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7년 패션 브랜드의 성과는 ‘독창적 전술’에서 판가름 났다. 다시 말해 대중은 행보 속에 ‘혁신’을 담은 브랜드에 눈길을 돌렸고, 헤리티지와 제품력만 내세운 브랜드는 결국 도태되고 말았다. 올해의 키워드는 협업과 팝업. 남다른 촉과 센스로 두 전략을 완벽하게 활용한 이들만이 패션계의 중심에 섰다. <하입비스트>의 연말 패션계 결산. 총 열 개의 브랜드가 목록에 이름을 올렸다. 2017년을 수놓은 패션 이슈는 아래에 이어진다.
어 콜드 월
어 콜드 월
내로라하는 브랜드는 물론, 다양한 개성의 신진으로 가득한 영국 런던. 세계 4대 패션위크가 열리는 이 도시에서 남다른 존재감을 발하는 브랜드가 있다. 사무엘 로스가 설립한 ‘어 콜드 월’이다. 버질 아블로의 어시스턴트를 거쳐 오프 화이트 컨설턴트 역할을 한 그가 패션계의 눈길을 사로잡은 건 불과 2년 만에 일어난 일이다. 경쟁력은 남다른 손맛. ’영국 슈트의 발상지, 새빌로 테일러 손끝에서 탄생한 스트리트웨어’로 표현할 수 있다. 2017년, 어 콜드 월은 PVC, 나일론, 캔버스 등 산업적 재료를 활용한 해체, 재가공, 드레이프 등으로 새로운 미학을 제시했다. 독창적 행보는 2018년도도 마찬가지. 리바이스, 나이키랩과 공동으로 작업한 제품군 발매를 앞두고 있다.
알릭스
디자이너로서 정체성을 확립한 걸까. 강한 목소리를 갖기 위해 여성복으로 브랜드를 시작한 매튜 윌리엄스. 그가 올해 알릭스의 첫 남성복을 선보였다. 컬렉션 제목은 ‘E. 1999 이터널’. 힙합 크루 본 석스 앤 하모니의 앨범 명이다. 제품군은 그의 베를린 경험을 반영한다. 가죽 초커, 체스트 벨트 등의 S&M 요소, 밀리터리 팔레트, 울 테일러링 등. 슬림한 실루엣에 강렬한 터치를 가해 세련된 디자인을 완성했다. 행보를 주목해야 할 브랜드 중 하나.
발렌시아가
2017년은 발렌시아가가 독식한 해라 표현해도 과언이 아니다. 신작이 등장할 때마다 화제를 모은 것은 물론, 매장 입고가 곧 품절로 이어지는 현상을 불러일으켰으니까. 이뿐인가? 스트리트 패션 애호가의 마음도 단단히 사로잡았다. 양말을 신은 듯 갑피가 발 전체를 감싸는 디자인의 스피드 트레이너는 ‘삭 러너’ 트렌드를 일으켰고, 아빠 운동화를 연상케 하는 트리플 S는 세계 곳곳의 거리를 누볐다. 쇼핑백을 빼닮은 가죽 가방 제품군, 패러디 브랜드 불렌시아가의 등장, 꼴레뜨 팝업, ‘대디코어’라는 신조어를 만든 2018 봄, 여름 컬렉션 런웨이 등 활약을 일일이 열겨하기 힘들 정도. 가히 트렌드에 최전선에 선 브랜드다운 영향력을 보였다.
구찌
알레산드로 미켈레가 재창조한 구찌의 등장은 트렌드의 판도를 단숨에 뒤흔들었다. 한 마디로 센세이션! 2015년부터 지속한, 화려하고도 아름다운 미켈레식 전개는 하우스의 ‘결’로 온전하게 자리를 잡았다. 2017년, 구찌를 향한 환호성은 한풀 꺾인 듯 보이지만, 세계관을 바탕 삼아 펼친 전방위적 활약은 여전했다. 피렌체 피티 궁전에서 패션 브랜드 최초로 런웨이를 개최하는가 하면, 스페인 아티스트 코코 카피탄과 협업해 아트월 프로젝트와 캡슐 컬렉션을 전개했다. 한 가지 더 주목해야 할 것은 데코 라인. 미켈레는 자신이 애용하는 모티브를 새긴 첫 라이프스타일 제품군을 선보였다.
스톤 아일랜드
한결같다. 디자인도, 그 명성도. 큰 변화의 물결 없이 단단한 마니아층을 구축한 건 그만큼 브랜드 가치가 높다는 방증이다. 섬유 개발, 특수 염색 기법 그리고 기능성. 변치 않을 세 가지 원칙으로 전개된 스톤 아일랜드는 시대와 세대를 막론한다. 올해 역시 프로스트 피니시 아우터 제품군이 높은 인기를 보였고, 피처, 르폼 등의 유명 리테일러도 이들의 컬렉션을 단독으로 조명했다. 올해 스톤 아일랜드는 로스앤젤레스에 매장을 개점했고, 서울에 위치한 플래그십 매장을 아시아 최대 규모로 재단장했다. 오는 2018년에 베니스와 도쿄에서도 브랜드 애호가의 새 집결지가 생길 예정이니 기대할 만하다.
오프 화이트
누군가 올해의 인물을 묻는다면, 대답은 망설임 없이 버질 아블로다. 하루걸러 한번 그의 새 소식을 접할 수 있었던 올해. 그는 개인 브랜드 오프 화이트를 통해서 수많은 공동작업을 진행했다. 나이키, 몽클레르, 엄브로, 키스, 버튼, 챔피온, 팀버랜드, KM20 모스크바, 이케아, 리모와 등. ‘현재’에 집중하는 아블로는 끊임없이 새로운 작업을 해나가며 자신의 영향력을 과시했다. 이는 ‘오프 화이트=협업’이라는 공식을 만들기도 했다. 이 결과가 약이 될 지, 독이 될 지는 더 두고봐야 할 일이다.
팔라스
그 누가 팔라스를 ‘영국의 슈프림’이라고 표현할 텐가. 팔라스는 브랜드 구조를 견고하게 잡은 한 해를 보냈다. 삼각형 로고, 브랜드명 등을 모티브로 한, 구성도가 좋은 시즌별 컬렉션을 전개했고, 스케이트파크 ‘MWADLANDS’, <팔라소닉> DVD, 잡지 등으로 브랜드의 뿌리를 조명했다. 활동 반경 역시 넓어졌다. 5월, 뉴욕에 첫 매장을 오픈한 것. 이외에도 블론디 맥코이를 전면에 세운 아디다스 오리지널스 협업 컬렉션으로 브랜드의 입지를 굳건하게 다졌다.
라프 시몬스
그의 천재성을 다시 한번 증명한 라프 시몬스. 지난 8월, 뉴욕에서 공개된 라프 시몬스 2018 봄, 여름 컬렉션을 기억한다면 수긍할 거다. 얼굴을 뒤덮는 넓은 챙 모자, 네온사인, 메탈릭한 소재, 각기 다른 패턴의 충돌. 뉴욕 차이나타운을 수놓은 여러 요소가 이후 타 브랜드에서도 종종 발견된 것을 보면, 라프 시몬스의 영향력이 실로 엄청났음을 알 수 있지 않나. 캘빈 클라인의 수장으로도 활약 중인 그는 올해 CFDA 패션 어워드에서 올해의 남성복 디자이너와 브리티시 패션 카운실의 올해의 국제 패션 디자이너 상을 거머쥐었다.
슈프림
슈프림은 슈프림이다. 최고의 위치를 점한 명실상부 스트리트웨어 브랜드라는 사실에 대해 반박할 사람은 아무도 없다. 슈프림의 2017년 하이라이트는 단연 루이비통 협업. 전 세계를 들썩이게 한 이들의 공동 작업은 하이엔드와 스트리트 패션의 경계가 모호한 현시대를 가장 잘 반영한 컬렉션이라 평할 수 있다.
베트멍
‘NOSHOW’. 베트멍은 진부함을 과감히 거부했다. 런웨이쇼 대신 사진 전시회 형태의 프레젠테이션을 개최한 것. 뎀나 즈바살리아는 베트멍 제품으로 스타일링한 거리 위 인물들을 프레임에 담아 ‘스트리트웨어’가 무엇인지 현실성 있게 보여줬다. 이후 베트멍은 홍콩으로 발걸음을 옮겨 큰 규모의 게릴라 팝업 매장을 진행했다. 조이스 백화점, 공식적으로 파트너십을 맺은 DHL과 힘을 합쳐 한정판 캡슐 컬렉션 판매를 성공적으로 마쳤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