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자로드 - Ep.5 닭한마리와 모나카 아이스크림
둘이 합쳐 110년 코스.
세숫대야 만 한 양푼 냄비에 영계 한 마리를 통째로 넣은 ‘닭한마리’. 이 요리의 인기와 유명세에 대한 설명은 다음 일화로 대신한다. 2011년, 방한 중이던 <슬램덩크>의 작가 이노우에 다케히코가 SNS에 트윗을 남긴다. 한 장의 사진과 짧은 문구였다.
‘タッカンマリ(다칸마리)’
이를 지켜본 한국의 아티스트가 있었다. 사진만 봐도 딱 알아봤다. 평소 작가의 열혈팬이었던 그는 사진을 단서로 이노우에가 식사를 하고 있는 닭한마리 가게를 찾아간다. 닭한마리를 통해 흠모하는 작가와의 만남을 성사시킨 360 사운드의 멤버이자 브랜드 디렉터 Make-1(메이크 원)의 이야기다.
[HYPEBEAST Eats: 최자로드 다시 보기]
프롤로그
Ep.1 을지로 푸아그라
번외편 최자의 집
Ep.2 집 앞 삼겹살, 학교 앞 떡볶이
Ep.3 선 커리 후 노가리
Ep.4 고등어 샌드위치와 순두부 우동
Ep.5 닭한마리와 모나카 아이스크림
동대문 종로 5가는 ‘닭한마리’ 간판을 내건 식당이 즐비하다. 서로 원조 타이틀을 내세우고 있지만 진짜 원조는 하나뿐. 40년 전통 동대문의 닭한마리 요릿집이 진짜다.
“나머지 가게는 다 가짜야. 대놓고 따라 하기 좀 그러니까 백숙 스타일로 살짝 바꿨지. 옻나무 넣고, 인삼 냄새가 나는. 그럴 거면 여기 왜와 집에서 백숙해 먹지. 닭한마리랑 백숙은 전혀 다른 음식이야.”
닭한마리 요리는 닭백숙도 아니고 삼계탕도 아닌 그냥 ‘닭한마리’다. 한 가지 더. 닭한마리라고 모두 다 같은 닭한마리가 아니다.
“여기 줄이 길면 기다렸다 먹든지 아니면 포기하는 게 나아.
다른 데 가면 이 집에 대한 애정만 더 생긴다?”
“다른 집은 고춧가루, 매운 소스, 김치 다 달라. 기본적으로 국물 자체가 다르지. 다른 집 음식은 닭한마리가 아니야. 맛이 없는 건 아니지만 다른 음식이야.”
2인분 이상 먹을 예정이라면, 꼭 두 마리를 큰 솥에 넣고 한꺼번에 끓이는 것이 핵심 팁이다. 국물 맛이 달라진다.
“두 마리를 한 솥에 끓이면 확실히 국물이 진해. 국물이 충분하니까 국수사리를 넣을 때 육수를 추가하지 않아도 되거든. 졸아든 맛이 더 훌륭해.”
“본능적인 퀄리티 컨트롤, QC가 필요해. 어쩔 수 없이 육수를 추가하면 맛이 확 가더라고. 닭이랑 같이 푹 끓이면서 졸여야 맛있어.
이 요리의 관건은 본능적인 불 조절. 국물을 적당히 남겨야 한다. 국물이 너무 졸면 육수를 더 넣을 수 있지만, 그 순간 맛이 확 달라진다는 거다.
“양념을 안 넣고 백숙처럼 먹는 사람들도 있는데, 조금은 넣는 게 좋아. 매운맛이 주는 아름다움이 따로 있어.”
닭은 빨리 잘라야 한다. 닭한마리를 처음 접하는 사람들이 하기 쉬운 실수에 대한 신신당부다.
“익기 전에 잘라야 골수 같은 게 나와서 국물이 맛있대. 사장님 말씀이야.”
잘랐을 때 피가 단면에 즉각 묻어나야 신선한 닭이다. 피가 쫙 나오는 모습이 다소 징그러울지 모르겠지만, 이 집이 신선한 영계를 공수한다는 증거다.
떡 사리는 국물이 끓어 오르는 순간 투하할 것. 머지않아 떡이 둥둥 떠올랐다. 최자의 손이 바빠진다.
“떡이 눈에 보이기 시작하면 바로 집어 먹어야 맛있어. 지금 안 먹으면 안돼. 떡은 이때가 제일 맛있는 거라고. 지체하지 말고 몽땅 건져서 말려.”
떡의 골든 타임을 지키는 건 국물맛을 수호하기 위한 큰 그림. 떡이 너무 익으면 떡 자체의 식감을 망칠 뿐 아니라, 떡에서 나온 전분이 국물 맛을 해친다.
간장 한바퀴, 식초 두바퀴.
간장과 식초의 비율은 2:1이야.
“나는 아예 맵고 신 맛이 느껴지게 소스를 만들어. 겨자는 안 넣는 게 더 맛있더라고. 겨자 맛이 너무 세면 다른 맛이 가리니까.”
간장, 식초, 고춧가루를 대충 눈대중으로 섞었다. 결과는 참담한 맛. 소스 비율의 중요함을 실감하는 순간이다. 최자에게 뭔가 아쉬운 양념의 심폐소생을 부탁했다.
“닭 한 마리 소스는 심폐소생이 안 돼. 이미 망친 건 회생 불가야.”
양념이 셀프라고 욕심부리지 말자. 한꺼번에 많이 만들지 않고 조금씩 여러 번 만들어 먹는 게 현명하다.
“찍어 먹으면서 닭 육수가 섞이면 묽어지잖아. 다대기는 한스푼씩 조금씩 만들어 먹어야 맛을 유지하면서 먹을 수 있어. 남기는 사람이 많아서 낭비가 심하기도 하고.”
“국수사리를 넣기 전에 국물은 조금 덜어 놓는 게 좋아. 국수에서 밀가루 물이 나와서 밍숭맹숭해져. 그냥 싱거워지는 게 아니라 맛이 유쾌하지 않아.”
국수가 약간 투명해지기 시작하면 면발이 익었다는 신호다.
“난 우리나라 칼국수 면은 다 익혀서 먹는 게 좋더라고. 파스타는 알단테가 좋지만.”
특제 소스는 사리를 먹을 때도 활용된다. 양념과 함께 버무리면 비빔 칼국수 완성.
“이렇게 비벼 먹으면 또 별미지. 완전히 비비면 짜니까 사이사이에 슬쩍 묻혀서.”
이 집 김치는 고춧가루가 많이 들어가지 않은 서울식 김치. 살짝 데쳐서 먹거나 날로 먹는 것 모두 각각의 매력이 있다. 매운 음식에 단무지를 곁들이는 것처럼, 소스의 매운맛을 중화시키는 역할을 한다.
“예전에는 백김치에 더가까운 서울 김치였는데 좀 변했어. 지금은 고춧가루를 더 넣는 것 같아. 난 예전 김치가 더 좋더라. 백김치같이 김치를 새콤한 소스에 찍었을 때 맛있는 거거든.”
닭한마리 요리가 재밌는 건 테이블마다 국물 색깔이 다 다르다는 사실. 국물부터 사리까지 철저히 자기 스타일이 반영된다.
“이 음식이 투박해 보여도
생각보다 아기자기해.”
“국물 먹고, 닭 먹고, 떡 먹고, 국수까지, 차례로 먹는 맛이 있잖아. 양념 넣으면 매콤해 지고 김치 넣으면 국물 맛이 또 달라지고. 먹는 단계도 여러 가지고 자기만의 조합에 따라 제 스타일로 먹는 재미가 있어.”
닭한마리는 취향에 따라 자신의 스타일로 먹을 때 가장 맛있다. 자유도가 높은 요리이긴 해도 최자의 가이드라인은 분명하다.
“밥은 이 요리와 안 어울린다는 느낌이 들어. 감자 사리도 추가할 필요 없어. 감자가 과하게 많으면 국물에서 감자 전분 맛이 나. 전분으로 만든 걸쭉함은 가짜 아니냐.”
“파사리를 넣어 먹기도 하는데 나는 개인적으로 파 사리는 별로야. 가령 하동관의 곰탕을 먹을 때도 너무 과하게 파를 넣는 사람이 있잖아. 어떤 음식이든 파를 너무 많이 넣으면 인삼탕 같은 맛이 돼.”
“굳이 닭기름을 걷어낼 필요도 없는 것 같아. 닭기름 이거 맛있는 기름이야. 기름에 대한 안좋은 인식, 그것도 망상이라고 생각해. 사실 살이 찌는 건 탄수화물 때문인데.”
‘삼겹살은 기름 먹으려고 먹는 것’이라는 지론을 펼친 이력이 있는 최자. 과학적 근거를 보탠 그의 지방론에 의하면, 닭기름은 해롭지 않다. 최근 유행했던 고지방 다이어트에 대한 그의 생각은?
“탄수화물을 안 먹으면 불행해. 힙합과 마찬가지야. 남녀노소 함께 공유할 수 있는 행복이잖아.”
“우리에게 허락된 유일한
마약이 탄수화물 아냐?”
“이 집 가성비는 위대해. 여기만큼 가성비 좋은데는 없어. 테이블 네 개를 차지할 정도로 사람이 많이 와서 먹어도 20만 원 이하로 나올걸? 삼겹살 집에서 회식하는 것보다 싸. 모두 함께 할 수 있는 곳이지.”
“나는 닭한마리를 음식으로 받아들이는 시기는 이미 지났어. 그냥 해야 하는 일 중 하나야. 2-3주에 한 번은 꼭 먹거든. 나한테는 종교의식 같은 느낌이야. 일요일마다 교회 가는 것 같이. 최악의 경우에도 한 달에 한번은 먹어야 해.”
이 집을 찾아올 때는 한 가지 명심해야 한다. ‘절대 현혹되지 마라’.
“이쪽에 오면 여기 올 수밖에 없어. 개코랑 생선구이집 가려고 몇 번이나 왔었는데, ‘야, 줄이 얼마나 긴지만 보고 올까?’ 하고 어느 순간 여기 서 있었어.”
줄 서지 않아도 먹을 수 있는 인근 닭한마리 식당부터 연탄 생선구이 백반, 들깨 칼국수, 곱창 골목까지. 반경 200 m 안에 맛집이 다 모여 있다. 하지만 근처에서 다른 음식을 먹는 날은 언제나 후회하고 한 끼를 낭비하게 된다는 게 최자의 경험담.
“이 집 줄이 길어서 못 참고 다른 식당에 갔다가 계속 그 집에 다니는 사람들도 있어. 냉정하게 말하지. 진짜와 가짜를 구분하는 식견이 떨어지는 거야.”
“줄이 길다고 현혹돼 다른 집에 가면 안돼. 오는 길에 근처 생선구이 집에 현혹돼도 안 돼.
진짜는 여기에 있어.”
“이곳은 낮술 하기도 좋은 장소야. 밝은 대낮의 여기 분위기랑 파란 소주병이 너무 잘 어울려.”
닭한마리는 먹는 방법이 자유로운 만큼 어떻게 먹느냐가 중요한 요리. 정말 많이 와 봤던 사람이랑 같이 오면 더 맛있게 즐길 수 있다.
“무턱대고 도전하지 말고 좋은 가이드와 함께 와야 해. 그게 팁이야.”
“닭한마리를 먹은 후 모나카 아이스크림으로 입가심을 해야 해. 선택이 아니라 필수야.”
여기는 닭한마리랑 하나의 코스다. 모나카를 먹으면 입에 남아 있는 텁텁한 맛이 딱 정리가 된다.
“주로 집에 가는 길에 잠시 주차해놓고 후다닥 뛰어와서 모나카를 사서 나가거든. 닭한마리를 먹은 뒤에 꼭 생각이 나. 동선도 가깝고.”
BGM: TLC – ‘Diggin’ On You’
여기는 일요일 오후에 와서 친구들이랑 수다 떨기 좋은 느낌이잖아. ‘걔는 요즘 어떻게 지내냐’ 안부 물으면서.
이곳은 장충동에 위치한 대한민국 최초의 제과점이다. 노인부터 교복 입은 학생까지, 다양한 세대가 테이블을 채웠다. 해방 직후 1946년부터 지금까지 명맥을 이어온 이 집만의 진풍경이다.
“할아버지들이 많이 계시잖아. 그 자체가 세월을 보여주는 거거든. 몇십 년 동안 오셨을 거 아냐. 이가 얼마나 시리시겠어. 그런데도 저렇게 맛있게 모나카를 드셔.”
모나카 아이스크림은 그야말로 ‘옛날 맛’이 난다. 결정이 크고 서걱서걱한 질감이 특징이다.
“질감이 거칠어서 마치 서주 아이스크림 같은 맛이 나. 손으로 만든 것 같은 그런 매력이 있어. 바닐라 향도 강하지 않고 너무 안 달아서 좋아.
모나카의 법칙. 하나 먹고 나면 또 먹고 싶어진다. 입이 아쉽다면 옛날식 카스텔라와 우유 한잔은 훌륭한 선택지.
“이런 게 제일 살찌는 거 알지. 돼지 제조기야. 돼조기. 근데 그만큼 맛있어.
“카스텔라도 요즘 빵처럼 찐한 스타일이 아니고 옛날 제과점 느낌이야. 우유랑 꼭 같이 세트로 먹어야 해. 심지어 우유도 옛날 맛이야. 팩에 든 매일우유 맛 알지.”
<HYPEBEAST Eats: 최자로드>에서 소개되는 맛집들의 상호명과 위치 등의 세부 정보는 시즌 1의 마지막화에서 일괄 공개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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