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모님 세대의 팝 아트와는 다르다, ‘로이 리히텐슈타인: 라이크 뉴’
휘트니 미술관에서 열리는 새로운 회고전은 이미지에 집착했던 이 아티스트를 디지털 시대로 소환한다. 큐레이터 멕 온리와 알렉스 다 코르테가 작품의 점들을 어떻게 연결했는지 살펴본다.
부모님 세대의 팝 아트와는 다르다, ‘로이 리히텐슈타인: 라이크 뉴’
휘트니 미술관에서 열리는 새로운 회고전은 이미지에 집착했던 이 아티스트를 디지털 시대로 소환한다. 큐레이터 멕 온리와 알렉스 다 코르테가 작품의 점들을 어떻게 연결했는지 살펴본다.
부인할 수 없는 사실이 하나 있다. 로이 리히텐슈타인(Roy Lichtenstein)은 어디에나 있다는 것이다. 화면 이미지를 구성하는 픽셀부터 오늘날 최고의 크리에이터들이 사용하는 굵고 대담한 선, 눈물 자국이 선명한 여주인공의 찰나를 포착한 장면에 이르기까지 그의 영향력에서 벗어나기란 거의 불가능하다. 그의 작품은 빠르고 강렬하게 다가온다. 하지만 친숙한 만화와 점(dot)으로 대표되는 그의 간결한 기호가 어떻게 그 이면의 더 복잡한 이야기를 가려버린 것일까?
로이 리히텐슈타인: 라이크 뉴(Roy Lichtenstein: Like New)의 큐레이터 중 한 명인 멕 온리(Meg Onli)는 “무언가를 알아볼 수 있다고 해서 그것이 무엇인지 완전히 이해한다는 의미는 아닙니다”라고 말했다. 10월 11일 뉴욕 휘트니 미술관(Whitney Museum)에서 개막하는 이 전시는 리히텐슈타인의 60년 경력에 걸쳐 탄생한 회화, 드로잉, 콜라주, 판화, 조각 등 팝 아트 거장의 작품 130여 점을 한자리에 모았다. 만화에서 영감을 받은 캔버스 작품도 많지만, 스스로를 바라보던 아티스트의 모습과 고급문화와 대중문화의 경계를 허문 그의 급진적인 성향이 스크린에 익숙한 오늘날 관객들의 현실과 어떻게 자연스럽게 어우러지는지 보여주는 덜 알려진 측면도 함께 조명한다.
오하이오 주립대학교(Ohio State University)에서 호이트 셔먼(Hoyt Sherman)으로부터 받은 진지하고도 유별난 가르침은 훗날 마크(mark)에 대한 리히텐슈타인의 관점을 형성하는 데 중요한 역할을 했다. 라이크 뉴는 이러한 초기 시절부터 생애 마지막 해에 작업하여 한 층 위에서 열리는 1997년 전시까지 아우르며, 이미지의 미래를 꿰뚫어 보고 의미의 끊임없는 생성과 소멸을 탁월하게 이해했던 이 아티스트를 조명한다. 전시 도입부에는 약 30미터(100피트) 길이에 달하는 1983년작 ‘그린 스트리트 벽화(Greene Street Mural)’가 재현되어 있는데, 이는 공동 큐레이터이자 아티스트인 알렉스 다 코르테(Alex Da Corte)의 스튜디오에서 재현한 4개의 벽화 중 하나로 전시의 분위기를 완벽하게 잡아준다.
역사적 하이라이트 중 하나는 1962년 레오 카스텔리 갤러리(Leo Castelli gallery)에서 열린 리히텐슈타인의 데뷔 개인전을 갤러리 속 갤러리 형태로 재구성하여 과거 뉴욕으로 관람객을 이끄는 공간이다. 원래 앤디 워홀(Andy Warhol)이 소장했던 1961년작 ‘웃는 고양이(Laughing Cat)’를 포함해 당시 출품작 전체가 모인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그 밖에도 ‘물에 빠진 소녀(Drowning Girl)’(1963), ‘우는 소녀(Crying Girl)’(1963), 발코니 밖으로 실제보다 거대하게 확대된 ‘창가의 소녀(세계 박람회 벽화 습작)(Girl in Window (Study for World’s Fair Mural))’(1963) 등 그를 대표하는 여주인공들이 자리하고 있다. 그 옆에는 리히텐슈타인이 직접 스텐실을 제공해 완성한 일레인 스터트번트(Elaine Sturtevant)의 복제본처럼 원작과 거의 동일한 복제품 및 소스가 전시되어 있다. 심지어 그는 레이먼드 페티본(Raymond Pettibone)의 그림에 마치 진품인 것처럼 자신의 서명을 남기기도 했다. 리히텐슈타인은 단순한 복제를 넘어 복제의 복제를 사랑했다. 이러한 집착은 무한한 재게시(reposting)로 점철된 현대 문화와 이미지가 공유될 때마다 더해지는 새로운 연관성을 이해하는 데 기초가 된다.
“리히텐슈타인의 작품을 찬찬히 들여다보게 하는 것, 그것이 처음부터 우리의 목표였습니다.” — 알렉스 다 코르테
기계로 그린 것 같은 깔끔한 붓 터치 때문에 리히텐슈타인 작품이 지닌 개념적 풍부함은 종종 기술적 정교함에 가려지곤 한다. (그의 브랜드 파워를 의심한다면 벤데이 도트(Ben-Day-dotted)가 그려진 갭(Gap) 플리스를 보라.) 다 코르테는 즉각성으로 찬사를 받는 이 아티스트에 대해 “리히텐슈타인을 바라보는 방식을 늦추는 것, 그것이 처음부터 우리의 목표였습니다”라고 설명했다. 휘트니 전시 전반에 걸쳐 ‘완전한 수작업(Emphatically handmade)’이라는 수식어가 끊임없이 울려 퍼지며, 작품과의 관계에 인간미를 더하고 작품의 질감에 아티스트의 개성을 복원하고자 하는 희망이 담겨 있다.
온리와 다 코르테는 처음 라이크 뉴를 맡았을 때 스스로를 ‘팝 아트 전문가’라고 생각하지 않았다. 2024년 휘트니 비엔날레를 기획한 온리는 이전에 노아 데이비스(Noah Davis)의 언더그라운드 뮤지엄(Underground Museum)을 이끌었으며, 베네수엘라계 미국인 개념 미술가이자 2019년 베니스 비엔날레에 참여한 다 코르테는 미국 팝 문화에 대한 몰입도 높고 색채가 강렬한 해석으로 잘 알려져 있다. 하지만 이들의 경험은 새로운 세대의 예술 애호가들에게 반향을 일으키며, 이전에 다뤄지지 않았던 영역에서 리히텐슈타인의 작업을 맥락화할 수 있게 해주었다. 다 코르테가 길 건너편의 기발한 ‘핫도그’ 광고판에 멋지게 케첩을 뿌려 넣듯, 두 사람은 관객의 취향을 파악하고 새로운 시각으로 아티스트를 이해하도록 대담하게 유도한다. 전시 개막 전, 온리와 다 코르테는 라이크 뉴에 담긴 수많은 점과 그 점들을 연결하는 방법에 대해 이야기를 나누었다.
각자의 고유한 배경이 이번 큐레이팅 방식에 어떤 영향을 미쳤나요?
멕 온리: 우리는 팝 아트 전문가로서 리히텐슈타인의 작품에 접근하지 않았습니다. 각자의 관심 분야가 있었기 때문에 우리만의 개인적인 경험과 관심사를 반영하여 리히텐슈타인을 색다르게 바라보고자 했습니다.
알렉스 다 코르테: 스튜디오에서 활발하게 작업하는 아티스트로서 리히텐슈타인과 그의 작품을 그가 작업하던 그 순간에 위치시키고 존중하며, 그가 작품을 통해 어떤 이야기를 하고 있었는지 파악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생각했습니다. 멕과 제가 전시를 큐레이팅하면서 그가 작품을 만들던 당시에 어떻게 자신의 생각을 언어로 표현했는지 이해하고 인용하는 것이 핵심적인 맥락이 되었습니다.
리히텐슈타인처럼 너무나도 유명한 아티스트의 전시를 큐레이팅할 때의 어려움은 무엇인가요? 또한 어떤 기회가 있었나요?
다 코르테: 리히텐슈타인의 흥미로운 점은 그가 어디에나 있다는 것입니다. 우리가 보고 있는 것이 그의 작품에서 비롯된 것인지 모를지라도 그의 영향력은 우리 주변 곳곳에 존재합니다. 바로 이 부분이 이번 전시를 준비하는 데 있어 가장 큰 과제였습니다. 그의 작품은 즉각적이고 빠르며 그래픽적이고 대담합니다. 하지만 작품에 대한 그의 생각은 매우 느리고 개념적이며 솔직히 말해서 우리가 발견한 바에 따르면 매우 기이합니다. 리히텐슈타인을 바라보는 방식을 늦추는 것, 그것이 처음부터 우리의 목표였습니다.
온리: 이번 전시는 알렉스와 제가 과거를 돌아보고 아티스트 자신이나 캔버스를 넘어 작동했던 필수적인 요소들을 실제로 이해할 수 있는 좋은 기회였습니다. 오하이오 주립대학교에서의 초기 교육도 그중 하나죠. 그는 과학이라는 개념에 깊은 관심을 보였고, 1965년에는 이미 데이터와 관련하여 자신의 점(dots)에 대해 이야기하기 시작했습니다. 그와 같은 아티스트에게서 지속적으로 볼 수 있었던 판화 내러티브에만 전적으로 매달려 있는 것은 아닙니다.
“그와 같은 아티스트에게서 지속적으로 볼 수 있었던 판화 내러티브에만 전적으로 매달려 있는 것은 아닙니다.” — 멕 온리
이번 전시를 준비하면서 특별히 공감했던 예상치 못한 흐름이나 내러티브가 있었나요?
온리: 기존 전시들과 차별화되는 점은 신문이나 만화책, 심지어 미술사 책 등에서 가져온 원본 이미지를 어떻게 활용했는지 살펴본다는 것입니다. 단순히 캔버스 크기로 확대하는 데 그치지 않고, 건축적 규모로 어떻게 확장했는지 제대로 보여주죠. 전시장 곳곳에는 4개의 수작업 벽화가 설치되어 있습니다. 이는 알렉스와 제가 이번 전시만의 특별한 경험으로 관객에게 선사하고자 강력히 추진했던 부분입니다.
다 코르테: 덧붙이자면 리히텐슈타인의 작품은 수작업으로 완성되었습니다. 따라서 이 작품들이 복제된 형태로 보일 때는 주로 광택이 도는 매끄러운 질감으로 표현되지만, 실제로 대부분의 원작에는 작품 제작 과정에서의 그의 흔적을 보여주는 연필 자국, 지운 흔적, 덧그린 자국(palimpsests) 등이 남아 있습니다. 개인적으로 이는 엄청난 발견이었고, 작품을 만들고 그와 함께 시간을 보내는 것에 대해 여전히 많은 것을 가르쳐 줍니다.
리히텐슈타인은 우리가 살아가는 현대의 이미지 세계와 이미지를 다루는 방식에 어떤 영향을 미쳤나요?
다 코르테: 전시는 ‘그린 스트리트 벽화’로 시작합니다. 1983년 로이가 전개한 기호와 이미지의 두루마리는 우리가 소셜 미디어 피드에서 끊임없이 경험하는 이미지의 물결과 매우 흡사합니다. 작품 속에서 자신을 여러 겹으로 겹치고 복제하는 경향과 자기 지시성(self-referentiality)이라는 개념은 오늘날 우리가 세상과 이미지를 맺는 관계 속에서 우리 자신을 어떻게 이해하는지와 본질적으로 맞닿아 있습니다. 이번 전시는 이러한 측면뿐만 아니라 그러한 소통 방식에 익숙한 젊은 세대와도 대화를 나눕니다.