팔로알토 x 저스디스 인터뷰 - 합작 앨범 <4 the Youth>의 모든 것
트랙도 많고, 말도 많은 MC들이여.

“찢었네.”
지난해 팔로알토와 저스디스가 <4 the Youth>의 일부 음원을 선공개했을 때, 댓글은 온통 이런 말 일색이었다. 누가 누구보다 더 찢었네, 누가 찢어놓은 걸 누가 갈아버리고 그걸 또 누가 예술로 만들어놨네. 칭찬인가? 사실 ‘찢었다’는 엄청난 실력으로 신을 압도했다 뜻이니까 호평은 맞다. 그래서 이들이 기뻐했느냐 하면, 그건 또 아니다. 되레 좀 섭섭해했다.
이유는 기사와 함께 새 앨범의 스물 두 트랙을 다 듣고 나면 알 수 있을 것이다. 트랙도 많고 말도 많은 두 래퍼의 앨범 소개부터, 피처링 아티스트들이 직접 말하는 트랙의 청취 포인트를 담았다. 이른바 ‘오지고요, 지리고요, 찢었고요’는 그다음에 알아서.
<4 the Youth>
둘이 함께 앨범을 만든다고 공표한 건 재작년, 저스디스의 콘서트 현장이었다. ‘곧’ 나오리라 여겼던 앨범은 해를 두 번이나 넘기고서야 세상에 나왔다. 다음 세대의 ‘Youth’를 뜻하는 동시에, 자신들의 ‘Youth’ 또한 의미하는 <4 the Youth>다. 붐뱁, 트랩, 래칫 등 다양한 힙합 장르를 아우르는 22 트랙으로 1시간 9분 29초를 내달린다. 처음 구상했던 앨범 규모가 6~7곡이었음을 감안하면, ‘설레발을 쳐서, 늦어서 미안하다’는 팔로알토의 볼멘 소리에 오히려 송구스러워해야 하나?
22개 트랙, 15명의 피처링 아티스트
<4 the Youth>는 트랙 수가 많다는 사실보다는 트랙 리스트가 늘어난 과정이 더 중요하다. “이 앨범은 2017년 당시 우리의 감정 상태가 고스란히 담겨 있다”는 설명처럼, 화났을 때 화가 나는 음악을, 기쁠 때 기쁜 비트를, 감상적인 순간에 감상적인 가사를 만들었다.
9번 트랙 ‘Slump’가 좋은 예다. 슬럼프를 겪을 때의 심리적 정서를 담은 이 곡의 가사를 쓰기 위해 팔로알토는 실제로 슬럼프가 올 때까지 한참을 기다렸다. 트랙을 지배하는 서정, 거기에 딱 들어맞는 감정의 중심에 서는 순간에만 벌스를 쓴 거다. 그러는 동안 트랙 수도 늘어났다. 그 덕분에 앨범에 담을 수 있었던 건지도 모른다. 귀에 쏙 감기는 비트와 가슴으로 날아와 꽂히는 메시지를.
“이 앨범을 한국 힙합의 축제 같은 걸로 만들고 싶었다.”
팔로알토: 애초에 의도한 건 아니다. 하다 보니 트랙이 쌓여가니까, 어느 시점에 저스디스가 20곡 이상 만들어 리스너를 놀랍게 해주자고 하더라.
저스디스: 난 처음부터 적어도 10트랙 이상 생각했는데. 내 기억에는 형이 유머로 받은 것 같다.
팔: 응. 무겁게 받아들이진 않았다.(웃음) 원래는 2~3곡 더 실을 계획이었는데, 이 앨범에서 감정을 엄청 쏟아냈거든. 다 소진돼서 작업할 수 있는 더 이상의 감정이 남아 있지 않더라.
저: 우리 둘은 열심히, 잘하는 사람들이니까 멋진 작품이 나올 것 같았다. 물량 공세가 아니라 트랙 수도 많은데 퀄리티도 좋은 앨범이 나오겠다고 생각했지.
피처링 아티스트도 무려 15명이나 된다.
저: 한국에서 형만큼 오래 힙합을 한 사람도 없고, 나는 어린 사람 중에서 대표하는 느낌으로 컴필레이션 앨범처럼 만들고 싶었다.
팔: 맞아. 저스디스가 이 앨범을 한국 힙합의 축제 같은 걸로 만들고 싶다고 했었다.
저: 팀 앨범이긴 하지만, 다양한 장르도 건드리는 만큼 자연스럽게 여러 뮤지션과 작업했다. 사실 훨씬 더 많은 피처링을 생각했지만.
“22트랙이나 되지만, 다 들은 후에는 이렇게 말할 수 있는 앨범을 만들고 싶었고 자신 있었다.”
’진짜 뭐지? 끝났네?’
둘의 작업이 처음은 아니다. 트랙 단위가 아닌 통앨범을 작업하는 과정은 어떻게 달랐을까?
팔: 곡 하나로 싱글을 내는 것과 앨범을 만드는 건 마음가짐부터 다르지. 트랙 리스트 짜는 거나 전체적으로 끌고 가는 건 저스디스가 주도적으로 많이 했다. 먼저 진행한 콘셉트를 보내주면, 이 친구 가사에 와 닿는 순간 내 부분을 채워나갔다.
저: 내가 그동안 가지고 있던 힙합 욕구를 모두 훑은 느낌이다. 남의 앨범에 피처링으로 불려가면 내가 하고 싶은 대로 할 수 없잖아. 그렇다고 개인 작업물을 하는 건 리스크가 크고. 나는 팔로 형과 내가 ‘올라운더’라고 느꼈다. 어떤 세부 힙합 장르에서도 같이할 수 있는. 형과 함께라면 가벼운 마음이면서도 묵직하게 할 수 있겠다 싶었지.
팔: 저스디스 하면 일반적으로 ‘화가 나 있다, 날카롭다’, 팔로알토는 ‘가사가 되게 위로가 되고. 터치한다’는 이미지가 있다. 이 앨범은 그 밸런스를 잘 맞췄다고 할까. 저스디스의 공격성이 희석됐고 나의 공격성이 더 올라가서, 딱 좋은 밸런스로 다양한 감정을 표현했다.
타이틀 곡 ‘스위치’는 어떤 곡인가.
팔: 나는 회사 운영할 때와 음악 할 때 마음가짐이 다르다. 이런 상황에 있을 때 이런 모드 저럴 때 저런 모드. 그런데 누구나 이런 다양한 모습과 양면성을 가지고 있지 않나? 나의 여러 모습이 위선이나 가식적이라고 평가받으면 억울하다. ‘누구에겐 착하지만 누구에겐 나쁜 놈’이라는 라인이 내 마음을 가장 잘 대변한 것 같다.
저: 앞쪽 벌스에서는 각자의 삶에 대해 얘기한다. 이 곡을 작업할 당시 나도 소속사가 없는 인디 아티스트라서, 앨범 홍보부터 유통, 제작까지 혼자 해야 했다. 또래 동료들에게 이런 고민을 얘기하면 이해 못 하는 사람이 많았다. 대부분 회사에서 도와주니까. 레이블의 대표인 형과 이런 부분에서 공감대가 있어서, 자연스럽게 곡이 만들어진 거고.
팔: 그런 답답한 감정들을 스위치를 ‘온오프’ 하는 것에 빗댔다. 좌뇌와 우뇌를 켜는 콘셉트를 빌려와 재미있게 작업했다.
선공개 곡 ‘Cooler than the Cool’에서 사회적 이슈를 노래했다. 요즘 보기 드문 컨셔스 랩이고, 현 시대에 필요한 메시지를 던져줘서 아주 시원했다.
팔: 이 사회를 바라보는 각자의 비판적인 시각들을 표현한 곡이다. 저스디스와 허클베리피는 박근혜 정부 시절에 가사가 완성된 상태였고, 나는 문재인 정부로 바뀐 뒤에 가사를 완성했다. 정부가 교체되니 사회 분위기도 희망적으로 바뀌는 걸 체감하고 선공개를 결심했다. 이 곡이 더 늦게 발표되면 만들 때 우리의 감정과 온도 차이가 나지 않을까 해서.
저: 내 벌스의 첫 부분은 2011년 즈음 내가 순수하던 시절에 써놓은 시 같은 가사다. 항상 저장해두고 있다가 이번에 노래로 만들었다. 첫 영감 자체가 셋이서 엄청 빠르게 컨셔스 랩을 서른두 마디씩 뱉는 곡을 하고 싶다는 생각이었다.
팔: 이런 노래를 내는 것에 대한 자부심이 있다. 시류에 휩쓸려 눈치 보지 않고 시도하고 싶었고. 요즘 가사는 대부분 직설적이고 사람들의 기억에 쉽게 남을 수 있는 캐치한 라인들로만 채워지는 음악이 많다. 들으면서 깊게 고민하게 하는 가사들은 거의 없다. 그래서 이 곡을 만들 때 지금 힙합 음악을 소비하고 있는 10~20대 사이에서 환영받지 못할 거라는 예상을 했었다.
피드백에 대해 긍정적이지만은 않다고 말하는 이유는?
팔: 일단 빠르잖아. 랩이. 그거에만 너무 초점이 맞춰져 좀 아쉽다. 가사 안에서 얘기하는 내용보다는 ‘누가 찢었네’ 위주의 반응이 다수다. 세 명의 경주마가 달리는 그런 느낌으로 받아들인다고 해야 하나. 그래도 생각했던 것보다 고리타분하다고 생각 안 해주셔서 기분이 좋았다.
커버 아트워크가 재밌다. 파형 모양인데.
팔: 파형 모양은 우리가 각자 목소리로 ‘4 the Youth’를 소리 낸 사운드 웨이브(음파)다. 주황색은 내가 손글씨로 쓴 가사, 초록색은 저스디스의 가사를 컴퓨터 타이핑해 프린트한 거다. 커버 속 조형물은 IAB-Studio가 제작했다.
저: 처음부터 그래픽이 아닌 설치 미술류의 실제 작품을 사진으로 담아 커버를 만들고 싶다는 생각이 있었다. 그냥 봤을 때는 어떤 조형물인지 모를 것 같아서. 이해를 돕고자 SNS에 제작 과정 영상을 올렸다. @4theyouthgram에서 확인하시라.
리릭시스트, MC, 래퍼. 힙합 뮤지션을 호명하는 다양한 이름 중 무엇으로 불리고 싶나?
팔: 그냥 음악 하는 좋은 사람으로 평가됐음 좋겠다.
저: 굳이 꼽자면, 나는 ‘레전드’? 동시대를 함께 숨 쉬면서 이끌고 가는 선구자보다는 10년쯤 지났을 때 선구자로 인정받는 의미에서. 하지만 이런 타이틀에는 욕심이 있다.
“야, 그 형이 레알 선구자였어. 개 빨랐네. 그 형이 다 해놨네.”
팔: 그러니까 생각났는데. 원래는 앨범 타이틀을 ‘Legacy’로 하면 어떻겠냐고 했거든. 우리가 만든 것들이 ‘레거시’가 됐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어서.
“이 사람들은 트랙도 많은데,
말도 진짜 많다고 생각하는 것 아니야?”
인터뷰를 끝마치고 인사를 나누는데, 팔로알토와 저스디스가 농담을 던졌다. 예감은 언제나 적중하는 법. 진솔하고 근사한 생각들이 기사 한 편을 꽉 채우기에 충분했다. 그리하여 <4 the Youth>의 피처링 아티스트들이 직접 말하는 각 트랙의 청취 포인트 소개는 별도의 기사에서 계속된다. 타이틀곡 ‘Switch’를 주제로 발칙한 상상도 부탁했다. 내 인생을 ‘SWITCH’ 할 수 있다면 누구와?
크러쉬부터 진보, 윤비, 지투, 일리닛, 허클베리피, 챈슬러, 어글리 덕, 씨피카, 뱃사공, 오르내림까지. <4 the Youth>의 피처링 아티스트들과 팔로알토, 저스디스가 인생을 바꾸고 싶은 사람이 누군지 궁금하다면 여기에서 확인하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