이 놀라울 정도로 정확하고 간결했다. 모든 쓸데없는 의도가 빠지고 마지막 힘만 남았을 때 비로소 진실한 표현이 나온다는 걸 깨달았다.
나의 종이팔레트가 그렇다. 거기엔 어떠한 예술적 의도도 없다. 오직 물감을 섞고 묻히는 본능적인 움직임의 흔적만 남아 있다. 나는 길을 잃을 때마다 아무런 계산 없이 남겨진 이 팔레트를 보며 다시 자연스러움과 즉흥성을 배운다.
<박신양의 전시쑈: 제 4의 벽>
기간: 2026년 3월 6일 – 2026년 5월 10일
장소: 서울시 종로구 세종대로 175 , 세종문화회관 미술관 1,2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