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정기 작가를 추억하며 볼 라이브 드로잉 영상 8

세계를 무대로 활약했던 일러스트레이터·만화가 김정기가 지난 10월 3일 향년 47세로 작고했다. 갑작스러운 일이었다. 김정기 작가는 유럽 일정을 마치고 뉴욕에서 열리는 ‘코믹콘’에 참여하기 위해 도착한 파리의 공항에서 갑자기 심장에 이상을 느꼈고, 곧장 병원에 옮겨졌지만 생명을 지키지 못했다.

이틀 뒤인 10월 5일 오랜 동업자였던 김현진 작가를 통해 이와 같은 사실이 전해지자 전 세계 동료 작가들로부터 추모가 이어졌다. 함께 일러스트집을 발매했던 테라다 카츠야부터 <아키라>의 오토모 카츠히로, <배트맨>, <엑스맨> 등을 작업한 DC 코믹스의 CCO 짐 리, <할리 퀸>의 지미 팔미오티, <슈퍼맨: 레드 선>을 만든 마크 밀러, <아이실드21>, <원펀맨 리메이크> 등의 작품으로 잘 알려진 무라타 유스케까지 수많은 작가들이 안타까운 마음을 전했다.

많은 사람들이 기억하는 김정기 작가의 모습은 항상 여유롭게, 하지만 끊임없이 펜을 움직이는 모습이다. 그는 그림을 사랑하는 사람이었고, 그렇기에 쉼 없이 그림을 그려 왔다. 김정기 작가는 순백의 공간을 채워나가는 작업 속에서 부담감보다는 좋아하는 것을 그린다는 재미를 느꼈다고 한다. 그러한 태도는 엄청난 다작으로 이어졌다. 2021년 열린 회고전 <김정기 – 디 아더 사이드> 개최를 위해 당시까지 그린 그림들을 모으자 무려 7천 점에 달했다고 한다.

이처럼 쉼 없는 작업을 펼쳐온 김정기 작가의 커리어를 이야기할 때 빼놓을 수 없는 것이 바로 ‘라이브 드로잉’이다. 밑그림도 없이 구도와 투시를 정확하게 지키면서도 디테일을 표현하는 그의 놀라운 작업은 결과물뿐 아니라 과정 자체가 하나의 예술이 됐다. 그렇기에 어떤 사람들은 그를 ‘천재’라고 이야기하지만, 그는 모든 것이 단지 “관찰과 연습의 산물”일 뿐이라고 말한다. 늘 여유로운 모습 뒤에 감춰진 오랜 연구와 고민이 엿보이는 대답이다.

김정기 작가의 정력적인 활동은 그가 세상을 떠난 이후에도 우리가 그를 추억할 수 있는 기록들을 많이 남겼다. 그는 개인 작업뿐 아니라 다양한 브랜드 및 단체 등과 협업해 라이브 드로잉을 선보였고, 세상을 떠나기 전날까지도 프랑스 파리에서 라이브 드로잉을 펼쳤다. 작가에 대한 존경과 추억을 담아 그의 작품을 돌아보는 다른 많은 사람들을 위해, 지금 인터넷에서 찾아볼 수 있는 그의 라이브 드로잉 영상 여덟 개를 소개한다.

‘2011 부천국제만화축제’ 라이브 드로잉 쇼 (2011)

김정기 작가가 ‘2011 부천국제만화축제’에서 선보인 라이브 드로잉 쇼 영상은 그의 이름을 순식간에 세계로 알린 계기가 됐다. 일반적으로 완성작을 전시하던 다수의 부스들 사이에서 즉석으로 그림을 완성해나가는 모습은 큰 주목을 받았고, 그 과정을 그대로 담아낸 영상 또한 전 세계에 퍼지며 그의 활동 영역이 커지는 데 큰 역할을 하게 됐다.

기네스 기록 작품 <Living heritage of Penang> (2015)

김정기 작가는 기네스 세계 기록 보유자이기도 하다. 그는 2015년 그린 <Living heritage of Penang>으로 ‘개인이 그린 가장 커다란 피시아이 드로잉’ 부문 세계 기록을 세웠다. 작가는 5일에 걸쳐 매일 약 4시간씩 총 20시간 동안 말레이시아 페낭의 길거리 풍경을 담은 작품을 그렸고, 그 과정을 모두 대중 앞에 공개했다. 그 기록 중 일부를 위 영상에서 확인할 수 있다.

<시빌 워 Ⅱ 스페셜 에디션> 커버 라이브 드로잉 (2016)

김정기 작가는 전 세계 만화가, 일러스트레이터 커뮤니티에서 사랑받는 존재였다. 그렇기에 미국 코믹스의 양대산맥 마블 코믹스, DC 코믹스와도 모두 협업을 펼쳤는데, 특히 <시빌 워 Ⅱ 스페셜 에디션>의 배리언트 커버를 즉석에서 그려낸 이 영상은 마블 팬들에게 큰 화제가 됐다. 물론 해당 일러스트가 표지로 사용된 책도 판매됐다. DC 팬이라면 DC 코믹스의 발행인이자 CCO인 짐 리와 함께한 <배트맨> 듀얼 스케치 퍼포먼스 영상도 흥미로울 것이다.

롤파크 김정기 작가 드로잉 (2018)

2018년 개관한 롤파크 벽면에는 <리그 오브 레전드>에 등장하는 수많은 챔피언과 이를 플레이하는 게이머들의 모습이 담겨 있다. 김정기 작가는 수많은 브랜드와 협업을 선보였지만, 그 중에도 <리그 오브 레전드>, <오버워치>, <월드 오브 워크래프트>, <서든 어택> 등 게임 협업 작품들은 특유의 역동적인 묘사와 맞물려 큰 사랑을 받았다. 김정기 작가는 이후 라이엇 게임즈와 함께한 <리그 오브 레전드> 10주년 작품를 공개하기도 했다.

위너 송민호와 함께하는 라이브 드로잉 쇼 (2018)

폭넓은 협업 라인업으로도 알 수 있듯 김정기 작가는 다양한 장르에 포용적인 사람이었다. 한 방송에 출연한 그는 가수 활동을 하면서 그림을 그리는 위너의 송민호를 만나 드로잉에 대한 조언을 해주고 함께 라이브 드로잉을 펼치기도 했다. <기생충> 개봉을 앞두고 봉준호 감독의 역대 작품들의 장면들을 한 폭에 담아낸 협업 작품을 선보이기도 했다. <하입비스트> 독자들이 관심을 가질 만한 내용도 있다. 유튜브 콘텐츠에 출연해 진행자 수파사이즈의 신발에 즉석으로 그림을 그려준 영상이 바로 그것. 영상 속에서 그는 카시나 덩크에 부산 시내의 일러스트를 그린 일화를 소개하기도 했다.

공군 창군 70주년 라이브 드로잉 (2019)

김정기 작가는 청와대, 공군 등 국가 기관이나 단체와도 협업을 진행했다. 그 중에서도 대한민국 공군 70년의 역사를 담은 이 작품은 특히 주목할 만하다. 평소에도 밀리터리 관련 소재를 자주 다뤄온 김정기 작가는 특전사 출신으로 실제 군 관련 소재들을 가까이에서 관찰한 바 있는데, 그때의 경험 덕분에 군복이나 무기, 자동차 등의 고증과 표현은 특히 뛰어난 것으로 알려졌다.

<김정기 – 디 아더 사이드> ‘Drawing Now’ #47 (2021)

2021년 개최된 김정기 작가의 회고전 <김정기 – 디 아더 사이드> 전시장에서 진행한 라이브 드로잉이다. ‘욕망’이라는 주제로 가로 폭 10미터에 달하는 그림을 전시 기간 3개월 동안 그려 완성했다. 제목에서 알 수 있듯 작업 과정을 담은 영상 수십 편을 모두 유튜브에서 찾아볼 수 있고, 이 영상이 마지막 편에 해당한다. #1부터 시작해 감상해보면 서서히 완성되는 그림과 함께 작업 방식과 관련된 그의 이야기들을 찬찬히 들어볼 수 있다.

파리 생제르맹 FC 협업 라이브 드로잉 (20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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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TitisduPSG (@TitisduPSG) October 1, 2022

작가는 사망 전날까지도 파리 생제르맹 FC와의 협업으로 축구 선수들의 역동적인 모습을 라이브 드로잉으로 표현하는 퍼포먼스를 펼쳤다. 파리 생제르맹 FC의 유니폼을 입고 거침없이 붓을 놀리는 그의 모습을 보면 마지막까지 ‘그림을 좋아하는’ 김정기 작가의 모습은 변함 없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이곳에서 완성된 그림을 확인할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