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뽕’을 찾아낸 250이 알려주는 동묘 즐기는 법

“인터넷 쇼핑과 정반대의 묘미.”

여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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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J이자 프로듀서인 250은 그동안 다양한 장르에서 활약해 왔다. 이센스, 김심야와 같은 힙합 아티스트들의 노래부터 보아, NCT 127, 있지 등 케이팝 음악까지 그의 작업물에는 색깔이 있을 뿐 경계는 없었다. 그러한 그가 개인 앨범에서 보여줄 음악에 관심이 모이는 것은 당연한 일. 많은 예상을 깨고 그가 예고한 앨범의 타이틀은 <뽕>이었다. 우리가 알고 있는 ‘뽕짝’의 ‘뽕’이 맞다.

이후 그는 <뽕을 찾아서>라는 다큐멘터리 시리즈를 진행하며 실제로 먼 길을 찾아 헤맸다. 그 사이 ‘Spring’, ‘이창’, ‘Bang Bus’ 등 몇 개의 싱글들이 나왔지만, 앨범 <뽕>이 나오는 데는 예상보다 훨씬 오랜 시간이 걸렸다. 2016년 마지막 날 <뽕>을 예고한 후 5년 3개월 만의 발매를 앞둔 250은 “앨범 한 장 만드는 데 4, 5년이 걸렸다는 게 내 얘기가 될 줄은 몰랐다.”고 털어놨다.

그러면 그가 이토록 ‘뽕’을 찾아헤맨 이유는 무엇일까? 바로 아무도 ‘뽕’의 실체를 알지 못하기 때문이다. 250이 추구한 것은 일반적인 ‘뽕짝’이 아니었고, ‘뽕끼’를 가진 가요도 아니었다. 250은 “일렉트로닉 사운드로 뽕짝을 표현해본 것이 ‘뽕’에 접근하는 시작이었다”고 말한다. 그는 단순히 뽕짝 음악을 재현하는 것이 아니라 일렉트로닉과 뽕짝 사이에서 ‘뽕’이라는 또 다른 영역을 구축하고자 했다.

모든 것은 시도였다. 일렉트로닉 음악의 사운드 요소로 뽕짝을 만들어보기도 했고, 전형적인 고속도로 뽕짝의 리듬을 뼈대로 샌드위치처럼 다른 장르의 요소들을 한 겹 한 겹 얹어 보기도 했다. 전자의 결과가 ‘이창’이고, 후자의 결과가 ‘Bang Bus’다.

이렇게 ‘뽕’을 연구하고 고민하던 그가 해답을 찾기 위해, 혹은 머리를 비우기 위해 찾아간 곳은 동묘였다. “음악이 물리적인 실체가 있는 것은 아니잖아요.” 250은 답답한 마음에 동묘를 찾았던 이유를 이렇게 설명한다. ‘뽕’을 피부로 느낄 수 있는 곳을 찾아 온 곳이 동묘였다는 이야기다. 그 실체는 곧 동묘의 길거리에서 커다란 스피커를 통해 빠른 BPM을 타고 그에게 전해졌다. 자리에 멈춰선 그는 바로 이곳에서 이 스피커로 <뽕>을 틀었을 때를 상상하면서 사운드를 구상했다고 말했다.

하지만 ‘뽕’을 찾아 헤매기 이전에도 그는 이미 동묘의 단골손님이었다. 그렇기에 필름 사진기를 든 포토그래퍼와 에디터 앞에서 찬찬히 동묘를 둘러보고 있는 그에게 ‘동묘가 예전 같지 않다’는 평가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느냐고 넌지시 물어 봤다. 동묘는 이제 더 이상 아는 사람만 아는 곳이 아니라 각종 매체를 통해 많이 소비되고 알려진 빈티지와 만물상의 대명사였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는 그럼에도 “여전히 이곳은 뭔가가 다르다”고 말한다.

그렇다면 동묘의 매력은 대체 무엇인가? 이 물음에 250은 “동묘의 재미는 인터넷 쇼핑과 정반대에 있다”고 설명한다. 장점이 곧 단점이고, 단점이 곧 장점이라는 말이 딱 맞는 대답이다. 인터넷 쇼핑은 명확히 원하는 것이 있는 사람이 효율적으로 물건을 구매할 수 있는 최고의 방법이다. 티셔츠 하나를 사더라도 원하는 브랜드와 색상, 디자인을 핀 포인트로 찾아낼 수 있다. 하지만 동묘는 반대로 하나의 목표물을 정해서 올 만한 곳이 아니다.

“무엇을 사러 왔건 그 밖의 것에 신경을 빼앗길 수밖에 없어요.” 그는 길가의 골동품에 눈길을 고정시킨 채 말했다. “뻔한 것들과 뻔하지 않은 것들이 늘어선 광경에 늘 시선을 뺏기게 되죠.” 그렇기에 250은 뭔가가 필요해서 동묘를 찾는 것은 별로 좋은 선택이 아니라고 경고한다. 뭔가가 필요할 것 같다는 핑계로 나들이를 하고 싶은 거라면, 뭐가 필요한지는 잘 모르겠지만 사고 싶은 기분이라면 들르기 썩 괜찮은 곳이라는 것이 그의 설명이다.

우리는 250을 따라 신당역 부근에서 시작해 천천히 길을 걸었다. 도로명 주소상 마장로 3길과 9길로 표기되는 동네에는 빈티지 오디오나 음향 장비들 그리고 바이닐과 테이프 따위를 파는 곳이 늘어서 있었다. 물론 각종 전자 기기를 취급하는 곳도 있고, 전혀 관계없는 가게도 뒤섞여 있다. 250이 <뽕을 찾아서> 1화에서 키보드를 구입한 곳도 이 부근이다. 때때로 고장 여부가 불확실하거나 정확히 용도를 알기 어려운 물건이 나오는 것도 여기선 자연스러운 일.

250이 예전에도 몇 번 물건을 샀다고 한 가게에 함께 들렀다. 사장님은 이곳이 80, 90년대에는 최신형 카세트 플레이어 신품을 파는 매장이었다고 소개했다. 2020년대가 되어서도 이 가게에서는 여전히 카세트 플레이어를 판다. 단지 그때는 최신 제품이었던 것이 이제는 빈티지 중고품이 되었을 뿐이다. 간판도 낡고 거리도 바뀌었지만 여전히 이곳에서는 같은 물건을 파는 것이다. 250이 말한 “이곳엔 시간이 멈춘 듯한 공간들이 있다”는 말이 그대로 표현된 곳이었다.

250은 이 동네에서 “본인이 필요한지도, 갖고 싶었는지도 몰랐던 것을 사게 된다”고 경고했다. 그리고 나는 곧 그의 말을 몸소 경험하게 됐다. 1980년대 활동했던 개그우먼 김보화가 발매한 캐롤 음반 카세트 테이프를 구매한 것이다. 이제는 카세트 플레이어조차 가지고 있지 않지만, 30년 넘게 미개봉 상태로 보존된 빨간 아트워크가 괜히 이끌려 몇천 원을 투자했다. 그것을 보던 250이 바로 그게 동묘의 매력이라고 웃으며 말했다.

흔히들 동묘를 이야기할 때 가장 많이 떠올리는 대표적인 거리인 ‘동묘 벼룩시장’에 접어들자, 250은 한층 들뜬 목소리로 “이 거리는 더욱이 목적을 가지고 온다면 필패”라고 이야기했다. 그리고 곧장 “목표가 없다면 실패도 없는 법”이라고 덧붙였다. 그런 이야기를 듣다 보니 반대로 ‘성공담’이 궁금해졌다. 동묘 거리를 드나들며 먼지깨나 마셔본 그에게도 자랑하고 싶은 전리품이 하나 둘쯤 있지 않을까?

그는 기다렸다는 듯이 가장 최근 맞이한 행운을 소개했다. 우리와 만나기 불과 두어 주 전에 우울한 기분으로 터덜터덜 걷던 동묘에서 250은 갖고 싶었던 신발 하나를 발견했다. NBA 포틀랜드 트레일블레이저스와 데미안 릴라드의 팬인 그의 눈에 데미안 릴라드의 시그니처 농구화 ‘데임 3’가 포착된 것이다. 그는 마침 사이즈까지 딱 맞는 매물을 그곳에서 찾게 될 줄은 전혀 몰랐다며 그 짜릿한 순간을 회상했다.

그는 시간을 거슬러 올라 오래된 기억 중 하나도 알려줬다. “제가 가장 좋아하는 재킷도 동묘에서 샀어요. 80년대 빈티지 라코스테 청재킷인데, 아마 지금으로부터 15년은 된 일이었을 거예요. 당시 3만5천 원 정도 줬던 걸로 기억하는데, 지퍼에 고급스러운 장식이 들어가 있고 핏도 그 시절의 독특한 핏이에요. 그때부터 라코스테 재킷을 사 모으기 시작했어요.” 마침 이날 입고 온 것도 또 다른 라코스테 빈티지 재킷이었다.

이제 다시 벼룩시장에서 신설동에 위치한 서울풍물시장에 가기 위해 10여 분을 걸었다. 이동하는 길목에는 진품인지 가품인지 알 수 없는 온갖 골동품들이 심심치 않게 늘어서 있었다. 이내 서울풍물시장에 도착하자 250은 솔직히 이곳이 자신에게 복잡 미묘한 감정을 들게 하는 곳이라고 고백했다. 어릴 때부터 함께했던 동묘권의 길거리 중 일부를 뚝 뜯어내 현대식 건물에 복원한 형태이기 때문이다.

실제로 서울풍물시장은 2008년이 되어서야 생겼다. 6.25 전쟁 이후 고물상이 몰려들면서 역사가 시작된 청계천변의 황학동벼룩시장이 2004년 청계천 복원으로 터를 잃으면서 사라졌다가 여러 과정을 거쳐 지금의 건물에 들어선 것이다. 250은 자신이 알던 길이 자취를 감췄을 때 사실 기억 속 동묘의 일부가 사라진 듯한 느낌이었다고 이야기했다.

이 때문에 한동안 발길을 내딛지 못했던 서울풍물시장에 방문하게 된 것은 이곳이 생기고 몇 년이 지나서다. 그는 이곳이 분명 예전의 길거리와는 다르지만, 꼭 단점만 있는 것은 아니라고 이야기했다. 오히려 동묘의 길거리에 아직 두려움을 느끼는 사람들은 여기부터 와보는 것이 좋을 수도 있다는 것. 상대적으로 주차도 손쉽고, 실내라 여름이나 겨울에도 쾌적하게 돌아다닐 수 있기 때문이다. 정체를 알 수 없는 약부터 빈티지 베르사체까지 온갖 물건들이 빼곡하니 구경하는 재미도 충분하다.

“웬일로 젊은이들이 많이 왔네.” 쌍화탕을 홀짝이는 노신사 분이 앉아 있는 다방에 도착하자 사장님이 상기된 목소리로 우리를 반겼다. 이날의 투어를 마무리하기 딱 좋은 다방에 앉자, 250이 또 다른 동묘의 장점과 단점을 하나씩 이야기했다. “서울에는 아무것도 안 해도 되는 곳이 많지 않은 것 같아요. 항상 뭔가를 하라고 하니까. 그런데 여기는 딱히 그런 게 없어요.” 고개를 끄덕이게 하는 장점 뒤 이어지는 단점은 처음 했던 이야기의 반복이다. “그래도 살 물건을 정해놓고 사려는 거면 인터넷으로 사는 게 낫습니다.”

마지막으로 나는 이 글을 읽고 어느 한가한 날 문득 동묘에 가고 싶어질 독자들을 위해 꼭 챙겨야 할 준비물을 물었다. 비워진 찻잔 위로 날아온 250의 대답은 심플했다. “단지 현금 몇만 원과 헐렁한 태도”면 충분하다는 것.  별달리 필요한 것도 없고, 아무것도 하고 싶지 않지만 괜히 어딘가 한 바퀴 돌며 구경하고 싶다면, 최첨단 도시 서울의 중심에서 아날로그의 냄새를 맡고 싶다면, 이번 주말은 <뽕>을 들으면서 ‘헐렁하게’ 동묘를 향해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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