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hop Visits : 지용킴
드디어 탄생한 지용킴만의 갤러리.

해군에서 ‘함대의 기함’을 뜻했던 ‘플래그십(Flagship)’은 20세기 초, 자동차 업계에서 비즈니스 용어로 사용하기 시작했다. 럭셔리 하우스 브랜드가 생겨난 80~90년대부터는 패션계에서 ‘브랜드를 대표하는 것’을 의미로 표현한다. 수많은 스토어들 사이에서도 ‘플래그십’의 여부차이는 극명하다. 명료하게 정의하자면 ‘분명히 자신들의 정체성을 응집한 공간’이란 개념이다.
지난 주, 지용킴의 기함이 용산구 한남동에 닻을 올렸다. 건축사무소 원애프터(one-aftr)와의 협력으로 탄생한 공간은 시간대별로 스며드는 햇살과 곳곳의 한국적인 요소 그리고 변형되는 가구로 가득 채워져 있다. 빠르게 달리는 런웨이 보다는 전시 형태로 차분히 컬렉션을 소개해 온 지용킴만의 갤러리가 탄생한 것이다.
지난해 <하입비스트>와의 인터뷰에서 “단순히 옷을 판매하고 구매하는 팝업 스토어보다는 지용킴을 입는 이들과 직접 소통하고 과정을 공유하는 것이 더 즐겁다.”라고 밝힌 디자이너 김지용에게 ‘플래그십 스토어’는 어떤 의미일까?
소통과 자연. 그와 함께한 대화에서 도출한 두 개의 키워드다. 브랜드 경험자와 ‘소통’하고자하는 진실성과 정체성을 나타내는 ‘자연’을 시각적, 구조적, 기능적, 조형적으로 첫 번째 ‘플래그십 스토어’에 담았다. 아래는 디자이너 김지용과 나눈 지용킴의 첫 번째 플래그십 스토어 Shop Visits 이다.
지용킴의 첫 번째 공간이 탄생했습니다. 어떻게 플래그십 스토어를 기획하게 되었고, 기분은 어떠신가요?
지용킴의 제품은 단순한 옷이 아니라, 시간과 손의 감각이 깃든 결과물입니다.
디자인 단계에서 수많은 핸드 드레이핑 과정을 거치며, ‘선블리치’ 역시 단순한 가공이 아닌 디자이너의 손을 통해 또 한 번 디자인되는 작업입니다. 이 과정에는 절대적인 시간이 필요하며, 짧게는 한 달, 길게는 그 이상이 걸리기도 하죠.
선블리치된 제품은 햇볕, 바람, 그리고 다양한 자연의 조건 속에서 오랜 시간을 거쳐 완성되는데, 이로 인해 생겨나는 미묘한 톤의 차이들은 결코 인위적으로 만들어낼 수 없습니다. 그렇기에 저희 제품은 직접 보고, 경험해야만 진정한 가치를 느낄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그런 의미에서 지용킴만의 공간이 생겼다는 사실이 매우 기쁘고, 또 뿌듯합니다. 단순히 제품을 판매하는 공간이 아니라, 브랜드의 철학과 과정을 온전히 전달할 수 있는 장소가 되기를 바랍니다.
‘선블리치’는 지용킴의 대표적인 기법이죠. 햇살이 드나드는 공간과 브랜드 정체성이 참 잘 어울린다는 생각이 듭니다. 플래그십 스토어에서 가장 신경 쓰신 부분은 무엇인가요?
저희는 이 공간이 단순한 스토어가 아니라, 저희만의 작은 전시 공간이 되기를 바랐습니다.
건축사무소 원애프터(one-aftr)와의 협업을 통해 여러 형태로 변형이 가능한 모듈형 가구, 조정 가능한 선반, 다양한 연출이 가능한 구조 등을 설계하여, 공간이 상황에 따라 자연스럽게 변화할 수 있도록 했습니다.
또한 앞, 뒤, 위 방향으로 창을 내어 시간대별로 달라지는 빛의 흐름을 공간 안에 담고자 했습니다. 머무는 시간에 따라 전혀 다른 인상을 주는 공간이 되었으면 했고, 그 점에 집중해 디자인했습니다.
정돈된 가구들도 눈에 띕니다. 모듈형이라는 점에서 지용킴의 아이템들과도 닮아 있는 것 같은데요. 가구 구성은 어떤 점에 중점을 두셨나요?
모듈형 가구는 어떻게 배치하고 활용하느냐에 따라 역할이 완전히 달라집니다.
그래서 의자, 책상, 진열대 등으로 다양하게 사용될 수 있도록 구성했고, 선반 역시 탈부착과 높낮이 조절이 자유롭게 가능해, 브랜드가 보여주고자 하는 방향에 따라 유연하게 변화할 수 있도록 했습니다.
공간이 브랜드의 흐름에 맞춰 함께 움직일 수 있도록 설계한 것이 핵심이었습니다.
곳곳에 숨겨져 있는 선블리치 작품들도 인상적인데요. 소개해주신다면요?
무엇보다 꼭 소개하고 싶은 요소는 매장 뒤편 유리창 앞에 설치된 선블리치 원단 병풍입니다.
유리창을 덮고 있어 뒤편에서 들어오는 햇살이 은은하게 투과되는데, 태양을 연상시키는 무늬 위로 빛이 겹쳐지며 독특한 분위기를 만들어냅니다.
또한 천장에 설치된 대형 캔버스는 외부에서 들어오는 빛에 따라 다양한 인상을 주며, 외부에서도 매장을 식별할 수 있는 상징적인 요소로 작용합니다. 이 캔버스는 천장에서 분리 가능한 구조로 설계되어, 원할 때마다 다른 원단으로 교체할 수 있습니다.
스토어에서는 선블리치 개체를 직접 선택할 수 있는 ‘아이템 북’도 운영 중이라고 들었습니다. 직접 고를 수 있다는 점이 플래그십 스토어만의 강점이 아닐까 싶은데요. 이를 도입하게 된 이유가 궁금합니다.
지용킴을 사랑해주시는 분들이라면 아시겠지만, 선블리치 제품은 각기 다른 무늬를 가지고 있어 세상에 단 하나뿐인 옷입니다.
어떤 무늬에 더 끌리는지는 지극히 개인적인 감각의 영역이라고 생각했고, 그렇기에 직접 보고 선택할 수 있어야 더 만족스러운 경험이 될 것 같았습니다.
온라인에서는 구현하기 어려운 경험이기에, 이 공간에 오신 분들만이 누릴 수 있는 특별한 선택지라고 생각했고, 저희만이 할 수 있는 방식이라 판단했습니다.
한남동의 고즈넉한 거리에서 첫 번째 플래그십 스토어를 오픈하셨습니다. 만약 두 번째 스토어를 오픈한다면 어디가 좋을까요?
아직 구체적으로 계획한 바는 없지만, 개인적으로는 유학 시절을 보낸 일본이나 영국이 자연스럽게 떠오릅니다.
그 시기의 기억과 경험이 저에게 남긴 것들이 많아서일지도 모르겠어요.
공간은 마치 ‘집’처럼 편안한 분위기를 자아냅니다. 지용킴의 고객들이 이 공간을 어떻게 경험하고, 어떤 마음으로 나가길 바라시나요?
이 공간은 원래 ‘주택’으로 지어진 곳이라 그런지, 저희에게도 굉장히 자연스러운 편안함을 줍니다.
한적한 막다른 골목에 위치해 있어 유동인구도 적은 편인데, 그만큼 일부러 시간을 내어 찾아와주신 분들이 충분히 머물다 갈 수 있었으면 합니다.
경직된 분위기 속에서 옷을 빠르게 고르고 나가는 스토어가 아니라, 여유로운 분위기 속에서 공간의 요소를 경험하고, 옷도 자연스럽게 입어볼 수 있는 ‘머무는 공간’이 되기를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