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재연 인터뷰: 밤의 생경한 풍경을 사유하는 몽상가

본캐는 화가, 부캐는 프로게이머.

미술 
10,433 Hypes

유재연 작가의 작품에는 두 가지, 혹은 그 이상의 여러 성질과 감정이 공존한다. 이는 비단 작품에 등장하는 소재에 국한된 이야기가 아니다. 익숙한 풍경에서 느껴지는 생경한 인상이나 ‘희망적인 암울함’과 같은 모순되고 양가적인 감상평이 어울리는 특유의 분위기가 작품에서 짙게 묻어난다. 작가의 화폭에 담긴 밤의 풍경은 그녀가 타지에서 경험했을 ‘고립’과 ‘자유’의 배경이자, 현실과 비현실의 경계로 작용한다. 런던과 서울, 두 도시를 오가며 사유한 작가의 밤의 풍경을 그녀의 열 번째 개인전이 열린 전시장에서 직접 들여다봤다.

유재연 인터뷰: 밤의 생경한 풍경을 사유하는 몽상가

안녕하세요, 자기소개 부탁합니다.

안녕하세요. 저는 유재연 작가입니다. 서울에서 태어나 현재는 런던에 거주하며 작업 활동을 하고 있습니다. 회화와 설치, 영상을 통해서 홀연히 나타났다 이내 사라지는 ‘밤’의 시간을 통해 고립과 자유의 상태를 표현하는 작업을 진행하고 있습니다.

전시 제목을 <Great to see you> 선정한 이유가 분명 있을 것 같은데요. 이번 전시의 주제와 함께 제목의 선정 과정을 알려주세요.

지난 1년간 지속된 봉쇄로 인해 직접 대면하는 관계들이 거의 없다시피 혼자 런던에서 시간을 보내다 보니 그림 속의 인물들을 마주하는 것만으로도 나에게 어떠한 사건이 될 수 있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꾸준히 관심을 가지고 있었던 ‘고립’과 ‘자유’라는 키워드에 걸맞은 시간들을 보내며, 캔버스 안의 세상에서 그 인물들이 어떻게 마주하고 헤어지는지에 대한 생각들을 하게 되었습니다. 이번 전시에서 보여지는 ‘록다운-페인팅’들을 하나의 단어로 응축한다면, 어떤 인사말이 될 수 있지 않을까 생각해 선정된 제목입니다.

타국에서 겪은 코로나19사회적 거리두기는 자국에서의 경험과 비교하면 그 격차가 상당할 것 같은데요. 작가님이 런던에서 경험했던 지난 1년, 어땠나요?

외출이 제한되고 대부분의 사람들이 재택근무를 하게 되면서 저 또한 외부와 철저히 단절된 채 지냈던 것 같아요. 작업실을 드나들며 그 누구도 만나지 않게 되는 날 또한 빈번했고, 흔한 안부 인사도 하지 않은 채 보내는 날들이 부지기수였죠. 집 안에 앉아 지나가는 기차를 하루에 몇 번이고 쳐다보게 되고 그 누구도 태우지 않은 기차 내부가 훤히 들여다보이는 밤에는 ‘이곳이 바로 유령도시구나’라고 자연스레 읊조리게 되는 생경한 경험을 하기도 하였습니다. 금세 끝날 줄 알았던 봉쇄 기간이 길어지다 보니, 화면으로 만나게 되는 관계 또한 늘어나기 시작하면서 평평한 모니터 너머로, 손끝에 만져지는 휴대폰의 촉감으로 누군가의 목소리나 대화의 장면들이 그렇게 기억되기 시작하기도 했어요.

작품의 색감이 가장 먼저 눈에 띄는 편입니다. 주로 사용하는 색이나 표현 방식이 있나요.

록다운 기간 중 화상으로 접하는 관계가 늘어나다 보니 세상의 시각적인 레이어가 더욱 평평하게 다가왔어요. 그래서인지 회화가 지닌 평면성을 더 극대화해보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이미 평평한 평면 위에 물감을 더 납작하게 사용하고, 레이어를 얇게 올리며 물감을 닦아내는 방식으로 색감을 다듬었어요. 특히, 60호 이상 크기의 작업들은 3가지 색을 주축으로 제한을 두고 작업했습니다. 마젠타와 울트라마린, 그리고 약간의 그린이 들어가게 되었는데 정해진 색의 범위 안에서 그려 나가며 모노톤 아닌 모노톤을 구축하고 싶다는 생각을 했습니다.

유재연 인터뷰: 밤의 생경한 풍경을 사유하는 몽상가

유재연 작가의 작품은 주로 을 배경으로 하는 경향이 있습니다. 유독 에 집중하는 이유가 있나요?

런던에서 작업실을 오가던 시간대가 주로 어두운 시간이었다는 점에서 출발했습니다. 낮에 일을 마치고 작업실로 가던 길, 작업실에서 나와 집으로 향하던 길에서 저처럼 밤에 홀로 걷는 사람들을 자주 목격하게 되었어요. 공원을 가로지르는 길이 집으로 갈 수 있는 가장 빠른 지름길이라 10시 이후면 잠기는 공원의 담을 넘어 다니며 아무도 없는 숲길을 지나기도 했습니다. 낮에는 사람들로 가득 차 시끌벅적했던 공간이 밤이면 조용히 가라앉아 언제 그랬냐는 듯 침묵으로 가득 찬 느낌이 생경했죠. 그렇게 어느새 루틴이 된 혼자 걷는다는 행위와 그때의 시공간적 경험이 응축되어 자연스럽게 그림으로 들어오게 된 것 같아요.

만큼이나 호수나 공원처럼 자연적 요소가 강조되는 공간이 배경이 되는 작품이 대부분입니다. 이 부분에 관한 작가의 생각이 궁금합니다.

밤의 공원을 가로지르는 경험들이 출발점이 된 것 같아요. 밤에 아무도 없는 공원에 들어가보면, 기존에 알고 있던 도시의 느낌과는 전혀 다른 것들을 아주 쉽게 느낄 수 있어요. 제가 굴리는 스케이트보드의 소음이 평소보다 훨씬 더 크게 울리고, 풀벌레 소리, 동물들의 작은 움직임 등을 금세 알아차리는 작은 경험들이 이어지면서, 마치 현세에서 잠시 벗어난 듯한 착각을 일으키기도 해요. 저에게 그림 속의 세계 또한 그런 것 같아요. 분명히 가 본 적 있는 듯한 장소이고 풍경인데 어디인지 낯선 곳. 그것이 결국 도심 속 작은 공원일지라도 자연적인 요소가 주는 영감은 저에게 아주 크기 때문에 회화 속에 등장하는 장소 또한 자연의 모습들이 강조되는 것 같아요.

작품에 반복적으로 등장하는 소재들이 있습니다. 해당 소재를 통해 전달하고자 하는 메시지가 있나요?

저도 모르는 사이에 반복적으로 등장하는 소재들이 있습니다. 설명하기 어렵지만 일상적으로 꾸준히 생각하는 것들이 응축되어 어떠한 도상으로 드로잉에 등장합니다. ‘소년’으로 일컬어지는 그림에 등장하는 사람은 제 자신이기도 했다가 제가 생각하는 타인이 될 때도 있고, 어떤 이야기의 이름 없는 주인공이 되기도 해요. 살아가면서 때때로 맞이하게 되는 죽음에 대한 공포와 사유가 ‘무덤’을 닮은 형태로 등장하기도 하며, 그 모든 것들을 덮어주는 ‘유니콘’과도 같은 존재로서 하얗게 빛나는 덩치 큰 ‘새’가 등장하기도 합니다. 하지만 결코 이것들이 어떤 각각의 의미를 강하게 내포한다고 생각하지는 않아요. 그리는 사람으로 하여금, 보는 이로 하여금 지속적으로 변형될 수 있는 유연한 존재들이라고 생각해요.

이번 출품작은 대부분 <나이트 워커> 시리즈로 알고 있습니다. 해당 연작 외에 다른 스타일의 작품과 세계관이 또 있다면 소개해 주세요.

밤에 홀로 걷는 사람들을 그리면서 시작된 <나이트 워커> 시리즈와 함께 조각회화(piece-painting) 시리즈 또한 병행하고 있어요.

유재연 인터뷰: 밤의 생경한 풍경을 사유하는 몽상가

<Home boat>, <Nightscape> 연작들처럼 비정형의 캔버스에 채색된 작품들도 눈에 띄네요. ‘-아웃 우드로 명명한 해당 연작들이 가지는 세계관이 궁금합니다.

나무 위에 유화로 그린, ‘컷-아웃 우드’로 표기된 작품을 저는 조각-회화(Piece-painting) 시리즈라고 부르고 있어요. 조각품(Sculpture)의 조각이 아닌 한 부분을 뜻하는 조각조각(Piece by piece)으로 나뉘어 있다는 의미로 제가 조합한 단어입니다. 제 노트에서 추출한 작은 사이즈의 마커 드로잉들이 두께감을 가지고 크기가 커진 채 실제 공간 안에서 납작한 조각들로 재탄생 되는 작업이에요. 이번 전시에 보여지는 조각-회화들은 기존의 것들보다는 조금 작은 사이즈에 네모지거나 동그란 형태를 띠고 있어요. 외출이 자유롭던 시절 바깥에 나가 추출해 오던 공원 풍경들과 봉쇄 기간 동안 창문을 통해 내다본 것들을 재조합한 작업물입니다.

이번 전시를 통해 관람객과 공유하고자 했던 메시지를 한 단어나 문장으로 함축한다면?

Great to see you!

본인 작품의 분위기가 다소 우울하다고 생각하나요? 아니면 긍정의 에너지를 내포한다고 생각하나요?

여러 가지 감정들이 함께 있다고 생각해요. 우울하고 슬프기도 하지만 재밌고 희망적이기도 한 그런 상태들이 겹쳐져 있다고 느껴요. 아무래도 모두가 그렇듯 삶의 모양새는 한 방향으로 향하고 있지만은 않으니까요. 하지만 어떤 감정의 상태를 겪게 되던 그것을 통해 위로받을 수 있다면 결국 그 작품은 긍정의 힘을 지닌 것이 아닐까 하고 생각합니다.

그림 이외에 자신을 표현하는 수단이 또 있나요? 요즘 말로는 부캐라고 부르기도 하는 그런 본인만의 취향이나 캐릭터가 있으면 알려주세요.

그림 이외에 저를 표현하는 수단인지는 모르겠으나 제가 좋아하는 몇 가지가 있어요. 아무도 보지 않는 글을 쓰며 시간을 보내는 걸 좋아하고, 혼자 기타 연주를 하는 것도 좋아해요. 무엇보다 장르 불문 게임을 너무나 좋아합니다. 시간 가는 줄 모르고 할 때도 있다 보니 제 여가시간이 오롯이 실내 공간에서 혼자 할 수 있는 것들로만 채워지는 것 같아, 작년부터는 자전거를 타는 것에 재미를 붙여 야외활동도 조금씩 하며 지내고 있습니다.

런던과 서울을 오가며 작업하는 것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런던에서의 전시 활동은 어떤 것들이 있었나요? 또한, 두 도시에서의 전시를 비교하면 어떤 차이점이 있는지 궁금합니다.

2014년에 학교를 졸업하고 그 해 10월 런던에서의 첫 개인전을 하게 되었습니다. 학생 신분을 벗어나 처음으로 졸업 작품이었던 [Magic Window (2014)]라는 제목의 영상설치 작업을 포함한 회화 작업을 보여줄 수 있는 기회가 되었고, 그 전시를 시작으로 크고 작은 갤러리와 기관에서 전시들을 하게 되었어요. 기억에 남았던 곳은 영국 서남부 콘월(Cornwall)에서 했던 한 바닷가 마을의 전시입니다. 작가이자 기획자였던 친구의 집에서 했던 전시였는데 기존의 화이트큐브를 벗어난 오래된 영국 집의 분위기와 그 마을 사람들의 환대를 잊을 수 없는 좋은 경험이었어요. 삶과 예술이 분리되지 않은 채 어우러지는 자연스러운 풍경을 접해서 참 부러워하기도 했던 기억이 납니다.

작가로서 이루고 싶은 꿈이 무엇인가요? 

어디에도 속하지 않은 채 자유롭게 유영하는 삶을 지속할 수 있다면 더할 나위 없을 것 같아요. 끊임없이 도전하고 자극을 받아들이며, 매몰되지 않는 선에서 자신의 작업과 삶에 몰입하고, 또한 꾸준히 세상과 소통하기도 하는 그런 모습의 작가 생활을 할 수 있다면 좋겠습니다.

현재 예정된 활동이 있다면 간략하게 소개 부탁드립니다.

내년에 런던에서 있을 작은 개인전을 준비 중입니다. 작년 한 해에는 모두에게 고된 시간이 되었지만 2022년에는 런던에서도 조금 더 자유로운 활동을 할 수 있길 바라며 작품들을 보여줄 기회를 만들려고 하고 있어요.

유재연 작가의 개인전 <GREAT TO SEE YOU>는 아래 주소에서 7월 2일까지 진행된다.

갤러리 룩스
서울시 종로구 옥인동 62

더 보기

이전 글

양홍원 인터뷰: 너네 준비됐어?
음악

양홍원 인터뷰: 너네 준비됐어?

“너네 준비됐어.”

호미들 인터뷰: 새 출발을 알린 죽마고우들
음악 

호미들 인터뷰: 새 출발을 알린 죽마고우들

“우리의 정점은 아직 오지 않았다.”

비비 인터뷰: 태도가 작품이 될 때
음악 

비비 인터뷰: 태도가 작품이 될 때

“비비는 당신의 거울이에요.”


MLMA 인터뷰: “나는 나를 사랑하는 핑크 푸딩 젤리야!”
패션 

MLMA 인터뷰: “나는 나를 사랑하는 핑크 푸딩 젤리야!”

패션, 미술, 디자인 등 다양한 분야의 예술을 아우르는 멀티 아티스트 멜로를 만났다.

선글라스부터 반스까지, 슈프림 2021 SS 컬렉션 17주 차 드롭 리스트
패션

선글라스부터 반스까지, 슈프림 2021 SS 컬렉션 17주 차 드롭 리스트

밴드 매시브 어택과의 협업도 있다.

전 세계에서 SNS 가장 많이 하는 나라는 어디일까?
테크

전 세계에서 SNS 가장 많이 하는 나라는 어디일까?

SNS 이용률 99%를 기록한 나라는 어디?

트래비스 스콧 x 프라그먼트 디자인 x 나이키 에어 조던 1의 슈박스가 공개됐다
신발

트래비스 스콧 x 프라그먼트 디자인 x 나이키 에어 조던 1의 슈박스가 공개됐다

찍힌 로고만 대체 몇 개야.

볼보의 전기차 브랜드 폴스타, 첫 SUV ‘폴스타 3’ 티저 공개
자동차

볼보의 전기차 브랜드 폴스타, 첫 SUV ‘폴스타 3’ 티저 공개

테슬라와 경쟁에 나설 모델.

알앤비 그룹 보이즈 투 맨, 이달 한국 데뷔 싱글 공개한다
음악

알앤비 그룹 보이즈 투 맨, 이달 한국 데뷔 싱글 공개한다

바이브와의 협업 리메이크 트랙.


지샥, 메탈 감성의 GST-B400-1A 공개
패션 

지샥, 메탈 감성의 GST-B400-1A 공개

Presented by G-Shock
고성능을 품은 초슬림 바디.

놓쳐선 안 될 2021년 6월 셋째 주 출시 아이템 8
패션 

놓쳐선 안 될 2021년 6월 셋째 주 출시 아이템 8

나이키, 다다DADA多多, 엑슬림, 슈프림 등.

스케이트보드 신 대표 브랜드, 반스 x 슈프림 2021 컬렉션 출시 정보
신발

스케이트보드 신 대표 브랜드, 반스 x 슈프림 2021 컬렉션 출시 정보

협업 모델은 두 가지.

단독: BTS와 맥도날드의 만남으로 완성된 2차 협업 아이템 화보 공개
패션 

단독: BTS와 맥도날드의 만남으로 완성된 2차 협업 아이템 화보 공개

아티스트 머치를 일상에서 소화하는 방법.

버질 아블로 x 에비앙, 물풍선 타입의 ‘리뉴’ 정수기 출시
디자인

버질 아블로 x 에비앙, 물풍선 타입의 ‘리뉴’ 정수기 출시

물론 100% 재활용 소재로 만들어졌다.

More ▾
 
뉴스레터를 구독해 최신 뉴스를 놓치지 마세요

본 뉴스레터 구독 신청에 따라 자사의 개인정보수집 관련 이용약관에 동의한 것으로 간주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