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라플렉스 작가 인터뷰: 컬렉터, 그리고 친구
FUTURE OLD FRIEND.

그라플렉스 작가 인터뷰: 컬렉터, 그리고 친구
FUTURE OLD FRIEND.
스트리트 컬처와 만화적 감성, 그리고 굵은 선과 대담한 색. 그라플렉스 작가의 작업은 오랫동안 대중에게 친숙하면서도 독창적인 시각 언어로 인식돼 왔다. 아트 토이, 회화, 패션 등 그의 작업은 언제나 유연하게 경계를 넘나들며 확장되었고, 그 결과 독보적인 아티스트로 단단히 입지를 다졌다.
그런 그를 오랫동안 지켜봐 온 한 사람이 있다. 미술 컬렉터이자 문화 기획자 심준섭은 오랜 직장 생활을 마친 뒤 자신만의 속도로 예술을 수집하기 시작했고, 지금은 ‘오프닝’이라는 이름의 공간에서 미술과 미식, 그리고 사람들의 이야기가 엮이는 장면을 전시하고 있다.
두 사람은 최근까지도 각자의 방식으로 교차해왔다. 때로는 거리에서, 때로는 파티에서, 그리고 이제는 하나의 전시를 통해 본격적으로 연결됐다. 오프닝의 다섯 번째 소장전이자, 이들의 첫 번째 협업 전시인 <FUTURE OLD FRIEND>는 단순한 작품 전시 이상의 성격을 갖는다. 작가의 오랜 작업을 소장해온 친구이자 컬렉터와, 그 컬렉션이 지닌 맥락을 직접 체감한 작가가 함께 만든 일종의 축제의 장이다.
<FUTURE OLD FRIEND>는 한 수집가가 삶의 전환점에서 새롭게 마주한 예술과 그 안에서 만난 작가, 그리고 그들과 함께 나눈 이야기의 궤적을 조명한 전시다. 수집이라는 행위가 관계와 경험을 통해 확장될 수 있음을 보여주는 사례이자, 예술과 우정이 만나는 지점에서 피어난 특별한 기록이다. 이에 <하입비스트>는 그들의 우정으로 엮어진 오프닝에서 그라플렉스 작가와 심준섭 컬렉터를 만났다. 그들의 이야기는 아래에서 확인할 수 있다.
<UNBOUNDED>
그라플렉스: 저는 작업을 할 때, 세가지 종류의 색체계를 사용해서 완성을 해요. 그 중 이 <UNREALITY>는 세 종류의 색 체계가 모두 사용된 작품이에요. 매일 똑같이 출근하지만, 그날의 기분에 따라 세상이 다르게 보이는 것처럼요. 저는 제 작품을 보는 사람들이 정답에 얽매이지 않고, 자기 감정으로 의미를 해석하길 바랐어요. 이건 전시 준비 초기에 완성된 작품인데, 이 그림을 완성한 순간 전시의 톤이 정해졌어요.
심준섭: 기존에 가지고 있던 형의 작품들은 커미션의 성격이 강한 것들이었어요. 그래서 형이 오롯이 혼자서 생각해낸 창작물들을 전시회를 통해서 수집하고 싶었던 욕심이 있었는데, 이건 그 욕심이 충족된 작품이에요. 작품을 구입하고 언제 어디에 걸까 고민이 많았는데, 이번 전시의 대문에 걸면서 좋은 타이밍에 설치하게 된 것 같아 기쁘네요.
<SAME AGE>
그라플렉스: 이 작품은 준섭이를 생각하며 그린 그림이에요. 처음 준섭이와 알게 됐을 때는 그림을 사고 싶다는 말에 “밥이나 먹자”고 했던 기억이 있는데(웃음). 얘기 나눠보니까 나랑 같은 걸 좋아하고, 취향도 잘 맞더라고요. 같은 세대를 공유해서 그런가. 그래서 타이틀이 <SAME AGE>인 것도 그 이유에요. 작품을 주면서 “이건 널 위한 거야”라고 말했던 것도 기억나요. 그런 말 잘 안 하거든요.
심준섭: 처음으로 수집한 형의 작품이어서 그런지 저에겐 남다른 의미가 있어요. 사실 형을 개인적으로 알기 전에도 지인의 블로그 등을 통해서 형이 전시 활동을 하는 건 알고 있었는데, 어느 날 방문한 K-옥션 프라이빗 세일즈 리스트에서 형의 작품을 보고 반가워했던 기억이 나요. 그러다 형의 전시 소식을 다뤘던 지인에게 소개를 요청했고, 그러다 밥 한번 먹고 친해진 뒤에서야 첫 작품인 <SAME AGE>를 구입할 수 있었어요. 먼저 친분과 신뢰를 쌓은 사람에게만 작품을 주는 것을 알고 있었기에 정말 기뻤어요.
<RISE>
그라플렉스: 언제 한 번 작업실에서 가만히 있는데도 기분 좋았던 날이 있었어요. 아무것도 하지 않아도, 웃게 되는 느낌? 그때의 감정을 시리즈로 담았고, 시리즈의 이름은 <RISE>가 되었어요. 처음에 준섭이가 <RISE> 시리즈를 전시하고 싶다고 얘기했을 때, 와인을 좋아하는 준섭이를 위해 가운데 스마일을 피노누아 같은 붉은 색으로 표현했어요. 그런데 준섭이가 조심스럽게 “형 이거 일장기 같지 않을까요?”라고 하길래 웃으면서 노란색 작품을 다시 그려주었어요.
심준섭: <RISE> 시리즈는 진짜 문 열고 들어오자마자 기분이 좋아지는 그림이에요. 사실 오프닝이 와인을 주제로 한 다이닝이어서 센스있게 피노누아 컬러로 작업해 준 것인데, 하얀 바탕에 와인색 동그라미가 있다보니 그런 생각이 잠깐 들긴 했던 것 같아요(웃음). 그래도 형이 다시 그려줬고, 언젠가 둘을 같이 걸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어서 두 점 다 구입하게 되었어요. 그리고 이번 전시 때 두 점을 함께 걸게 되었네요.
<TIKITAKA>
그라플렉스: 이 작품은 관계에 대한 그림이에요. 등장인물이 많고, 서로 얽히고설킨 에너지를 담고 싶었어요. 사실 예전부터 작업실에 걸려있던 가로로 긴 형태의 초록색 배경 그림을 준섭이가 좋아한다고 했는데, 사실 저는 그 작품의 디테일이 좀 마음에 안 들었거든요. 언젠가 한번 제대로 그려서 줘야겠다 싶었죠. 이 작품이 완성됐을 때 연락해서 “너가 원하던 작품이 완성됐으니까 가져가라”고 했어요. 하지만 여러 전시회 때 대여한 뒤에 1년 정도 지나서 전달했지만요(웃음).
심준섭: 형 작업실에 꽤 오랫동안 걸려있던 작품이 있는데 계속 가지고 싶은거예요. 그래서 몇번이고 이거는 언제 파느냐 물어봤는데, 영 맘에 안드는 부분이 있다며 기다리라고 하는거예요. 그러던 어느 날 새로운 작품을 완성했다며, 도상을 보여주는데 너무 마음에 들었어요. “됐어, 줄게” 하는데 정말 기뻤어요. 해외 전시 대여 기간이 있어서 1년이 지나버렸는데 기다리는 동안도 참 좋았어요.
<FRUMS>
그라플렉스: 좋아하던 스머프 캐릭터에 내 시그니처 스마일 모티브를 섞어 만든 작업이에요. 처음엔 순수 창작물이었는데, 나중에 스머프 IP와 연결되면서 일본에서의 전시로 이어졌고요. 이 작품은 원래 판매할 생각이 없었어요. 중요한 작품이기 때문에 소장하려 했는데, 준섭이가 일본 전시 때 방문해서 소장전에 이 작품을 전시하고 싶다고 했어요. 누군가가 산다면 지속적으로 작품을 케어해줄 수 있는 관계가 있는 인물이어야 했는데, 준섭이라면 괜찮겠다고 생각했어요. 내 작업을 오래, 다양하게 소장해온 사람이니까요.
심준섭: 일본의 스토어에서 형의 전시가 열린다고 해서 도쿄로 바로 날아갔어요. 그곳에서 느낀 바이브가 정말 좋았어요. 일본에서도 형을 좋아하는 팬들이 이렇게 많다는 것에 정말 기분이 좋았고 이 분위기를 서울까지 끌어오고 싶었어요. 그래서 이 작품을 중심으로 한 소장전을 오프닝에서 열어보자고 제안했죠. 꽤 오래전에 형이 완성한 작품이지만 저에게는 최근에 수집한 작품이에요. 이번 전시를 있게 만든 특별한 작품이어서, 오프닝에서 가장 중심이 되는 자리에 걸었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