롤렉스 ‘데이트저스트’ 대신 추천하고 싶은 ‘근본’ 시계 6

가격대는 7만7천 원부터!

패션 
93,803 Hypes

롤렉스 데이트저스트는 옛날 손목시계 분류기준으로 보면 미묘하다. 옛날 기준으로 손목시계를 나누면 크게 둘이다. 드레스 시계와 스포츠 시계. 드레스 시계는 옛날 남자들의 드레스 셔츠에 차는, 얇고 가벼운 시계다. 스포츠 시계는 잠수 등 활동적인 일을 할 때 쓰는 육중한 시계다. 

롤렉스 데이트저스트는 둘 다인 동시에 어디에도 속하지 않는다. 말하자면 스포츠 시계의 몸에 드레스 시계의 옷을 입었다. 방수 성능이 뛰어나서 드레스 시계에 비해 두껍고 가죽보다 튼튼한 금속 브레이슬릿을 채운다. 동시에 금이나 다이아몬드 등 드레스 시계의 디테일도 적당히 쓴다. 장르적 정통성에 충실하지 않았던 결과 역으로 롤렉스 데이트저스트는 고급 시계의 표준이 될 수 있었다. 대형 감자탕집 사장님과 랩 스타와 아펠가모 반포 새신랑과 그의 장인어른이 동시에 찰 수 있는 고급 시계는 롤렉스 데이트저스트 뿐이라 해도 과언이 아니다.

지난번에도 말씀드렸듯 세상은 넓고 시계는 많다. 아울러 모든 도시인이 평등하게 정확한 시간을 알게 된 지금, 오늘날 손목시계의 존재 이유는 세공기술도 가격도 인지도도 아닌 의미다. 손목시계를 찬다는 건 어떤 의미가 담긴 물건을 내 손목에 감느냐의 게임인 것이다. 그렇게 보면 롤렉스 데이트저스트 못지 않은 의미를 지닌 멋진 시계가 많다. 다음은 그 목록이다.

최고의 의미를 원할 때

오메가 스피드마스터 문워치

오메가는 롤렉스 대기 못 타서 사는 시계 정도가 아니다. 오메가 역시 스위스 손목시계의 역사에서 빼놓을 수 없다. 특히 양산형 손목시계 무브먼트의 성능 자체로 보면 오메가가 최고다. 최근에도 일오차 0~+2초 사이의 최신형 무브먼트를 탑재한 스피드마스터 수퍼 레이싱을 발표했다.

고가 시계는 의미를 손목에 감는 고급품이라고 했다. 그렇다면 최고의 의미를 손목에 감는 게 자연스럽다. 기계식 시계의 의미는 그 시계가 가진 무용담에 의해 정해진다. 손목시계 역사상 최고의 무용담을 가진 시계는 오메가 스피드마스터 문워치다. 스피드마스터는 나사의 혹독한 비밀 테스트에 통과해 우주인용 시계가 되었다. 최초로 달을 밟은 버즈 올드린의 손목에 감기며 손목시계가 가질 수 있는 가장 큰 영광을 누렸다. 그때 그 시계와 거의 비슷한 시계를 아직도 살 수 있다. 참고로 롤렉스 데이토나는 당시 나사 테스트를 견디지 못했다. 오메가 스피드마스터를 차다가 데이토나를 보고 주눅들지 말자. 가격은 9백30만 원.

조금만 더 보태면 살 수 있는 최고의 시계

오데마 피게 로얄 오크

한국의 인터넷 게시판에서 으레 나오는 말 중 ‘그 돈이면 ㅇㅇㅇ’가 있다. 모닝을 보다 메르세데스-벤츠클래스까지 보게 하는 마법의 주문이다. 손목 시계에도 ‘그 돈이면 ㅇㅇㅇ’가 있다. 다니엘 웰링턴 사느니 티쏘, 티쏘 사느니 프레데릭 콘스탄트, 그걸 사느니 태그호이어, 태그호이어를 사느니 오메가, 오메가 사느니 롤렉스같은 식. 나름 말이 된다고 볼 수도 있다. 기왕 사는거 한 번에 좋은 거 사고 한눈 안 팔면 되니까.

그런데 그렇게 보면 롤렉스 데이트저스트도 부족하다. 롤렉스 위로 좋은 시계가 얼마나 많나. 데이트저스트 값에 조금만 더 보태서 살 수 있는 시계가 많은데 한 방에 ‘끝판왕’을 사는 것도 괜찮은 일 아닌가. 스틸 케이스에 브레이슬릿 시계계의 끝판왕이라면 오데마 피게 로얄 오크다. 실제로 로얄 오크는 최고 수준의 표면세공과 남다른 디자인과 용감한 기획으로 만들어진 훌륭한 시계다.

요즘 로얄 오크의 구입 난도를 아는 분들은 코웃음을 칠 수도 있다. 그러나 원래 ‘ㅇㅇ사느니 ㅁㅁ산다’라고 하는 사람들의 말은 허술한 설계도처럼 논리로만 겨우 작동되고 현실성이 떨어진다. 그러니 자신있게 말해보시길. 롤렉스 데이트저스트 사느니 AP 로얄오크 사라고. 가격은 3178 .

최초라는 의미를 원할 때

까르띠에 산토스 드 까르띠에

롤렉스는 의외로 손목시계의 기술적 발달사에서 최초 기록이 많지 않다. 최초의 다이버 시계, 최초의 투르비용, 최초의 크로노그래프, 모두 롤렉스가 아니다. 최초 기록을 좋아하는 사람이라면 롤렉스 말고 까르띠에를 보시길. 까르띠에 중에서도 산토스. 까르띠에 산토스는 최초로 남성 전용 손목시계라는 특정한 목적을 가지고 디자인된 시계다. 파리에 자리잡은 브라질 출신 파일럿 루이 산토스 뒤몽의 의뢰로 1904년 제작했다. 

1904년의 산토스는 2023년에도 여전히 출시된다. 산토스는 2018산토스 드 까르띠에로 컬렉션을 재편했다. 이름을 통일하고 스몰, 미디움, 라지로 사이즈를 알기 쉽게 쪼갰다. 120여 년이 지난 만큼 세공은 정밀해지고 편리성도 높아졌다. 요즘 고가 손목시계의 경향 중 하나는 손쉬운 스트랩 교체 시스템이다. 까르띠에도 퀵스워치스마트링크라는 이름의 장치를 도입해 스트랩 및 브레이슬릿 교체나 브레이슬릿 사이즈 교체가 쉬워졌다. 막상 쓰면 이런 기능이 정말 유용하다. 가격은 9백65만 원.

롤렉스 값으로 살 수 있는 최고의 마무리를 원할 때

그랜드 세이코 SGBH277

기계식 시계의 제작 역량을 살필 수 있는 지표로 얼마나 부품을 내부에서 생산하는가가 있다. 기계식 시계 안에 들어 있는 제품은 상상 외로 다양한 제작 및 가공공정을 요구한다. 다이얼, 케이스, 유리, 핸즈, 무브먼트, 무브먼트에 들어가는 각종 신소재, 시계의 나사, 버클까지, 이 모든 걸 모두 자체 제작할 수는 없다. 스위스 시계 회사들은 그래서 특정 전문 부품회사의 제품을 받아 쓰는 경우가 많다. 롤렉스는 자체 용광로까지 갖추고 원자재부터 시작한 거의 모든 제품 생산을 내재화했다. 그런데 롤렉스만큼이나 자사 내부 부품 생산 비율이 높은 회사가 있다. 세이코.

그랜드 세이코가 얼마나 수준 높은 시계인지는 잘 알려져 있지 않다. 같은 가격이라면 늘 오메가가 롤렉스보다 더 많이 세공되어 있고, 늘 그랜드 세이코가 오메가보다 더 많이 세공되어 있다. 핸즈의 모서리를 칼처럼 깎는 것, 각종 각면을 세공하는 것, 오차 범위를 줄인 것, 모두 감탄이 나올 정도로 높은 완성도다. 시계의 인지도가 전부인 사람에게 롤렉스 대신 그랜드 세이코라는 말은 다음 생에서도 와닿지 않음을 안다. 다만 금속가공품으로의 시계에 관심이 있다면 그랜드 세이코는 롤렉스의 진지한 대안이 될 수 있다. 덜 유명한 덕에 성능 대비 중고 시세가 아주 저렴하다. 가격은 8백55만 원.

롤렉스와 개념을 공유하는 시계를 원할 때

지샥 DW-5600

롤렉스는 빈티지도 가격이 유지되는 걸로 유명하다. 왜 그럴까? 최고의 브랜드라서? 브랜드 가치가 유지돼서? 그런 건 검증 불가능한 미사여구일 뿐이다. 검증이 되는 사실로 설명하면 이렇다. 롤렉스는 고장이 잘 안 나고 튼튼하다. 똑같이 수십년 된 시계라도 기계로의 성능을 잘 유지한다. 호사가나 리셀러가 뭐라고 하든 롤렉스는 적당한 복잡도와 아주 높은 내구성을 지닌 시계를 만든다. 기계로의 높은 성능을 유지하는 게 롤렉스의 진짜 저력 중 하나다. 

그렇게 쳤을 때 20세기 후반에 나온 시계 중 개념적으로 롤렉스와 가장 흡사한 시계는 지샥이다 1백 여년 전 롤렉스의 가장 큰 마케팅 포인트는 방수 성능이었다. 롤렉스는 방수 성능을 자랑하기 위해 도버 해협을 수영으로 건넌 여성에게 롤렉스 시계를 채웠고 시계가 멀쩡함을 증명했다. 지샥의 가장 큰 특징이자 마케팅 포인트 역시 충격 흡수다. 그 점에서 둘은 진지한 실용 시계로의 가치를 공유하는 셈이다. 기본 모델의 디자인이 거의 같다는 것도 둘의 공통점이니 지샥 DW-5600 역시 타임리스 클래식이다. 단정하게 입고 이 시계를 차면 진짜 멋있다. 예를 들면 외교부장관과 주미대사를 역임한 한승주가 지샥을 찬다. 가격은 11만 원.

개념적인 모던 클래식을 원할 때

스와치 원스 어게인

스위스 시계는 배타적인 면으로 유명하지만 과거 그 이면엔 큰 위기와 치열한 자기개선도 있었다. 특히 손목시계의 동력원이 건전지로 바뀌던 1970년대 스위스 시계 업계는 전체 인력의 70%를 해고해야 할 정도로 혹독한 구조조정을 거쳤다. 오늘날의 스위스 시계 업계는 구조조정을 거쳐 겨우 건강을 찾은 업계다. 롤렉스는 그 시기를 잘 헤쳐온 몇 안 되는 브랜드 중 하나이며, 사실 나는 그거야말로 롤렉스의 저력이라 본다. 

그 면에서 오늘날 스위스 시계를 상징하는 시계는 롤렉스도 오메가도 오데마 피게도 아닌 스와치다. 농담이 아니다. 스위스 시계업계는 구조조정 후 현금 매출을 만들 수 있는 저가 시계 브랜드가 필요하다는 결론을 내렸다. 스위스 시계의 정밀한 이미지와 스위스 디자인의 금욕적 우아함을 유지하며 저렴한 플라스틱 패션 시계를 만든다면? 그게 스와치다. ‘원스 어게인’은 스와치의 역사적인 첫 모델이다. 스위스 시계가 누렸던 영광을 한번 더 누리겠다는 뜻이었을까? 실제로 스와치는 전 세계적으로 성공했고, 여기서 벌어들인 현금으로 스와치는 옛 영광의 시계 브랜드를 하나씩 인수하기 시작했다. 그게 스와치부터 오메가를 거쳐 브레게로 이어지는 스와치 그룹이다. 스와치가 없었다면 브레게도 없었다. 

이런 사실을 모르고 봐도 스와치 원스 어게인은 멋진 시계다. 날렵한 케이스와 간결한 디자인을 보면 파텍 필립 Ref. 96의 플라스틱 버전이라 해도 과언이 아니다. 실제로 스와치 원스 어게인은 MOMA 디자인 스토어에도 입점했다. 역시 타임리스 디자인이다. 가격은 7만7천 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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