페노메코 인터뷰: 피네이션이 선택한 '올라운더' 아티스트
“시드는 것과 성숙해지는 건 다르잖아요.”

한 가지 포지션에 제한되지 않고 여러 역할을 두루 소화하는 다재다능한 이들을 우리는 흔히 ‘올라운더’라고 부른다. 아티스트 페노메코가 그렇다. 래퍼이자 가수이며, 동시에 프로듀서와 작사가로서의 재능을 겸비한 그는 스스로 역할의 경계를 지워가며 다채로운 음악을 선보여 왔다.
2014년 데뷔 이후 7년 만에 피네이션이라는 새 둥지를 찾은 페노메코가 그간의 경험치를 녹여낸 EP <Dry Flower>. 그는 <Dry Flower>가 ‘시듦’이 아닌 ‘성숙’에 방점을 찍은 작품이라고 설명한다. 페노메코가 말하는 ‘성숙’이란 무엇일까? 피네이션이 지목한 새 아티스트, 페노메코와 이야기를 나누고 왔다.
올해로 서른 살이 됐죠. 어떤 마음으로 한 해를 보내고 있는지 궁금해요.
사실 작년부터 앨범 작업이 조금 순조롭지 못했어요. 불안감과 조바심 탓에 건강하지 못한 생활을 이어 오고 있었어요. 이제 열심히 준비한 앨범도 공개했으니 건강한 생활 패턴을 만들어보려고 합니다.
새 앨범 타이틀이 <Dry Flower>에요. 전 앨범의 이름은 <Garden>이고요. 두 앨범 제목을 나란히 놓고 보니 그간의 시간을 어떻게 보냈는지 궁금해져요.
<Garden>은 저에게 있어 갓 피어난 생화와 같은 존재였어요. 음악을 시작하고서 처음 앨범 단위 작품을 만들어봤고, 그 경험들이 매 순간 생소하고 신선했거든요. 그 감정들을 음악에 고스란히 담았죠. 하지만 그 이후로 음악을 계속하면서 그 느낌이 사라졌고, 문득 ‘다시 예전처럼 생기 넘치게 창작 활동을 하고 싶다’라는 생각이 들었어요. 슬럼프였던 걸까요? 마음이 무거웠던 그 시기에 이런 생각을 했어요. ‘<Garden>이라는 꽃이 비바람을 맞고 여러 계절을 보낸 끝에 시들어버린다면, 그럼 이제 이 꽃은 죽은 건가?’ 바로 여기서부터 이번 앨범 준비를 시작했어요.
앨범의 전체 프로듀싱을 본인이 직접 진행했다고 들었어요. 그 시든 꽃은 어떤 테마가 되었나요?
앨범의 주제는 ‘성숙함’이에요. 이따금 어머니께 꽃을 선물해드리면 어머니는 꼭 그 꽃을 거꾸로 매달아서 말리시거든요. 사실은 시들어 죽은 꽃이지만, 사람들은 그 꽃을 ‘드라이플라워’, ‘건조화’라고 부르면서 다시 새 생명을 부여해 주잖아요.
저 역시 <Garden>을 만들면서 느꼈던 감정들을 성숙한 모습으로 다시 빚어보고 싶었어요. 오래도록 간직해온 것들에 새로운 의미를 부여하는 거죠. 시드는 것과 성숙해지는 건 분명 다른 일이잖아요.
앨범 전체에 그러한 구성이 흐름으로 나타나 있는 듯해요.
네, 그래서 개인적으로는 꼭 앨범을 순서대로 다 들어줬으면 좋겠어요. 이번 앨범의 전개는 ‘사랑’이라는 울타리 안에서 많은 이야기들이 뿌리내리는 과정을 표현한 메타포와도 같아요. 꽃이 활짝 피고 다시 조금씩 건조해지듯, 변해가는 감정선을 곡의 순서에 따라 표현해보고 싶었어요.
하나만 꼽긴 어렵겠지만 가장 애착이 가는 곡이 있을까요?
마지막 곡인 ‘불면증’을 고르고 싶어요. 제가 말하는 ‘성숙함’이 무엇인지 가장 잘 표현해 주고 있는 노래거든요. 아마 ‘불면증’ 한 곡만 따로 들으면 ‘우울한 무드의 감성적인 곡이구나’라고 생각할 수도 있어요. 하지만 앨범을 처음부터 순서대로 감상하고 마지막 ‘불면증’을 들으면, 제가 전달하고자 했던 ‘감정의 성숙함’을 좀 더 쉽게 이해힐 수 있을 거예요.
지난 7년간 많은 음악을 냈지만 그 중 ‘정규 앨범’은 하나도 없었어요. 특별한 이유가 있을까요?
저는 정규 앨범을 낼 생각이 없는 모양이에요. 물론 앞으로도 정규 앨범 볼륨의 작업물을 만들어 나갈 계획은 있지만, 그 앨범들을 ‘정규’라고 칭하진 않을 것 같아요. 스스로 ‘정규 앨범’이라고 소개한다면, 마치 자신 있게 ‘지금 이 앨범이 제 모든 것을 쏟아낸 최고의 결과물입니다!’라고 하는 것 같아서 낯간지럽기도 하고요. 그런 결과물을 만들려고 하면 온전히 제 음악 생활을 즐기지 못할 것 같아요. 아직까지는 이런 마음이지만 또 모르죠. 어느 날 자존감이 솟구쳐서 정규 앨범을 발표할 수도 있고요.(웃음)
이번 앨범에는 후디, 소금, 버벌진트, 키드밀리 등 많은 아티스트가 참여했죠. 피처링 라인업을 꾸리는 기준이 있을까요?
저 같은 경우에는 비트가 완성되면 ‘이 트랙은 나 혼자’, ‘이 트랙은 누구’ 식으로 가이드 작업 전에 함께하고 싶은 아티스트를 정해두는 편이에요. 트랙을 듣는 동안 곡 주제와 무드에 적합한 아티스트들을 제가 아는 선에서 떠올려봐요. 그렇기 때문에 이번 앨범 속 각 트랙에 참여해준 분들은 제가 생각했을 때 이 분들보다 더 잘 어울리는 아티스트는 없다고 단언할 수 있습니다.
작업 중 기억에 남는 재밌는 에피소드가 있다면요?
소금의 피처링 벌스 가이드를 받았는데 너무 좋은 거예요. 그래서 “오 지금 가이드 너무 좋은 것 같다! 가사는 언제쯤 쓸 예정이야?”라고 물어봤는데 이미 가사가 있었더라고요. 참 재밌었습니다.(웃음)
여태껏 많은 뮤지션들과 협업해 왔는데, 앞으로 꼭 같이 작업해보고 싶은 아티스트가 있을까요?
선우정아. 예전부터 정말 팬이었어요. 기회가 된다면 꼭 같이 작업해보고 싶어요.
페노메코는 랩부터 작곡, 작사, 노래까지 해내는 ‘올라운더 아티스트’잖아요. 그 중 본인 스스로 가장 무게를 두고 있는 포지션이 있다면요?
요즘은 프로듀싱 영역에 많은 관심을 두고 있어요. ‘음악을 만드는 것뿐만이 아니라, 음악의 세계관 안에서 사람들을 설득하고 납득시키고 싶다’라는 생각이 들거든요. 그래서 최근에는 제 음악뿐 아니라 다른 아티스트들의 음악도 열심히 만들어보고 있어요. 재밌더라고요.
어떤 칭찬을 들을 때 가장 기분이 좋은지 궁금해요.
요즘엔 “기다렸어요”, “왜 이제 왔어요” 하는 말들을 들을 때 참 좋아요. 앨범을 공개한 지 꽤 지나서 ‘사람들에게 잊혀지진 않았을까’ 하는 조바심이 컸거든요. 이런 응원 글을 보면 팬들이 잊지 않고 기다려 줬구나 하는 생각에 정말 기쁘더라고요.
피네이션에 합류하게 됐어요. 입사까지의 비하인드 스토리가 궁금해요.
오랫동안 함께해온 회사에서 나온 뒤 한동안 많이 갈팡질팡했어요. 나름 저 스스로가 판단력이 있다고 생각했는데 아니었던 거죠. 그러던 와중에 싸이 형으로부터 연락이 왔어요. 예전에 제시의 ‘눈누난나’를 작업한 이후에 몇 번 만남을 가진 적 있거든요. 저는 싸이 형이 저에게 관심이 있을 거라고는 전혀 생각 못했거든요.
그런데 싸이 형은 프로듀서로서의 제 능력뿐만 아니라 아티스트 페노메코의 음악에도 많은 관심을 가지고 있었어요. 싸이 형이 제가 가지고 있는 비전을 함께 실현해보자고 말해줬고, 이런 부분이 제가 피네이션을 선택한 이유가 됐죠.
<쇼미더머니>부터 <브레이커스>, <고등래퍼>, <복면가왕>까지 여태 많은 방송 무대에 올랐잖아요. 그 중 본인도 다시 찾아보는 ‘최애 무대’가 있나요?
아직도 <브레이커스> 무대들은 간간이 찾아보고 있어요. 언급된 프로그램들 중에서 제일 힘들었던 프로그램이거든요. 우승도 했다 보니 더 애착이 가네요.
친구(지코)의 격려로 다시 음악을 시작할 수 있었다는 이야기는 팬들 사이에서 이미 유명하죠. 이따금 슬럼프라고 느껴지는 시기를 넘기는 자신만의 방법이 있을까요?
사실 슬럼프를 넘길 수 있는 정해진 지름길은 없는 것 같아요. 그냥 시간이 해결해 준 적도 있고, 주변 친구들 혹은 음악 하는 동료들에게 의지할 때도 있었어요. 하지만 결국엔 자신의 의지가 핵심이겠죠. 100% 중 지금 나의 의지가 20%밖에 되지 않는다면, 100%가 될 때까지 기다리는 편이에요. 나머지 80%를 친구 20%, 동료들 20%, 맛있는 음식 20%, 음악 20% 이런 식으로 조금씩 채워가는 거죠.
앞으로 페노메코라는 아티스트가 어떻게 기억됐으면 하나요?
음악을 참 사랑하고, 잘하는, 좋은 사람?(웃음)
마지막으로 <하입비스트> 독자분들과 팬들에게 하고 싶은 말이 있다면 부탁드릴게요.
안녕하세요, 여러분. 너무 오랜만에 인사드립니다. 앨범이 나오기까지 좀 시간이 걸렸죠? 그만큼 정말 열심히 준비한 앨범이니 즐거운 마음으로 들어주셨으면 좋겠습니다. 언제나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