버켄스탁, 괴를리츠 공장에서 마주한 철학의 현장
당신의 발걸음 속에 담긴 철학







독일 동부의 작은 도시, 괴를리츠(Görlitz). 폴란드 국경과 맞닿아 있는 이 고요한 도시는 의외로 세계적인 브랜드 버켄스탁의 상징적인 무대다. 버켄스탁의 주요 공장 중 하나가 자리 잡은 이곳에서 매일 수만 켤레의 샌들이 세상 밖으로 나간다. 하지만 이 공장을 단순히 ‘생산 라인’으로 정의하는 건 부족했다. 이곳은 브랜드가 250년 넘게 지켜온 철학과 전통, 그리고 장인정신이 살아 숨 쉬는 심장부였다.
공장의 공기, 철학의 질감
공장에 들어서면 가장 먼저 코르크와 가죽이 섞인 독특한 향이 코끝을 스친다. 기계음은 분명 존재하지만, 그 리듬 속에 장인들의 손길이 더해져 묘하게 따뜻한 공기를 만든다. 그 생각을 증명하듯, 올리버 라이히트(Oliver Reichert) CEO가 입을 열었다. “괴를리츠 공장은 단순히 신발을 만드는 장소가 아닙니다. 이곳은 버켄스탁의 심장이고, 우리가 지켜온 가치가 매일 현실이 되는 무대죠.”
풋베드: 기능에서 철학으로
그 ‘심장’의 중심에는 브랜드의 아이콘인 풋베드(Footbed)가 있다. 천연 코르크, 황마, 라텍스, 가죽이 층층이 쌓여 압착되는 과정은 하나의 철학이 완성되는 장면처럼 다가온다. 이야기는 자연스럽게 버켄스탁의 핵심, 풋베드로 이어졌다. 라이히트 CEO에 따르면, 이것은 철학 그 자체였다. “풋베드는 단순한 편안함을 위한 구조물이 아닙니다. 인체를 존중하는 과학이자, 버켄스탁을 정의하는 핵심 그 자체죠. 풋베드에는 정형학적 지식이 들어 있고, 수 세대에 걸친 장인들의 노하우가 담겨 있습니다. 그건 유행이 아닌, 시간을 견디는 철학이에요.”
장인정신, 손끝에서 이어지다
공장의 풍경은 놀라울 정도로 인간적인 리듬으로 짜여 있다. 원재료 선별부터 최종 검수까지 83 명의 장인이 각 공정에서 자리를 지킨다. 하지만 자동화가 보편화된 시대에 왜 굳이 이런 방식을 고수하는 걸까? 라이히트의 대답이 그 모든 것을 설명했다. “효율은 기계가 대신할 수 있습니다. 하지만 정확성과 책임은 사람만이 가질 수 있는 가치죠.” 그의 말처럼, 코르크를 다듬는 손길과 바느질을 마무리하는 눈빛 속에서 한 켤레의 신발이 아닌 하나의 철학이 빚어지고 있었다.
철학을 경험으로 확장하다
신발에서 시작된 이 철학이 몸 전체로 확장되는 과정에 대해, 요헨 구치(Jochen Gutzy) CCO가 설명을 이어갔다. “우리가 하는 모든 일의 중심에는 ‘진정성’이 있습니다. 신발에서 시작한 철학이 풋 & 바디케어로 확장된 이유도 같은 철학을 새로운 방식으로 전달할 수 있기 때문이죠. 신발의 코르크가 그러했듯, 바디케어도 피부와 몸에 무해한 성분을 고르는 게 가장 중요합니다. 우리는 제품이 아닌 가치를 팔고 있으니까요.”
뿌리와 도전, 그리고 균형
라이히트와 구치가 인터뷰 내내 공통으로 반복한 단어는 ‘전통, 기능, 품질’이었다. 1774년부터 이어진 이 세 가지 기둥은 버켄스탁이 스트리트와 런웨이를 모두 장악하며 진화하는 동안에도 굳건히 브랜드를 지탱해왔다.
하지만 250년의 역사는 때로 딜레마가 되기도 한다. 버켄스탁이 마주한 가장 큰 도전은, 시간을 견디는 ‘철학’과 빠르게 변하는 ‘트렌드’ 사이의 균형을 잡는 것이다. 라이히트 CEO의 목소리에는 250년 역사를 이끌어온 리더의 자부심이 담겨 있었다. “우리는 250년 넘게 전통을 이어왔습니다. 하지만 전통은 박물관에 전시하는 게 아니라, 기능으로 이어지고 품질로 증명되는 것이죠. 그게 버켄스탁의 방식입니다.” 유행을 좇기보다 브랜드의 핵심을 지키며 스스로 시간을 견뎌내는 것, 그것이 그들의 전략이다.
당신의 발걸음 속에 담긴 철학
괴를리츠 공장에서 마주한 이 모든 고집스러운 철학은 결국, 우리가 매일 무심코 발을 딛는 한 켤레의 샌들 안으로 수렴된다.
그래서 버켄스탁을 신는다는 것은 단순한 소비를 넘어, 250년간 이어진 그들의 가치를 내 발로 직접 경험하는 행위가 된다. 트렌드에 흔들리지 않고 전통, 기능, 품질이라는 뿌리 위에서, 발걸음 하나하나를 철학으로 전환하는 브랜드. 괴를리최 공장의 공기는 바로 그 사실을, 더할 나위 없이 강렬하게 말해주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