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hop Visits: 스틸나이스

여전히 ‘나이스‘ 한 물건으로 가득한 위탁 판매 매장.

패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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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승훈 대표가 설립한 CNP 컴퍼니(이하 CNP)의 웹사이트에 방문하면 가장 먼저 뜨는 것은 웹 페이지를 빼곡히 채운 브랜드 리스트다. 설립 후 10여 년 동안 지금까지 총 24개의 브랜드가 CNP의 손을 거쳤다. 대중적으로 가장 잘 알려진 건 아우어 베이커리와 도산 분식을 비롯한 요식업 브랜드지만, 노력과 브랜딩이 빛을 발할 수 있는 분야라면 가리지 않고 얼마든지 도전했다. 의류 브랜드 인 앤 양, 그리고 잡화 편집숍 나이스웨더 등이 그 도전 정신의 예시다.

그리고 작년에 CNP의 포트폴리오에 한 줄이 더 추가됐다. 위탁 판매 숍, 스틸나이스를 연 것이다. 아우어 베이커리 가로수길점의 옛터에 자리 잡은 스틸나이스는 CNP가 여러 분야를 종횡무진하며 쌓은 내공의 집약체와도 같다. 제이에스가 크리에이티브 디렉터로 힘을 보탠 매장 설계와 디자인에서부터 그 근거를 찾을 수 있다.

매장은 세 개 층에 걸쳐 펼쳐져 있다. 여타 국내 빈티지 숍이나 위탁 판매 숍에서는 찾아보기 힘든 압도적인 규모다. 각 층 별 콘셉트도 모두 다 다르다. 소파와 탁자, 그리고 엄선된 소수의 아이템만이 자리한 1층이 방문객들을 환영하는 일종의 응접실 같은 역할을 한다면, 2층부터는 스틸나이스가 지향하는 바를 본격적으로 드러내기 시작한다.

계단을 오르면 스트리트 패션 박람회에서 볼 법한 알루미늄 부스 형태의 카운터가 가장 먼저 눈에 들어온다. 거기서 왼쪽으로는 형형색색의 아이웨어가, 그리고 오른쪽으로는 의류와 스니커가 진열되어 있다. 강박적으로 가격대나 브랜드 별로 제품을 묶지 않은 점이 특히 인상적이다. 여름 분위기 물씬 나는 테리 소재 리바이스 트랙재킷 옆에 두꺼운 몽클레르 푸퍼 재킷이 있고, 그리고 또 그 옆에는 희귀한 슈프림 티셔츠가 걸려 있는 식이라 결과를 예측할 수 없는 ‘디깅’이 가능하기 때문이다.

이어서 3층으로 발걸음을 재촉하면 1층과 2층을 합친 것보다도 더 넓은 공간이 나온다. 한쪽 벽면은 오직 나이키 스니커만으로 꾸려졌으며, 그 옆에는 2층보다는 더 점잖은 스타일의 여성복들이 걸려있었다. 층 중앙에는 턴테이블과 스피커가 배치되어 청음실처럼 편안한 무드를 조성한다. 화룡점정으로 층의 끝 쪽 벽면은 비즈빔, 세인트 미카엘 등 매니아 수요가 확실한 브랜드로 장식됐다. 그밖에 바닥 사이, 혹은 행거 위에 이스터 에그처럼 띄엄띄엄 배치된 희귀 스니커나 용도를 알 수 없는 오브제를 살펴보는 것도 확실한 재미 요소다.

그렇다면 CNP가 가로수길 한복판에 이렇게 큰 위탁 판매 숍을 차린 이유는 무엇일까? 백문불여일견이라지만, 직접 들어야만 알 수 있는 이야기도 있는 법. <하입비스트>가 CNP 노승훈 대표와 크리에이티브 디렉터 제이에스를 만나 스틸나이스의 모든 것에 대해 물었다.

Shop Visits: 스틸나이스, still nice, 제이에스, jayass, cnp 대표

스틸나이스는 위탁 판매부터 일반 중고 의류 판매, 그리고 플리 마켓 개최까지 겸하는 매장이에요. 숍의 구체적인 설립 계기가 무엇인가요?

노승훈: 예전부터 늘 일본의 빈티지 숍인 RAGTAG를 보면서 부러웠어요. 한국에서도 위탁 매장을 분명 대중적으로 만들 수 있을 텐데, 막상 그런 시도를 하는 사람은 많지 않더라고요. 그렇게 생각만 하고 있다가 제가 예전에 운영하던 아우어 베이커리 가로수길점 공간이 부동산으로 나왔어요. 이 공간에 대한 추억도 있겠다 싶어서 과감하게 시작했어요. 

스틸나이스의 이름은 노승훈 대표가 전개하는 편집숍 나이스웨더와 개연성을 가지는 듯해요. 스틸나이스는 해당 숍의 연장선이라고 볼 수 있을까요?

노승훈: 중의적이에요. 여전히 나이스한 물건들을 판다, 그리고 우리가 좋아하는 문화는 아직도 멋지다는 의미를 둘 다 담았어요. 한편, 나이스웨더를 아는 사람들에게는 그 브랜드의 연장선처럼 느껴졌으면 했고요. 그리고 캐릭터는 동음이의어 스틸(steal)에서 착안해 보따리 도둑으로 설정했어요. 브랜딩 과정은 너무나 자연스러웠어요. 

세 개 층 규모의 매장을 전부 다 채우려면 옷이 많이 필요했을 텐데, 시작 단계에서 그 많은 옷을 공수한 과정도 흥미로울 것 같아요.

노승훈: 사실 건방지지만, 첫 몇 달은 제 옷만 팔아도 월세 정도는 낼 수 있을 것 같아서 시작했어요. 그렇게 매장을 열고나니 주변 연예인이나 인플루언서 친구들도 스틸나이스에 옷을 맡기기 시작했어요. 다들 좋은 옷은 많은데, 판매가에는 목숨 걸지 않아서 합리적인 가격에 옷을 팔 수 있는 시스템이 마련됐어요. 이후에는 제이에스 형의 도움으로 ‘홈 포 더 커뮤니티’라는 문구도 만들고, 플리 마켓 같은 행사도 열면서 커뮤니티의 형태를 띠어가는 중이에요.

주로 어떤 사람들이 스틸나이스에 제품을 위탁하나요?

제이에스: 옷 잘입는 걸로 소문난 1티어 배우 등 수많은 유명인들이 있다고까지만 하겠습니다. 

일반 고객들의 위탁은 안 받나요?

노승훈: 언젠가 일반 고객 분들에게도 위탁 받을 의향이 있지만, 지금도 너무 많은 셀러들이 밀려 있어서 그 시점을 못 정하고 있어요.

Shop Visits: 스틸나이스, still nice, 제이에스, jayass, cnp 대표

위탁 매장이라고 하면 다소 무거우면서도 고리타분한 분위기의 명품 위탁 판매 매장을 떠올리는 사람이 많을 것 같아요. 스틸나이스는 그런 숍들과 어떻게 차별화했나요?

노승훈: 스틸나이스라는 이름을 정말 신중하게 지었고, 매장의 색감이나 캐릭터는 유치해 보일 정도로 스트리트스럽게 만들었어요. 고가의 물건을 파는데 디자인을 고급 편집숍처럼 해버리면 진입장벽이 너무 높아질 것 같았거든요. 그리고 인테리어와 구조도 어렵지 않게 만들었고, 나오는 음악도 다 한 번 쯤 들어봤을 법한 곡들로 틀고 있어요. 중점은 하이브리드였어요. 스트리트 숍과 하이엔드 편집숍 사이에서 균형을 찾았죠.

제이에스: 제가 재밌게 생각하는 건 2층 디자이너 코너에요. 구찌, 루이 비통 바로 옆에 빈티지 의류가 걸려 있거든요. 동선을 그렇게 설계해서 고급스러운 하이브리드 공간의 느낌을 주고자 했어요. 또 사람을 큐레이팅하는 것도 스틸나이스의 무기에요. 스태프마다 취향과 주변 친구의 풀이 다 달라서 다양한 장르의 셀러들을 자연스럽게 모을 수 있었거든요.

마침, 말 나온 김에 스틸나이스의 구성원을 소개해 주세요.

노승훈: CNP가 ‘컬처 앤 피플’의 약자인데, 제가 컬처를 대중과 잇는 N이라면, 제이에스 형은 C를 맡고 있어요. 여기에 있는 스트리트 문화 관련 물건부터 행사 기획까지, 스틸나이스에 컬처를 주입해요.

그리고 점장으로 있는 동민 실장님은 피플의 P에요. 모두에게 호의적이라 다들 동민 실장님을 엄청 좋아하거든요. 그리고 스태프로 있는 모델 서경덕과 민준기는 패션 쪽으로 관여를 많이 해요. 아무튼 얼핏 봤을 때는 절대로 섞일 수 없는 것 같은 사람들이 한데 모였다는 게 스틸나이스의 재밌는 포인트 같아요. 

두 분은 과거 CNP에서 운영하는 잡화 편집숍 나이스웨더의 ‘제이에스 키오스크’로도 함께 합을 맞춘 적 있는데, 두 분의 인연은 어떻게 되나요?  

노승훈: 어렸을 때부터 흑인음악 동아리를 해서 이쪽 문화에 관심이 많았어요. 그러다 멋진 한국 브랜드를 찾다가 휴먼트리를 알게 됐어요. 휴먼트리가 처음 생겼을 때인데, 우연의 일치로 친한 형이 거기 점장으로 있었어요. 그렇게 매장에 자주 가면서 옷도 사고, 비전 얘기도 하면서 제이에스 형이랑도 친해졌어요.  처음 했다고 무조건 멋있는 건 아니지만, 휴먼트리는 정말 제대로 한 레이블이라고 생각해요. 한국에서도 스케이트보드도 타고 옷도 파는 팀이 성공할 수 있다는 걸 보여줬다고 생각해요. 

제이에스: 제가 기억하는 저희의 첫 만남은 제가 휴먼트리 크루와 친구들이랑 밤에 축구를 하러 갔는데, 축구공을 휴먼트리 봉지에 담아가는 사람이 있더라고요. 그 다음 주에도 축구장에 있길래 먼저 말을 걸었어요. 그러면서 친해졌죠.

Shop Visits: 스틸나이스, still nice, 제이에스, jayass, cnp 대표

슬로건으로 ‘홈 포 더 커뮤니티(Home for the Community)라는 문구를 내세우고 있어요. 스틸나이스가 생각하는 커뮤니티는 무엇인가요?

제이에스: 과거에 제가 운영한 휴먼트리는 매장보다는 놀러 오는 사람들의 놀이터 같은 공간이었어요. 나중에야 그게 하나의 커뮤니티였다는 걸 깨달았어요. 그래서 그땐 그 커뮤니티를 기반으로 우리만의 바운더리를 만들어 보자는 생각까지는 못 했어요. 그래서 이제는 커뮤니티에서 굉장한 에너지가 나온다는 걸 깨닫고 뭐라도 많이 해보자는 마음이에요. 

작년에는 ‘홈 포 더 커뮤니티’라는 이름으로 플리 마켓도 열었어요.

제이에스: 스트리트 신 종사자부터 연예인까지 총 20명 정도의 셀러를 장르 별로 골고루 모았어요. 다들 너무 흔쾌히 참여해 줘서 좋았어요.

노승훈: 예전부터 친구끼리 교류하면서 나오는 자연스러운 에너지를 중요시했어요. 그리고 그 에너지를 가장 쉽고 구체적으로 내는 방법이 바로 플리 마켓이었어요. 그래서 스틸나이스로 플리 마켓을 진행하면서 저희 집단의 표식을 새긴 옷도 만들었고, 이제는 미디어도 만들려고 해요.

미디어?

노승훈: 스틸나이스 인스타그램 계정에는 매장에서 촬영한 저희 지인들의 사진이 많아요. 여기에 인터뷰도 함께 곁들이는 식으로 로컬 인물들을 조명하는 미디어를 만들어 보려고 해요. 그렇다고 너무 거창하진 않게요.

정말 다양한 스타일의 셀러들을 큐레이팅하는데, 장르별 비중은 어떻게 정하나요?

노승훈: 빈티지 20퍼센트, 스트리트 패션 40퍼센트, 그리고 나머지는 디자이너나 컨템포러리 의류로 구성해 뒀어요. 균형을 잘 잡은 것 같아요.

지금까지 위탁 받은 제품 중 가장 값진 물건을 소개해주세요.

노승훈: 예전에 제가 큰돈을 벌게 해준 친구가 고맙다고 선물해 준 디올 협업 에어 조던 1이랑 ‘홈 포 더 커뮤니티’ 로고가 적힌 칼하트 재킷을 꼽고 싶어요. 특히 칼하트 재킷은 빈티지 제품 위에 프린팅하는 게 워낙 스트리트 다운 접근이라 마음에 들어요.

주로 어떤 사람들이 스틸나이스를 찾나요?

제이에스: 의외로 관광객이 40프로 정도 되는 거 같아요. 특히 일본 분들이 굉장히 많이 오시고요. 연령층은 정말 다양해요. 고정 손님 중에 60대 정도 되시는 멋쟁이 아저씨도 계세요. 그런데 또 다들 체류 시간도 길어요. 오래 계시는 분들은 두 시간 넘게 보다 가시기도 해요. 보물찾기하는 거죠. 아무튼 그런 걸 보고 저희가 잘하고 있다고 생각했어요. 

좋은 브랜딩이란 무엇이라고 생각하나요?

노승훈: 디렉터 개인의 이야기에서 출발하는 브랜딩이 가장 자연스럽고, 멋지다고 생각해요. 그런 서사는 브랜드의 공간과 태도에서 모두 드러나거든요. 예컨대 외식 브랜드라고 하면 음식 잘 만드는 식당은 많으니, 제가 평소에 자주 먹는 음식이나 좋은 기억을 받았던 무언가에서 출발하는 게 좋겠죠. 지금까지 CNP를 운영하며 설립한 브랜드만 스무 개가 넘는데, 모두 다 제 관심사나, 크게 영감받은 문화에서 출발한 것들이에요. 

제이에스: 전 진정성을 많이 따져요. 그래서 제가 진짜로 좋아하는 문화가 아니면 섣불리 건들면 안 된다고 생각해요. 진정성이 없으면 어차피 금방 들통나거든요. 그런데 또 지나치게 진정성 있게 접근하면 너무 ‘딥’ 해지기 마련이에요. 그런 점에서 노 대표가 진정성 있는 취향을 대중성 있게 잘 푸는 거 같아요. 전 그런 게 너무 어렵거든요.

CNP는 한국에서 대중적이지만은 않은 콘셉트의 브랜드를 여러 차례 성공시킨 이력이 있어요. 특별함과 대중성을 모두 챙겼다는 생각이 드는데, 대중과의 확실한 접점을 만드는 비결이 무엇인가요?

노승훈: 아날로그 세대의 매니악함과 디지털 세대의 유연함을 자연스럽게 연결하는 거로 생각해요. 전 아날로그와 디지털의 과도기를 경험한 세대예요. 아날로그 세대의 매니악함을 어떻게 풀어내야 가장 대중적이고 자연스러울지 늘 고민했죠. 그 고민의 결과가 브랜드에도 자연스럽게 녹아들었다고 생각해요. 

Shop Visits: 스틸나이스, still nice, 제이에스, jayass, cnp 대표

일종의 타협일까요?

노승훈: 타협보다는 밸런스에 가까울 것 같아요. 내가 한 분야에 대해 아무리 잘 알아도 대중의 언어를 모르면 그들을 설득할 수 없어요. 그런데 유독 스트리트 컬처에 관해서 많이 아는 친구들 대부분은 선민의식 같은 게 있어요. 자기가 좋아하는 걸 잘 모르면 은근히 무시하는. 전 그런 게 너무 보기 싫었어요. 생각을 조금만 바꿔서 내려다보지 않고, 눈높이만 맞추면 대중의 언어와 관점이 보여요. 

예전에 CNP에서 알 파치노 콘셉트의 ‘파치노 에스프레소 바’를 브랜딩했을 때도 그랬어요. 제가 제일 좋아하는 알 파치노 출연작은 <히트>지만, <대부> 관련 포스터와 소품을 중점적으로 활용했어요. 제 취향과는 별개로, 가장 많은 사람들이 알고 좋아하는 건 <대부>니까요. 

스틸나이스로 이루고 싶은 목표가 무엇인가요?

노승훈: 앞으로도 플리 마켓을 꾸준히 열면서 ‘홈 포 더 커뮤니티’를 브랜드처럼 키울 생각이에요. 그 이름으로 옷도 만들고 싶긴 한데, 아직 고민하는 중이에요.

제이에스: 훗날 ‘홈 포 더 커뮤니티’를 브랜드화한다고 했을 때, 그게 단순히 옷으로만 남지는 않았으면 해요. 제가 어렸을 때 <블링> 매거진에서 열던 플리 마켓을 좋아했는데, 그 행사에 다녀온 날 밤이면 그날의 재밌는 추억을 되새기면서 잠들 수 있었어요. 이와 비슷하게 스틸나이스와 ‘홈 포 더 커뮤니티’도 그런 좋은 에너지를 주는 움직임, 혹은 레이블로 키우고 싶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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