을씨년 인터뷰: 당신이 주목해야 하는 한국 힙합의 다음 세대

‘재밌다’라는 단어가 어울리는 신인 뮤지션.

음악 

을씨년(이하 EXN)은 ‘재밌다’라는 단어가 걸맞은 뮤지션이다. 사운드클라우드를 통해 곡을 공개하던 시절부터 랩인지, 노래인지 구분하기 어려운 스타일로 많은 음악 마니아들의 주목을 받았다. 이후 그는 첫 EP <[QQQQQ]>를 발매하며 사운드클라우드가 아닌 다른 채널에도 자신의 이름을 각인시켰다. 다양한 국내 음악 매체가 EXN을 ‘한국 힙합의 다음 세대’라고 언급한 것도 비슷한 시기이다.

하지만 EXN은 정작 자신의 음악이 어떤 장르인지, 그 안에는 어떤 내용이 들어있는지 이야기하는 데에는 큰 관심이 없었다. 오히려 자신의 음악을 듣는 이에게 던지는 질문이라고 표현하며 사람들이 ‘자신만의 대답’을 들려주길 원한다고 밝혔다. 물론 EXN에게도 하고 싶은 이야기는 분명히 존재한다. <하입비스트는> EXN과 만나 자신의 음악을 ‘질문’이라고 표현하는 이유, 자신의 메인 컬러를 핑크로 내세우는 이유 그리고 앞으로 들려줄 ‘을씨년스러운 음악’에 관한 이야기를 나눴다.

셔츠와 스커트는 한킴.

어떤 사람은 EXN의 음악을 랩으로 분류하고, 또 누구는 노래라고 생각할 거 같아요. 이런 스타일은 어디서 비롯된 걸까요?

특정 시점이나 레퍼런스는 없는 것 같아요. 예전부터 랩하는 것도, 멜로디 만드는 것도 좋아했어요. 연습하는 기분으로 여러 장르를 시도하는 걸 재밌어했었죠. 제가 잘 소화하지 못하는 스타일의 비트에도 도전했었고요. 이런저런 것들을 시도하다 보니 지금처럼 된 게 아닐까 싶어요.

음악을 처음 시작한 건 언제인가요?

처음 기억은 초등학교 5, 6학년 쯤이었어요. 공책에 가사를 쓰면서 노래를 만들고, 컴퓨터로 이것저것 해보곤 했었어요. 그러다 15살 정도에 본격적으로 음악을 만들어 인터넷에 올리기 시작했고요.

꽤 어린 시절인데요. 보통 그쯤 음악을 시작하면 부모님의 반대가 심하잖아요.

당연히 심했죠. 그래서 부모님 몰래 음악을 만들었어요. 그러다가 고등학교 때 음악을 하고 싶다고 부모님에게 말씀을 드려봤어요. 음악은 쉽지 않다, 왜 네가 잘 다니고 있는 디자인 학교 관련이 아니라 음악을 하려는 거냐는 답변이 돌아왔죠. 음악으로 먹고살려면 특출난 재능이 있어야 하기에 저는 성공하지 못할 거라는 부정적인 말씀도 하셨고요.

그 이후로는 음악을 하겠다는 이야기를 잘 안 했어요. 대신에 음악을 하기 위해 서울에 가겠다고 다짐했죠. 제가 살던 부산에서는 음악과 관련된 오프라인 활동을 할 수가 없었거든요. 부모님에게는 “공부 열심히 하고 있으니, 쉬는 시간에는 작업할게요”라는 식으로 말씀드렸죠. 대학은 서울에 온 뒤 바로 자퇴했어요.

이제는 앨범도 나왔고, 소속사도 생겼잖아요. 부모님도 인식이 많이 바뀌셨겠어요.

완전 180도. 하하.

본인도 바뀐 점이 있나요?

모든 면이 바뀌었지만, 가장 많이 달라진 건 마음가짐인 것 같아요. 사운드클라우드 시절의 저는 아마추어였지만, 제가 아마추어라는 사실을 몰랐죠. 그냥 노래만 잘 하면 되는 줄 알았어요. 아는 것이 별로 없던 거죠. 근데 회사를 들어가서 이런저런 시도들을 해보고, 새로운 사람들을 만나면서 확실히 시야가 넓어진 것 같아요. 음악을 만드는 것도 더 넓은 관점에서 바라볼 수 있게 되었고요.

첫 EP <[QQQQQ]>의 부제는 ‘다섯 개의 질문들’인데요. 무슨 뜻인가요?

첫 번째부터 다섯 번째 트랙까지는 제 음악을 듣는 사람에게 던지는 질문 같은 곡이에요. 보통 말하고 싶은 것, 전달하고 싶은 생각이 명확한 곡들이 많잖아요? 그보다는 상황을 던져주고 사람들이 자신만의 답변을 남기면 좋겠다고 생각했어요. 마지막 트랙 ‘EXN’S ANSWER’에는 제 대답이 담겨 있고요.

그래서 ‘EXN’S ANSWER’가 앨범의 첫 싱글로 공개된 걸까요?

저를 가장 잘 보여줄 수 있는 곡이 무엇일까 생각했을 때, ‘EXN’S ANSWER’가 가장 적합했어요. 나머지 다섯 곡은 질문이거든요. 그 질문들도 제 얘기에서 비롯된 질문이 아니에요. 물론 제 이야기도 있지만, 다른 사람들을 관찰하며 만들어진 것에 가까워요.

​‘EXN’S ANSWER’에 “난 멋있는 걸 보여주는 게 싫어”라는 가사가 나와요. 보통 아티스트들은 멋진 모습만 보여주고 싶어하잖아요.

제가 고등학교 2학년 때 쓴 가사예요. 공연장이든 인터넷이든 힙합 하는 사람들이 굉장히 많잖아요. 대부분이 자신이 하고 싶은 것보다는 그저 멋있어 보이는 걸 좇는다고 느꼈어요. ‘나는 이렇게 멋있는 사람이야’라는 것을 보여주고 싶어 하는 것 같더라고요. 당시에는 이런 사람들을 저격하고 싶었던 것 같아요.

지금 와서 보면 저에게도 그런 경향이 있었던 것 같아요. 왜 그럴까 생각하다 보니 자신만의 것을 못 만들어서 멋있어 보이려고 한다는 결론을 내렸어요. 그래서 “난 멋있는 걸 보여주는 게 싫어”라고 시작해서 자신만의 것을 찾자는 내용으로 끝나요.

각 곡의 제목만 보면 하나로 이어진 앨범처럼 느껴지지만, 듣고 나면 큰 관련 없는 곡을 여러 개 모아놓은 듯한 느낌이 들더라고요. 이 앨범을 관통하는 주제가 있나요?

다른 내용이 담긴 여러 곡을 옴니버스 식으로 풀어냈다고 생각해 주시면 좋을 듯해요. 앨범을 통해 말하고 싶은 내용은 ‘정답은 없다’입니다.

한편으로 일반적인 사회 규범에서 좀 벗어나고 싶어한다는 느낌도 들었어요.

‘Reverse’나 ‘EXN’S ANSWER’ 같은 곡은 고등학교 때 만든 음악이다 보니 규범에 저항하고 싶은 식의 내용이 많아요. 저 스스로가 규범에 지쳐서 저항하고 발버둥 치며 만든 노래들이었죠. 그런데 지금은 규범에 저항하다 못해 포기한 친구들에게 해주고 싶은 이야기가 더 많아졌어요. 그런 내용이 담긴 곡이 ‘무서운 게 딱! 좋아’이고요.

<[QQQQQ]>에는 훵크, 디스코 사운드가 주로 사용되었죠. 앨범을 만들 때 두 장르에 많이 빠져있던 걸까요?

앨범을 만들면서 훵키한 노래를 만들기보다는 아날로그 사운드를 신선한 소리를 만들어보자는 부분에 집중했어요. 그러다 보니 제가 좋아하는 훵키한 리듬도 많이 나왔고, 아날로그 소스와 트랩이 합쳐진 뉴턴 시리즈가 나오기도 했죠.

‘뉴턴과중력의법칙’에서 본인을 ‘모든 면이 전부 막혀 있으니깐’이라고 표현해요. 왜 그런 생각이 들었나요?

그 곡을 만들 때 제가 지하 작업실에 있었어요. 반지하가 아니라 창문도 없는, 정말 말 그대로 지하라서 많이 답답하더라고요. 동시에 환경이 많이 바뀌다 보니 작업도 잘 안되고, 우유부단한 성격 때문에 해야 하는데 못 하고 있는 일들이 쌓여서 제 스스로가 너무 답답하다는 생각을 하고 있었어요. 그래서 그런 비유를 쓴 것 같아요.

‘뉴턴과중력의법칙’과 ‘뉴턴과냉각의법칙’, 두 곡은 모두 뉴턴의 법칙에서 제목을 가져왔죠.

어딘가에서 고도가 낮을수록 시간이 다르게 흘러간다는 내용을 읽었어요. 지하 작업실에서 시간이 다르게 흘러가는 거 같은 느낌을 받는 게 이것 때문인가 싶어서 ‘뉴턴과중력의법칙’이라는 제목을 썼죠. ‘뉴턴과냉각의법칙’은 원래 ‘냉장고’가 가제였는데 ‘뉴턴과중력의법칙’이랑 이어지면 재밌겠다 싶어서 제목을 바꿨죠.

‘뉴턴과중력의법칙’ 뮤직비디오 속 배경은 어디인가요?

지하 작업실을 그대로 보여주기보다는 더 큰 세계관이 있으면 좋을 것 같아서 상상력을 더했어요. 초안은 답답한 방에서 우주로 탈출하는 거였는데 결과적으로는 지하 공간은 심해로, 탈출한 곳은 한강인 것으로 정리됐어요. 비현실적인 공간처럼 연출되지만, 사실은 가장 가까이에 있는 한강이었던 거죠.

‘Reverse’의 뮤직비디오 배경은 학교잖아요. 한국 학교는 아닌 것 같아서 모티브가 된 작품이 있을 거 같았어요. 예를 들면 <싱 스트리트>?

<싱 스트리트>가 맞아요. 주인공이 학교에서 친구들과 밴드를 하는 상상을 하는 모습을 그리고 싶었어요. <싱 스트리트>도 되게 너드 같은 친구들이 밴드를 하고 결국 꿈을 이루는 이야기잖아요. 그런 점을 모티브로 삼았어요.

뮤직비디오 캐릭터를 보면 오타쿠, 샤이보이, 책벌레, 미스터 시니컬 등 학교에서 소위 말하는 아웃사이더로 구성되어 있어요.

학교를 작은 사회로 보면 주인공과 주인공 친구들 모두 약자의 위치잖아요. 그들이 현실에서는 욕망을 펼치지 못하고 위축되어 있지만, 상상 속에서는 꿈을 이룰 수 있다는 걸 표현하고 싶었죠.

셔츠와 쇼츠는 수기 아뜰리에.

‘무서운 게 딱 좋아’에서는 부정적인 것들이 ‘생선’으로 표현되더라고요. 왜 생선인가요?

사실 특별한 의미는 없어요. 제가 부산에서 오기도 했고, 회도 좋아하고, 생선 눈알이 재밌어서? 생선에 집중했다기보다는 내면에 있는 나약한 생각들을 캐릭터로 만들고 싶었어요.

‘무서운 게 딱! 좋아’의 애니메이션을 직접 만들었잖아요. 나중에 EXN이 만든 또 다른 애니메이션을 볼 수 있을까요?

하… 그게 말이죠. 제가 렌더링을 다 끝내고 처음 했던 말이 “다시는 못 한다” 였어요. 시간이 촉박해서 정말 힘들었거든요. 지금은 지친 마음이 조금 회복이 돼서 시간이 널널하다면 한 번 더 해보고 싶은 생각이 있긴 해요. 그래도 당장은 아닐 거 같아요.

사운드클라우드 때 사진부터 <[QQQQQ]>의 앨범 아트워크, EXN의 평소 메이크업까지 모두 핑크 컬러가 칠해져 있어요. 핑크를 좋아하는 이유가 있나요?

어릴 때부터 핑크를 좋아했어서 사운드클라우드의 배경에도 핑크 컬러를 사용했었어요. 그러다보니까 ‘EXN = 핑크’ 같은 콘셉트를 유지하고 싶어졌어요. 핑크는 발랄하고 귀엽고 사랑스러운 이미지지만, 동시에 어두움이나 차분함 같은 느낌도 줄 수 있다고 생각해요. 그래서 더 고집하는 거 같네요.

컬러에서 핑크가 있다면, 패션에서는 선호하는 브랜드나 스타일이 있나요?

나중에 돈을 많이 벌면 비비안 웨스트우드를 컬렉션마다 모으고 싶어요. 패션 브랜드에 대해 ‘이 브랜드를 좋아해서 이것만 입을 거야’ 이런 건 별로 없어요. 예쁘면 좋아하는 편이에요.

EXN의 다음 계획은 무엇인가요?

곡을 하나 준비하고 있어요. 날씨가 선선해지기 전에 내고 싶고요. 지금까지 앨범에서 디스코, 훵크, 팝 사운드를 주로 썼다면 조금 더 힙합스럽고 미니멀한 음악일 것 같아요.

EXN이라는 아티스트를 궁금해 할 사람들을 위해 해줄 수 있는 ‘EXN의 대답’이 있나요?

정답은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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