폴 블랑코 인터뷰: 자신의 음악을 믿고 나아가는 자

“올해 안에 발매할 정규 앨범에 내 최고의 곡이 수록될 거다.”

음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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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 입고 온 레더 재킷을 직접 디자인했다던데?

팔목 부근에 내 로고를 새긴 게 특징인 제품들이다. 토론토에서는 만 열여섯부터 합법적으로 타투를 받을 수 있는데, 그맘때 팔목에 받은 타투 디자인이 여전히 맘에 들어 내 로고로 쓰고 있다. 큰 의미를 둔 디자인은 아니다.

토론토에서의 삶은 어땠나? 호미들의 ‘사이렌 Remix’ 등 몇몇 곡의 가사를 보면 섬뜩한 순간도 있던 것 같다.

주변에 좋은 사람들도, 악마들도 있었다. 한국에 비하면 치안이 좋지 않은 동네에 살았거든. 예를 들어 새벽 두 시에 혼자 편의점에 간다고 하면, 옆에 있던 친구가 호신용품을 건네며 조심하라 말하기도 했다.

한국과 캐나다 중 고향이라 느끼는 곳은 어디인가?

캐나다지. 한국을 매우 사랑하지만 ‘내 집’은 아무래도 토론토인 것 같다. 어렸을 때 듣던 음악을 들으면 여전히 그 풍경과 계절이 떠오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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뮤직비디오, 앨범 커버 등 비주얼 콘텐츠 관련 회의에서 폐허나 멸망한 중세 시대 도시 같은 판타지적인 이미지의 레퍼런스를 자주 꺼낸다고 들었다. 이유가 있나?

헌 것을 좋아한다. 정확하게 설명할 수는 없는데, 내 안에 있는 감정들과 어울린다고 생각한다. 모든 게 완벽하고 도회적인 것보다 좀 더럽거나 험블(Humble)한 것에 더 끌린다. 여기에 판타지적인 요소를 더하면 내 감정을 대변하는 이미지가 완성된다. 어렸을 때는 성에 살고 싶다는 막연한 꿈이 있었다. 고딕한 디자인에 꼭대기가 뾰족하게 튀어나온 듯한 디자인이 특징인 과거 유럽에 있었을 법한 성. 판타지적이고 비현실적인 것에 끌리는 편이다. 가장 좋아하는 영화도 <반지의 제왕> 시리즈다.

마음에 있는 감정들이 어떻길래?

극단적이라고 해야 할지. 아름다운 것과 무서운 것, 더러운 게 동시에 있다. 내 음악을 시각적으로 표현한다면 딱 그렇다.

그런 상상력은 자라온 환경의 영향도 있을까?

자라온 환경과는 다르지만, 토론토에 살 때 겪은 일들이 취향에 영향을 끼친 것 맞다. 어느덧 한국에 산 지 2년이 되어가는데, 시간 참 빠른 것 같다.

이제 한국 생활에 적응했나?

두세 달에 한 번쯤 향수병처럼 토론토가 그립긴 하다. 학창 시절에 부모님과 함께 한국에 왔다가 적응을 못해 혼자 토론토로 돌아갔다. 그런 내가 홀로 한국에 다시 온 건 여러 가지 이유가 있다. 이제 벌린 일도, 책임져야 할 것도 많고, ‘소년 가장’이기도 해서 책임감이 크다.

소년 가장?

우리 가족은 돈이 없다. 가족을 먹여 살려야 하는 건 음악으로 돈을 벌고 있는 이유 중 하나다. 일을 할수록 어른이 되어가는 기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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래퍼의 삶은 가사에 담기기도 한다. 가사를 쓸 때 중요하게 여기는 건 무엇인가?

솔직하게 쓴다. 날 것 같은 감정을 그대로 서술하는 편이다. 래퍼마다 다르겠지만, 나는 수위 조절에 목매는 편은 아니다. 이해하기 쉬운 표현을 선호한달까.

지난 9월, 새 싱글이자 박화요비가 2000년 발매한 동명의 원곡을 커버한 발라드 ‘그런 일은’을 발매했다. 어떤 생각에서 출발한 곡인가?

나는 래퍼이기 전에 음악을 하는 사람이다. 노래보다 랩을 먼저 한 건 랩이 자라온 환경상 더 가까웠기 때문이다. 그리고 ‘나는 힙합 하는 사람이다’라며 과시하는 걸 좋아하지 않는다. 힙합은 피처럼 내 혈관에 흐르는 거다. 아이덴티티지. 발라드곡을 낸 걸 보며 ‘힙합 하는 사람이 발라드 불러도 되나?’라고 생각할 수도 있겠지만, 힙합을 개인적 기준으로 정의하려는 사람이 더 이상하다. 예를 들면 내가 멋지다 생각하는 래퍼는 “나 힙합 해”라는 식의 말을 안 한다. 굳이 말하지 않아도 힙합으로 살고 있을 뿐이다.

지난 7월, <더 시즌즈-최정훈의 밤의 공원>에 출연해 ‘그런 일은’을 부른 영상이 조회 수 2백30만을 넘는 등 화제였다. 가창력에 대한 호평과 얄궂은 댓글이 함께 있던데, 읽어 봤나?

감사하게 생각한다. 그 모습이야말로 진정한 나다. 발라드도 좋아하고, 핑크색 몽클레르 패딩 베스트도 즐겨 입거든. 사람들이 진정한 내 모습을 좋아해 주는 것 같아서 행복하다. 그 영상이 화제가 되며 긴 머리에 핑크색 패딩 베스트를 입은 나더러 “특이한 사람이네”라는 식의 반응을 자주 봤는데, 기분 나쁘지 않고 즐거웠다.

우스꽝스러웠다면 놀림거리가 됐겠지만, 노래를 잘 불러서 사람들이 좋아한 게 아닐까? 꽤 오래전부터 플라이 투 더 스카이 환희의 음악을 좋아한다 밝히기도 했다.

박화요비와 환희 등, 한국 발라드도 지금의 내 취향에 큰 영향을 끼쳤다. CCM에서 영감을 받기도 했고, <오페라의 유령> 같은 뮤지컬 음악도 좋아했다. 다양한 장르의 음악을 들으며 자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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음악을 시작한 계기는 무엇인가?

9학년(한국 기준 중학교 3학년) 때 ‘FL 스튜디오’라는 작곡 프로그램을 다운받아 이것저것 눌러본 게 작곡의 시작이다. 여전히 악보는 못 읽는다. 하지만 나는 내 ‘귀’와 감을 믿고 즐기며 작업을 이어갔고, 그러던 중 시카고 드릴 음악을 듣고 푹 빠졌다. 학생이기도 했고 남자다운 걸 좋아해서인지, 그래야 살아남는 환경에 살아서 그랬던 건지, 치프 키프를 비롯한 드릴 음악을 들으면 피가 끓는 기분이었다. 그의 랩도 좋았지만 영 찹이 만든 비트도 끝내줬다. 음악이 주는 힘을 느낀 첫 순간이다. 그렇게 시카고 드릴 비트를 찍게 된 게 내 음악 커리어의 시작이다.

그렇게 만든 음악을 어떻게 세상에 알렸나?

프로듀서로 비트를 만들며 지내던 중, 함께 음악 하던 친구가 노래를 해보라 권했고, 오토튠을 넣으니 신기하고 재밌는 소리가 났다. 신기했다. 그렇게 ‘내가 만든 비트에 내 보컬이나 랩을 얹히니 음악이 되네?’라는 생각이 들었고 지금까지 왔다.

3년 전, 미국의 유명 래퍼이자 최근 방탄소년단 정국의 솔로 곡 ‘3D’에 피처링한 잭 할로우의 ‘Hey Big Head’와 ‘Creme’에 프로듀서로 참여하기도 했다. 그와의 인연은 어떻게 시작됐나?

토론토에서 친구이자 프로듀서 ‘지니어스(Genius)’의 소개로 협업했다. 그는 어리지만 잭 할로우팝 스모크를 비롯한 내 우상과 같은 뮤지션과 협업하는 등 토론토에서 음악성을 인정받은 뮤지션이다. 어느 날 지니어스가 스튜디오에서 내가 만든 비트를 듣더니 음원 파일을 보내달라 했고, “이 비트 잭 할로우의 신곡에 쓰자”라고 했다.

서울에서 활동하는 이유는 무엇인가? 토론토에서 활동하는 게 더 유리하다고 느꼈을 법도 하다.

지니어스를 통해 알게 된 뮤지션들은 내 우상이었다. 그들과 협업하게 될 거라 상상도 못 할 만큼 ‘빅네임들’이었지. 그러던 중, 한국 뮤지션들을 통해 한국 음악 신을 알게 됐는데, 엄청난 잠재력이 있다는 걸 느꼈다. 방탄소년단, 블랙핑크 같은 세계적인 그룹도 있고, 내 음악에 자신감이 있는 만큼 한국을 기반으로 커리어를 쌓는 것도 좋겠다고 생각했다. 그리고 나는 토론토에 사는 교포로서 어렸을 때부터 김치찌개나 라면을 먹으며 자라며 한국 문화도 경험했다. 어렸을 때 서울은 내게 즐거운 여행지였고 어른이 되어 그런 여행지에서 즐기며 일할 수 있다는데, why no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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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모, 호미들언에듀케이티드 키드와 같은 래퍼들과 협업하며 서서히 힙합 신에 이름을 알렸다. 당시를 돌아보면 어떤가?

당시에는 내가 뭘 원하는지, 어떤 비전이 있는지 헷갈렸다. 그러다 한국에서 음악하기로 결정했고, 내 비전을 완성하면 모두가 그 진가를 알아볼 거라 믿었다. 나는 내 음악을 믿는다. 국내외 어떤 뮤지션이든 내게 음악으로 한판 붙자고 한다면 자신있게 상대할 수 있다.

폴 블랑코가 추구하는 음악은 어떤 건가?

설명하기 어렵다. 내가 만든 모든 음악이 성에 차는 건 아니지만, 포텐셜을 믿고 감각을 의심하지 않는다.

유독 좋아하는 자기 곡도 있나?

아직 안 나왔다. 아마 올해 안에 발매할 정규 앨범에 수록될 것 같다.

정규 앨범에 대해 힌트를 준다면?

폴 블랑코의 냄새가 진한 음악이 될 거다. 지금 나는 한국에 살고 있으니 이 도시의 향기도 담기겠지.

주로 어떤 순간에 음악을 만들어야겠다고 생각하나?

감정적일 때. 연애 때문에 슬프거나 행복할 때 혹은 극도로 화가 난다거나 까불고 싶을 때, 신나게 놀고 싶다는 생각이 들 때 등, 극적인 감정을 느낄 때 음악을 만든다. 내 감상을 음악으로 표현하는 거지. 컴퓨터 앞에 앉아서 내 감정을 소리로 만드는 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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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히 그런 감정이 진하게 담긴 음악은 어떤 게 있나?

<Lake of Fire>(2019)는 내 안의 여러 가지 분노를 표현한 앨범이다. 당시는 힘든 시절이었다. 돌아보면 슬럼프가 아니었나 할 만큼 불행했다. 앨범에 그 감정과 세상을 향한 분노가 고스란히 담겼고, 다음 앨범인 <Lake of Fire ll>(2021)와 <Promised Land>(2022)까지 그 감정이 이어졌다. 그러다 ‘너무 이기적인 음악만 만드는 건가?’라는 생각이 들었고, 격한 감정을 담은 음악만 만들다 보니 슬프기만 한 놈이 된 기분이었다. 그래서 <Promised Land> 이후부터는 긍정이라는 가면을 쓰기도, 다른 종류의 슬픔을 노래에 표현하기도 했다.

직접 느낀 것 외 다른 감정을 표현해 보니 어떻던가?

나는 살기 위해 음악을 만든다. 내 안의 분노와 슬픔을 음악으로 만들며 해소하지 않았다면 더 힘들었을 거다. 그전까지의 내가 음악으로 감정을 표현하는 사람이었다면, 지금은 단지 ‘음악을 만드는 사람’이라 여긴다.

협업하고 싶은 다른 뮤지션도 있나?

반드시 꼽으라면 지드래곤? 개인적으로 그가 아이돌 중 가사를 가장 잘 쓴다고 생각한다. <GD&TOP>(2010)의 ‘Intro’를 듣고 감탄했다. 가사를 쓸 때 얼마나 신나는 감정으로 썼을지 생생하게 느껴진달까.

해외 뮤지션 중 눈여겨보고 있는 사람도 있나?

파티넥스트도어. 내게 매우 큰 영향을 준 뮤지션이다. 드레이크가 토론토의 낮을 상징하는 뮤지션이라면, 파티넥스트도어는 우리 도시의 밤을 상징한다고 생각한다. 그리고 과욕을 부리지 않고 커리어를 이어가는 것 같아서 더욱 멋지다.

목표는 무엇인가?

더 나은 곡을 만들고 싶고, 내 음악의 가치가 더 높아지길 원한다. 더 다양한 영감을 받고 싶고, 감각이 더 날카로워지기를 바란다. 이건 내가 유명해지기를 바라는 마음과 다르다. 심지어 유명해지지 않아도, 사람들이 나를 알아보지 않아도 된다. 내 음악을 더 많은 사람이 듣고 즐기길 원할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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