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니엘 아샴 인터뷰: ARSHAM WAS HERE

이 작품은 3025년에 발굴되겠지.

미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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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니엘 아샴이 다시 한 번 서울을 찾았다. 고고학적 미래를 상상하게 만드는 조각과, 시간을 응시하는 회화로 세계적인 명성을 쌓아온 그는 2017년 국내 첫 개인전, 2023년 롯데뮤지엄 대규모 회고전에 이어 2025년, 페로탕 서울에서 두 번째 개인전을 연다. 

이번 전시는 지난 여름 이후 그가 새롭게 제작한 작품들로만 구성돼 다니엘 아샴의 예술 세계가 어떻게 진화하고 있는지를 또렷하게 보여준다. 과거의 고대 유물에서 출발해, 미래에 발굴될 조각 안에 현재의 흔적을 새기는 그의 작품은 시간을 소환하지만, 동시에 시간을 초월하고 있다.

2층에 전시된 ‘캐스트샌드’ 시리즈는 한국에서 처음 공개되는 신작으로, 아샴이 새롭게 개발한 재료와 기술을 바탕으로 물성의 불완전성과 시간성에 대한 탐구를 이어간다. 더불어 아직 공개되지 않은 ‘분재 스피커’ 드로잉 습작부터, 회화, 조각이 유기적으로 얽힌 이 공간은 지금 우리가 살아가는 시대를 고고학적 시선으로 재구성해낸 특별한 장이다. 

이에 <하입비스트>는 서울을 다시 찾은 그를 전시장 한가운데서 만났다. 다니엘 아샴의 손끝에서 만들어진 유물과도 같은 작품들, 그리고 AI 시대에 진정한 예술가로 존재한다는 것에 대해 나눈 이야기는 아래에서 확인할 수 있다.

다니엘 아샴 인터뷰: ARSHAM WAS HERE

한국에서 새로운 시리즈 ‘캐스트샌드’를 공개했다.

한국에서 이 시리즈를 처음 공개하게 되어 기쁘다. 이번 조각은 모두 ‘미로’라는 개념에서 출발했다. 고대 그리스나 로마 조각의 형태를 변주하면서, 미니어처 인물들과 계단 구조를 삽입해 일종의 내러티브를 담아낸 구조물로 만들었다. 

부드러운 모래를 굳혀 단단한 조각 작품을 만들었는데.

내 작업에는 늘 재료에 대한 탐구가 중요한 부분을 차지한다. 과거에는 화산재나 청동 같은 재료를 사용한 이유도 고대성과 시간성을 상징하는 재료들이기 때문이다. 이번 작품은 고운 입자의 모래에 수지를 섞어 캐스팅한 방식인데, 이건 수작업 조각, 디지털 조각, 금형 제작, 주조 과정이 모두 혼합된 복합적 결과물이다. 

다니엘 아샴 인터뷰: ARSHAM WAS HERE

모래라는 재료는 무너지기 쉽다. 리스크가 크지 않나?

알다시피 모래는 끊임없이 움직이기에 구조적으로 매우 취약하다. 하지만 이 모래는 이번에 내가 개발한 공정으로 제작했기에 만져도 무너지지 않는다. 그래서 움직임이 멈춘 지점에서 형태를 갖는다는 점에서 꽤 흥미롭다. 매우 익숙한 물질을 아주 낯설게 바라보는 방식이니까.

모래는 어디에서 가져온 건가?

이번 작업에서는 어디에서 채취했는지보다는 그저 입자가 매우 고운 모래를 찾는 게 중요했다. 질감과 형태를 섬세하게 표현하기 위해 수차례 입도를 테스트했고, 조각에 따라 그 물성을 조율하는 데 집중했다.

조각뿐 아니라 회화 속에도 새로운 접근이 보인다. 인물이 등장했는데.

맞다. 예전에는 사람이 없는 풍경을 많이 그렸다. 그래서 내 작업에서 인물을 보기 드물었을 거다. 하지만 이번 신작들에는 인물들이 종종 등장한다. 카누를 타거나, 어딘가를 가만히 응시하거나.

하지만 인물은 모두 뒷모습이다. 이유가 있나?

관람객들이 스스로를 대입해서 작품을 바라봤으면 하는 의도다. 미래인지 과거인지 모를 환경 속에 놓여진 곳에서 뒤돌아 서 있는 인물은 보는 이로 하여금 자신을 투영하게 만든다. 이런 방식은 19세기 카스파 다비드 프리드리히의 회화에서도 찾아볼 수 있다. 숭고한 풍경과 익명의 인물, 그 사이에서 생기는 감정의 여백을 나도 탐색하고 싶었던 게 아닐까. 

전시장 한쪽에는 드로잉 작품들이 함께 전시돼 있다. 이 드로잉들은 어떤 역할을 하나?

드로잉은 내 모든 작업의 출발점이다. 지금 전시장에 걸려 있는 드로잉 작품들도 훨씬 더 작고 단순한 스케치 습작들이 존재한다. 조각에 사용할 재료를 정하는 과정 역시 드로잉은 빠질 수 없다. ‘캐스트샌드’ 조각도 초반에는 어떤 재료가 좋을지 확신이 없었는데, 드로잉을 반복하면서 고운 입자의 모래로 결정하게 됐다.

드로잉 중에는 분재 스테레오 시스템처럼 보이는 흥미로운 작품도 있다. 이것도 준비하고 있는 조각의 습작인가? 

맞다. 아직 대중에게 공개하진 않았지만, 내가 1년 전부터 개발 중인 작업이다. 분재의 형태로 제작된 구리선이 아래 화분 모양의 스피커와 연결된다. 나뭇가지 자체가 전기 신호를 전도해서 스피커로 소리가 재생되는 형식이다. 일종의 소리를 조각하는 셈이다. 

아샴의 세계관을 상징하는 ‘상상의 고고학’은 어떻게 시작됐나?

남태평양의 한 섬에서 한 달가량 고고학 발굴 현장을 관찰한 적이 있다. 발굴 인부들과 이야기를 나누면서 역사라는 것이 단순히 과거의 기록이 아니라, 실제로 누군가의 삶과 창조, 호기심이 남긴 흔적이라는 걸 체득했다. 상상의 고고학은 “우리의 현재를 미래의 고고학자가 발굴한다면 어떤 모습일까”라는 생각에서 출발한 개념이다. 이번 전시의 조각들은 바로 그런 관점에서 탄생한 상상의 유물이다. 

다니엘 아샴 인터뷰: ARSHAM WAS HERE

그런 이유에선지 아샴의 조각 작품은 미래의 고대 유물처럼 보이기도 한다. 

몇 년 전 고대 조각에 사용되던 몰드를 직접 다뤄볼 수 있는 허가를 받은 적이 있다. 그래서 틀을 활용해 화산재와 크리스털로 조각을 만들었다. 과거를 상징하는 이미 타버린 화산재와 자라나는 광물인 크리스털이 조합된 모습이 마치 쇠퇴와 앞으로 나아가는 진보가 혼란스럽게 섞여 있는 현재 같았달까. 그런 시간의 모호성은 내가 계속 다루고 싶은 테마다. 그게 미래에는 고대 유물이 되겠지.

일본의 오모테나시, 즉 배려 정신을 배웠다고 언급한 바 있다. 서울에서 가장 인상 깊었던 건 뭔가?

의외일 수도 있지만, 골프(웃음). 내 취미 중 하나다. 한국에서의 라운드는 다른 나라에서는 결코 느껴볼 수 없는 경험이었다. 골프 코스 자체의 퀄리티도 훌륭했지만, 그보다 놀라웠던 건 시스템의 정교함이랄까. 한국 문화는 모든 디테일에 엄청난 정성을 들이는 것 같다. 패션, 음식, 건축, 도시 디자인을 보면 알 수 있다. 

요즘 AI로도 멈춰있는 사진을 움직이는 영상으로 생성할 수 있는 시대다. 그런 시대에 진정한 창작이란 무엇이라 생각하나?

많은 창작자들이 AI의 등장을 걱정하지만, 나는 오히려 반대의 시선으로 바라보고 있다. 예를 들어 전시장에 걸린 드로잉을 봐도 내 손자국이나 삐뚠 선들이 그대로 남아 있다. 불완전함과 동시에 인간적인 흔적이다. 기술이 점점 발전할수록 사람이 손으로 만든 것의 가치는 더 커지고, 오히려 더 찾게 될 거라고 생각한다. 

다니엘 아샴 인터뷰: ARSHAM WAS HERE

다니엘 아샴 본인은 작가로서 어떻게 기억되고 싶은가?

잘 모르겠다. 굳이 말하자면, 작업에 아낌없이 시간을 투자한 사람? 내 작업은 언어 없이 말하는 방식이다. 국경을 넘고, 언어를 초월한 소통을 가능하게 하니까. 앞으로도 그런 방식으로 누군가와 대화를 이어갈 수 있다면, 나는 그걸로 충분하다. 

마지막 질문이다. 다니엘 아샴의 작품을 발굴할 ‘미래의 고고학자’에게 한 마디.

예술가는 결국 자신이 살아 있는 시대를 기록하는 사람이다. 시대정신을 감지하고, 그것을 조각이나 회화 같은 형식으로 흘려보내는 존재. 만약 미래의 누군가가 내 작업을 발견한다면, 우리가 살던 이 시대가 어떤 감정과 감각으로 구성돼 있었는지를 단번에 느끼길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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