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tudio Visits: 우한나

‘프리즈 서울 2023’을 휩쓴 마녀 작가를 만났다.

미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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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문 너머로 ‘혜화문’이 보이네요. 계절이 선명히 보이는 나무와 들판도 있고요. 이곳에 자리 잡은 지 얼마나 됐나요?

5년 좀 넘었어요. 집도 이 근처에요. 산세가 보이고, 물길이 가까운 곳과 잘 맞는 것 같아요. 마음이 편하달까? 이 동네를 성북동 초입이라 볼 수도 있고, 혜화 뒷동네라 얘기할 수도 있겠어요.낙산공원 근처이기도 한데, 조선시대 때는 이 동네가 ‘반촌(양반들이 모여 사는 동네)’이었대요. 성균관이 가깝기도 했고, 옷도, 음식도, 책도 만들던 동네였던 거죠.

작업할 때 음악을 틀어두는 편인가요? 인터뷰 전 촬영할 때도 작업하는 조수들과 함께 음악을 듣고 있던데. 또한 지난 9월 <하입비스트>에 게재된 ‘업무 능률을 높이는 노동요 7’ 기사를 위해 강렬한 전자 음악을 추천하기도 했어요.

작업할 때 어떤 질서가 있는 ‘소리’를 틀어두는 걸 좋아해요. 익숙하지 않은, 불규칙하게 느껴지는 소리를 좋아하지 않거든요. 능률을 높이기 위해 같은 노래를 반복해서 들을 때도 있는데, 조수들에게 미안하기도 해요. (웃음)

곳곳에 놓인 패브릭과 재봉틀을 보면 의류 제작소 같기도, 촬영을 함께한 인형 작품 ‘친년이’를 비롯해 독특한 작품을 보면 ‘마녀의 작업방’ 같기도 해요. 

하하하. 재밌는 곳이죠? 거의 모든 작품을 이곳에서 만드는데, 패브릭을 활용한 작품이 많거든요. ‘Bag with You’라는 신체 장기를 모티브로 만든 가방 시리즈부터 ‘Milk and Honey’, ‘Bleeding’ 등 대작 시리즈도 이 작업실에서 만들었죠. 지난 ‘프리즈 서울 아티스트 어워드’를 위한 작품들은 규모가 매우 커서 다른 곳에서 제작했고요.

요즘은 어떤 작업을 하고 있나요?

지난 1년간 ‘Bleeding’ 시리즈에 속하는 작품을 열 점 만들었어요. 작품마다 크기도, 재질도, 모양도 다른 시리즈죠. ‘Bleeding’ 시리즈를 만들며 느낀 건 식물을 어떻게 보느냐에 따라 동물 혹은 괴물처럼 느낄 수도 있다는 거예요. 식물에는 생명체의 다양한 요소가 보이는데, 이제는 그게 생명체라기보다 신체의 일부일 수도 있겠다는 생각도 들고 그런 관점에서 작업의 방향성을 넓게 확장하게 됐어요.

‘Bleeding’ 시리즈의 구체적인 출발점도 있을까요?

호접란을 포함해 난초의 외형에 관심이 생겨 출발한 시리즈예요. 저는 1988년생이고, ‘윤석열 나이’로 서른다섯인데, 작년부터 건강이 예전 같지 않다는 생각이 들더라고요. 월경할 때도 느껴요. 여자로서 몸이 어떻게 달라지고 있는지. 몸의 감각들이 조금씩 힘이 빠지는 것 같달까요. 그런 생각이 들며 처음으로 여성만이 가진 생식 능력에 대해 고찰하게 됐어요. 나는 여자로서 왜 생식을 하지 않고 있는지, 그렇다면 생식 능력이 있는 장기는 내게 어떤 의미일지에 대해서도 생각하게 됐고요. 그런 생각이 여성의 생식기를 뜻하는 호접란처럼 생긴 조각품으로 이어졌죠. 패브릭 소재의 도톰함과 주름은 질 내부를 떠올린 거고, 주먹만 한 크기의 빨간 오브제는 피를 상징해요.

신체의 일부를 작품의 소재로 삼는 이유가 있나요? ‘Bleeding’ 외에도 신체 장기를 모티브로 만든 가방 작품 ‘Bag with You’ 시리즈 등, 여러 작품이 인간의 몸에서 출발한 것으로 알고 있어요.

사람의 몸은 들여다볼수록 작품으로 만들기에 좋은 소재인 것 같아요. ‘Bag with You’ 시리즈는 당시 제가 신장 건강에 문제가 있었고, 그렇게 신장에 대해 알아가며 그 관심이 자연스럽게 작품으로 이어졌어요. 그러다 작품의 모티브가 된 신체 장기들이 전신으로 확장된 거죠. 눈, 팔, 다리, 귀 등 신체는 쌍을 이룬 것들이 많은데, 쌍을 이뤄야만 정상은 아니라는 질문을 작품에 담아 세상에 전하고 싶었어요. 그렇게 여성인 제 신체에 대한 관심으로도 이어졌고, 유방을 소재로 한 ‘Milk and Honey’ 시리즈도 만들게 됐어요.

작품의 소재로 삼고 싶은 신체 일부가 더 있나요?

쓸개에 관심이 가요. 꽤 예쁘게 생겼고, 색깔도 특이하거든요. 노인이 되면 신체에서 쓸개를 떼어내는 사람도 있다는 것도 흥미롭고요. 그 외에는 달팽이관과 함께 몸이 회전하는 것을 감지하는 평형기관인 ‘반고리관’도 재밌어요. 작업을 하는 사람이라 때때로 예민하고 이런저런 걱정도 많은데, 신체를 떠올리면 생각이 단순해지는 것 같아요. 결국 모든 감각은 몸을 통해서 느끼는 거고, 뇌가 다른 장기보다 고등하다는 인식도 옳지만은 않다는 생각도 들고요. 운동을 잘하거나 신체적으로 우수한 사람을 보면 ‘머리는 나쁠 거야’라는 편견도 뒤집고 싶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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패브릭을 작품의 주된 소재로 활용하는 이유는 무엇인가요?

패브릭의 질감을 좋아해요. 표면의 유연함과 무한히 수선이 가능하다는 것도 좋아요. 구멍 나면 메우면 그만이고, 얼마든지 자를 수도 있고, 이어 붙여 늘릴 수도 있고요. 그렇게 지리멸렬하다는 면에서 저의 끈질긴 성격과 닮은 것 같아요. (웃음) 그리고 패브릭은 기술이 발전하며 더욱 질이 좋아졌어요. 패션의 재료라는 점에서도 어쩌면 가장 최신의 재료가 아닐까요?

스튜디오 내부를 보면 재봉하는 곳, 패브릭을 자르고 이어 붙이는 곳, 드로잉과 페인팅을 하는 곳 등으로 나뉘어 있어요. 작품을 만드는 순서는 어떤가요?

작품마다 달라요. 작품의 도안이 되는 드로잉이 먼저 나올 때도 있고, 조각으로 출발할 때도 있거든요. 최근에는 순서를 정하려는 편이에요. 규모가 큰 작품도 만들다 보니, 멋대로 했다가 재료를 낭비한 적도 있거든요.

작품을 만드는 동력은 무엇인가요?

자기애인 것 같아요. ‘밟히면 꿈틀대고 싶은 마음’도 있고요. 밟힌다는 게 경제적 문제이기도 하고, 작가로서 한계의 만났을 때이기도 해요. 작가로서 저처럼 일반적이지 않고 일부 ‘이상한’ 부분이 있는 사람들이 정말 이상한 건 아니라고 말할 수 있는 세상을 만들고 싶거든요. 그러기 위해 저는 작품을 만들고, 세상에 선보이는 것 같아요. 개인적으로 저 같은 오합지졸들이 모여 행복하게 뛰노는 세상이 이상적이라 생각하거든요. 성격이든 외모든 어딘가 ‘요상한 지점’이 있는 사람들이 그대로 잘 지내길 원해요. 이건 작가로서의 제 세계관이기도 해요.

작품 세계관에 대해 더 설명해 줄래요?

가장 좋아하는 애니메이션이 <덤보>(1941)예요. 주인공 덤보는 귀가 신체에 비해 매우 커서 기형인 코끼리인데, 귀 때문에 억압을 당하지만 끝내 남다른 귀와 친구 그리고 자신을 믿고 하늘을 날아요. 예술가도 마찬가지인 것 같아요. 자신을 믿는 힘이 중요하다 생각하거든요. ‘근자감(근거 없는 자신감)’이라고 하죠? 할 수 있다고 믿고, 도전하고 어쨌든 해내는 게 중요하다고 봐요. 누구나 첫 시도는 어렵고 쉽게 성공할 수 없지만, 이왕 망할 거 빨리 망하고 실패로부터 배우고 성장하는 거죠.

작업 테이블에 동물 혹은 사람의 뼈처럼 보이는 물건도 있던데, 어떤 용도인가요?

최근 알루미늄 소재를 뼈대로 활용한 시리즈 작품을 만들고 있거든요. 기존에는 천과 솜, 바느질로 작업했는데, 뼈 없이 피부와 살점만 있던 조각품이었어요. 이제는 작품에 뼈대를 추가하는 셈이죠. 인체를 과학적으로 보면 살보다 뼈가 먼저일 텐데, 저는 반대로 가는 거예요. 살점만 있는 작품은 부피가 부풀려진 것 같다면, 뼈대를 소재로 한 작품은 앙상하지만 본질적인 것만 남은 느낌이랄까요.

지난 9월, <프리즈 서울 2023>의 ‘아티스트 어워드’ 제1회 수상자로 선정되는 등 크게 주목받았어요. 돌아보면 어때요?

감사한 기회였어요. <프리즈 서울> 측에서 작품 제작비를 지원받아, 예산 부족으로 포기한 대작들을 만든 기분이랄까요. 제가 속한 G갤러리도 큰 도움을 줬어요. 설치 미술가가 되겠다는 어린 시절의 제 꿈을 이룬 기분도 들어요. 대작을 만드는 건 환경의 환계를 비롯해 여러모로 쉽지 않거든요. 그만큼 ‘아티스트 어워드’ 준비도 열심히 했어요. 기획서에 재밌는 내용을 담고 싶었고, 건배사와 함께 “모든 이의 나이 듦을 축복한다”라는 말로 시작하는 작품 세계관을 적었거든요.

다음 전시도 계획하고 있나요?

아직 다 말할 수 없지만 해외 갤러리 두 곳에서 전시를 열 계획이 있어요. 그래서 요즘은 신작 작업에 집중하고 있죠. 이렇게 시간 여유가 있을 때가 많지 않거든요. 생각도 많이 하고, 드로잉도 자주 하고 있어요.

요즘 부쩍 관심이 생긴 게 있다면요?

바빠서 못했던 것들을 다시 하고 있어요. 꽃꽂이도 하고, 산책도 열심히 하고 있어요. <프리즈 서울 2023> 기간까지 작업에만 몰두해서 그런지 스트레스도 있었거든요. 요즘 취미는 퍼즐이에요. 몇백 피스의 퍼즐을 맞추다 보면 잡생각도 사라져서 좋아요. 그 외에는 건강한 루틴을 만드는 데 집중하고 있어요. 작업 시간을 정하고, 그 시간 동안 집중해 작품을 만들고, 회사원처럼 퇴근 이후 시간을 갖는 삶을 원하거든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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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술을 시작한 계기는 무엇인가요?

아주 어릴 때부터 그림을 그렸어요. 학급 내에서도 늘 그림 그리는 아이로 통했고, 나름 소질이 있어서 칭찬을 받았는데, 그게 좋아서 더 그렸던 것 같아요. 그렇게 한국예술종합학교 조형 예술원에 입학으로 이어졌고, 대학에서 다양한 수업을 들으며 작가란 무엇인지 고민하게 됐어요.

대학 수업 중 유독 기억에 남은 게 있다면요?

개념 미술처럼 미술 이론을 공부하며 깨달은 게 많아요. 그리고 학과 교수님이기도 한 안규철 작가님께 배운 게 많아요. 작업에 대해 냉철한 크리틱을 해주셨거든요. 당시 혹독한 평가를 더러 받아서 그런지, 작가가 된 지금은 혹평이 두렵지 않아요.

대학 시절에는 어떤 작업을 했나요?

학창 시절 내내 그림을 그려서인지, 대학에 가니 붓이 꼴 보기 싫을 만큼 그림을 그리는 게 싫더라고요. 그래서 딴짓을 많이 했어요. 당시 영화과 교수 중 이창동 감독님 수업이 있었는데, 그 수업을 듣고 연극 시나리오를 쓰는 데 재미를 붙이기도 했어요. 이창동 교수님 덕에 더 멀리 볼 수 있는 눈을 뜬 기분이랄까요. 그러다 3학년쯤 됐을 때는 개인전을 해보고 싶더라고요. 그래서 패브릭으로 여덟 마리의 괴물을 만들었어요.

어떤 전시였나요?

작품 크기가 약 5m 정도였으니까, 대학생 작품치고는 규모가 컸죠. 커피잔을 닮은 괴물도, 개집을 닮을 괴물도, 커다란 총을 든 새 괴물도 있었어요. 전시장에 틀어둘 음악도 직접 만들었는데, 관객이 작품 앞에 서면 그 음악이 흘러나오는 식이었죠. 음악에 내레이션도 있었는데, “강남역에 사람 너무 많고 다 총으로 쏴서 죽이고 싶다.” “우리 집 왜 춥냐, 난방비를 40만 원이나 냈는데 왜 이렇게 춥냐?” 같은 사소하고 유치하고 너무 솔직해서 부끄러운 말들이 나왔죠. 당시 저는 조용한 편에 속하는 학생이었는데, 학우들이 이런 제 면모를 보고 놀랐을 거예요. (웃음) 돌아보면 이 개인전이 패브릭 소재를 활용한 첫 번째 전시였네요.

작품에 여성성을 담게 된 계기는요?

잘 모르겠어요. 그냥 제가 여자라서 그런 거 아닐까요? 제가 성격이 예민하고 때때로 극성맞거든요. 한편으로는 자의식의 과잉이 아닐까 해요. 세상 모든 이야기가 다 제 얘기 같고, 어떤 서사든 그 주인공을 저와 동일시하며 생각하는 것 같달까. (웃음)

목표는 뭐에요?

행복한 할머니 작가가 되고 싶어요. 자유롭게 작업하고 싶은데, 자유라는 건 경제적인 것을 포함해 어떤 것에도 구애받지 않고 싶은 마음이기도 해요. 눈치 보지 않고 작업하고 싶은 마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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