타카유키 후지 & 서준형 인터뷰: 시대를 관통하는 0.5보의 미학
논네이티브와 카키스가 맺은 단단한 매듭.
1950년대 샤를로트 페리앙의 가구와 포르쉐 911. 논네이티브의 타카유키 후지가 애용하는 이 도구들은 역설적이게도 완벽하지 않음에서 오는 애착을 대변한다. 세월을 머금은 빈티지에 대한 고집은 카키스의 서준형이 빈티지 버버리 코트를 과감히 잘라 이번 컬렉션의 색상 스와치로 삼은 태도와 궤를 같이한다.
도쿄에서 25년간 옷의 실용을 탐구해 온 타카유키 후지와, 빈티지 아카이브를 서울의 감각으로 재조립하는 서준형. 두 디렉터가 ‘무스비(MUSUBI)’라는 이름 아래 마주했다. 화려한 수사보다 사람의 인품과 신뢰를 우선시하는 이들의 철학은, 드라이클리닝 대신 세탁기에 무심히 던져 넣고, 비바람에 젖을 때 비로소 완성되는 옷들로 탄생했다. 오직 옷의 물성과 본질에 집중한 두 남자가 말하는 협업의 시작과 미래를 담았다.
도쿄와 서울, 각 도시에서 옷의 본질을 가장 깊게 탐구하는 두 브랜드가 만났습니다. 서로의 존재를 대면했을 때 인상은 어땠나요?
타카유키 후지: 2024년 11월에 준형 씨를 비롯해 제이케이앤디 대표와 함께 식사를 했는데, 매우 성실하고 신뢰할 수 있는 분들이라는 인상을 받았습니다. 저는 협업할 때 무엇보다도 사람의 인품을 중요하게 생각하거든요. 카키스의 옷은 그때 처음 봤어요. 가공 방식과 전체적인 룩을 보고 저와 잘 맞는다는 느낌을 받았고요. 숍의 셀렉션도 아주 좋았습니다.
서준형: 논네이티브는 25년이 넘은 브랜드인 만큼, 제가 디자인을 공부하던 학생 때부터 좋아하고 즐겨 입던 브랜드 중 하나였어요. 그래서 협업이 결정됐을 때부터 ‘내가 자주 입던 어떤 종류의 아이템으로 구성하면 좋겠다’라는 아이디어가 자연스럽게 떠올랐습니다.
후지 디렉터는 2025 Hypebeast 100 선정 등 수많은 성취 속에서도 늘 담담함을 유지하십니다. 20년 넘게 논네이티브를 이끌며 수많은 유행을 지나온 소회가 궁금합니다.
타카유키 후지: 먼저 선정해 주셔서 너무 감사합니다. 2016년에도 한 번 선정된 적이 있는데, 그때를 돌아봐도 제 마음가짐은 지금과 크게 다르지 않은 것 같아요. 올해로 디자인을 시작한 지 25년이 됐는데, 옷과 삶에 대한 탐구심은 여전히 변함이 없습니다. 저는 그저 편안한 옷을 만들 뿐이라, 트렌드를 넘어왔다는 실감은 사실 크게 느끼지 못하고 있어요.
준형 디렉터 역시 Hypebeast 100 ‘Next’에 이름을 올리며 주목받으셨죠. 당시 소감과 함께, 평소 존경하던 브랜드의 디렉터와 어깨를 나란히 하게 된 지금의 감회는 어떤가요?
서준형: Hypebeast 100 ‘Next’에 선정됐다는 메일을 받았을 때, ‘어떻게 우리를 알지?’ 싶어 많이 놀랐고, 한편으론 ‘우리가 열심히 노력하는 걸 누군가는 알아봐 주고 있구나’라는 생각에 뿌듯하기도 했습니다. (이 자리를 빌려 하입비스트 팀에 감사드립니다.) 논네이티브와의 협업이 결정되었을 때의 마음도 비슷했어요. 놀라움과 뿌듯함, 그리고 더 열심히 해야겠다는 다짐의 연속이었습니다.
논네이티브와의 협업은 카키스에게도 큰 도전이었을 것 같은데요. 작업 과정에서 마주한 후지 디렉터는 어떤 선배이자 파트너였나요?
서준형: 여러 차례 미팅하면서 제가 농담 삼아 ‘센세’라고 부르긴 했지만, 결코 엄격한 선배는 아니었어요(웃음). 디자이너 대 디자이너로서 아이디어와 피드백을 자유롭게 주고받고, 더 나은 디자인과 더 나은 제품에만 집중하는 멋진 분이셨습니다.
이번 협업의 키워드인 ‘MUSUBI(매듭)’는 두 브랜드의 결합 이상을 의미하는 것 같습니다. 기획 단계에서 두 분이 가장 치열하게 공유했던 가치는 무엇이었나요??
타카유키 후지: 역시 가장 중요한 것은 사람과 사람 사이의 연결이에요. 옷은 절대 디자인만으로 완성되지 않아요. 패턴, 봉제, 가공, 원단, 부자재 등 수많은 사람의 손을 거쳐 한 벌의 옷이 만들어집니다. 그리고 그 이후에도 사진을 촬영하고 이미지를 확장해 나가는 과정이 이어지죠. 결국 많은 사람을 하나로 연결해야 하는 겁니다. 이번에는 여기에 카키스 스태프들까지 더해져 비로소 프로젝트를 잘 마무리할 수 있었어요. 이것이야말로 협업의 묘미 아닐까요?
서준형: 각자의 브랜드가 추구하는 바를 서로 충분히 이해하고 존중하고 있었기에, 두 브랜드가 어떻게 하나의 제품으로 억지스럽지 않게 잘 묶일 것인가에 대해서만 고민했어요.
카키스는 빈티지 가공과 정돈된 디테일에 강점이 있습니다. 이번 제작 과정에서 카키스가 제안한 색감이나 마감 방식 중 후지 디렉터에게 “신선하다“는 영감을 준 지점이 있었나요?
타카유키 후지: 카키스는 데님을 잘 다루는 브랜드이기 때문에 샘플을 여러 차례 제작했습니다. 특히 오일 얼룩의 색감까지 세세하게 지정해 온 점에는 솔직히 놀랐습니다(웃음).
서준형: 스웨트 아이템을 만들 때 옷의 다양한 부분이 자연스럽게 변색된 느낌을 표현하고 싶었습니다. 그래서 원단과 립, 봉제사 같은 자재를 각각 다른 톤으로 지정해 제작하고 워싱 작업을 진행했는데, 그 부분이 기존 제품들과는 조금 차별화된 지점이지 않을까 생각합니다.
논네이티브의 방대한 아카이브를 카키스의 시선으로 재해석하며, “이 오리지널리티만큼은 절대 훼손하지 않고 계승해야겠다“고 다짐한 디테일도 있나요?
서준형: 기능적인 부분을 고려한 절개선이었습니다. 제가 개인적으로 좋아하고 즐겨 입던 논네이티브 제품 특유의 절개 라인과 곡선은 이번 협업 제품에도 성실히 반영했습니다.
옷의 안감이나 주머니 속처럼, 겉으로는 보이지 않는 디테일이 있다면 공개해 주세요.
서준형: Dweller Coat에 사용된 GORE-TEX WINDSTOPPER 원단입니다. 말 그대로 겉감과 안감 사이에 숨겨져 있거든요. 워싱 처리된 빈티지한 텍스처의 겉감에 가려져 보이지 않지만, 내부에서는 뛰어난 투습 및 방풍 기능을 발휘하고 있습니다.
언더커버 준 타카하시와 함께한 ‘OZISM’ 프로젝트가 예술적 탐구였다면, 카키스와의 협업은 조금 더 일상적이고 경쾌하게 느껴집니다. 카키스와의 작업에서 느낀 특별한 즐거움이 있었나요?
타카유키 후지: 언더커버 준상과의 협업 역시 사람과 사람 사이의 대화에서 탄생한 옷이었습니다. 그저 두 사람이 좋아하는 영화와 삶에 맞닿아 있었을 뿐이죠. 이번 작업 또한 카키스 팀과의 대화 속에서 자연스럽게 나온 결과물입니다. 즐겁지 않을 리가 없죠(웃음).
논네이티브의 하의는 입체적인 패턴과 무릎의 가공 등 인체공학적 설계로 정평이 나 있죠. 이번 협업에서도 착용자의 활동성을 고려해 실루엣을 구축할 때 가장 집요하게 파고든 형태가 있나요?
타카유키 후지: 하의는 준형 씨가 아카이브에서 직접 골라주셨기 때문에, 별도로 변경한 부분은 없습니다. 앞서 말씀드렸듯이 가공 과정이 가장 까다로웠죠(웃음).
후지 디렉터는 과거에 옷을 도구(Tool)로 정의하셨습니다. 최근 본인의 일상에서 옷을 제외하고 도구처럼 완벽하게 기능을 수행한다고 감탄하며 애용 중인 물건은 무엇인가요?
타카유키 후지: 애플의 제품 전반, 1950~60년대 샤를로트 페리앙의 가구, 그리고 포르쉐 911(타입 997)입니다. 사실 이들 모두 완벽하지는 않아요. 오히려 기능성이 조금 부족할 때 더 애정이 생기는 법이라고 생각합니다.
빈티지 아카이브를재해석할 때, 가장 중요하게 생각하는 밸런스는 무엇인가요?
타카유키 후지: 고기능으로 보이지 않는 것.
서준형: 자연스러움입니다. 기능을 염두에 두지만 너무 기능적이지 않고, 오리지널리티를 존중하지만 거기에 집착하지 않는 것. 어느 한쪽에 치우치지 않고 자연스럽게 융화되는 방식이 제가 생각하는 아카이브의 좋은 재해석입니다.
이번 컬렉션에서 두 브랜드의 정체성이 가장 단단하게 묶여 있다고 생각하는 상징적인 아이템 하나만 꼽는다면요?
타카유키 후지: 당연히 코튼 리넨 코트죠.
서준형: 저도 같아요. 클래식한 트렌치코트의 실루엣을 베이스로 GORE-TEX WINDSTOPPER 기술을 적용한 논네이티브의 아이디어에, 카키스 특유의 색감과 가공 같은 빈티지한 무드가 아주 잘 어우러진 제품입니다.
후지 디렉터는 평소 0.5보 앞서가기를 실천하기 위해 다양한 문화에 관심을 두시죠. 최근 후지 디렉터의 시야에 들어온 한국의 브랜드나 아티스트가 있는지 궁금합니다.
타카유키 후지: 브랜드에 대해서는 아직 공부 중입니다. 아티스트 역시 더 알아가는 단계지만, 개인적으로 혁오와 바밍 타이거를 좋아합니다. 블랙핑크나 뉴진스 음악도 평소에 즐겨 듣고요.
두 분 모두 빈티지 아카이브에 대한 애정이 남다르신데요. 이번 협업을 준비하며 개인 소장품 중 특별히 꺼내어 참고했던 아이템이 있었나요? 없다면 가장 애정하는 빈티지 아카이브는 무엇인가요?
타카유키 후지: 평소 애착을 가지는 빈티지 아이템으로는 1992년산 파타고니아 레트로 카디건이 있습니다. 색상별로 몇 가지 가지고 있는데, 오랫동안 꾸준히 입고 있어요.
서준형: 협업의 키 아이템인 Dweller Coat의 컬러 베이스가 된 빈티지 버버리 코트입니다. 기능적인 부분과 후가공을 통한 빈티지한 무드는 충분히 적용했기에 색상만큼은 오히려 클래식하게 가고 싶어서, 빈티지 버버리 코트를 과감히 잘라 색상 스와치로 전달드렸습니다. 아까운 마음도 조금 들었지만, 덕분에 코트와 바지의 색상이 원하던 대로 잘 표현되어 뿌듯해요.
한국 시장의 유행은 매우 빠르고 역동적입니다. 논네이티브의 ‘느리고 단단한’ 디자인 철학이 한국 소비자들에게 어떤 방식으로 향유되고 기억되길 원하시나요?
타카유키 후지: 에디터님이 말씀하신 것처럼, 천천히 그리고 안심하고 구매해 주신다면 기쁠 것 같습니다. 논네이티브의 옷은 어느 연도, 어느 시즌의 제품이든 자연스럽게 잘 어우러지니까요.
서울의 카키스 팀과 후지 디렉터의 인연은 앞으로 옷 외에도 공간이나 전시 같은 다른 형태로 확장될 가능성이 있을까요?
서준형: 아직 구체적으로 논의된 바는 없습니다. 하지만 1년이 넘는 시간 동안 준비한 첫 번째 작업을 이제 막 선보이는 단계인 만큼, 앞으로의 가능성은 무한히 열려있다고 생각합니다.
한국 소비자들이 이번 협업 제품을 입고 어떤 장소에서, 어떤 표정으로 일상을 보내길 기대하시나요?
타카유키 후지: 여행 갈 때, 그리고 데이트할 때 꼭 입어 주셨으면 합니다. 굳이 드라이클리닝을 맡기지 않으셔도 돼요. 세탁기로 충분합니다. 세상엔 옷보다 중요한 것들이 훨씬 많으니까요. 저는 키가 작은 편이라 기본적으로 상, 하의를 셋업으로 연출하는데, 논네이티브의 아이템 역시 대부분 셋업으로 구성되어 있어 그렇게 입으시길 추천해요.
서준형: 이번 협업 제품들은 함께 입어도 멋지지만, 단품으로도 충분히 매력적인 빈티지 아이템들입니다. 각자 애정하는 옷들과 자유롭게 섞어서 더 자주, 더 많이 입어주세요. 시간이 흘러 이 옷들이 누군가의 또 다른 아카이브가 되었으면 좋겠습니다.
두 분의 옷이 10년 뒤 누군가의 옷장에서 소중히 회상되는 ‘단 한 벌’이 된다면, 그것은 어떤 기억이 깃든 아이템이길 바라나요?
타카유키 후지: 앞서 말씀드렸듯, 모든 논네이티브의 옷이 여러 번 세탁하며 점점 자신에게 완벽하게 맞춰지는 옷이 되었으면 합니다. 옷은 세탁을 거듭할수록 깊이와 멋이 더해진다고 생각하거든요. 너무 아끼지 말아 주세요. 살다 보면 갑자기 뛰어야 할 때도, 넘어질 때도 있고, 술에 흠뻑 젖거나 비를 맞는 순간도 오기 마련입니다. 그럴 때조차 신경 쓰지 않고 편하게 입을 수 있는 옷으로 남길 바랍니다.
서준형: 체크 셔츠입니다. 개인적으로 빈티지 아이템 중 체크 셔츠를 가장 좋아하는데요. 그래서 카키스의 체크 셔츠를 만들 때도 실의 종류부터 색상, 패턴의 모양과 크기까지 정말 많은 고민을 담아냅니다. 카키스의 셔츠도 언젠가 누군가의 좋은 기억이 깃든 소중한 한 벌이 되었으면 좋겠습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