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ssentials: 이니어 대표 허신구, 여다영

“다른 브랜드가 떠오른다면, 만들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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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5년 간 수많은 브랜드를 바잉해 왔지만, 결국 ‘우리의 것’은 없었다. 에이트디비젼의 허신구 대표와 그의 아내이자 디렉터 여다영이 마침내 자신들의 브랜드 ‘이니어’를 시작한 이유다. 이 부부가 세운 기준은 이니어의 제품처럼 단순하고 타협이 없다. “우리가 만든 옷을 입었을 때, 다른 브랜드가 떠오르지 않아야 한다.”

‘옷 좋아하는 사람들의 무탠다드’라 불릴 만큼, 이니어는 화려함 대신 옷의 본질에 집중했다. 후디의 모자 핏, 몸에 감기는 원단감, 지퍼 부자재 하나까지. 스스로 납득할 수 있는 실루엣을 위해 샘플링 비용을 아끼지 않는 이니어의 샘플실은 지금 이 시간에도 돌아가고 있다.

이에 <하입비스트>가 허신구, 여다영 디렉터를 만나 그들의 현재 취향을 물었다. 이니어의 시작점이 된 첫 번째 집업 후디부터 부부의 공통된 취향이 깃든 오브제, 그리고 이들의 삶의 이유인 딸 제니의 그림까지. 옷을 깊게 파고들수록 군더더기는 비워지고, 이니어의 옷처럼 담백해진 두 사람의 아이템은 아래에서 확인해 보자.

비요크 <Post> 1995 오리지널 프로모션 포스터

우리는 둘 다 비요크를 좋아한다. 지나치게 비싼 프리미엄이 붙은 물건보다, 마이너하더라도 우리만의 의미를 둘 수 있는 것에 끌린다. 중학생 때 흑인 음악만 듣다가 음악 채널에서 비요크를 접했을 때의 충격은 여전히 선명하다. 내가 알던 것과 전혀 다른 세계였다.

특히 비요크가 딸과 장난치는 개구진 사진을 좋아하는데, 다영이와 제니의 모습이자 우리 가족이 추구하는 태도와도 닮아 있다. 이 포스터는 1995년 비요크의 앨범 발매 당시 제작된 프로모션 포스터로, 대표 커버가 아닌 동일 포토세션의 다른 컷을 사용했다. 액자는 데드스톡 이탈리아 빈티지 금장 프레임으로 직접 맞췄다. 90년대 비요크의 미래적인 이미지와 고전적인 유럽 프레임이 부딪힐 때 생기는 이질감이 좋다.

파티마의 성모상

종교는 없지만 여행지마다 성당이나 유적지를 찾는다. 오래된 시대의 공기와 손때가 남은 유물을 보는 게 좋다. 이 성모상 역시 나폴리 여행 중 우연히 들른 가족 공방 ‘Arte Presepiale Salomone’에서 25유로를 주고 샀다.

나폴리에는 종교적인 인물을 손으로 만들고 채색하는 오래된 공예문화가 남아있는데, 기계로 뽑아낸 공산품이 아니라 손으로 직접 깎고 칠한 투박함이 마음에 들었다. 떠나기 전 공방 장인인 빈첸초 살로모네에게 직접 부탁해 성모상 밑면에 그의 이니셜 ‘VS’를 새겨 받았다. 비싸거나 희귀해서가 아니라, 우리가 지나온 장소와 기억이 온전히 배어 있어 각별한 오브제다.

더 로우 아스트라 볼링 백

커다란 로고가 새겨진 명품 백을 좇던 시절도 있었지만 결국 미니멀로 돌아왔다. 구매한 뒤 거의 매일 들고 다닌다. 요즘은 옷도 이니어 블랙 셋업만 입다 보니, 이 가방을 들었을 때 군더더기 없이 검은 덩어리처럼 떨어지는 실루엣이 좋다.

‘일시불로 살 수 없는 건 욕심내지 않는다’는 게 지금 내 기준이다. 내 분수를 알고 삶을 단순하게 유지하는 태도. 매일 쓰면서 자연스럽게 내 일부가 된 이 백이야말로 2026년 현재의 나를 가장 담담하게 보여주는 물건이 아닐까. 

탱글 티저 웻 디탱글러 헤어브러쉬

살면서 처음으로 장발을 유지하고 있다. 원래 심한 곱슬 모발인 데다 주기적으로 매직 펌을 하다 보니 모발 엉킴과 손상이 잦았다. 관리법을 찾던 중 해외 곱슬머리 커뮤니티와 흑인 여성들의 헤어 루틴을 통해 탱글 티저와 리브인 컨디셔너의 조합을 알게 됐다.

젖은 머리 상태에서 컨디셔너를 바르고 이 빗으로 결을 정돈할 때 엉킴 없이 풀리는 쾌감은 경험해 보지 않으면 모른다. 차와 가방, 작업실에 하나씩 두고 쓸 만큼 없어서는 안 될 지극히 개인적인 에센셜이다.

오닉스 북스 GO7 흑백 이북리더기

종이책을 좋아하지만 오래 들고 있으면 손목이 아프고, 출장이나 여행 갈 때 챙기는 것도 짐이었다. 스마트폰보다 가벼운 이 기기 하나로 독서의 제약이 사라졌다. 누워서도 편하게 볼 수 있어 책을 더 자주 펼치게 된다.

요즘은 이 이북리더기로 <물고기는 존재하지 않는다>와 욘 포세의 <3부작>을 채워 읽고 있다. 아이에게 책 읽는 부모의 모습을 자연스럽게 보여줄 수 있다는 점에서도 삶의 질을 크게 바꿔준 물건이다.

제니의 응원 카드

복권처럼 동전으로 표면을 긁으면 숨겨진 손글씨가 나오는 카드다. 딸 제니가 직접 만들어 선물해 줬다. 표면을 긁으니 “힘들지? 나를 봐!”라는 문장이 적혀 있었다.

휴대폰 케이스 뒤에 항상 넣고 다니는 부적 같은 존재다. 팝업을 마치고 지치거나 일로 버거울 때마다 이걸 보면 마음이 단단해진다. 어떨 때는 거창한 위로보다 계산 없는 짧은 한마디가 더 큰 힘을 주곤 하니까.

루이 비통 x 프라그먼트 2017 멀티플 월렛

낡아 떨어진 지갑을 무신경하게 들고 다니던 나를 보고 아내가 처음 번 돈으로 몰래 사준 선물이다. 할부 없이 현찰로 샀다며 조그마한 루이 비통 종이 가방을 신나게 들고 오던 아내의 표정이 아직도 선명하다. 

2017년부터 10년 가까이 매일 들고 다녀 모노그램 가죽이 부드럽게 닳아 있지만, 그 손때마저 값지다. 스마트폰 하나로 결제가 다 되는 시대가 왔으니, 아마도 내 인생의 지갑은 이게 마지막일 것 같다.

까르띠에 1895 솔리테어 링

결혼 당시에는 번듯한 결혼반지조차 맞추지 않고 소박하게 시작했다. 10년의 시간을 함께 버틴 뒤 맞춘 커플링, 그리고 남편이 10주년을 기념해 다시 프로포즈하며 선물해 준 다이아몬드 링이다.

시작의 설렘보다, 지난 10년을 치열하게 버텨온 징표라 체감하는 의미가 더 깊다. 손가락에 낀 반지를 볼 때마다 삶의 동기부여를 얻는다. “10년 만에 여기까지 왔네, 다음 10년은 또 어떨까 우리.”

타카히로 미야시타 더 솔로이스트 본 쉐입 핸드커프 브레이슬릿

남편이 마음에 들어 바잉했던 피스인데, 지금은 내가 주로 차고 다닌다. 실제 수갑을 모티브로 정교하게 만든 위트가 마음에 든다. 일이 유독 몰아치는 날에는 일부러 이 팔찌를 차고 ‘오늘도 일에 단단히 묶여 있구나’ 하며 웃어넘기곤 한다.

딸 제니와 오사카 여행을 갔을 때 공항 보안검색대에서 수갑 형태로 오해받아 경찰까지 출동했던 해프닝도 있었다. 서늘하고 날선 디자인 뒤로 유쾌한 가족의 에피소드가 얹혀 있어 더욱 애착이 간다.

더 로우 허드슨 스웨이드 슬라이드

족저근막염을 겪은 뒤로는 발에 무리가 가는 신발이나 가벼운 플립플랍을 일절 못 신는다. 이 슬라이드는 아치를 단단하게 받쳐주어 하루 종일 신고 움직여도 발이 놀라울 정도로 편안하다.

장식 없이 형태 자체를 숨기듯 절제한 디자인도 좋다. 앞서 소개한 볼링 백과 마찬가지로, 어떤 옷을 입든 현관을 나설 때 고민 없이 발을 꿰어 넣게 되는 일상같은 신발이다.

제니가 그린 <Funny Bunny>

딸 제니가 네다섯 살 때 종이에 그린 그림이다. 선과 표정이 너무 좋아 곧장 액자로 맞췄다. 제목도 제니가 직접 지은 ‘Funny Bunny from Jenny’. 왼쪽 옆구리에도 이 그림을 그대로 타투로 새겼다. 값비싼 명화보다 아이의 순수한 시선이 담긴 이 선들이 내게는 세상 어떤 작품보다 귀하다.

이니어 252 라이트웨이트 집후디 초판

이니어의 초판 후디는 경복궁 근처 빈티지 숍에서 찾은 맥그리거 재킷의 절개 디테일에서 출발했다. 흔한 집업 재킷 대신 내가 가장 즐겨 입는 후디로 미니멀하게 풀어내고 싶었다.

샘플을 여러 번 거치며 불필요한 절개를 쳐내고 두께와 핏을 정돈해 252 드랍으로 처음 선보였다. 지금의 이니어가 추구하는 핏과 만듦새의 시작점이 고스란히 담겨있는 상징적인 한 벌이다.

작은 카치나 인형

가족과 함께한 첫 미국 여행 중 유타에서 애리조나로 넘어가던 길, 우연히 들른 ‘Homestead Tribal Arts’에서 만난 노신사 웨인에게 선물 받은 인형이다. 홉피 부족의 카치나는 본래 아이들에게 전통을 전하며 건네던 의례용 인형이다.

인디언 주얼리를 좋아해 들른 곳에서, 계산을 마칠 무렵 웨인이 딸 제니에게 행운의 의미로 이 인형을 쥐여주었다. 투박하게 깎인 나무, 단순한 색감, 머리에 달린 작은 깃털까지. 집에는 수많은 빈티지 인형이 있지만, 애리조나의 건조한 공기와 타인에게 받은 순수한 온기가 담긴 이 인형만큼 특별한 건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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